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이 비싼 생리대를 사기 힘들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생리대 가격이 비싼 탓이다. 곧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에 정부는 급여 수급자나 법정 차상위계층 청소년 등에 바우처 사업으로 생리대를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의 실집행률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2021년 84.6%, 2022년 65%, 2023년 80.0%밖에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집행 예산이 타 사업으로 전용됐을까.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 뒤에도 생리대 가격은 계속 올랐다. 여기에 더해 2017년엔 일명 ‘릴리안 사태’도 일어났다. 릴리안을 착용한 후 생리양 감소와 생리주기 변화 등 부작용이 생겼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안전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에 편승, 일부업체는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적극 나섰다. 경기도는 2021년부터 11~18세 여성 청소년에게 연 1회 생리용품 구매비 16만 8000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통령 출마의사를 밝힌 뒤 여성 청소년의 생리대 구입비용을 지급해 생리대 빈곤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생리대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이 대통령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나라 생리대가 해외보다 39% 더 비싸다면서 말했고, 곧바로 공정위는 국내 주요 생리대 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는 정부가 생리대를 위탁 생산해서 일정 대상에게 무상 공급하는 것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생리대 가격 논란이 확대되고 이 대통령이 강한 인하 의지를 보이자 업계도 반응했다. 다이소가 100원 생리대를, 홈플러스가 99원 제품을 출시했다. 대표적인 국내 생리대업체인 유한킴벌리, LG유니참, 깨끗한나라 등도 중저가 제품 확대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생리대 가격이 이렇게 내려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100원 생리대’에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대통령의 생리대 정책에 제일 먼저 앞장 선 지방정부는 정명근 시장이 이끄는 화성특례시다. 정명근 시장은 이 대통령이 생리대 문제를 지적하자 가장 먼저 실행에 나섰다. 정 시장은 공공형 생리대인 ‘(가칭) 코리요 생리대’를 연내에 제작해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달 12일 생리대 업체들과 소통 간담회를 개최한 데 이어 27일엔 전문 스타트업 ㈜해피문데이를 방문, 화성특례시 특화 브랜드로 구상 중인 공공형 생리대 ‘(가칭) 코리요 생리대’ 제작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김도진 해피문데이 대표는 ‘깔창 생리대’ 사건을 계기로 저렴한 생리용품을 공급하기 위해 회사를 창업한 사람이다. 지난 1월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잡한 유통 단계를 생략하고 유명 연예인 광고 모델료와 과도한 마케팅비를 제거해 시중 프리미엄 제품의 절반 가격에 고품질 유기농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자 기술력을 확보해 해외 로열티와 배당금을 내지 않고, 직접 공장을 돌리면 원가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시장과 김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는 ‘신뢰하고 사용할 수 있는 품질’을 ‘재정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 시장은 “이재명 대통령 정책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뒷받침 하겠다”면서 민선 8기 임기 내에 ‘코리요 생리대’ 정책을 현실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경기신문 3월 6일자 6면, ‘생리대 걱정 없는 화성특례시 향해 첫걸음’) 화성특례시의 행정적 지원에 해피문데이의 기술력이 함께 한다면 품질과 가격을 모두 만족시키는 공공형 생리대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여성의 건강권과 존엄을 지키는 가치 있는 여정”에 나선 정명근 시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게임업계에서 자회사의 분사는 일상적이다. 엔씨소프트는 2025년 빅파이어게임즈, 루디우스게임즈, 퍼스트파크게임즈, 엔씨큐에이(NC QA), 엔씨아이디에스(NC IDS) 등 5개사를 분사시켰다. 크래프톤은 2024년 인조이스튜디오를, 넥슨은 2024년 민트로켓을 자회사로 전환했다. 게임업계에서 자회사 분사는 계속될 수 있을까? 노란봉투법이 허들이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즉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쟁의의 범위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도 포함하고 있다. 기존 노동조합법에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은 노동쟁의의 대상이 아니어서 단체교섭이 제한되었고,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쟁의행위의 목적이 불법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회사가 물적분할을 통해 특정 사업부문을 독립된 자회사로 분사하기로 결정한다면, 이것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이어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의 해석지침은 ‘기업투자, 합병, 분할, 양도 결정 그 자체로는 근로조건에 실질적,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되지 않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신설, 합병 등에 따른 고용승계 전후의 사업경영상 결정(정리해고, 배치전환 등)은 단체교섭 대상이 됨’이라고 안내한다. ‘합병, 분할, 매각, 양도 등 기업조직 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따라 정리해고, 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노동조합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고용보장 요구 등 근로자 지위 및 근로조건 변동과 관련 있는 사항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음’이라고도 하고 있다. 