오늘도 느낀다. 아침 운동하러 가는 길, 이 숲 터널을 지날 때 행복하다는 것을. 그동안 겨울나무 검은빛에서 죽음보다 강한 기운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무들 땅 속 뿌리의 작은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겨울나무는 세상 모든 생명보다 고요히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 침묵은 곧 묵수(默言修行)요. 겨울 숲의 신앙이요 기도였다. 그 겨울 숲에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릴 때, 하늘의 사랑이 우리 곁으로 어떻게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눈은 겨울의 선물이다. 대지 위의 흰 눈은 백지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꿇어앉아 그곳에서 시를 쓰고 편지를 써 수신자 없는 그곳의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었다. J 대학 생활관이 위치하고 있는 숲 속의 길은 가운데에 아름드리의 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양 쪽으로는 곧은길이어서 자동차가 서행하도록 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넓은 잎과 주변 나뭇잎들은 7월의 아침 빛 스며드는 녹색기운으로 바다 밑 같은 정밀한 고요 속에 가슴 벅찬 감동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대학로의 젊은 기운과 함께 상상하기 힘든 거목들의 넓고 푸른 잎잎 하나하나가 제철을 맞아 온 세상을 푸르고 두텁게 감싸면서 생명을 껴안아 주는 듯했다. 녹색이 주는 위로와 편안함이 행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주차하고 도립 체육회관 3층 헬스클럽으로 들어섰다. 아침 공기 신선한 가운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볍게 체조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 창밖으로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펼쳐진다. 동쪽 화단으로는 칼을 차고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바로 옆으로는 의자에 앉아 왼손으로는 책을 펴든 채 오른팔을 펴고 앞에 있는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자 하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그 앞으로는 붉은 바탕에 하얀 선을 그어 만든 트랙이 펼쳐져 있다. 얼마 전 일이다. 몸이 기억 자 같이 굽은 할머니가 힘겹게 걷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가다 앉아 쉬고 또 걸어가고- 하는 모습을 한동안 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 무슨 일이 …’ 하면서 기다려졌다. 건강도 경쟁인가. 탤런트 같은 의사들이 TV 화면에서 의술의 신같이 몇 마디씩 들려주고 나면 많은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건강관리에 새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은 뉴스가 되고 유행이 되어 신바람(風)을 일으켰다. 운동장을 보고 운동을 하다 보면, 반백년 전 초등학교 운동회 때, 만국기 펄럭이던 때의 기억이 소환된다. 청군 백군의 나눔 그리고 목소리가 찢어지도록 외치던 응원! 중고등학교 때의 축구 배구 탁구 그리고 경제개발이 이루어지고서 야구 테니스 수영 골프 등 먹고살만해지면서 운동 경기 종목도 하루가 다르게 값 비싼 경제세계로 변신 하고 손에 쥐는 기구의 값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인격의 가치를 달리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싫증이 났는지 나이 따라 몸속 기능이 옛 같지 않은지, 의사 말씀 따라 맨발 걷기가 시작되었다. 도시 근처의 산에는 맨발로 걷기 위한 길이 생기고 길 위엔 황토 흙을 깔았다. 그런가 하면 야자수 나무 잎으로 만든 카펫이 산길 위로 펼쳐지기도 했다. 마침내 화장 짙게 한 사모님과 이웃 분들로 인해, 인조 화장품의 향이 자연의 숲 내음과 꽃향기보다 압도적인가 싶었다. 자연스럽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외면하게 되고 다른 길을 걸었다. 산은 조상과 나이 든 세대에게는 신(神)의 영역 같이 신비스러웠고 두려워했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불교도들은 깊은 산을 찾아들어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도를 닦는 곳이 되었다. 신춘문예를 꿈꾸던 예비 작가도, 고시공부를 하던 젊은이도 산에서 공부하면서 그곳을 도장(道場)이라 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량이라고 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맨발이든 군화든 자전거든 산을 산답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나무와 한 포기의 풀과 벌레까지도 생명이요 그 숫한 생명으로 인하여 자연이라고 했을 것이다. 건강도 남보다 내가 더 건강해야 하고 누구에게 뒤지기 싫어 오늘도 경쟁하고 질투하듯 걷는다는 데 무슨 말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몸이 죽고 죽어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 청청하리라.”라고 읊었던 성삼문 선생이 지금의 ‘맨발의 산꾼’ 들을 본다면 어떤 표정일까…
닥터 헬기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의 환자를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시켜 치료를 받게 함으로써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인천시는 전국 최초로 2011년부터 닥터헬기 운항을 시작, 의료진과 함께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 도서지역과 의료취약지에 출동해 위급한 처지에 놓인 생명을 구했다. 닥터헬기 도입 이후 14년간 총 1593회 출동, 1608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 가운데 400여명은 중증외상 환자였고 280여 명은 뇌졸중 환자였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위급한 상황이었다. 경기도도 당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 원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와 손을 맞잡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닥터헬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매년 수백 명의 중증외상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임에도 인천 닥터헬기는 계류장도 마련하지 못해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다. 인천시청 운동장, 문학야구장, 소방서 주차장, 김포공항, 부평구 항공부대 등을 임시 계류장으로 사용해왔다. 격납고도 없어 기상이 악화될 때마다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023년 12월 인천시의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 신축용 토지 매입과 건물 건축 계획을 심의·의결함으로써 인천 닥터헬기의 전용 계류장 조성 사업이 본궤도로 들어섰다. 인천시는 남동구 고잔동 월례근린공원에 내년 말까지 계류장과 격납고, 사무실을 준공할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남동구 월례공원과 약 450m 떨어져있는 연수구 연수2동 아파트 밀집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연수구의회도 사업초기부터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인 월례공원 닥터헬기 계류장 설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환경적 문제도 제기됐다. 