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산업에서 '재능'이라는 단어는 종종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만능 치트 키로 활용된다. 할리우드의 아미 해머나 에즈라 밀러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들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범죄와 스캔들로 대중에게 배신감을 안긴 수많은 스타의 사례는 늘 기묘한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스크린 위에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흡인력,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수익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 도덕적 흠결마저도 '값비싼 개성'으로 치환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대중성이라는 자산이 과연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공정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기어이 지켜내야 할 절대적 가치인가? 그동안 업계는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아야 한다'라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하지만 현대 대중문화는 순수 예술과 달리 대중의 지지와 정서적 유대를 자양분 삼아 작동하는 상업적 시스템이다. 배우의 인지도는 곧 권력이며, 우리가 지급하는 관람료는 그 권력을 유지해 주는 물리적 기반이 된다. 범죄를 저지른 배우의 작품을 비판 없이 소비하는 행위는 단순히 콘텐츠를 즐기는 행위를 넘어, 그가 저지른 악행이 시장 가치라는 장막 뒤로 숨을 수 있도록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가 공동체가 합의한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저버렸다면 그가 누리던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역시 즉각 반납되는 것이 상업적 정의이자 시장의 순리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지점은 '기회의 비대칭성'이 초래하는 현실이다. '검증된 흥행 카드'라는 이유로 문제의 인물들에게 반복해서 면죄부를 주는 시장의 관행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수많은 성실한 연기자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우리 사회가 이른바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는 이들의 스타성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 그들보다 더 신선하고 건강한 매력을 가진 잠재적 스타들은 발견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져간다. 이는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도 인기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위험한 신호를 업계 전체와 미래 세대에게 전파하는 꼴이다. 결국 악마의 재능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단은 예술에 대한 편협한 검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문화 시장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주체적인 소비자 주권의 행사다. 냉정하게 말해,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배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성 스타들에게 부여했던 과도한 상징성을 거두어들일 때, 비로소 자본의 게으름 때문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얼굴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공정한 운동장이 마련된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문제가 된 인물의 연기에서 억지스러운 감동을 짜내는 것보다, 인간적 예의와 성실함을 갖춘 이들의 활약을 응원하는 것이 공동체의 문화적 품격에도 훨씬 유익하다. 이제 제작 현장과 자본은 '익숙한 악인'을 캐스팅하여 위험을 회피하려는 관성적 안일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대중 역시 그들이 제공하는 일시적인 유희가 결코 공짜가 아님을, 그것이 누군가의 눈물과 이름 없는 배우들의 기회 박탈 위에 세워진 신기루임을 직시해야 한다. 재능이 도덕적 치외법권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더 가치 있고 윤리적인 곳에 시선과 비용을 투자할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선택들이 모여 더 맑고 공정한 대중문화의 토양을 일궈낼 것이다. 악인의 재능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방식이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론’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26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분량이어서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라며 “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 기업이 가야 한다”고 말 한 이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이전’을 뜻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김 장관의 발언은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과 지산지소형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지역과 정치권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관련 업계의 우려 역시 높다.(관련기사: 경기신문 5일·7일자 1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 불씨에 정치 쟁점화’ ‘용인 반도체 전면 재검토를’) 사실 이전론은 김 장관 발언 이전에도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10일 ‘K-반도체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 달라”고 하자 전라북도 국회의원과 도의회, 시·군의회, 시민·농민단체 등이 나서 용인 국가산단·클로스터 재검토 등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RE100 산단과 연계해 새만금으로 반도체 관련 시설을 분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용인 국가산단·클로스터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김 장관의 발언은 모닥불에 휘발유를 부은 격이 됐다. 같은 여당 내에서도 갈등이 나타났다. 