정리해고 등이 예상된다면 자회사 신설도 단체교섭 대상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자회사 신설이 있게 된다면 노동조합은 자회사로 고용승계될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보장도 단체교섭 의제로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 입장에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단체교섭에 응하고 고용보장의 규모와 범위, 기간과 조건에 대한 협의 결과를 유리하게 도출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회사 신설 자체를 시간을 두고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다. 게임업계는 업황 자체의 어려움에 더해 AI라는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기업이 불확실성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살려내려면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 불안정도 최소화해야 하지만 지배구조 변경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과 체질 개선을 위해 필요한 지배구조 변경과 그렇지 않은 지배구조 변경이 구분되어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보다 정확한 안목을 가진 것은, 게임산업의 특수성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들이다. 이미 도입된 노란봉투법은 노사 양측의 시각을 더 잘 종합하고 노사 양자의 공동결정을 촉진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판교라면 그 성공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왜 잊어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도 애타게 갈구했던 순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갑니다. 신이든 조상이든 무엇이든, 이번만큼은 꼭 들어달라고 빌던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살려달라고, 다른 건 더 바라지도 않겠다고, 딱 한 번만 들어달라고 하늘을 우러르던 나는 더 이상 여기 없습니다. 신이든 조상이든 무엇이든, 갈구했던 대상과의 약속 또한 저버린 지 오래입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루나 이틀쯤 감사의 마음을 품었을까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착하게 살겠노라 한 달이나 두 달쯤 순한 걸음으로 살았을까요. 생각할수록 나는 참 못난 사람입니다. 계급장처럼 나이만 이마에 새긴 채, 착하지도 순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조선소에서 일할 때도 그랬습니다. 도르래로 들어 올리던 철판이 중심을 잃고 내 등을 덮쳤습니다. 허리가 꺾이고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빌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대학에 다닐 때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만취한 운전자가 모는 승용차는 이번에도 등 뒤를 덮쳤습니다. 앞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친 나는 맥없이 날아갔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빌었습니다. 이렇게 죽는 건 너무 허무합니다. 두 번의 사고 모두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등 뒤를 덮친 철판은 척추를 비켜 갔고, 차에 들이받혀 날아간 곳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밭고랑이었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숱하게 빌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빌어야 할 대상이 나에서 가족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어른이 뭔지도 모르고 아비가 되어버린 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자격 없는 아비다 보니 모든 날이 절박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주저앉을 때마다 나는 빌었습니다. 총기사고 뉴스를 볼 때면 군대에 있는 아들을 떠올리며 빌었고, 코로나로 세상이 초상집이 되었을 때는 호흡기내과 간호사인 딸을 위해 빌었습니다. 다행히 세 아이 모두 탈 없이 홀로 섰습니다. 돌아보면 내 기도와 상관없이 잘 자라 준 아이들입니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독립과 함께 내가 기도해야 할 일도 끝났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에 희윤이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우주 너머에서 지구별로 찾아온 첫 손주입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희윤이와 만났습니다. 빨갛게 꼼틀거리는 별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다음날 희윤이 어미가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갔습니다. 수술 부위에서 생긴 혈전이 폐에 쌓여 위중하다고 하였습니다. 면회가 제한되어 며느리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희윤이 어미였습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서도 병원 밖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 아이의 우주는 나의 우주를 품을 만큼 넓구나. 나는 빨갛게 꼼틀거리던 별을 떠올리며 속으로 빌었습니다. 부디, 네 어미처럼만 자라다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고마움도 또 잊어버릴 겁니다. 금세 까맣게 망각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도 나처럼, 잊어버리며 살아갑니까. 하긴 그래서 당신과 내가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 잊어버리면서도 기도만큼은 끝내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도 그러하고요. 오늘 밤에도 빨갛게 꼼틀거리는 별 하나가 깜빡입니다.
