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전환점'에 놓여 있으며,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남북한 관계는 과거의 교류·협력 시대를 넘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의 전환이 공고화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 정책 전반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다. 남북을 현실적으로 두 개의 국가로 보는 시각이 국내외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여론 역시 이 흐름에 괘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정책 기조의 근본적 변화: 북한은 2024년 초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며, 남한을 더 이상 통일의 파트너가 아닌 '제1의 적대국'이자 '교전국'으로 규정했다. 이는 헌법에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삭제하고 남북 간 모든 교류협력의 상징을 철거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 군사적 위협의 지속: 북한은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며, 미국 본토뿐만 아니라 역내 동맹국에 대한 위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 대러시아 및 대중국 밀착 강화: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과의 군사·경제적 밀착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군사적 역량 강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는 동맹국에 대한 관세 및 방위비 증액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구도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접근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약화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통일이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 추진 동력 또한 현저히 약화되면서 남북한 관계의 장기적인 안정과 발전을 위한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국내외 환경 속에서, 사회연대경제 기업의 입장에서 남북협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현재의 통일 담론이 정치적, 군사적 접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큰 한계로 보인다. 통일은 단순히 외교적 협상이나 군사적 대비를 넘어, 남북한 주민이 함께 번영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추구하는 '경쟁보다 협력, 독점보다 공유'의 가치가 통일 한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특히, 오랜 단절과 체제 차이로 인한 남북 주민 간의 깊은 불신과 이질감을 극복하는데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민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연대경제 조직들은 남북 주민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업하고 성과를 공유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단기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으며, 정부나 대기업 주도의 대규모 교류·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냉각기를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필수적인 준비기'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남북협력 과정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포용적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남북협력형' 사회연대경제 기업의 발굴·육성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 실질적이고 섬세한 준비가 절실한 때이다.
‘고수익 알바’를 미끼로 시작하는 검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이들이 동남아 지역에서 착착 죽음의 터널에 갇혀 들고 있다. 일단 납치 형태로 인신을 감금하여 불법적 업무를 강제하거나 심지어는 장기 적출 방식으로 살해하는 참극마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올해 들어 한국인을 노린 취업사기·납치·구금 사건이 330건 이상 접수된 캄보디아가 문제다. 동남아에 산재한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비상조치 등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이 단장으로 이끄는 정부의 합동 대응팀이 캄보디아 현지에 도착해 활동을 시작했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을 비롯해 경찰청, 법무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도 함께 도착한 대응팀은 일단 현지 당국의 단속으로 구금된 한국인 61명의 송환 계획을 우선 협의하기 위해 캄보디아 고위급 관계자와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국인부터 국내로 데려간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고수익 해외 일자리’ 사기를 당한 한국 젊은이들이 범죄 조직에 납치된 뒤 감금되거나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랐다. 캄보디아에서 가족이 실종·납치·감금된 것으로 보인다는 신고는 이달 들어서도 경기 성남, 부산, 경남, 충북, 대구 등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는 2021년 4건, 2022년 1건이었으나 2023년 17건을 기록한 뒤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지난 8월까지만 330건으로 또 크게 늘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금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한국인을 노린 범죄가 퍼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스캠 콤파운드(Scam Compound)’라는 사기 공장이다. 