그 동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북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안호영(민주·전북 완주진안무주) 국회의원은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수급과 송전망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새만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전북도당도 “새만금 이전을 포함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이 반영되고 실행되도록 당력을 집중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에 미래 밥그릇을 빼앗길 수 없는 용인지역 정치권의 반발은 거세다. 이상식(용인갑)·손명수(용인을)·부승찬(용인병)·이언주(용인정) 등 민주당 용인 국회의원들과 남종섭(용인3)·전자영(용인4) 도의원은 기자회견과 성명서를 통해 “현실성 없는 이전론이 거론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이전 주장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은 이상일 용인시장이다. 이 시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주장은 나라를 망치겠다는 것”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대통령과 총리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잘 진행되는 용인의 반도체 프로젝트를 장관이 브레이크를 거는 건 개인의 생각인가, 여론 떠보기인가, 아니면 선거를 의식한 정치용 발언인가”라는 이 시장의 말에 정부가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입장을 밝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 대통령이 도지사 시절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뚫고 유치한 역작이며 도는 전력·용수·교통 등 산업기반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국가와 기업, 지역이 함께 준비해 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상 추진하고, 남부권은 재생에너지·인공지능(AI) 기반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립해 가면 대통령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 경기남부가 아닌 다른 지역에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그만큼 입주 기업들의 메리트도 줄어들 것이라는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홍상진 명지대 교수의 지적처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와 지방정부가 면밀히 검토하고 정한 국책사업이자 미래 대한민국 반도체 경쟁력이 걸린 사안”이다. 특히 이미 토지 보상 절차도 이행되는 상황에서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될 사안이 절대 아니라는 홍교수의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 용인 반도체 클로스터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지난해 12월 17일 유엔군사령부(유엔사)는 ‘군사정전위원회의 권한과 절차에 대한 성명’을 통해 군사분계선 남측 비무장지대(DMZ)의 민사행정과 구제사업이 유엔군 사령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DMZ가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출입 허가권이 전적으로 유엔사에 있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유엔사는 이미 2021년 성명에서도 DMZ 출입 통제를 ‘법적 지시’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정전위원회는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기구다. 그러나 정전 이후 70년이 훌쩍 넘도록 존속하고 있다. 유엔사는 유엔의 독립된 국제기구가 아니라 안보리 결의에 의해 설치된 보조기관이며,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사령부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안보리가 설치한 기구는 총회 결의로 해체할 수 없다는 점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는 유엔, 북한, 중국이며 대한민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정전위원회를 구성하던 중국군은 1958년, 북한군은 1991년 이후 철수했다. 현재 유엔사는 유엔기구도, 주한미군도 아닌 미군이 운용하는 별도의 법적 주체로 남아 있다. 그동안 유엔사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반복적으로 제동을 걸어왔다. 2018년 남북 철도 공동조사 불허, 2019년 대북 타미플루 지원 지연, 정부 각료와 외교사절단의 DMZ 방문 불허, 최근 국가안보실 차장의 DMZ 출입 제한 등이 그 사례다. 이는 정전관리 권한을 넘어선 대한민국 국가주권의 제한이라고 할 것이다. 이 성명은 현재 국회에서 추진 중인 이재강(2025.8.29)·한정애(2025.8.25) 이병진(2024.6.28) 의원 등이 발의한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DMZ법)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들은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에 한해서 DMZ 출입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1년 12월 합의되고 1992년 2월 18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에서 규정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를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안은 유엔사의 정전관리 임무에 장애를 주지 않고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남북의 분단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으므로 이들 법안은 통일이 될 때까지 분단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다음과 같은 사태가 예상된다. 첫째, 남북한간 군사합의가 이행되더라도 한국정부의 결정이 유엔사 결정에 종속되고, 둘째, 한국군에 대한 공식 지휘권을 갖고 있지 않은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정전관리권으로 한국군의 행동을 제한하게 되고, 셋째, 전시작전권이 한국군에게 전환되더라도 유엔사는 비무장지대 정전관리권으로 한국군을 통제할 수 있다. 