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명의 병졸을 얻기 쉬워도 한 명의 장수를 구하긴 어렵다.” ‘맹자’의 말이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해도 외로이 비추는 달 하나만 못하고, 높은 탑에 층층이 불을 밝힌다 해도 어두운 곳에 등불 하나 건 만큼 밝지 못한 바와 같다고 하겠다. 민선 8기 ‘동네 일꾼’으로 위상 확보 지방분권 시대다. 지방시대를 이끌어가는 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역정치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크고 무겁다. 1991년 지방의회·1995년 단체장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도래했다. 민선 지방자치 30년이다. 우리 지방자치는 다수단체장들의 위민행정 실천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입법 활동·예산 심의·행정사무 감사 등에 힘써 ‘동네 일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예컨대 민선 8기 지방자치를 책임지고 있는 시·도 지사와 교육감, 시·군·구청장, 각급 지방의원 등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현장에서 성실하게 착근시키고 있다. 3년 전 주민이 제대로 된 인물을 선택한 곳은 해당 지역의 발전을 가져왔다.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고 생활환경이 쾌적해졌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체장이 독직(瀆職) 사건으로 구속되거나, 재산이 몇 년 전보다 껑충 뛰어 의혹 보도가 나오는 등 물의를 빚는 곳도 있다. 일부 단체장은 캠프 출신 위주 인사 및 지역 토호 배려 공사 배정을 버젓이 하고 있다. 일부 단체장 친인척과 측근 공무원들의 부패상은 내밀화·지능화되고 있다. 지방의회는 또 어떠한가. 지방의원들도 단체장과 한통속이 돼 놀다 보니 주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인내심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 지자체에선 “내년 지방선거 때 보자”며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의장단 나눠먹기 자리다툼·거짓말·도박·부패 비리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연수 기간 추태’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주민을 위해 집행부를 상대로 정책과 예산 등을 꼼꼼히 세우고 감시해야 할 지방의원이 오히려 주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방의원들의 책무 방기요 본말전도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목민심서’에는 지방 관청 관리들의 부패상을 고발하고 있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으로 논밭을 삼는다”고 할 정도로 개탄했다. 200여년 시대를 뛰어넘어 청백리를 그리워하는 민초의 마음은 한결같다. 일부는 부패비리 연루 선공후사 요청 바른 정치란 무엇인가. ‘논어’는 '백성들이 모여들도록 하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가르치고 있다. 백성들은 민심 소재를 아는 이에게 찾아오게 돼 있다는 뜻이다. 초나라 대부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이 기뻐해 따르고, 먼 곳에 사는 이들이 그 덕을 흠모해 모여들도록 하는 것입니다(近者說 遠者來).” 그렇다.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주민을 위한·주민에 의한·주민을 위한 행정을 펴야 한다는 본령을 되새길 때다. 21세기형 지방자치는 지역사회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과 같이 정보가 개방적으로 소통되는 시대에는 더욱더 주민 다수의 여론을 존중해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잖은가. 선공후사(先公後私)적 실천의지가 요청된다. 그래서 우리 시·도, 우리 시·군·구에 사람들이 이사 오는 행렬이 줄 잇기를 기대한다.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무비자 입국이 예고대로 지난 29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변화된 정책에 대한 기대와 국민적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국내 체류 중국인은 1백만 명에 육박하면서 중국이 외국인 국적 중 단연 최다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인 범죄 발생률이 내국인보다 높지는 않지만, 군사시설 불법 촬영·강력범죄 등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참이다. 몰려오는 유커(遊客)들을 상업적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법체류 증가, 강력범죄 발생 등 부작용에 대한 관리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2020년 235만 명에서 2024년 550만 명으로 한 해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한국 방문 외국인 중 66%가 인천국제공항,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다. 인천을 통해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25년 상반기 전년 대비 23% 늘어나며 증가세가 뚜렷하다. 국내 체류 외국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중국인 범죄자 수 역시 단연 1위다. 2024년 기준, 중국인 범죄자는 1만6097명으로 전체 외국인 범죄자의 52.2%를 차지한다. 다만 범죄율(체류 인구 대비 범죄자 비율)은 1.68%로, 한국인(2.4% 내외)과 러시아인(2.0%)보다 낮다. 그러나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추행) 피의자 수는 1만 명당 0.03%로, 주요 국적 중 중간 수준이다. 지난 5월 중국 국적의 중국동포 차철남이 시흥시 정왕동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동포 형제 2명을 살해하고, 이틀 뒤 자기집 인근 편의점주와 자기집 건물주 2명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등 4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은 끔찍한 기억이다. 같은 달 중국동포가 화성시 동탄호수공원 내 수변 상가의 주점 데크에서 술을 마시던 20대 남녀 5명에게 흉기를 들고 돌진하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또 화성시 병점동의 음식점에서 50대 중국동포가 길거리에서 허공에 대고 흉기를 휘두르다가 경찰에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인과 대만인이 공군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해 경찰에 붙잡힌 일도 개운찮은 사건이다. 