월례근린공원과 약 100m 떨어진 곳에 승기천이 있고, 승기천 하구 남동유수지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서식지다. 검은머리갈매기·도요새·노랑부리백로 등 60종 철새들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승기천은 저어새 등 조류들의 주요 이동경로다. 이에 인천시는 닥터헬기 이동경로를 변경하는 등의 조류 피해 저감 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닥터헬기 계류장 설치사업 내용이 담긴 ‘공유재산 매각 및 연구시설물 축조 동의안’이 지난달 남동구의회 총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일자 인천판 1면, '인천 정치권, 닥터헬기 계류장 기싸움’) 시가 주민 소통이나 조정 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남동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국민의힘 인천시당 간의 갈등과 함께 연수구의회와 인천시의회도 이 논란에 가세했다. 이로 인해 닥터헬기 계류장 설치사업은 실시설계 용역 과정에 멈춰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인천광역시의회 한민수 의원(국․남동구5)은 인천시의회 제302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계류장 설치를 촉구하며, 이 사업이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해 공감을 얻고 있다. 한 의원은 “인천은 생명을 지켜줄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 하나를 갖지 못하고 또다시 멈춰 섰다”고 지적한 뒤 “인천시가 73억 원을 들여 남동구 월례공원에 설치하려는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 시설”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을 살리는 소리”라고 강조했다. “실효성 있는 소음 대책이 이미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대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은 더 이상 ‘민원’이 아닌 ‘지역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의 주장처럼 닥터헬기 계류장은 ‘시민들의 생명선을 지탱하는 공공안전 인프라’이다. “단 한 명의 생명도 정치의 변수로 취급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닥터헬기 계류장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아닌 시민의 생명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한 의원의 말에 동의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다. 이는 현 부동산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인식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여기서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자체의 옳고 그름이나 적절성을 평가하기보다는, 이번 정책 발표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내부의 소통 혼선에 주목하고자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27일, '가계 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통해 수도권 및 규제 지역 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해당 조치에 대해 "기재부에서 나온 대책으로 알고 있으나, 대통령실의 대책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어 "부동산 대책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나 정책도 내놓은 바 없으며, 다양한 대책과 의견을 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이후 대통령실이 "부처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해명을 발표했지만, 이로 인한 국민적 혼란은 불가피했다. 부동산 문제는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고 대통령실이 이를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정책 시행 의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 대통령실이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실이 직접 입안하지 않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정부 발표의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성과가 있을 때는 자신의 공으로 삼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신뢰를 보낼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둘째, 대통령실의 메시지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즉, 초기 입장이 추후에 번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과 같은 핵심 사안에서 이러한 혼선이 발생한 것 자체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현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간에 소통의 혼선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권 초기, 그것도 출범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은 정부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현상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달밖에 안 된 정부여서,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서 완화했던 대출 관리 규제가 현재와 같은 서울 집값 폭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한 것 또한 합리적이다. 현 정부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집값 상승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결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한때나마 극심한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권 초기라 할지라도, 모든 사안에 신중하게 접근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따라서 이번 혼선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을 높이거나 유지하려면, 이런 혼란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