스캠 콤파운드는 주로 고수익 해외 일자리를 내세워 사람을 끌어들인다. ‘월 500만 원 보장’, ‘숙식 제공’, ‘IT 전문직 채용’ 등의 사탕발림으로 유혹해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고 감금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투자 사기나 로맨스 사기를 강제로 시키고, 목표 금액을 못 채우면 폭행이나 전기 고문까지 자행하는 범죄들이 폭로돼왔다. 동남아에서는 캄보디아 이외에 미얀마와 라오스도 위험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UN 보고서에서는 미얀마 약 12만 명, 캄보디아 약 10만 명이 이런 식으로 강제노동에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집계하고 있다. 대부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캄보디아에서 텔레마케터·서류 전달·동행 여행 등을 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출국했다가 연락이 두절됐다는 내용이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현지 범죄 조직에 감금·고문당한 사건이 널리 알려진 뒤에도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카페 등의 구인 게시판, 불법도박 사이트엔 버젓이 의심스러운 일자리 소개 글이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국민 피해가 급증한 이유로 정부의 안이하고 부실한 대응을 빼놓을 수가 없다. 며칠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이 사건의 심각성 인지 시점과 관련하여 “지난주 정도”라며 “(현지 상황을 현지) 대사관에서조차 모르고 한참 시간이 지나간 것”이라고 한 답변은 아연실색을 부른다. 외교부는 지난 10일에야 부랴부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캄보디아는 지난해 라오스·미얀마·태국·베트남의 법 집행기관이 참여한 ‘갈매기’ 작전을 통해 온라인 사기를 비롯한 범죄 피해자 160명을 구출하고 7만 명을 체포했다. 인도는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770명의 자국민을 구출했다. 국정원은 캄보디아에 1000명 이상의 우리 국민이 억류돼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우리 젊은이들이 검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만, 일단 사기 수법이 통하지 않도록 하는 방어조치부터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저 남미의 콜롬비아 메데진 사람이다. 1949년생이 1993년에 죽었으니 명이 짧았다. 지구상 최악의 범죄자였다. 정치권력과 사법부, 경찰 등 공권력도 모두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3~4년이 특히 절정의 전성기였다. 미국에 들어가는 코카인의 80%가 그가 보낸 것이었다. 마약사업자였다. 당시 환율 기준으로, 그는 하루에 7천만 달러, 1년에 28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포브스지는 당시 그가 세계 7위의 부자라고 발표했다. 어느날, 어린 아들이 춥다고 하자, 100달러 돈뭉치를 밤세워 난로에 집어넣어 실내의 온도를 높였다. 그렇게 하루 저녁에 태운 돈은 20억원이 넘었다. 그는 돈을 내놓으면 살려주고, 아니면 죽이는 '강도들의 원칙'을 응용했다. 경찰이든 정치인이든, 판사든 그 누구든, 자신의 돈(뇌물)을 받아먹으면 살려주어 노예 삼고, 받지 않으면 죽였다. 그 숫자는 5000명에 이른다. 당시 콜롬비아 경찰의 월급은 20달러였다. 뇌물은 기본이 2만불이었으니 월급의 1000배였다. 파블로는 항공기, 선박, 잠수함 등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마약을 운송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King-pin Act’라는 ‘대마약왕 단속조치’를 선포했다. 그 연설은 심각한 표정과 함께 역사에 남아있다. 그는 마약단속국(DEA), CIA, 미군(Delta Force와 Navy Seal. 두 부대는 세계 최고의 특수작전부대) 등을 전투조직으로 확정하고, 콜롬비아 정부와 협력하여 그를 잡으려고 했다. 실패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을 이어갔다. 미국정부가 자신을 사냥하기로 결정하자, 국회의원이 되면 체포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정계진출을 결심했다. 고향 메데진(콜롬비아 제2도시. 당시 전세계에서 살인율 1위)의 빈민가를 헐고 극빈자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축구장을 100개나 만들어주었다. 축구단도 창립하였다. 결국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를 체포하여 처벌하려던 원칙주의적 혁신가 법무 장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1946~1984)를 살해했다. 그 얼마 후, 대통령 후보로 나온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1943~1989)이 마약범죄와 부패척결을 공약으로 들고나오자 역시 살해했다. 갈란을 이은 새 후보 세르히오 가비리아(1947~ )가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을 알고 쐈다. 이 비행기를 타려고 했던 세르히오는 감이 좋지 않아 탑승하지 않아서 죽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간인 110명이 참변을 당했다. 국가와 타협하여 결국 감옥에 갔지만, 그 감옥은 자신이 고급호텔 수준으로 지었다. 그가 뽑은 교도관들이 미군의 기습으로부터 그를 지켰다. 최근 의로운 경찰관 백해룡 경정의 폭로로 알려진 말레이시아 마약범죄단체와 윤석열-김건희의 연관설로 여론이 뜨겁다. 이미 크게 뚫렸다.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30년 전 콜롬비아 메데진처럼 절망의 땅이 될 지도 모른다.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파블로 에스코르바를 소환한다. 그는 세상을 마약과 돈으로 지배하는 지옥으로 만들었다. 끝내 자신을 쫒던 특전사와 싸우다가 뒤통수에 총을 맞고 처참하게 죽었다. 44살이었다. 백해룡과 임은정이 크게 협력하여 위대한 성과를 내기를 빌며 응원한다. 사족:메데진은 파블로 에스코르바 시대가 막을 내린 1993년 이후, 탁월하고 혁신적인 정치가들이 연이어 시장에 당선되어, 3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지방정부로 거듭났다. 우리나라의 3류 정치인들이 <기적의 도시 메데진>이라는 귀한 책을 읽고 등급이 좀 높아졌으면 좋겠다.