지난 3월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주둔한 수원 공군기지 부근에서는 중국 국적의 10대 2명이 이·착륙 중인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하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4월에도 미군 군사시설인 오산 공군기지(K-55) 부근에서 같은 중국인 2명이 여러 차례 무단으로 사진 촬영을 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대만인 2명이 오산 공군기지에서 열린 ‘2025 오산 에어쇼’에 내국인들 틈에 끼어 잠입해 미군기지 내부 시설과 장비를 불법 촬영했다가 경찰에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경제적 효과는 놀라운 수준이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항 면세점 매출은 2022년 6007억원에서 2024년 2조1459억원으로 3.5배 이상 급증했다. 매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1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면세점 이용객 수 역시 2020년 320만 명에서 2024년 1333만 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중국 단체관광객 무사증 입국은 내년 6월 말까지다. 이 기간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황금연휴(10월 1~7일)와 맞물려 있어서, 대규모 유커 유입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 허점이 하나도 없는 무결한 정책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허점을 보완할 대책이 주도면밀하게 마련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개별 범죄 사건이 무분별한 혐중 정서나 외국인 혐오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면서도,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들이 활발히 논의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외국인 범죄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 만큼 면밀한 현황 분석과 범죄율을 줄이기 위한 대안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 대안정책에 차질 없이 반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요즘 그리운 사람이 생겼다. 살면서 난감한 지경에 처했을 때 찰진 욕설로 우리의 맘을 속 시원히 뚫어주던 욕쟁이 할매 고 김수미 배우다. 그녀가 감정을 끓어 올려 구수한 욕을 한마디 뱉으면 울컥하던 속이 가라앉고 그 억센 목소리에서는 시원한 감정의 해소를 넘어 묘한 따뜻함과 위안을 얻었으며 독설 같지만 위선 없는 솔직한 그 말들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고 김수미 배우의 ‘맛깔난 욕’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그렇다면 욕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아마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상하관계를 무너뜨리는 욕이 옛날부터 엄격히 통제 되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신을 모욕하는 욕이 금기시 되었다. 오늘날 세상은 스마트하게 발전해 가며 우리에게 더욱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와 점잖은 척 하는 매너를 요구하고 우리는 대부분은 그럴싸한 언어로 포장된 일상을 보낸다. 욕은 감정을 억제하고만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저마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산다. 친구의 배신, 부당한 대우, 억울한 누명,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골목에서 인간은 울거나 욕이라도 해야 할 때 욕도 못하면 우울은 속으로 스며들고 분노는 안으로 굽어 결국 병이 되는 것이다. 심리학과 신경학의 많은 연구는 금지된 말을 할 때 엔돌핀이 분비되어 삶의 애환에 대한 인간의 내성을 키우는 순기능이 있고, 위기 상황에서 생존 본능을 촉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욕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감정을 조절하는 심리적 진정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욕은 깊은 역사적, 사회적 뿌리를 두고 있다. 욕은 우리가 처한 역사와 사회상에 따라 개인적 사건뿐만 아니라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는데 사용되었다. 때론 이러한 욕설이 모이고 또 모여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며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욕을 일상화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써 욕은 해악이다. 하지만 참기 어려운 순간 자신을 위해 내뱉는 정직한 분노의 언어까지 통제돼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욕하는 순간은 감정이 언어의 외피를 찢고 튀어나올 때다. 정제된 언어론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 억눌린 현실에 대한 강하고 솔직한 반격, 욕은 아마도 가장 진솔한 언어이며 감정의 생존본능일 것이다. 욕은 유행을 탄다. ‘오지네’, ‘개쩐다’, ‘지렸다’ 과거엔 욕을 무례하고 거칠며 저속하다 여겼지만 지금은 그 말들이 세련된 감탄사로 변해 간다. 비록 모두에게 환영받는 일상의 언어는 아니지만. 우리말에는 ‘비어’, ‘속어’, ‘욕설’이 많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비어와 속어가 각각 1000여 개 이상이며, 욕설 또한 사전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비어, 속어, 욕설을 보유한 민족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표현들은 우리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일상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내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두려워 말고 욕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욕을 참느라 목에 멍들고 마음에 병드는 삶보다는 가끔 xx 한마디 던지고 털고 일어서는 사회가 더 건강하지 않을까? 