아파트 하자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소비자들은 소위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서 해당 브랜드를 표방하면서 실제 건물을 건축한 시공사나 건설회사가 하자에 대한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하자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양계약서에 기재된 분양자가 현재는 폐업을 하여 분양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집합건물법에서는 하자담보책임의 주체에 관하여 ‘건물을 분양한 자’로 규정하고 있고, 이는 시행사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분양자인 시행사는 하자에 대한 소송의 상대방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브랜드 아파트를 짓고 있는 건설사들이 시공사에 불과한 경우에는 이들은 하자소송의 상대방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수분양자들과 직접 분양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에는 예외적으로 분양자가 하자보수에 기한 손해배상을 할 수 없는 무자력인 경우에는 채권자대위권이라는 법리에 따라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즉, 민법 제404조의 채권자대위소송을 통해서 도급계약에 기해서 분양자가 시공사에게 가지는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행사할 수 있었다. 2013. 6. 19. 개정 집합건물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동법 제9조 제3항에서 ‘분양자에게 회생절차개시신청, 파산신청, 해산, 무자력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있는 경우 시공사가 직접 수분양자들에게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제는 민법상 채권자대위권이 아니라 집합건물법에 따라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편 수분양자들이 분양자가 무자력이라는 것을 알고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다가 분양자가 시공사에게 지급하지 않은 공사대금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시공사는 소송상에서 자신들이 분양자에게 부담하는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채무와 시공사가 분양자에게 가지는 공사대금채권을 상계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고, 이러한 시공사의 상계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어, 실제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제대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통상 아파트의 경우 보증회사가 하자보수보증계약을 체결하고 보증서가 제공이 되어 보증회사 역시 피고로 정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보증대상 범위에 들어가는 것은 전체 하자들 중 사용검사 후 하자만이 포함되고 보증회사는 보증 한도 안에서만 그 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실제 전체 하자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미시공이나 변경시공과 같은 하자에 대한 손해배상은 보증회사에 청구할 수 없다. 또한 공동주택이 아닌 집합건물인 오피스텔이나 상가의 경우에는 하자보수보증금 예치의무가 없어 통상 보증서가 없어 보증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파트 하자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것인지 정하는 매우 문제는 중요하다.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더라도 피고에게 자력이 있어야 원고들은 손해배상금을 수령할 수 있고, 수년간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분양자나 시공사의 자력이 악화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피고를 잘못 설정하여 소송을 제기하거나 이로 인하여 패소의 범위가 넓어지면 피고의 소송비용을 원고가 부담하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파트 하자 소송을 시작하면서 분양자나 시공사의 상황에 대하여 면밀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상법개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한 차례 무산된 바 있고, 여야 간 이견도 큰 상황에서 재계의 거센 반발도 있어서 진통을 겪기도 했으나 여야가 한 발씩 양보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번 상법 개정은 그 내용에 앞서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번째 ‘여야협치법안’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가 ‘협치 1호’를 민생경제 분야에서 만들어 낸 것도 박수 받을만 하다. 상법개정의 내용도 평가 받을만 하다. 우선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확대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그동안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는 회사의 이사가 최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시장의 후진성 때문에 글로벌 초우량기업도 디스카운트된 주가에 머물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곧 일반 주주들의 재산상 피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되면서 대주주에 의해 일반 주주가 이익을 침해받는 일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기업의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이사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사회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 추후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이라고 판단되면 손해배상·배임죄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여야가 마지막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소위 ‘3%룰’도 합의했다. 법안심사소위 회의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법사위 양당 간사와 여야 원내 운영수석부대표가 참여하는 ‘2+2 회동’을 열어 견해차를 좁혔다. 3%룰은 이사회로부터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의결권이 제한되는 범위를 ‘최대주주’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합산’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전자주주총회도 도입됐다. 기업의 자산규모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사는 전자주주총회 병행 개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는 주주들의 접근성을 제고하고,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다.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존의 사외이사들은 형식적으로만 외부 인사일 뿐 대주주와 친밀한 인물인 경우가 많아, 경영진을 관리감독 해야하는 사외이사들이 최대주주의 거수기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용어가 변경됐다. 끝내 합의되지 않은 쟁점은 여야가 추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애초에 민주당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감사 기능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위원회에 사외이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민의힘이 끝까지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아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향후 공청회를 통해 다시 합의를 시도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상법 개정을 통해 자본시장을 선진화해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많은 일반 투자자들과 국민들의 동의가 있었고,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이러한 여론과 기대는 대선 직후 주식시장에서 즉각 반영됐고, 철옹성 같았던 종합지수 3000을 가뿐히 뚫었다. 