절기는 농경사회에서 삶의 리듬이자 지혜의 근간이었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업을 조절하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음력 9월 9일, 숫자 9가 두 번 겹치는 이날은 '중양절(重陽節)'이라 불리며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동양 철학에서 홀수는 양(陽)을 뜻하고, 그중 가장 큰 수 9가 겹치는 날은 양기가 극에 달하는 날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나친 양은 재앙을 부른다’는 믿음에서, 이를 제어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풍속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풍속이 바로 ‘등고(登高)’, 즉 높은 곳에 오르는 행위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날 산을 오르며 잡귀를 물리치고 몸과 마음의 맑음을 되찾고자 했다. 가을 경치를 감상하며 시를 짓기도 하고, 수유(茱萸) 나뭇잎을 담은 주머니를 지니는 풍습도 있었다. 수유는 독을 풀고 재앙을 막는 약초로 알려졌으며,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한 도인이 제자에게 “9월 9일 가족과 함께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고 수유 주머니를 지니라”고 권했고, 이를 따른 가족은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민간 신앙과 결합해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중양절은 절기상 ‘한로(寒露)’와 겹친다. 찬 이슬이 내리고, 국화가 절정에 이르며, 단풍이 깊어지는 때다. 농촌에서는 추수를 마무리하며 일 년의 결실을 마주하고, 도시에서는 가을의 빛과 냄새가 일상을 감싼다. 국화는 중양절의 상징이다. 늦가을까지 꿋꿋이 꽃을 피우는 국화는 고결함과 장수를 의미하며, 국화전·밤떡·유자화채 같은 계절 음식을 통해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이날 빠질 수 없는 풍류는 바로 국화주다. 찹쌀과 누룩에 말린 국화를 넣어 빚거나, 이미 빚어 놓은 술에 국화 주머니를 매달아 향을 입히기도 한다. '본초강목'에는 국화가 두통을 완화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약효보다 중요한 것은 술잔에 스며든 깊은 가을의 향기다. 국화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계절의 기운을 담아내는 ‘가을의 약술’이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가을 축제의 시음주로 사랑받고 있다. 중양절은 제사의 날이기도 했다. 후손이 없는 조상이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기리는 무후제, 또는 ‘99제(九九祭)’라는 의식을 통해 기억과 예를 다했다. 또한 어르신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함께 산행을 하며 가족과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명절이기도 했다. 단지 재앙을 막는 날이 아니라, 공동체의 온기와 화합을 다지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중양절은 그 의미조차 찾아볼 수 없다. 공휴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현대인의 삶 속에서 계절과 절기의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농사와 계절이 삶의 중심이던 시절과 달리, 인공조명 아래 실내에서 보내는 일상은 절기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그럼에도 중양절은 되살릴 가치가 큰 절기다. 국화 향 가득한 가을날, 가족과 함께 걷고 국화차나 국화주 한 잔을 나누는 소박한 순간이야말로 바쁜 일상 속 숨결 같은 여유를 선사한다. 최근 들어 전통주 복원과 절기 문화 체험이 점차 늘면서 중양절의 의미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지역 축제나 전통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국화 향기와 함께 중양절을 체험하는 기회도 많아졌다. 중양절은 단지 옛사람들의 풍속이 아니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 사는 삶의 지혜, 이웃과 나누는 정,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여백이 담긴 날이다. 가을의 깊이를 머금은 국화 향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잠시 멈춰 선다. 국화 한 송이와 그 한 잔의 여운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을의 지혜’로 남는다.
이해승은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이다. 일제에 의한 한일 강제 병합에 앞정 선 ‘큰 공로’로 1910년 10월 일본으로부터 후작 지위를 받았다. 이는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였다. 이완용 등의 주도로 설립된 친일단체인 불교옹호회의 고문을 맡았고, 1928년엔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쇼와대례기념장도 받았다. 이완용·송병준·이근택 등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 중의 한 명이다. ‘내선일체에 큰 공적’이란 글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1942년 5월 30일자)에 썼다. ‘미나미 지로 총독은 작임 이래 내선일체의 실현을 시정의 큰 방침으로 하여 침식을 잊고 조선 통치에 다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인데, 특히 지원병 제도와 징병제도는 글자 그대로 총독이 조선 동포로 하여금 충성한 황국신민이 되어 대동아공영권의 지도자가 되게 하자는 어버이의 마음에서 나온 선정으로서 감사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일제의 전쟁터로 끌고 간 강제 징병을 ‘어버이의 마음’으로 여겨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친일파인 자다. 2005년 1월 공포된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에 근거해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고 위원회는 이해승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했다. 그리고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해승 후손의 토지를 환수했다. 그러나 법원은 토기 국가 귀속 결정을 취소했다. ‘대한제국 황실 종친이라는 이유로 작위를 받은 것’이라는 후손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부가 재차 소송을 냈지만, 1·2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패했다. 