욕설이 왜 나오는지,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 이해하고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수용하는 사회가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은 ‘청년의 날’이다. 2020년 2월 제정된 '청년기본법'에 근거해 “청년발전 및 청년지원을 도모하고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날”로,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았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청년과 시민이 함께한다. 올해도 청년의 날에 참여하며 자연스레 청년 정책의 의미와 방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청년 정책은 중앙정부의 '청년기본법'과 지자체의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해, 청년이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섯 가지 영역―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문화, 참여·권리―으로 구성된다. 청년 정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당사자 참여’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반복되는 이직, 세입자로서 마주하는 불평등한 임대차 관행, 곳곳에 남아 있는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등-를 겪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며 새로운 제도를 제안하고 변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진로 탐색과 준비에 집중할 시간을 보장한 ‘청년수당’, 기존 주거급여의 공백을 메운 ‘청년월세지원사업’은 그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청년 참여로 만들어진 정책들이 제도화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지도 6년이다. 청년 정책의 종류가 늘고 예산도 확대된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그에 비해 청년 참여의 폭이 넓어졌는지는 되돌아보게 된다. 청년 참여가 ‘청년 정책’이라고 규정된 다섯 가지 정책 영역에 국한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해서다. 본질적인 청년 참여의 의미, 즉 사회문제 설정과 해결 과정에 미래 세대의 관점을 반영하는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청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청년 정책’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인공지능과 같은 미래 기술,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 부동산을 둘러싼 자산 격차 등 구조적 문제들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오래 이 사회를 살아갈 미래 세대의 관점을 정책 전반에 반영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청년 참여가 ‘청년 정책’에만 국한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청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이주민, 장애인, 저소득 가구 등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물론 이미 고착화된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 또한 견고하게 자리 잡아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속도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바로 그 변화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관점과 새로운 시도가 절실하다. 마침 올해 청년의 날을 계기로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 청년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청년 정책의 큰 틀을 내놓았다. 교육, 출생, 일자리, 국민연금 등 국가의 주요 의제에 청년의 당사자성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인데, 앞으로 청년과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멈춰 서는 사상 초유의 대란 사태가 벌어졌다. 그동안 수없이 자랑해온 ‘정보기술(IT) 강국’ 운운이 이번 화재 사고를 계기로 온 세계에 완전한 헛소리로 비치게 됐다. 단 한 번의 화재로 무너진 정보 안전 대참사를 놓고 정치권은 철부지 ‘네 탓 공방’의 늪에 빠졌고, 당국은 또 한심한 예산 부족 타령이다. 열일 젖혀놓고 ‘정보 시스템 이중화 장치’ 구축에 들어가야 한다. 더 이상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에 화재가 발생해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마비됐다. 대국민 행정 서비스 관련 647개 업무 시스템이 멈추면서 정부 업무 전산망인 ‘온나라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이다. 국민 일상과 밀접한 무인 민원 발급기와 주민등록증 발급, 정부24 등도 일시에 멈춰 섰다. 인터넷 우편 서비스와 우체국 예금·보험은 중단됐고 모바일 신분증 발급이 안 돼 병원·여객터미널에서도 혼란이 빚어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중화 장치와 대체 장비가 없었던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전산망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냉각 장치 등 모든 구성 요소를 이중화해 한쪽이 마비되더라도 즉시 복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는 게 원칙이자 상식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센터 간 백업체계는 있지만, 데이터를 돌릴 장비가 없다”며 “예산이 빠듯했다”고 해명했다. 예산 부족으로 관련 장비 여유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화재의 원인이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를 빚은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때와 마찬가지로 리튬이온 배터리였다는 점은 특히나 뼈아픈 대목이다. 