많은 증권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대세상승장의 초입에 진입했다는 분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또한 상법개정과 함께 금융당국의 투명한 정책집행이 제도화 된다면 주가지수 5000시대도 머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번 상법개정과 그에 대한 자본시장의 반응을 보면 관행으로 굳어진 불공정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제 재계도 작은 이익을 위한 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나 자본시장 선진화에 적극 동참해 주주가치 제고와 대한민국 국부 증대를 위해 국민과 함께하기 바란다.
지금 남북관계는 굳은 빗장으로 닫혀 있다. 2023년 12월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가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 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1991년 노태우 정부와 북한(김일성)이 체결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모두 동결되었고 군사적 충돌위험 마저도 상존하였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시작된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어야 할 것인가?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통일 이후, 1991년 12월 13일 노태우 정부는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전문, 25개조)를 채택하였다. 합의서는 그 이후 남북관계의 기준이 되어왔으나 국회의 인준을 얻지 못해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하였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관계는 곤두박질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쌓아올린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 와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촛불혁명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남북관계는 윤석열 정부에서 허물어졌다. 마치 ‘널뛰기’ 하듯이 남북관계는 요동하였다. 그러므로 남북간 합의사항에 대한 법적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북관계를 단계적이고 실효적으로 정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서독은 1972년 12월 21일 동서독기본조약(전문, 10개조)을 체결했다. 조약은 10개의 조문에 불과하고 그 내용 또한 추상적이며 원칙적인 합의에 그치지만,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를 밟았다. 야당의 반대가 있었으나 비준법률안은 연방회의(하원)에서 통과되어 법률의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기본조약은 정권 교체후에도 동서독 관계 및 통일정책의 법적 기준이 되었고, 동서독 통일을 가속화하고 상호 신뢰회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독일의 기본조약과 우리의 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합의서는 2000년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일종의 ‘공동성명’, ‘신사협정’에 불과하여 헌법 제6조의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조약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합의서’에서 설정한 ‘잠정적 특수관계’가 가지는 이원적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데에 연유한다. 남북합의서는 서문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시하였다. 이것이 동서독조약과 다른 점이다. 남북간의 경제 및 물자교류 등의 추진을 민족 내부교류로 규정(제15조)한 것은 남북간 특수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 하였지만 유엔헌장상의 의무준수조항의 채택을 유보한 것도 남북간 특수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UN 동시가입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국가간의 관계로 기정사실화하여 분단을 고착화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수관계의 설정은 통일의 포기가 아닌 강력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잠정적 특수관계를 인정하고 단계적이고 실효적인 남북관계를 이루자면 남북기본합의서의 국회인준이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남북간 신뢰가 회복되고 단계적인 남북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국회의 성찰을 촉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현재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해양수산부를 12월 말까지 부산으로 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국정기획위원회도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신속추진과제’로 채택했다. 별도의 법·제도 개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다가 더불어민주당도 해수부 이전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나섰다. 이로써 해수부 연내 이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해수부와 부산시는 벌써 임시청사를 찾고 있다고 한다. 부산시는 지원 부서를 구성하는 등 해수부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해수부 부산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북극항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부산을 전초기지로 삼아야 하며 이 사업을 전체적으로 견인할 해수부 역시 부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 회사인 HMM의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북극항로가 해양강국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상승으로 영구결빙 상태였던 북극 해빙(海氷)이 급속하게 녹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20년대 후반~2030년대부터는 늦여름마다 북극해 해빙이 녹아 주요 항로가 완전히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북극항로는 유럽과 아시아 간 운송 시간을 최대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 부산항에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가려면 약 2만2000㎞나 되는 바닷길을 가야한다. 그런데 북극항로를 이용하게 되면 1만3000∼1만5000㎞로 줄어든다. 거리가 약 30∼40%나 단축되는 것이다. 