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보호의 대상이지, 수익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불법개설의료기관,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 확산되며 평생 사회를 지탱해 온 노인들이 가장 먼저, 가장 집요하게 표적이 되고 있다. 노인단체의 대표로서 이 현실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들 불법 의료기관은 요양병원이나 의원으로 위장해 정상 병원처럼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비의료인이 이윤만을 목적으로 개설·운영한다. 특히 의료 이용 빈도가 높은 노인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장기 입원이나 반복 진료를 유도하며 부당한 수익을 챙긴다. 문제는 노인들이 이러한 불법개설기관을 스스로 식별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병원의 합법 여부나 진료의 적정성을 판단할 정보와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의 설명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은 과잉 진료와 불필요한 시술에 쉽게 노출된다. 이는 노인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심각한 부담을 준다. 더 큰 문제는 현행 수사 체계로는 이들 사무장 병원을 신속히 적발하기 어렵고, 그 사이 병원은 사라지고 피해만 국민과 노인에게 남는다는 점이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 앞에 서 있다. 불법개설의료기관을 방치하는 것은 노인의 생명과 존엄을 방기하는 일이며,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구조적 범죄를 묵인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해 불법 의료기관을 신속히 차단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노인이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사회, 의료가 탐욕이 아닌 신뢰 위에 서는 사회를 만드는 데 지금 당장 국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최근 모 사회단체에서 3·1절 명칭을 ‘독립선언절’로 변경하자는 청원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제안 단체는 3·1절이 날짜 중심의 기념에 머물러 독립선언이 지닌 본질적 의미와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이러한 제안은 3·1혁명이 지닌 대한민국의 정체성(Identity)과 세계사적 의의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3·1혁명의 ‘3’과 ‘1’은 결코 단순한 날짜 표기가 아니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에서 ‘3’은 삼재(三才)사상에 따라 하늘·땅·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완성의 질서를 뜻하고, ‘1’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체적 통합을 상징한다. 이는 숫자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상징체계라 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33은 최소이자 최대의 상징 수로서 대표성·완결성·책임성을 함께 지닌 숫자다. 다시 말해 3·1은 우주 질서와 인간의 도덕 의지가 합일된 역사적 행동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3’과 ‘1’을 삭제하고 ‘독립선언절’로 변경하려는 시도는 한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축소하거나 왜곡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역사적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독립’이라는 용어도 합당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독립된 국가였고, 일제(日帝)에 의해 35년간 불법으로 국권을 강탈당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3·1을 단순히 ‘운동’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로 부르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3·1혁명은 민족해방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세계 최초의 비무장 민중혁명이었다. 이 혁명의 성과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정신은 1920년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지는 무장 독립전쟁의 사상적·도덕적 토대가 되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 3·1혁명에 있음을 헌법 전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3·1혁명의 영향은 한반도에만 머물지 않았다. 종교와 계급, 계층과 직업을 넘어 비무장 민중이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방식으로 제국주의에 당당하게 맞섰다. 이 경험은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해 인도, 이집트, 인도차이나, 필리핀 등 세계 피압박 민족에게 강력한 자극과 용기를 주었다. 3·1혁명은 세계사적으로 비폭력 민중운동의 새로운 기원을 제시한 것이다. 3·1혁명은 한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다. 총과 폭력이 아니라 민중의 참여와 도덕적 정당성으로 권력에 맞선 것이다. 이 혁명정신은 인도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 수호)와 아힘사(Ahimsa, 비폭력)운동,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혁명을 개념이 모호한 ‘독립선언절’로 바꾸려는 시도는 3·1혁명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는 퇴행적 발상이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명칭이 아니라, 3·1혁명의 의미를 흐리게 만드는 안일한 역사 인식 그 자체다.