최근 경기지역에서 금전을 받고 타인의 집이나 재산을 훼손하는 이른바 ‘보복대행’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온라인 메신저와 익명 플랫폼을 통해 의뢰와 실행이 이뤄지는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은 오물 투척, 낙서 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지만 방치할 경우 끔찍한 ‘무질서 폭력사회’로 가는 길목이 열릴 수 있어 싹을 강력하게 자르는 발본색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등에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사적 보복 대행을 알선하는 게시글들이 쉽게 나타나고 있다. 게시글은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뢰인의 원한을 풀어주겠다’며 직장 동료 및 지인을 상대로 하는 ‘이미지 타격’, ‘사고 위장 신체 손상’, ‘범죄 혐의 뒤집어씌우기’ 등 각종 범죄 의뢰를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을 통한 보복 대행 범죄는 이미 경기지역 곳곳에서 발생,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는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화성 동탄에서 돈을 받는 대가로 특정인의 아파트 현관문에 오물을 뿌리고 래커로 낙서를 하는 등 보복성 범행을 저지른 20대가 붙잡혀 검찰에 송치됐다. 피의자는 온라인을 통해 범행을 의뢰받은 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군포에서도 20대 남성이 군포시 한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현관문에 빨간색 래커로 낙서를 하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박 유인물 10여 장을 붙인 혐의로 검거됐다. 혐의자는 텔레그램 등 온라인 채널에서 이른바 ‘흥신소 일거리’를 찾다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의 지시를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평택에서도 지난해 12월 유사한 과정을 거쳐 피해자의 집 현관문에 된장과 물엿 등을 섞은 이물질을 뿌리고 명예훼손성 유인물을 붙인 혐의로 40대를 구속하고 30대 공범 2명을 불구속 입건한 사건이 뒤늦게 전해졌다. 경찰은 보복대행 범죄가 개인 간 분쟁이나 채무 갈등 등 사적 보복을 대신 수행하는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범죄는 실행자와 의뢰인이 서로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 범행 추적이 쉽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지금처럼 가벼운 범죄에 그치지 않고 주거침입 등 경범죄를 넘어서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사회적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사건에서는 범행 지시자와 실행자 외에도 중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개입하는 등 조직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특히 과거 흥신소나 사설 심부름센터를 통해 이뤄지던 보복 행위가 최근에는 SNS와 메신저 등 온라인 익명성 뒤에 숨어서 쉽게 연결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게 경찰청 관계자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보복 협박 등 ‘보복 범죄’ 혐의를 적용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적 보복을 지시한 윗선을 잡지 못하면서 주거침입, 재물손괴, 명예훼손 혐의에 그치고 있다. 구직에 목마른 청년층 일부가 이를 단순 아르바이트로 인식하고 범행에 가담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낙서 알바’, ‘심부름 일자리’ 등의 이름으로 범행 실행자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익명성, 사회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해 위장 거래 등 함정수사 대상에 편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치안 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매우 안전한 국가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온라인 메신저와 익명 플랫폼을 이용한 보복대행 범죄는 여차하면 우리 공동체를 사적 보복이 횡행하는 야만적 사회로 추락시킬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발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가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환경변화로 인식하여 강력히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격언을 상기할 때다.
2월 28일,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중동의 포화는 우리가 발 딛고 있던 세계를 근저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테헤란 상공을 가르는 정밀 유도 미사일과 이란 최고 지도부의 사망 소식은 수십 년간 국제 사회를 지탱해 온 대화와 타협이라는 외교적 수사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었는지를 폭로한다. 특히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이번 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워온 평화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것처럼 느낀다. 이번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인류가 공유해온 낙관주의적, 합리주의적 역사관의 완전한 파산을 의미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반세기 가까이 중동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체제가 일주일 만에 해체 단계에 접어든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폭력이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임을 증명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 즉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은 포화와 함께 전장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날것의 현실주의이며, 이는 비교적 평화로운 탈냉전기에 태어나 성장한 세대에게 ‘세계의 영구적 불확실성’이라는 실존적 과제를 던진다. 