이제 국민주권정부는 유엔사가 그동안 정전체제를 유지하여 온 것은 인정하되 대외적으로 정전협정 당사국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하여 주력하고, 대내적으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9·19 남북군사합의를 바탕으로, 입법 추진중인 DMZ법·한강하구법 등으로 국가의 영토주권을 재정립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유엔사의 정전 관할권의 환수를 적극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요즘 교육 담론은 대체로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길러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반복될수록 학교는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는 기관으로만 이해되고, 정작 지금 여기에서 아이들이 겪는 삶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학교가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기 이전에, 아이들이 현재를 견디고 서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붙잡고 싶다. 현시점 한국 교육은 세 가지 큰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첫째는 인구 구조의 급변이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실은 단순히 학급 편성과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학교의 목적을 묻게 만든다. 더 많이, 더 빠르게 가르쳐 경쟁시키는 모델이 약해지는 대신, 한 명 한 명의 성장과 돌봄을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작은 학교든 큰 학교든, 이제 교육은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를 중심에 둬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둘째는 기술 변화다. 인공지능, 데이터 기반 학습 도구, 온라인 플랫폼은 학습의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이때 학교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을 따라가기보다 기술이 놓치는 것을 붙들어 주는 것이다. 기술은 답을 빠르게 제공하지만, 왜 그 답이 필요한지, 그 답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내 삶과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스스로 묻지는 않는다. 학교는 여전히 질문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 정보의 양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가르치는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셋째는 불평등의 심화다. 학습 격차는 성취의 문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언어의 격차, 경험의 격차, 관계의 격차로 번져 아이의 자존감과 선택지를 좁힌다. 이때 공정은 같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보충수업 한 번, 프로그램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서 만나는 어른의 수,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환경, 다시 시도할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는지가 불평등을 줄인다. 이 전환 앞에서 교육정책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신뢰다. 학교는 불신이 커질수록 문서를 늘리고, 증빙을 요구하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사는 민원과 평가 사이에서 방어적으로 변하고, 아이들은 실수와 도전을 피한다. 교육은 본래 느리고, 관계적이며, 불확실성을 품는 과정인데, 학교가 점점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기관이 되면 배움은 얇아진다. 그래서 미래 사회에 대비한 교육 개혁의 방향은 무엇을 더 하게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어 줄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덜고,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분리해 주며, 학생의 수업과 생활이 안정되도록 최소한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일 말이다. 교실이 흔들릴 때 교육과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교실이 안정되면, 새로운 시도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미래 대비는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를 미래라는 이름으로만 압박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미래의 인재이기 전에 지금의 시민이고, 지금의 어린이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오늘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돕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언어와 태도를 기르게 하며, 불확실한 세계에서도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유행하는 키워드가 아니라, 교육이 오래도록 품어 온 본질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교육이 물어온 질문이 ‘아이들의 무슨 역량을 더 길러야 하나’였다면, 다음 질문은 이랬으면 한다. 아이들의 오늘을 지키기 위해, 학교가 회복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취업 시장의 문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3분기에도 고용 둔화 조짐이 나타나는 등 고용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깊어지고 있다. ‘취업’보다도 더 확실한 복지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취업전선의 빨간불을 끄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특별한 관리대책 마련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5년 하반기 직종별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채용계획 인원은 총 46만 7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4년도 같은 기간의 53만 1000명보다 6만 4000명(12.1%) 감소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내국인 채용계획은 45만 명, 외국인은 1만 7000명으로 나타났으며, 각각 전년 대비 11.8%, 19.7% 줄었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이 9만 5000명으로 가장 많은 채용계획을 세웠고,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6만 2000명), 도매 및 소매업(5만 6000명)이 뒤를 이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채용 흐름은 엇갈렸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채용계획 인원은 5만 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00명(9.2%) 증가했지만,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41만 명으로 6만 9000명(14.4%)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1일 기준 부족 인원은 44만 9000명으로 집계돼 전년도보다 7만 9000명(14.8%)이 줄었다. 