이후 법무부는 지난 2020년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대상 토지 인접에 있는 토지 13필지에 대한 환수 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 올해 6월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의정부시 호원동 9필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고 같은 동 4필지의 매각 대금 11억 8125만 원 및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 했다. 지난 8월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민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지금 친일파 재산이 아직도 1500억 원 환수가 안 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정권에서 소극적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소장은 환수한 재산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을 위해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 배석 정부관계자에게 “별도로 챙겨서 저한테 알려 달라”고 지시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법무부는 이해승 후손이 토지를 매각하고 받은 78억 원에 대한 환수 작업도 시작했다. 지난 10일 이해승 후손이 의정부시 호원동 토지 31필지를 매각하고 얻은 부당이득금 약 78억 원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3일자 1면, ‘법무부, 친일파 이해승 후손에 78억 환수 소송’) 일제강점기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자손들은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잘 살고 독립군 후손들은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분명히 잘못됐다. 지난 2004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세종충남지역본부 부여군지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친일반역자 후손이 부럽다, 독립군 조상 싫다’는 글은 독립운동을 한 조상에 대한 원망이 드러나 있다. ‘나는 찢어지게 고통 속에서 가난으로 쪄들고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희망 없는 독립군 후손이다. 친일 부모, 조부모 자식으로 태어나서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누리면서 살아가는 친일파 반역자 후손들이 무척 부럽다’는 글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절망감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반민족 행위로 모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정의를 바로 세우고 일제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정성호 법무부장관의 말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친일파 반역자 후손들을 부러워하는 독립지사 후손들의 원성이 들려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살아왔다. 비가 오면 씨를 뿌리고 해가 길어지면 수확했다. 그리고 그 결실의 순간마다 축제를 열어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었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절, 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고대의 제사들까지 모두 같은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먹을 것을 얻는 일은 생존의 문제였지만 그것을 함께 기뻐하는 일은 인간이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인간이 계절의 순환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의례를 통해 시간의 구조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수확제는 자연의 리듬을 사회의 리듬으로 바꾸는 장치였다. 이 장치 덕분에 사람들은 불확실한 자연 속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질서를 느꼈고, 한 해의 끝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수확의 축제는 곧 사회가 스스로에게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라고 말하는 언어였다. 축제의 의미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깊다. 평소에는 분리되어 있던 가족, 계급, 혹은 씨족이 이 시기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재화를 돌렸다. 위로와 모스가 말했듯, 제사는 경제적 순환을 사회적 관계로 바꾸는 제도였다. 곡식이나 고기를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재분배의 의례’였다. 그래서 수확의 기쁨은 언제나 ‘함께 먹는 즐거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수렵이나 유목 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북극의 이누이트는 고래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감의 영혼을 위로하는 ‘블래더 축제’를 열었고, 몽골 유목민들은 가축의 젖이 풍성한 여름에 하늘신에게 감사의 제를 올렸다. 밭이 없는 사회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얻어낸 생명의 자원을 ‘수확물’로 이해했다. 그들에게도 축제는 살아남은 자들이 다음 주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의 주기에서 점점 멀어지고 식탁의 음식은 계절을 잃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족과 모여 음식을 나누는 행위, 잠시 일을 멈추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습관은 모두 이 오래된 리듬의 잔향이다. 수확의 축제는 단순히 농경의 흔적이 아니라 생존의 불안을 의미로 바꾸려는 인간의 오랜 기술이었다. 우리가 지금 다시 그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류는 더 이상 가뭄과 흉년에 직접 흔들리지 않지만, 여전히 다른 형태의 불안 속에 살고 있다. 