이제 미래는 차곡차곡 계획하고 쌓아 올리는 대상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폭격이 내일 아침 나의 자산과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초연결 시대의 위험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전쟁은 역사상 가장 투명하게 실시간 중계되는 동시에 이불 속에서 안전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상흔을 남긴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소식은 전쟁의 참혹함을 콘텐츠로 휘발시킨다. 원하든 원치 않든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폭발 영상과 미사일 이미지 앞에서 감각이 마비된다. 타인의 고통이 데이터와 이미지로 치환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느끼는 무력감은, 곧 다가올 경제적 타격을 넘어 우리 세대에 깊은 냉소주의를 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한 미국이 중동에 전력을 집중하여 발생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공백은 지금껏 누려온 평화가 당연한 것이 아닌, 막대한 비용과 국제 정치의 흐름에 기댄 신기루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세계는 우리에게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얼굴을 빌려 외친다. ‘서사시적인(epic) 분노(fury)’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음을, 그리고 그 방향은 폭력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적임을 선언한다. 저항할 수 없는 이 흐름 아래 개인의 삶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것은 한 국가의 정권뿐만 아니라 그동안 믿어왔던 ‘안전한 세계’라는 환상 그 자체다. 이 시대의 사명은 공포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공포의 근원을 응시하며 변해버린 문법 속에서도 나의 일상을 지탱할 삶의 의미를 확보하는 것이다. 역사는 다시 핏빛 잉크로 쓰이고 있고, 이제 우리는 그 기록의 관찰자이자 작성자로서 어떻게 이 세계를 살아내야 할 것인가를 새로이 사유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2026년 2월 22일,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로 총 10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종합 13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제 그 바통을 이어받아 3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동계 패럴림픽이 개최된다. 한국은 5개 종목(알파인스키·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스키·스노보드·휠체어컬링)에 40여 명의 선수단이 출전한다. 한계를 뛰어넘는 드라마는 계속된다. ◇'화이트 올림픽'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 숨겨진 장벽 동계 올림픽은 흔히 '화이트 올림픽(White Olympics)'이라 불린다. 눈과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축제라는 뜻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뼈아픈 지정학적·경제적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동계 스포츠는 하계 종목과 달리 자본과 인프라의 집약체다. 신발 하나면 시작할 수 있는 하계 종목들과 달리, 억 단위를 호가하는 봅슬레이 썰매와 첨단 소재의 스키 장비는 가난한 국가들에게 시작부터 압도적인 비용의 장벽을 세운다. 동계 올림픽이 오랫동안 돈 많은 북반구 국가들의 전유물이라 불렸던 이유다. ◇불모지에서 기적을 일궈낸 개척자들 대한민국은 이 견고한 성벽을 허물어뜨린 국가 중 하나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막한 제5회 동계올림픽에 'KOREA'라고 적힌 단복을 맞춰 입은 5명의 초미니 선수단이 태극기를 앞세워 개막식에 참가한 이래, 1992년 알베르빌에서 첫 메달을 수상하며, 종합 10위(금2·은1·동1)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 2026 밀라노 대회에서는 17세의 신예 최가온이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스키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그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4일에는 브라질의 루카스 피녜이로 브라텐이 알파인 스키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는 남미 대륙 전체를 통틀어 사상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었다. "브라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이 사건은 동계 올림픽이 더 이상 특정 인종과 국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전 세계에 선포한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패럴림픽,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또 하나의 개척지 올림픽이 끝난 뒤 이어지는 동계 패럴림픽은 이 개척자 정신이 더욱 숭고하게 빛나는 무대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장애인 노르딕스키의 간판 김윤지 선수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하계 종목인 수영과 동계 노르딕스키를 병행하는 그녀의 도전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가며 항상 웃는 얼굴로 ‘스마일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준다. 