부족 인원은 사업체가 정상 운영을 위해 추가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의미하는데, 이 수치의 감소는 채용 수요 자체의 위축을 시사한다. 고용 둔화 조짐은 이미 작년 3분기에 나타났다. 3분기 구인 인원은 120만 6000명으로 전년 대비 7.0% 감소했고, 채용인원 역시 110만 5000명으로 5.8% 줄었다. 기업이 인력을 구하고도 채우지 못한 미충원 인원은 10만 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7%나 감소했다. 미충원율도 8.4%로 1.1% 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구인 수요 자체가 줄어든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산업별로는 제조업과 운수·창고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도매·소매업에서 미충원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미충원의 주된 이유로는 ‘기업이 요구하는 경력을 갖춘 지원자가 부족해서’(26.9%)가 가장 많았고, ‘임금 수준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의 기대와 맞지 않아서’(20.5%)가 뒤를 이었다. 경기도 역시 같은 흐름 속에 있다. ‘경기경제동향 2025년 1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기도 취업자 수는 778만 9000명으로서 전년 동월 대비 2만 2000명이 감소했다. 장기간 견고했던 서비스업 증가세가 조정되고, 제조·건설업 부진이 지속된 결과로 분석된다. 20대 고용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30·40대에서도 취업자 수가 감소하며 주요 생산 연령층 전반에서 고용이 약화되는 모습이다. 경제활동참가율(65.3%)과 고용률(63.6%)은 각각 6개월, 5개월간 연속 하락했으며 실업률도 0.3%p 상승한 2.6%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기 부진과 고용 악화는 제조업 부진·내수 위축·정책 실효성 논란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경기경착륙 방지와 정책 실효성 강화 등 종합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조언이다. 궁극적으로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또는 신바람 나게 투자할 수 있는 경제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의 난국에 외생변수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요인이 마냥 정책당국과 경제주체들의 핑곗거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당국과 여야 정치권, 경영경제 구성 요원 모두가 발 벗고 ‘건강한 일자리 창출’에 한마음으로 나서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경제전망을 놓고 ‘비관론’만을 확산하는 어리석음부터 자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되새길 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의 신임 총리다. 그는 취임(2025년 10월 21일) 직후부터, 동북아평화를 위협하는 발언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최초의 여성총리(104대·1961년생)라는 역사성과 故 아베 전 총리 뺨치는 강성 보수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가 ‘야심적으로’ 띄운 이슈는 세 가지다. ①비핵3원칙 “핵은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고, 들여오지도 않는다”를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②중국이 대만을 점거할 경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③우리의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한다. 이 여성은 총리가 되기 전부터 자주 독도(일본에서는 竹島·다케시마라고 한다)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총리 취임 직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장관급이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앞으로도 적절한 시점에 다시 참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발적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총리가 전쟁으로까지 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갈등을 고조시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으며 먹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중일갈등은 단기적으로 일본의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갈등을 최고조로 높여서 지지율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썼다. 그의 지지율은 70%가 넘으며, 20대 지지율은 90%를 상회한다. 다카이치의 저의를 미국도 알고, 중국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일반의 상식을 배반하기 일쑤다. 심지어 사소한 감정다툼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나태한 정치인과 나쁜 정치가 합작하여 일방의 예상치 못한 선제공격으로 이어짐으로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이 여성의 ‘지지율 놀이’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높은 지지율은 비핵3원칙을 흔드는 개헌시도를 편들 것이며, 그에 따르는 각종 호전적인 국책들을 용이하게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조일7년전쟁(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합쳐서 이렇게 부른다. 후손들이 임진왜란을 마치 임진년·1592년 1년 동안 있었던 전쟁으로, 정유재란 역시 그해 정유년·1597년 1년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부터, 1945년 식민통치에서 해방될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그리고 그 후 오늘까지,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저질러온 만행의 21세기 버전이 자행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승전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2차대전은 독일 이태리와 함께 추축국(樞軸國, Axis Powers, 중심축이라는 말)으로 전쟁을 주도했다. 2차대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최소로 잡을 경우, 7000만 명이다. 