데이터센터 화재 발생할 때마다 서버 분산, 실시간 백업체계 구축 등의 대책을 강도 높게 요구하던 정부가 정작 국가 전산망 관리는 엉망으로 하고 있었던 셈이니 참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유사한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확대 정책을 유지하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ESS는 대부분 열폭주 시 대형화재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활용해 전력을 저장한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올해 6월까지 ESS 화재는 55건이 발생했다. 배터리 화재는 2020년 292건에서 2023년 359건, 2024년 상반기 296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29년까지 2.22GW, 2038년까지 23GW 규모의 장주기 ESS를 도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화재 방지, 냉각, 자동 차단 장치 등 안전 설비를 갖추지 않고 용량만 늘리면 같은 위험을 키우는 셈”이라고 경고한다. 국회 행안위 소속 의원들은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피해 복구 상황을 살펴본 뒤 여야가 각각 별도의 현장 브리핑을 통해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화재 원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전 정부의 부실 대응과 예산 문제 때문’이라고 변명한 반면, 국민의힘은 ‘현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부실’이라고 비판했다. 세상만사를 정쟁거리로 만드는 정치꾼들의 탁월한 능력만 빛나고 있는 셈이다. 2019년과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2회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디지털 선도국 명성이 이번 화재로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 땜질식 처방으로 비판 여론이나 가라앉힐 궁리에만 빠지는 습성부터 제발 고쳐야 한다. 정보 안전 시스템은 ‘백업’만으로는 어림없다. 사고 즉시 작동하는 핫 스탠바이 체계가 필요하다. 복구 지연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치명적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정보 시스템 이중화 장치’와 ‘대체 장비 확보’에 즉각 나서야 한다. 염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국민 걱정부터 덜어놓고, 그다음에나 지지든지 볶든지 해야 할 거 아닌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는 인간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본성을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안정감, 소속감, 스트레스 해소를 통해 정신 건강을 높여 준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과의 교류가 없으면 고독해지거나 삶의 즐거움과 의미가 줄어들게 된다. 즉 사람에게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동창회나 동우회 등 한두 개 이상의 각종 모임을 지니고 있다. 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러하다. 특히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상대가 절실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불렸던 모씨가 어느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남겨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때 썩 성공적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남들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개인적 삶은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 풍성하지를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존경하고 의례적인 대화를 나눌 사람들은 차고 넘쳤지만, 정작 자신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상대 혹은 실없는 수다를 떨 상대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해 이런저런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성복회’라는 이름을 가진 모임이 3개나 된다는 점이다. 성복회란 이름은 물론 우리가 만나는 장소인 신분당선 성복역에서 따왔다. 사실 성복역은 수지 지역에 새로 들어선 대형 쇼핑몰인 롯데몰과 연결되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붙인 성복회는 ‘성공한 사람, 그리고 복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도 가진다. 우리가 성복회를 결성하기 전, 서울과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모임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한 차례씩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다. 이후 각 지역을 비교 분석한 결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여는데 가장 좋은 지역으로 선정되어 낙착된 곳이 바로 우리 동네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살고 있는 용인 수지 지역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사를 오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 이처럼 성복역 주변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임의 명소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무엇보다도 먹거리가 싸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사실 도농 복합도시인 용인은 오래전부터 향토색 짙은 음식이 다채롭게 존재해 왔다. 또 최근 들어서는 이름난 맛집과 카페들이 우후죽순 들어섬에 따라 이제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음식과 카페의 도시가 되어있다. 