따라서 운송 기간은 최대 절반, 10일 이상 단축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북극항로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3년 해수부는 ‘북극 종합정책 추진 계획’에 이어 2018년엔 ‘북극활동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면 부산은 동북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거점 항만이 되어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극항로는 단순히 새로운 항로가 아닌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말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해수부는 북극항로 개발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북극항로 상업화와 관련 산업 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당연히 ‘해수부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1일 “새 정부는 앞으로 부산을 해양 강국의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고, 부산시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수부 이전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부산지역 의원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동구·영도구·강서구·중구·남구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자신의 지역이 최적지라며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현재 해수부가 있는 충청권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충청권 주민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해수부 부산 이전을 반대한다며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김태흠 충남지사 등 국민의힘 소속 충청권 광역단체장들도 해수부 부산 이전 방침에 반대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 인천시의원들도 지난 30일 정부에 해수부 부산 이전 즉각 철회와 인천 이전을 강력히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일자 14면, ‘국힘 시의원들 “해수부 부산 이전 즉각 철회해야”’) 인천항은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인천항, 인천국제공항, 경인 산업벨트를 포함한 핵심 물류 기반을 갖추고 있는데다 평택 삼성전자, 이천 SK하이닉스, 파수 LG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업체들의 수출입 관문으로 연결돼 해수부 입지로 최적이라는 주장이다. 충청권이나 인천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정부는 전체적인 안목으로 해수부 이전문제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일까지 열리는 ‘서울시 중장년일자리 박람회’에 재취업을 원하는 중장년층의 열기가 뜨겁다는 소식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취업난이라는 요즘, 이같은 자리는 재취업을 열렬히 희망하는 이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개최한 만큼 아직 전국적 규모의 행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마다 중장년층을 위한 재취업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면 좋을 듯하다. 새 정부가 정년 연장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긴 했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퇴직연령은 49.4세다. 조기퇴직자가 정년퇴직자보다 많은 것이다. ‘60세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쟁터 같은 회사를 나와 지옥 같은 삶을 맞닥뜨리는 이들의 현실은 상상만으로도 암담하다. 이번 박람회에는 현대홈쇼핑, LG하이케어솔루션 등 120여개 기업이 참여해 총 1600여명 규모의 채용을 진행한다고 한다. 구직자 1600명이 경력을 살려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희망적인 소식은 또 있다.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가 6개월 동안 60세 이상 시니어 433명의 일자리를 찾아줬다는 것이다. 일할 의지와 역량은 있지만 정년을 넘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발굴하고 취업을 도왔다는 내용. 이는 전국 지자체의 주요 사업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초고령 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확보하는 것은 점점 중요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규모가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중장년층의 일자리 확대와 기회 보장은 점점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에서도 의미있는 행보가 있었다. 지난달 19일 전국 최초로 ‘주4.5일제’ 시범사업을 본격 시행하게 된 것이다.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4.5일제를 시행함으로써 노동자의 워라밸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노동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기업 여건에 따라 ▲주4.5일제(요일 자율선택) ▲주35시간제 ▲격주 주4일제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 경기도는 참여기업에 노동자 1인당 월 최대 26만원의 임금보전 장려금과 기업당 최대 2000만원의 컨설팅 및 근태관리 시스템 구축비를 지원한다. 오는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 후 성과를 분석한 뒤 전국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3~4년 후에는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들이 주4.5일제를 운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이처럼 노동환경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리진 못하고 있다. 중장년층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노동시장의 현실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년 연장과 주4.5일제 도입 등을 계기로 이제는 노동자의 나이 제한에 대해서도 유연성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60세는 말할 것도 없고 4050마저도 일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일할 수 있으며 일하길 원한다. 이젠 사회가 합당한 답을 내놔야 한다.