경제적 위기, 관계의 단절,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이 모든 것은 현대의 기근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명절은 단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남기 위한 문화적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 송편, 월병, 칠면조는 결국 같은 말을 건넨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 살아남고 있다고.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이며 그 순환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러니 수확의 축제를 단순한 휴일로 흘려보내지 말자. 그것은 과거의 풍습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생존을 노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옛 방식 그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왜 그런 축제를 만들어냈는지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 의례나 민속의 잔재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인간의 기술이었다. 우리는 수확의 기쁨을 통해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확인했고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니 오늘날의 명절도 과거처럼 수확물을 쌓아두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관계의 수확기’가 되어야 한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인간은 다시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그래! 저 모습이야. 아니 저렇듯 편안한 얼굴이어야 하는데-’ 한마디로 화안(和顔)이었다. 강의가 있어 가는 아침 길이다. 서서히 차를 몰고 가는데 국화꽃 위로 국화 빛 낙엽이 하나 둘 내려앉고 있다. 차창 밖 오른쪽의 인도였다.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한 젊은 여인이 작업할 때 열고 쓰는 큼직한 가방을 멘 채, 오른손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둥근달을 생각나게 한다. 복스럽게 생긴 모습이랄까! 균형 잡힌 몸에 결 고운 얼굴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오늘 하루의 피곤이나 삶에 대한 무게감도 엿보이지 않았다. 담담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편안한 모습과 근심 없는 마음을 신경 써온 탓이리라. 진정 저렇듯 편안한 얼굴이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문득 내 어머니의 편안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뿐인 게 죄인 양,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조마조마하시면서 나를 기르셨다. 그런데 아들이 편안하게 산다기보다 척박한 땅에 개척정신으로 뿌리내리는데 힘들어하는 모양새가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문학의 이해와 수필의 길』이란 도서를 발간해 교육문화회관과 덕진문학관에서 강의한 내용을 JTV 방송에서 촬영해 방송할 때다. 그 장면을 거실에서 시청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보시고 ‘네가 저렇게 활동하는구나!’하시면서 미소를 보이셨다. 그리고 몇 년 뒤 어머니는 내 곁을 영영 떠나셨다. 나에게도 한순간 이마의 주름이 펴지고 마음 근육이 가벼워지는 때가 있었다. 아이엠에프 때다. 아들이 어느 방송사 입사시험을 응시했는데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았을 때였다. 마음 속 주름이 펴지는 감각이었다. 지난 9월 9일 정오, ‘한가람’이라는 음식점에서 우리는 만났다. 고향 벗으로서 부부 모임이었다, 열두 명 중, 두 사람은 배우자를 잃었고 수술을 받았거나 매우 불편한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의 친구들이 한 도시로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 정년하고 고희를 넘기기까지 벗해온 생명들이다. 인생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은근한 정을 앞세워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요 축복받을 만한 생명들의 인연이다. 그날 나는 총무라고 평소 안 하던 말도 좀 하고, 커피도 사람 수대로 뽑아다 코앞에 놔드리면서 정성을 다했다. 그때다 내 곁에 있던 한의원 원장 부인이 자기 곁에 앉아 있는 K 친구 부인 뒷머리 스타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K 친구에게 ‘자네 부인은 S여고 3년생 같네. 단발머리가 증명하고 있어!’라고 했다. 친구들은 한바탕 웃었고 모임 분위기는 살아났다. 나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부인들에게 죽염 사탕도 하나씩 드리기도 했다. 머리에 흰 구름을 이고 살면서 폼 잡고 젊잖아 해본들 무슨 변수가 있고 특별한 복이 달라붙겠는가. 숲을 한동안 걷다 오른쪽으로 기우는 산허리 능선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팔뚝 굵기의 가지가 큰 나뭇가지에서 꺾이어져 길 앞에 떨어져 있다. 하늘 향해 곧게 솟아오른 나무는 외형상 크게 표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무 가지와 뿌리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자녀를 잃었다거나 큰 상처를 입고서도 말 못 하는 부모의 가슴이 나무뿌리 의식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밥 먹기 위해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보면 내 시간에는 이끼 낄 날이 없었다. 나이가 불어나고 넘치면 황혼이 지나 어둠이 내리듯 주위는 적막하다. 그만큼 영글고 견디고 물들지 않으면 혼자서 견뎌낼 수밖에 없다. 육신의 힘이 빠져버린 대신 자신을 지키는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고개 넘듯 살아내야 한다. 북극의 곰은 그 굶주림과 죽음을 침묵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시인에게 언어란 문둥병자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 같은 것이라고 조정권 씨는 말했다. 문학이란 자기를 견디는 방법이자 시대를 견디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 생전의 구상 시인이 자기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서 쉬고 있을 때, 한 어린이가 ‘지금 뭐 하세요?’하고 물었다. ‘왜 그런데’ 하고 시인이 반문하니까. 어린이가 하는 말 ‘혼자 노는 소년 같아요.’하더라는 것. 이 말을 생전의 구상 시인은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지는 낙엽, 가는 사람, 사이에서 을씨년스럽다고 ‘가을’이라고 했을까. 가을이면 내 마음도 물들고 싶다. 욕심 없이 담담히 내 살아온 업보만큼 내 마음 물들고 싶다. 큰 소나무 속살 빛으로, 아니 나무의 나이테 빛으로 깊이 물들고 싶다.