또한, 각 종목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선발해 새롭게 팀을 꾸린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에 대한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우리 국민이 브라질이나 아프리카 선수들, 그리고 패럴림픽 영웅들의 스토리에 유독 깊은 공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들의 투지에서 결과보다 과정의 숭고함을 중시하는 올림픽의 본질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하고, 신체적 불편함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그들의 투지는 우리 사회에 한계 돌파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리고 그 영웅들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는 날, 우리는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될 것이다. 꿈에는 국경도, 기후도, 신체적 조건도, 그 어떤 색깔의 장벽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범죄다. 개인의 인격을 짓밟고 조직의 생동감을 말살한다. 이로 인한 ‘우울증’은 상황에 따라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고, 정도가 심할 경우 자살‧살인 같은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그 목격자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 조직 구성원의 직무만족도를 낮추고 이직·퇴직률을 높이는 등 정상적인 조직 운영이 저해될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우리 공동체에 끼치는 폐해가 극심하다. 사리가 이러한데 경기도자원봉사센터(이하 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경기도와 센터 등에 따르면 간부 A 씨로부터 부당 지시·모욕적 언행, 사적 심부름 지시 등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직원들은 지난해 12월 10일 피해 사실을 경기도 헬프 라인(Help-Line‧부패행위 신고)에 제보했다. 피해 직원들은 감독 부서인 경기도 자치행정과에도 이 같은 내용을 수 차례 전달했고 이 과정에서 도 감사위원회까지 찾게 됐다. 문제는 경기도의 늑장 대응이다. 경기도는 센터 내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등 피해자들의 주장을 수개월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국민신문고 등 상급 기관을 통한 민원이 제기된 뒤에야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 감사위원회는 감사 조례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한 데다 담당 부서는 피해 주장을 외면하는 등 수수방관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도 감사위원회는 제보 접수 12일 뒤에 “센터는 조례상 감사 대상 기관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내놓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행정기관은 민원 접수 시 업무 소관을 판단한 뒤 해당 부서에 이를 통보하거나 민원인에게 적절한 대응 방법을 안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행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특히 도 감사위원회의 답변은 해당 조례의 문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도 감사위원회 운영 조례 제16조는 감사 대상 기관으로 ‘도비 보조단체 기관’을 명시하고 있다. 센터는 위수탁 협약에 따라 도의 업무를 위탁받고 있으며 직원들의 임금까지도 지원받고 있으므로 감사 대상에 해당된다. 합의제 행정 기구인 도 감사위원회가 감사 대상 기관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도 감사위원회 센터가 감사 대상은 맞으나 제보 내용은 감사위원회 담당 사무가 아니고, 헬프라인 자체는 다른 기관으로의 이첩이 불가하다며 사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도 감사위원회의 ‘업무 분장 몰이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도 자치행정과는 ‘직무 유기’를 함으로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센터 업무를 관할하는 도 자치행정과는 9일부터 12일까지 센터 위탁사무 전반에 대한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감사 내용은 민간 위탁 사무 예산 집행 등 사업 추진과 기관 운영 사항이다. 도는 도 감사위원회 소속 직원 2명도 파견받기로 했다. 도는 앞서 센터 내부에서 제기된 직장 내 괴롭힘 등 부당 행위 발생 민원을 바탕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도 자치행정과는 이러한 피해를 수개월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참다못한 피해 직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 및 부적절한 예산 집행 등을 알리는 민원을 국민신문고,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접수한 사실을 파악하고 나서야 센터에 대한 지도점검을 결정했으니 한심한 행태다. 경기도는 간부 A 씨의 직장 내 괴롭힘 및 사적인 예산 사용 등에 대한 검사 및 감사 등을 통해 직원들의 정신적 피해와 간부의 갑질 행위 등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따른 엄중한 문책 및 재발 방지책을 확립하길 촉구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는 제도 운영의 공정성에 관한 신뢰를 얻고 실효성을 제고해 나갈 때 없앨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난 3일 국민의힘은 이른바 사법 개혁 3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벌였다. 제1야당이 해당 법안에 항의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법 개혁 3법, 즉 법 왜곡죄 도입과 재판소원 제도 도입, 그리고 대법관 증원법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법안이기 때문이다. 