“내년에는 전담을 맡으면 좋겠어요.” 최근 몇 년 사이,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학급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덧 교육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담임을 맡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예외나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담임 기피 현상이 이토록 뚜렷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행정 업무의 과중함이 있다. 공문과 회의, 수시로 바뀌는 지침에 따라 정리해야 하는 각종 문서들, 여기에 학부모 상담과 학생 생활지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교사들의 목소리 중엔 수업이 쉬는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라는 자조도 있다. 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하루의 대부분을 서류 처리에 소진하는 구조가 담임 교사를 소모시키고 있다. 둘째는 학부모와의 갈등이다. 일부 학부모는 교사 개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 연락하고, 학급 운영 전반에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과도한 민원을 제기한다. 교사의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되고 감시되는 듯한 압박 속에서, 교사는 불안과 긴장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민원은 담임 교사의 심리적 부담을 키운다. 셋째는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사회적 기준 변화다. 예전엔 훈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던 언행이 이제는 쉽게 인권침해로 오인된다. 물론 시대 변화에 따라 교사의 지도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아동학대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매한 잣대는 교사를 위축시키고, 결국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담임을 맡지 않겠다는 선택은 합리적인 자기 보호일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선택이 개별 교사의 몫을 넘어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반교사들이 기피하는 담임 교사 자리는 기간제 교사처럼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떠맡는 경우가 생긴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행정업무를 줄이고, 교사의 권위를 회복시키며, 학부모와의 소통을 조율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은 교육계에서 오래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고, 될 수 있으면 담임은 피하자는 현상은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로 굳어졌다. 교사는 단지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정서를 돌보고, 관계를 이끌며, 삶의 이정표를 함께 그려가는 사람이다. 그 중심에 담임 교사가 있다. 담임 기피가 확산될수록, 학교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조금씩 힘들어지는 구조가 된다. 지금 우리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동기부여와 사명감을 교사에게 불어 넣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교사가 존중받고, 담임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 반을 책임진다는 것이 교사의 용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날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까.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늦었지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25년 6월 23일이 이재명 대통령은 장관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안규백(국방부)·정동영(통일부)·조현(외교부) 등 12명의 장관(국무조정실장 포함) 후보자를 지명했다. 이번 인사는 정치권, 관료 출신, 민간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포진시킨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역별로 수도권 2명, 호남 4명, 대구·경북 2명, 부산·경남 2명, 충청권 1명, 강원권 1명으로 균형을 고려한 점과 특정 대학에 치우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번 새 정부의 인사를 조선시대 인사원칙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번 인사는 국회의원 출신이 6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우며, 정무직 역량을 중시한 구성이다. 동시에 LG AI 연구원장이었던 배경훈, 네이버 대표 출신인 한성숙, 노동계에서 활동한 김영훈 등 사회 각계 전문가를 발탁해 실무 능력도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인사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과거제 합격자와 함께 ‘천거제(薦擧制)’를 통해 덕성과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관직에 기용했던 조선시대의 전통과 유사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관(前官)의 평판과 근무 성적을 중시했는데, 이번에도 다수의 전직 관료와 공직 경험자를 중심으로 인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 당시에도 특정 지역 출신의 관직 독점을 막기 위해 ‘지역 안배’ 원칙을 두었다. 이번 인사 역시 전국 주요 권역을 고르게 안배해, 전통적인 인사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국방, 통일, 외교 등 민감한 부서에 정치권과 관료가 적절히 배치되었고, 보훈부에는 야당 출신 인사(권오을 전의원)와 전 정부의 국무위원(송미령)을 다시 기용해 정치적 포용의 메시지도 보인다. 다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의 비중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될 경우 도덕성과 자질 검증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을 하였던 사례가 있었다. 1519년 중종 14년 현량과(賢良科) 제도였다. 이는 대사헌 조광조가 주도하여 덕망과 인품, 도덕성과 학문이 뛰어난 인재들을 중앙정계에 진입시키기 위한 추천(推薦) 기반의 인재등용 통로였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삼사(三司)와 지방 유림이 천거한 인물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하였으며, 철저히 능력과 인격 중심으로 선발하였다. 이 현량과를 통해 선발된 28명의 인물 중에 다수가 훗날 조선중기 사림정치를 이끈 핵심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적인 인재 등용은 훈구세력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으며, 훈구파의 탄핵과 모함으로 기묘사화가 발생하였다. 현량과는 단 한 차례의 시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제도가 지향하였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단순한 시험 성적이 아닌 도덕성과 책임감, 전문성과 공익성을 고루 갖춘 인물을 공직에 등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시대는 현량과와 같은 이상적 제도를 다시 한번 시도할 용기가 있는가?” 최근에 이재명 정부는 국민추천제를 통해 공직 후보자를 추천받는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개방적이며 공평한 공무원 채용제도가 확고하게 제도화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개혁적이며 책임감이 투철한 전문가가 등용이 되어 대한민국을 보다 민주화된 복지사회로 발전시켜 주기를 모든 국민이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