이 가운데 전사한 군인이 2000만 명, 민간인은 그 두 배가 넘는 5000만 명이었다. 패전후, 독일은 진정하고 반복적인 사죄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태리는 무쏠리니를 처형하고 파시즘을 헌법적으로 부정하는 결단을 내린 후, 연합국으로 전향했지만, 일본은 아직까지도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사과를 거부하며, 심지어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한중, 한일 외교를 지혜롭게 펼쳐서 대한민국의 입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동북아평화와 세계평화를 굳건히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 새해 으뜸소망이다.
2026년 새해 아침에 반가운 일이 생겼다. 경기도가 올해부터 일산대교 통행료를 50% 인하한 것이다. 지금까지 1200원이었던 통행료는 1일부터 600원(승용차 기준)으로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1종 차량(승용차 또는 16인승 이하 승합차 등)의 경우 1200원에서 600원으로, 2·3종(화물차 등)은 1800원에서 900원으로, 4·5종(10톤 이상 화물차 등)은 2400원에서 1200원으로, 6종(경차 등)은 600원에서 300원으로 낮춰졌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월2일자 1면, '일산대교 통행료 반값’) 통행료 50% 인하 조치가 내려진 다음 날인 2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일산대교 현장을 찾았다. 통행 상황을 살펴본 김 지사는 “김포시는 이미 부분적인 동참 의사를 표시했고, 파주시도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고양시와 의논해서 나머지 절반에 대한 감면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통행료 전액 무료화 적극 추진 의지를 또 한 번 밝힌 것이다. 김 지사는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의 올해 예산에는 일산대교 통행료 관련 용역비가 포함돼 있다. ‘일산대교 통행료 지원 방안 검토를 위한 연구 용역비’ 예산을 확정했다. 이날 이재영 일산대교주식회사 대표는 올해 1월 1일 통행차량이 지난해 같은 날에 비해 6300대 정도(12% 정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통행료 반값 때문에 늘어난 게 아닐까 생각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김 지사의 말처럼 추이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일산대교를 이용하는 도민들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 효과는 분명한 것 같다. “사실상 유일한 한강 횡단 유료도로인 일산대교의 민자도로라는 구조적 한계와 복잡한 법적 분쟁 속에서도 교통이 곧 민생이라는 경기도의 의지와 정책적 결단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 도의 설명이다. 앞으로 ‘일산대교 전면 무료화’를 위해 관련 예산을 올해 본 예산안에 반영하고 국회에 협력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일산대교는 한강 하류인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과 김포시 걸포동 1.84㎞를 잇는 민자도로로 2008년 5월 개통했다. 그러나 통행료가 만만치 않아 이 교량을 이용하는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일산대교가 과도한 통행료 논란에 휩싸이자 경기도는 이재명 지사 시절부터 무료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 지사 퇴임 후 곧바로 원상복구 됐다. 운영사 일산대교㈜와 대주주 국민연금공단이 반발에 밀렸다. 이후에도 도는 국민연금공단과 관리운영권 인수 협상을 진행했다. 도는 손실보상금으로 약 2000억 원을 제시했다. 국민연금공단은 2008~2038년 30여 년 간 예상 수익 약 7000억 원을 달라고 했다. 5000억 원이라는 큰 금액에 대한 생각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에 김 지사는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도 국정감사에서 도가 선제적으로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위한 비용 50%를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 달 2일엔 더불어민주당 박정(파주을)·한준호(고양을)·김주영(김포갑)·박상혁(김포을)·김영환(고양정)·이기헌(고양병)의원 등과 긴급 회동을 갖고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도가 편성한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관련 예산안이 도의회에서 통과됐다. 한해 총 400억 원 사업비 중 절반인 200억 원이다. 나머지는 중앙정부(100억원)와 고양·파주·김포 등 3개 기초지자체(100억원)가 분담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분담예산과 관련한 일부 지역의 반발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20일 경기 고양·파주지역 유세에서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추진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 (무료화)하면 누가 말리겠는가”라면서 “확실하게 가장 빠른 시간에 처리하겠다”는 말도 했다. 이제 경기도가 나섰다. 정부도 화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약속처럼 빠른 시일 내 일산대교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새 희망을 꿈꾸며 각오를 다진다. 더구나 붉은색 불의 기운을 가진 말(馬)의 기운을 받아 병오년(丙午年) 올해 우리나라에 서기(瑞氣)가 충천하고 번영의 기운이 힘차게 솟아나길 기원한다. 현실은 암담하다. 국가 위난의 시기다. 글로벌 경제 불황과 한국 경제 하방 압력, 한반도 주변 4대 강국 중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 자리매김된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날로 가열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 핵과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호전적 북한의 변수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앞길에 거친 풍랑이 일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 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역경 딛고 10위권 경제대국과 민주화 이룩 설상가상 나라 안팎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첩첩난관인데도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민 불안이 가중되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다. 