특히 성복역 부근 신봉동 일대는 가격대비 맛도 좋고 안락한 분위기를 지닌 소위 가성비가 높은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음식점은 한정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일식과 피자집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곳의 카페들은 직접 커피를 로스팅하거나 빵을 구워 내놓기에 그 맛과 향이 일품이다. 또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야트막한 산기슭에 위치해 운치와 낭만이 넘친다는 점도 인기 있는 비결 중의 하나다. 실제로 고기리로 이어지는 신봉동 산기슭 일대는 음식문화 거리로 지정되어 있다. 3개의 성복회의 일정은 모두 12시경 성복역에서 만나 신봉동 골짜기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근처의 베이커리 카페(bakery café)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물론 성복회가 있는 날이면 내가 차를 가지고 성복역에서 이들을 픽업해 점심 장소와 카페로 이동하는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이는 우리 동네를 기꺼이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아주 작은 서비스에 불과하지만, 느끼게 되는 어떤 기쁨과 뿌듯함은 대단히 크다. 성복회 회원들은 옮겨 간 카페에서 본격적인 수다를 떤다. 이곳은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실내공간 장식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항상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수다의 주제는 다를 나이가 나이인 만큼 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건강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정신없이 실없는 이야기를 꽃피운다 보면 어느덧 오후 서너 시가 되어있다. 그때면 우리는 슬슬 자리를 접고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귀가하도록 다시 성복역으로 모시고 간다. 이렇게 해서 성복회의 하루는 끝이 난다. 다음 성복회가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에는 출입문이 셋이다. 임금이 가마를 타고 드나드는 가운데의 큰 문과, 고관대작을 비롯하여 창덕궁에 볼 일 있는 사람들의 출입문인 양쪽의 작은 문 2개다. 임금이 창덕궁 밖으로 행차하는 일은 드물기에 가운데의 큰 문은 보통 굳게 닫혀 있다. 그러니 돈화문 큰 문틀 속의 풍경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 ‘죽은 풍경’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신비로운 역사 풍경이라 해도 일상적으로 볼 수 없으면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화문 앞쪽 진입로 끝의 계단 아래 양 옆에 서서 바라보면 양쪽의 작은 문틀 속에도 북한산 보현봉의 웅장하고 거대한 화강암 정상이 쏙 담겨 있다. 가운데의 큰 문틀보다 작기는 하지만 그 또한 엄청 아름답고 신비롭다. 게다가 보통은 가운데의 큰 문이 잠겨 있어 작은 문틀 속의 풍경은 더욱 빛났고, 그 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그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무성한 나무가 보현봉을 많이 가리니 아쉽다. 아무리 아까워도 옮겨심기를 바란다. 하늘 아래 우뚝한 북한산의 보현봉은 하늘의 명을 받아 조선을 다스리는 임금을 상징하고, 그래서 돈화문 문틀 속의 풍경은 임금의 풍경이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이제 진짜 출발이다. 창덕궁삼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800m의 돈화문로가 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편하게 남쪽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서북북을 등지고 동남남을 향했는데, 이 방향은 창덕궁을 만든 조선의 세 번째 임금 태종(재위: 1400~1418)이 철저하게 계산하여 정한 것이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돈화문로를 걸으며 눈으로 확인해 보자. 돈화문 모습만 사진에 담고자 한다면 창덕궁삼거리 건너편 첫 번째의 횡단보도 위가 최고다. 그곳에 서서 바라본 돈화문은 중국 자금성의 천안문과 오문-전문-태화문과 비교하여 규모가 많이 작다. 하지만 그렇다고 왜소해 보이진 않는다.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단아하지만 상하좌우로 균형미가 잘 잡혀 있어서다. 돈화문은 중국 자금성의 여러 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우리 궁궐 정문만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다시 돈화문로를 따라 걷다가 두 번째 횡단보도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차가 오지 않을 때 중간에 서서 북쪽을 바라본다. 당연히 돈화문이 그곳에 있는데, 뭔가 모습이 확 달라진다. 돈화문 안에 그림처럼 담겨 있던 그 작은 보현봉이 뒤쪽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돈화문 위에 듬직하고 웅장하게 솟아 있다. 하늘-산-궁궐(정문)의 세 요소가 일체화된 3단계 풍경으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궁궐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궁궐 풍경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의 궁궐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하늘-궁궐의 2단계 풍경밖에 없다. 놀람을 뒤로하고 돈화문로를 걸으며 횡단보도가 나올 때마다 중간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보현봉이 예상치 못한 속도로 커진다. 진입로의 입구인 종로3가사거리의 횡단보도에서는 보현봉의 웅장함이 극에 달한다. 북경의 자금성을 포함하여 세계 어느 궁궐에서도 정면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이보다 더 웅장할 수 없다. 이 풍경을 본 자, 우리 궁궐의 풍경을 누가 소박하고 단아하다 말하겠는가? 보지 못한 자만이 그렇게 우길 뿐이다. 돈화문로는 임금의 권위를 웅장한 풍경으로 구현한 임금의 길이다.