법 왜곡죄는 법관이나 검사의 소신 판결 혹은 수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재판소원의 경우에도 성립 요건에 관한 세부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법원 재판이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심리가 이루어져 기본권을 침해당한 경우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성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재판소원이 제기될 경우 형사·민사·가사·행정 등 각종 판결의 효력이 즉시 정지되는 것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이처럼 법안 자체에 상당한 쟁점이 존재하므로 제1야당으로서 적극 반대할 수 있고, 도보 행진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이러한 저항 행위가 실제로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사법 개혁 3법의 문제점에 대해 야당의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과연 절박한 자세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지난 1일 사법 개혁 3법 처리에 항의하기 위해 진행하던 필리버스터를 대구·경북 행정 통합 특별법 처리를 위해 스스로 중단했기 때문이다. 만일 사법 개혁 3법 저지가 정말로 절실했다면, TK 행정 통합 특별법 처리를 이유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서는 안 됐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이번 도보 행진을 진행하면서 집회 및 시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의 아니게 '침묵 시위' 형식으로 행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국민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하면서도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즉흥적으로 행진을 결정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문제도 발생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도보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윤 어게인'을 외치는 세력이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힘이 이들을 동참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러한 구호를 외치는 세력과 함께 행진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의 강성 이미지를 더욱 굳혔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국민의힘의 주장에 여론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민주당의 '무한 질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을 견제해야 할 국민의힘의 주장이나 행동에 쉽게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들은, 정치 자체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를 외면하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질주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여당의 '무한 질주'와 야당의 '무능한 대응' 사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일 수밖에 없다.
2026년 2월 25일 북한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대한민국을 “적대적 실체”로 규정하며 동족 개념에서 배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2023년 말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의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선행 조치가 요구된다. 첫째,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 차원에서 법적으로 인준한다. 전문과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합의서는 남북 화해와 불가침, 교류 협력을 제도화한 기본 틀이다(본지 2025.7.3). 여기에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남북정상선언, 2018년 9·19 군사합의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반영해 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된 정책의 급변을 방지하고 대화의 제도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서독이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연방의회에서 비준해 법적 효력을 부여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둘째,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통일국민협약’을 추진한다(본지 2025.10.13.). 문재인 정부 시기 시민단체들이 구성한 [평화통일 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통일비전시민회의)는 남북간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국민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통일정책의 원칙을 수립하였다. 비록 여야 합의 부족으로 법적 효력에는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국민주권정부와 연합(협치)하여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통일국민협약을 추진한다면 향후 남북교류의 지속 가능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셋째, 남북, 중·미 간 종전 선언 및 평화 협정의 합의 도출이다. 한반도 문제는 구조적으로 미·중 전략 환경과 연동되어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려면 관련 당사국 간 정치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강대국에만 우리의 분단 문제를 맡겨두어서는 한반도 평화정착의 자율적 기반은 취약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국내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인준과 국민적 합의를 선제적으로 마련해 외교적 협상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는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기반 구축이다. 