자신들만의 아집으로 대립을 계속한다면 공화정의 위기와 국민 분열만 커져 소중한 우리 시대는 암흑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남북 분단이 한국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빨리 남북화해의 틀을 일궈 통일의 물꼬를 터야 한다. 민족과 국가, 이념과 사상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인류의 과제를 한 집안일처럼 공동 설계하고 추진하는 지구촌 시대에 남북 분단 80년은 시대 조류를 역류하는 불행이다. “천하대세란 나누면 반드시 합해진다(天下大勢 分久必合)”고 했다. 역대 중국 왕조의 변화를 요약한 경구다.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 급변하는 속도의 시대에 남북한이 겪은 정신적·심리적 고통, 정치·경제적 엄청난 손실과 세계를 향해 더 크게 성장할 호기를 놓친 기회비용은 또 얼마일까. 우리 민족의 기막힌 수난사를 돌이켜볼 때, 오늘의 현실이 결코 절망적이지는 않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숱한 시련과 성찰의 교훈이 누적되면서 발전하고 있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물론 칡넝쿨과 등나무의 얽힘 같은 갈등(葛藤) 구조를 푸는 지혜가 요청된다. 정치지도자의 역할이 긴요하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은 배척과 단절이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라는 데 눈떠야 한다. 우리 내부는 물론 남북 간에도 ‘용서와 화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용서하면 신체 및 정신건강이 향상되고, 평화·행복, 관계의 회복 등을 꾀할 수 있다. 그럼 어떤 리더십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역사에서의 공통점이 있다. 위기 극복에 성공한 지도자들은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어 스스로 동참케 만든 게 주된 배경이다. 거리감 없는 스킨십에 바탕한 공감대, 그것이다. 또 있다. 반대파까지 포용한 게 성공한 리더십의 요체다. 포용과 통합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권, 특히 여권에 주어진 책무가 크고 무겁다. 이재명 정부는 사회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야 한다. ◇‘좁쌀 정치’ 말고 ‘큰 정치’로써 미래 열어야 ‘내란 청산’은 필요하지만 ‘정치보복’ 시비를 불러선 안 된다. 역대 정부는 저마다 '사회 대통합'에 노력했지만, 진보-보수라는 이념 틀과 지역주의 정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해 사회갈등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심지어 정부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역진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대세력을 적대시하다 보면 결국 정책 수행 능력보다 '충성심'을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인사 실패가 속출하고, 소수 측근 중심의 '밀실 정치'가 결국 정권 실패로 귀착됐음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정치는 바로 공동선에 기여하도록 틀을 바로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정략적 속내가 드러나 보이는 '좁쌀 정치' 말고, 국민과 미래를 위한 '큰 정치'를 통해 무한 경쟁의 글로벌시대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할 책무가 지도층에게 있다. 그렇다. 세상만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사람 맘먹기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했다. 옛말에 “산이 높다 해도 그 산을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山高自有客行路), 강물이 깊어도 배로 그 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다(水深自有渡船人)”는 금언(金言)을 되새기는 병오년 원단이다.
책 한 권 크기의 탁상 달력을 받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새겨진 달력을 한 장씩 넘겨 본다. 공휴일과 기념일을 표기한 붉은 숫자들을 세어 보고, 작은 글씨로 적힌 음력과 절기들을 눈으로 더듬는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이 빼곡한 숫자들 속에 숨겨진 날들은 어떤 사건을 데리고 나에게 올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나오는 어드벤트(Advent) 캘린더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일 작은 상자를 하나씩 여는 어드벤트 캘린더는 기념일을 기다리는 마음을 잘 활용한 물건이다. 상자 안에는 대개 초콜릿이나 미니어처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하루의 시작을 설렘으로 채워 주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다. 새날이 시작되었다. 삼백예순다섯 개의 상자가 도착한 셈이다. 상자에서 나올 물건의 크기나 내용은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그 안에 있을 작은 기쁨을 떠올리며 상자를 여는 일은 가슴을 조금 뛰게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별다른 게 없을 걸 알면서도 상자를 열고, 그래서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든 것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큰 기대는 실망을 동반하지만, 작은 기쁨은 하루를 무사히 시작하게 한다. 그렇게 하루를 여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매일은 조금씩 선물이 되어간다. 우리에게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자가 삼백예순다섯 개 있다. 옛날에는 연말이 되면 달력을 주고받는 일이 흔했다. 그 시절 달력에는 계절에 맞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배우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고, 시골 할머니 댁 안방에는 커다란 숫자가 적힌 종묘 회사의 홍보용 달력이 걸려 있었다. 달력은 집안의 벽 한쪽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아주 큰 동그라미로 자신의 생일을 표시했고, 어른들은 제사와 친인척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적어 두었다. 