지방의회 해외연수의 본래 목적은 정책 연구와 국제 교류를 통해 지방자치의 수준을 올리는 데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 기능을 하는 지방의원들이 선진 지방자치를 견학하거나 견문을 넓히는 일은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엉터리로 이행되는 지방의회의 해외연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고질병은 방치돼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철저하게 개선할 방안을 찾지 못해 아예 해외연수를 폐지한 지방의회도 있다. 경기도 내에서 혈세를 쓰는 지방의회 해외연수가 아직도 엉터리로 시행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기신문 취재결과 화성특례시의회에서 ‘해외연수는 의원이 하고, 보고서 작성의 주체는 직원들이었다’는 사실이 내부 증언을 통해서 확인됐다. 지난 2일 화성특례시의회 경제환경위원회 3차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이 한 “공무국외출장 보고서 작성은 의원들이 직접 작성하고 자료 정리나 일정 요약 등은 직원이 보조하는 역할만 한다”고 한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성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경제환경위원회·문화복지위원회·도시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달에 독일, 호주, 일본 공무출장을 다녀왔다. 이런 가운데 경제환경위원회는 다음 달에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항저우 공무출장을 또 떠난다. 지난달 다녀온 출장 보고서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새로운 출장이 확정되자, 직원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직원들이 ‘연수 보고서 대필’과 ‘의전 업무’를 동시에 떠안으며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형식적으로는 ‘보조 인력’이지만 실제로는 연수의 성과보고까지 책임지고 있는 셈이어서 조직 내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회 사무국 직원은 “출장 후 의원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보고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고, 직원들이 초안을 만들어 의원에게 결재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사실상 전면 대필에 가깝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사무국 내부에서는 ‘연수는 의원이 다녀오고, 보고서 작성은 직원들이 정리한다’는 자조 섞인 불만마저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시의회 직원도 “일부 의원은 연수 목적도 불분명하고 준비도 부족한 상태로 출국하는데 현지에 가서는 직원에게 모든 일정·보고 정리를 맡긴다”며 “보고서 대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 자체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공적 예산으로 진행된 해외 출장의 보고서가 의원의 손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책임 회피이자 행정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지방의회의 해외연수는 숱한 잡음을 일으키면서 혈세 낭비·외유성 논란·부정행위 등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반복되는 대표적인 문제점은 ‘예산 부풀리기·부정행위’, ‘보고서 부실·목적 불명확’, ‘외유 논란으로 주민 신뢰 저하’ 등을 꼽을 수 있다. 개선책으로 ‘제도 혁신’이 계속 요구돼왔지만, 한계가 있어서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제도 폐지나 강력한 통제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화성특례시의회의 해외연수는 그동안에도, 공무에 바쁜 시청 간부 공무원들이 해외연수 의원들을 환송하러 나가는 관행 등으로 ‘과잉 의전’, ‘갑질 폐습’ 등의 논란을 빚어왔다. 무슨 코미디 상황극 제목도 아니고, ‘연수는 의원, 연수 보고서 작성은 사무처 직원’이라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본인들은 공짜 관광을 실컷 즐기고, 자기들이 열심히 일한 것처럼 꾸미는 작업은 애먼 직원들에게 맡기는 관습이 가당키나 한 작태인가. 아무리 굳어진 관행이라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은 청산되거나 개혁돼야 한다. 후진국들이 숱하게 선진지 견학을 오는 나라에서 뭘 배우겠다고 지방의원들이 앞다퉈 비행기를 타는지 모르겠다는 시중의 날 선 비판을 허투루 듣고 흘려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 강제 종결 표결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 반복되자, 필리버스터 신청 정당의 출석을 일정 수준 의무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민주당 의원은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 표결 방식을 현행 무기명 투표에서 전자투표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표결 소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의견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고 양보를 이끌어 내며, 동시에 자신도 일정 부분 양보하는 협상의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단순한 효율성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진 중인 필리버스터 관련 개정안은 결국 절차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본래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점을 간과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정당에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부과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런 문제의식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결국 압도적 의석을 가진 다수당의 수적(數的) 횡포를 합리화 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를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리버스터의 본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내 소수 정당이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다. 