현재 국회에서 이재강, 한정애, 이병진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하여 추진 중인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 등이 그것이다(본지 2026.1.6.). 이것은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에 한해서 DMZ 출입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1991년 12월 합의되고 1992년 2월 18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에서 규정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개선이 이루어지면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선행조건들이 마련되면 남북간 중단사업을 복원하고 신규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사업, 금강산 관광 사업을 복원하고, 국제 자본과 협력하여 새로운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 남북간의 교류, 교통, 교역의 제도화를 통해 한반도와 대륙으로의 생활권을 확장할 수 있다. 국민주권정부는 국회, 법원은 물론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이러한 선행조건들을 제도화하여 남북교류의 마중물을 담아내기를 기대한다.
환경 보호에 배전의 노력을 해야겠다. 올해부터 수도권에서 가연성 생활폐기물(종량제봉투 쓰레기)을 바로 묻을 수 없고, 소각 후 남은 재만 매립할 수 있다. 더구나 1월 1일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수도권 지자체들의 쓰레기 감량 및 소각·재활용 처리 능력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많은 지자체가 여전히 민간 위탁 처리에 의존하거나 타 지역으로 쓰레기를 반출하는 등 준비 부족이 지적되고 있어 근본적인 감량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더구나 서울, 경기 등은 소각장 신설 및 증설을 추진 중이나 주민 반대 등으로 인해 시설 확충이 지연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소각시설 부족으로 민간 위탁을 통해 수도권 이외의 지역으로 쓰레기를 반출하고 있어 "쓰레기 원정 처리"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민간소각장이 집중된 충청권은 “수도권 쓰레기를 떠넘기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강력 반발했다. ‘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충청권이 많은 이유는 여유 용량과 거리 때문이다. 민간 처리시설 숫자는 수도권(21곳)이 충청권(15곳)보다 많다. 하지만 여유 용량은 자체 배출량이 적은 충청권(하루 1103t)이 수도권(하루 1096t)보다 많다.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충북 청주시의 경우 4개 민간 처리시설이 경기 광명시, 인천 강화군, 서울 강남구 등 3곳과 올해 6700t의 생활 쓰레기 처리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쓰레기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갈등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정부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공소각장 마련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오는 2030년부터 직매립 금지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만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내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해당 지역에서 처리하는 '발생지 처리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생활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선별해 매립량 최소화에 힘써야겠다. 휘발성 강한 이슈인 터라 지방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부상할 태세다. 한 청주시장 출마 예비후보자는 “수도권은 편익을 독점하고 지방은 피해를 떠안도록 설계된 수도권 공화국의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서울 25개 자치구가 올해 소각해야 하는 생활폐기물은 2024년 통계에 비춰 볼 때 21만t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에서 배출되는 연간 생활폐기물 1705만t 중 수도권 비중은 47.5%(경기도 434만t·서울 289만t·인천 83만t)에 이른다. 이 중 51만 6776t을 그동안 수도권매립지에 묻었는데, 올해부터 금지된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갈등이 격화할 경우 갈 곳 잃은 쓰레기들로 수도권에선 쓰레기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특히 서울 자치구와 민간업체의 계약이라고는 해도 감독관청에서 소각 종량제봉투를 일일이 열어 소각 대상이 아닌 쓰레기가 나온다면 관할 지자체가 시설 운영 등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비용 측면에서도 지방 민간 처리시설로의 위탁은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2024년 서울 25개 자치구가 쓰레기 처리를 위해 쓴 돈은 종량제봉투 판매 수익을 제외하고도 5635억 원에 이른다. 이미 한 자치구 당 200억 원이 넘는 돈을 쓰레기 처리에 쓰는 셈이다. 또한 수도권매립지 처리 단가는 t당 약 11만 7000 원이었지만 민간 처리시설은 대부분 17만 원 이상이다. 자치구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직매립 때보다 40%가량 늘어나는 처리비용을 기초지자체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현재 구조를 손보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수도권에 전처리 시설(종량제봉투를 개봉해 비닐 등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선별해 소각하는 쓰레기양을 줄이는 설비)을 설치하고, 기존 소각장 용량을 늘려야 한다. 물론 지역과 주민들이 쓰레기 처리시설을 반대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부분인 만큼 중앙정부 차원에서 논의를 주도해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