달력에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달력에 남겨진 글씨들은 계획이라기보다, 그날을 소홀히 지나치지 않으려는 표시였던 것 같다.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 요즘은 집안에서 달력을 보기 어렵다. 달력을 구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예전처럼 벽에 걸어둘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루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방식으로, 더 부지런히 기록하며 산다. 사진을 남기고, 메모를 하고, 하루의 장면들을 저장한다. 그 모든 기록은 결국 오늘이라는 하루가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인 탁상 달력을 넘긴다. 아직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은 날짜들이 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어드벤트 캘린더가 우리 앞에 있다. 달력의 빈칸마다 적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미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날이 반짝일 수는 없다. 계획이 흔들리고,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다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잘 견뎌낸 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의 모든 날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조심스럽게 ‘좋아요’를 누른다. 그것이 내가 믿는 사랑의 모습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역동하는 '붉은 말'의 기운과 함께 새해 아침이 밝았다. 쉼 없이 대지를 질주하는 말의 기상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어둠을 뒤로하고 재도약 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 그러나 거침없이 재도약 하기에는 아직도 풀어야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가장 큰 난제는 역시 ‘정치’다. 가장 중요한 열쇠도 당연히 ‘정치’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복원되고 온전한 국정정상화가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는 12·3 비상계엄이 초래한 헌정사상 초유의 격변을 겪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으며, 전직 대통령 부부는 구속됐다. 3대 특검은 내란 등 범죄에 가담한 관련자 121명을 기소했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혼란과 위기였다. 그러나 이 혼란을 수습하고 국정을 다시 정상궤도로 진입하게 한 것은 국민이었다. 여기에 오직 국민과 국익만 바라보겠다고 선언한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해 지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폭탄'을 15% 수준으로 낮췄고,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매개로 우리 기업들의 미국 시장 내 지위를 공고히 했다. 또한 수십 년간의 숙원이었던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해 미국의 승인을 이끌어내며 독자적 방위 역량의 기틀을 마련했다. 폴란드와의 대규모 수출 계약 등 K-방산의 비약적인 도약 역시 대통령이 특사 파견과 세일즈 외교를 직접 진두지휘한 결과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선택하면서도 국익을 챙긴 실리외교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처럼 대통령과 정부는 민생 경제를 살리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지구촌 곳곳과 민생 현장을 누비며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이 앞에서 끌고 가는 국정 열차를 뒤에서 멈춰 세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이다.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오는 민주당 인사들의 추문은 단순한 일탈을 넘어 공당(公黨)으로서의 존립 기반마저 의심케 하는 '도덕적 파산' 상태임을 보여준다. 당의 사령탑이었던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는 여당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가족의 특혜 취업 의혹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도 모자라, 동료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사실을 묵인·은폐했다는 녹취록까지 공개된 것은 충격적이다. 강선우 의원이 시의원 공천을 대가로 1억 원을 받았다는 이른바 ‘공천 장사’ 의혹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다. 더욱 절망스러운 대목은 이토록 참담한 비리 의혹 앞에서도 민주당 내부에서 그 어떤 자성의 목소리나 쇄신의 일성(一聲)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여당은 비록 권력 편향적일지언정,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넘은 지도부와 동료에게는 쇄신을 요구하는 내부 비판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어떤가. 집단적 침묵과 '제 식구 감싸기'만이 가득하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눈치만 보는 비겁한 보신주의가 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내부 비판이 사라진 정당은 죽은 정당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깨끗한 국정을 표방하며 밤낮없이 뛰어도 그를 뒷받침할 여당이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국정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지금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의 ‘밤낮없는 질주’에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내부의 썩은 환부를 스스로 도려내는 처절한 쇄신에 나서야 한다. 박수는 국민의 몫이다. 민주당이 병오년 벽두부터 주저없이 쇄신에 나선다면 국민은 기대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집권여당은 관전자가 아니라 책임있는 국정파트너다. 내부에서조차 자정하지 못하는 정당에 국민은 더 이상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맡길 이유가 없다. 민주당은 뼈를 도려내는 쇄신으로 신년의 희망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염원인 정치복원과 국정정상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