지난해 ‘1인 가구’가 처음으로 1000만 세대를 넘어섰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간한 ‘2025 행정안전통계연보’는 2024년 전체 세대 수 2411만 8928세대 가운데 1인 가구가 1012만2587세대라고 밝혔다. 1인 가구는 부모나 배우자, 자녀 등 가족 없이 한 가구에 혼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4년 전인 2020년엔 906만3362세대였으니 불과 4년 만에 105만9225세대가 증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의 급증 배경을 혼인률 감소, 초혼 연령 상승, 직장 출퇴근 문제, 개인주의 확산, 가족해체, 고령인구 증가 등으로 분석한다. 1인가구는 경기도에 가장 많았다. 통계청 인구총조사(2024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1인 가구는 177만 가구로 전국에서 최다였다. 도내 시군 중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은 수원(10.4%), 성남(7.6%), 고양(7.3%), 화성(7.0%), 용인(6.2%) 순이다. 그 중 도내 청년 1인 가구 비율은 1인 가구 전체의 34.9%를 차지했다. 하지만 경기남부 시·군의 경우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화성은 47.4%, 수원은 46.3%, 오산은 46.2%, 평택은 41.4%, 용인은 40%였다. 이는 경기도의 많은 청년들이 혼자 살면서 주거를 비롯한 생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지난 22일 국무조정실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국민주권정부 청년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모든 청년에게 첫걸음 기회를 부여하고 기본생활을 지원하며 청년들의 정책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취업난, 주거비 상승, 자산격차 확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실질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청년들의 주거비 경감을 지원하기 위해 청년 월세지원 사업을계속 사업으로 전환하고, 지원대상의 단계적 확대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원래는 올해까지 한시사업으로 무주택·저소득 청년에게 최대 월 20만 원 월세를 지원할 방침이었다. 공공분양주택 적극 공급, 청년층 선호지역에 공공임대주택 공급 지속 확대, 청년 눈높이에 맞는 공공임대 품질·서비스 향상 등도 포함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청년들의 고통과 불안을 덜고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든든한 정부”가 되겠다고 밝혔다. 현재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풀기 위해서는 “청년 주거 문제와 일자리 문제에 대해 ‘월세지원확대’와 ‘일자리첫걸음보장제’ 같은 미시정책을 추진하면서 청년의 삶 전반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기도는 ‘청년월세 한시 특별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경기도·시군이 함께 부모와 별도로 거주하는 19~34세의 무주택 청년들에게 월 최대 20만원씩 최장 24개월간 월세를 지원한다. 청년가구는 중위소득 60% 이하이고, 부모를 포함한 원가구는 중위소득 100% 이하가 대상이다. 이에 도는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 사업 대상의 기준 연령을 기존 34세 이하에서 39세 이하로 확대하고, 소득기준을 완화하라고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대체로 생애 1회 혜택이 제공되는 일회성 사업인데다가 단순 전세·월세 지원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주거 정책사업은 청년 주거난 해결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5일자 1면, ‘경기남부 1인 가구 절반이 청년… 주거난 해법 안 보인다’) 이에 도는 청년 주거 공급을 위해 전세·임대 지원사업과 임대주택 공급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청년 매입임대, 경기행복주택 등을 공급하고 있다. 낮은 임대료로 많게는 수년까지 거주가 보장된다. 그러나 공급이 한정적이다. 게다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하반기 공공 전세임대 수시모집을 중단했다. 공사는 최근 청년 등의 전세·임대 물량을 대부분 공급했던 터여서 전세·임대 수요층의 걱정이 크다. 도 관계자는 “기존의 건설 물량에서도 특별 공급으로 신혼부부, 청년들을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현재이자 미래인 청년을 위한 진취적인 주거정책을 기대한다.
올해 에미상 토크쇼 부문 최우수상은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가 진행하는 CBS의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가 차지했다.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스티븐 콜베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10년 전, 어떤 쇼를 만들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사랑에 관한 코미디 쇼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어느 시점인지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우리가 사실 상실에 관한 쇼를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상실은 사랑과 맞닿아 있는데,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때 비로소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달 전인 지난 7월, CBS는 ‘더 레이트 쇼’를 폐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CBS가 카멀라 해리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인터뷰를 편집했다며 트럼프가 200억달러 규모 소송을 제기하자 CBS는 1600만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전달했는데, 콜베어가 이를 “크고 두툼한 뇌물”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CBS의 토크쇼 폐지 계획은 이로부터 불과 사흘 뒤에 발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븐 콜베어가 잘려서 정말 좋다는 ‘소회’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다음 타겟으로 지미 킴멜(Jimmy Kimmel)을 지목하면서. ‘더 레이트 쇼’의 시한부 인생이 이어지고 있던 지난 17일, ABC는 간판 토크쇼 ‘지미 킴멜 라이브!’