따라서 필리버스터는 소수의 정치적 입장을 제도에 반영하는 핵심 도구이며,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실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점유한 현 상황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 정당에 대한 일종의 '제도적 배려'로 기능하고 있고,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보완하는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표결 절차에 필리버스터 신청 정당의 일정 인원 참여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한다면, 이는 그러한 '제도적 배려'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필리버스터 종결을 막을 수 없고, 민주당의 일방적 행보에 들러리 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결 참여를 강제하는 것은 필리버스터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투표 불참 시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강제 투표 제도가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는, 투표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정당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강제할 경우,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단순히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칼럼에서 하자 소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시공이나 오시공 하자의 경우가 전체 하자에서 70% 정도에 달한다고 설명드렸습니다. 소위 이러한 ‘사용검사 전 하자’의 경우에는, 설계도면과 달리 '미시공' 또는 '변경시공' 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에 해당하는 것인데, 실제 아파트 건설과정에서는 다양한 설계도면들이 작성되므로 어떤 도면을 기준으로 하여 하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승인도면은 사업주체가 주택건설사업계획의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기본설계도서로, 대외적으로 공시되는 것이 아니므로 분양계약의 기준이 되지는 않고, 실제 건축 과정에서는 현장 여건 등을 감안하여 공사 항목 간 대체시공이나 가감시공 등 설계변경이 빈번하게 이루지고 있습니다. 설계변경이 이루어지면 변경된 내용이 모두 반영된 최종설계도서(준공도면)에 의해 사용검사를 받게 됩니다. 아파트 분양계약은 통상 설계변경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으며, 수분양자 역시 법령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설계변경이 이루어진 최종설계도서에 따라 아파트가 하자 없이 시공될 것을 신뢰하고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기에, 아파트가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과 다르게 시공되었더라도, 준공도면에 따라 시공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하자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준공도면이 하자 판단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도면이 '적법한 설계변경 절차를 거친 최종설계도서'여야 합니다. 만약 사업주체가 주택법령 등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설계변경 승인이나 통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설계를 변경했다면, 그 변경된 준공도면은 하자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변경 전 도면인 착공도면을 기준으로 하자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공종(설비, 전기, 소방 등)에 대한 준공도면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부득이하게 허가도면(사업승인도면)을 참고하여 하자를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준공내역서는 사용검사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설계도서의 일부로서, 공사 완료 후 소요된 공사비, 자재 수량 등을 기술한 내역서입니다. 이는 건축시방서나 준공도면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우선 적용될 수는 없지만, 준공도면 등에 누락되거나 구체적으로 기재되지 않은 사항을 보충하여 하자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업주체가 분양계약 당시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에 기재된 특정한 시공내역과 방법대로 시공할 것을 수분양자에게 제시하거나 분양광고 등을 통해 별도로 표시하여 분양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켰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이 하자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자의 판단에 있어 준공도면이 기준이 된다는 사정을 악용하여 일부 시공사들이 준공도면에서 하자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여 하자가 인정되지 않도록 사전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하자판단의 기준을 유의하여 사전 하자진단과정에서 준공도면을 면밀히 분석하여 실재 인정받을 수 있는 하자의 범위를 가늠하는 것이 성공적인 하자소송을 위한 준비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