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의 피살을 두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커크를 죽인 용의자가 같은 진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이며 이 사건으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말한 지 이틀만이었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 ‘지미 킴멜 라이브!’는 돌아왔지만, 사태가 완전히 진정된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FCC를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 발언에 민감하며, 적극 행동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FCC의 눈치를 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CBS의 소유주 파라마운트는 스카이댄스와의 합병을 앞두고 있으며, ABC의 소유주 디즈니는 NFL과의 합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들 합병은 감독기관인 FCC가 승인해야만 가능하다. FCC의 위원장 버렌던 카(Brendan Carr)는 한 팟캐스트에서 “방송 허가(license)를 받으려면 공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찰리 커크 피살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을 꼬집거나, 방송사가 대통령에게 전한 수백억 원의 합의금을 뇌물이라 비판하는 것이 공익이 아니라면, 방송 허가와 합병 승인을 빌미로 언론사를 압박하는 정부의 행위는 어째서 공익인가. 방송 허가와 합병 승인, 혹은 대통령의 불편한 기색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숨 쉴 공간, 표현의 자유는 사라질 듯하다. 그러나 입을 막을수록 커지는 열망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스티븐 콜베어의 수상 소감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토록 내 나라를 간절히 사랑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상실한 것은 자유로운 표현의 나라다. 권력이 입을 막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자라난다.
‘언론’, ‘뉴스’, ‘언론사’, ‘언론인’이라는 용어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언론이고 뉴스인가? 어디까지가 언론사고 언론인인가? 쓰임에 비해 이들 개념어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제4부, 제3의 권력 등으로 불리고 현실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외부 현실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 테크놀로지 발전의 영향이 크다. 최근 이들 용어의 쓰임이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시민이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거나 잘못된 보도에 대한 비판이니 겸허히 받아들일 부분이다. 일상과는 달리 우리나라 법은 이들 용어와 관련돼 정의하고 범위를 획정한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방송법’,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등 매체별 법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이란 “방송,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 뉴스통신 및 인터넷신문”이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정의다. ‘공직선거법’은 이러한 언론 범위를 확장한다. ‘인터넷언론사’라는 개념으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인터넷신문사업자’와 “그 밖에 정치․경제․사회․문화․시사 등에 관한 보도․논평․여론 및 정보 등을 전파할 목적으로 취재․편집․집필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하여 보도․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인터넷홈페이지를 경영․관리하는 자와 이와 유사한 언론의 기능을 행하는 인터넷홈페이지를 경영․관리하는 자”다.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 뉴스통신사, 인터넷신문사는 아니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 기능을 하는 인터넷홈페이지를 규율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법으로 언론사가 정의돼 있으니, 언론인은 이들 언론사 소속이라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언론 기능을 하는 인터넷홈페이지에 소속된 사람을 언론인이라 할 수는 없다. 뉴스는 이러한 언론사가 생산한 보도․논평․여론 및 정보 등이다. 이제 정의와 범위가 명확해졌을까? 현실을 제대로 투영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는 언론 관련 법의 각종 요건을 갖추고 등록하거나 허가돼야 언론사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 등 인터넷동영상서비스, 각종 소셜미디어 등에는 법적으로 언론사는 아니지만, 언론사나 언론인으로 자칭하는 사례가 넘친다. 기성 언론 못지않은 정보를 생산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채널이 적지 않지만, 언론을 참칭해 수익을 벌어들이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이러한 유사 언론을 간단히 불법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비현실적인 등록이나 허가 요건의 결과기도 하다. 현재 법에서 인터넷동영상서비스나 소셜미디어의 채널로는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할 수 없어 각종 규율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불법이 아닌 비법적 요소로 인해 유사 언론이 만연하고 있다. 시민이 이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는 없다. 현실에서 언론은 합법과 불법, 그리고 비법의 영역에서 존재하고 있다. 급속히 발전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따라가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언론 관련 법과 정책은 비법의 영역을 확장할 뿐이다. 이로 인해 시민의 눈과 귀는 더욱 어지럽게 된다. 언론의 정의와 범위가 법적으로 규정돼 있는 이상, 불법의 영역을 없애고 비법의 영역을 줄이는 것이 언론 정책의 핵심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