우리의 BTS가 4년의 긴 공백을 깨고 완전체가 되어 돌아왔다. 정규5집 발매계획(3월 20일 오후 1시)이 발표되자, 지구촌 전체가 들썩 거리고 있다. BTS는 오는 4월 9일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 일본, 남북미, 유럽 등 34개국을 돌며 82회의 공연을 한다. 2027년 3월, 미국 LA에서 막을 내린다. CNN은 “K-Pop을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끌어올린 BTS가 돌아왔다”고 전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번 투어는 북미 도시경제 수준을 마비시킬 수준의 대형이벤트”라고 평가했다. 경제분석 전문업체 투어리즘 이코노믹스는 “일반적인 공연에 적용되는 경제적 승수효과는 BTS에게는 맞지 않는다. 효과측정 자체가 어럽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공연횟수를 늘리도록 도와달라는 외교서신을 보내왔다. 나는 BTS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력을 높이고 전파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한다. ‘BTS WORLD TOUR ARIRANG’으로 명명한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월드컵 우승 보다 곱절로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4300년 전 개천(開天) 이래로 최고의 국격을 이룩하는 전기가 되기를 하늘에 빈다. 나는 실은 그동안 BTS라는 그룹이름과 팬클럽 아미(ARMY)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번에 방(B)탄(T)소년단(S)의 작명의도를 확인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한글식 영어이름은 그들의 실력, 철학, 자신감을 강력하게 내뿜는다. 10대, 20대의 청소년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억압과 편견이라는 ‘총알’을 막아주는 형 또는 친구 같은 노래패가 방탄소년단, BTS다. Bulletproof Boy Scout의 뜻이다. 팬클럽 ‘아미’는 당연히 ‘군대’를 연상시킨다. 온세상의 팬들은 BTS의 전우(戰友)라는, 혈맹의 연대감을 담고 있다.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의 약자가 아니어도 그 정체성은 막강하다. 이들이 팀웤이나 소속사의 문제가 없다면, 향후 몇 십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BTS 7인 멤버는 예외 없이 대한의 남아로서 병역의무를 마쳤다. 그들의 긴 공백은 바로 군대생활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하여 생긴 일이었다. 팬클럽 이름이 ‘군대’(army)인데, 병역문제에 대해서 허점을 보이면 되겠는가. 슈가(Suga)는 데뷔 전에 교통사고로 인하여 어깨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현역 대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나머지 6인 멤버들은 모두 아무런 특혜 없이 현역으로 복무했다. 진(Jin)과 제이 홉(J-Hope)은 신병교육대 조교로, RM, 정국(Jungkook), 지민(Jimin)은 보병으로, 뷔(V)는 육군 군사경찰 특임대 요원으로 복무하고 전역했다. 장하다. 한편, BTS가 아리랑을 들고 돌아온 것은 정말로 근사하고 천재적인 기획이다.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이 1년 동안 지구촌을 K-Culture의 세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나. 4년 전 BTS가 이룩한 위업이 선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아리랑은 이 세상의 남녀노소가 제 나라의 국가(國歌) 보다 더 좋아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된다. 미국 캐나다 중국의 1/40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지만, 아리랑이 우리 대한민국을 세상에서 가장 넓은 나라로 확장하는 인류사적 사건이 곧 벌어진다. 백범 선생의 염원이 이루어질 날이 눈앞이다.
새해 연휴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특별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전적과 불굴(不屈)의 투지로 승리한 명량대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명량대첩은 과거의 영광으로 박제된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세계의 거대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전략 모델이다. 역사는 지나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명량대첩은 그 역사적 선택의 정수(精髓)가 아닐 수 없다. 1597년 8월 27일과 28일 칠천량 패전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은 소멸되었다. 거북선 3척과 180여 척의 판옥선과 조선 수군 1만 여명 이상이 전멸되었다. 남은 전함은 고작 13척 뿐이었다. 명량해전에서 맞서야 할 일본 수군은 133척의 대함대였다. 전투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단순한 전함의 수적 비교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는 전장(戰場)의 조건을 다시 정의했다. 울돌목(鳴梁)의 좁은 물길,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는 거센 조류, 판옥선의 구조적 안정성과 화포(火砲) 운용의 장점, 그리고 패배 속에서도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의 정신으로 무장시켜, 완전히 꺼지지 않은 병사들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계산했다. 명량해전에서의 승리는 결코 기적이 아니었다. 명량대첩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다음 문장으로 압축된다. “절대적 열세 속에서도 환경을 읽고, 기술을 다듬고, 결단할 수 있다면 국가는 살아남는다.” 이 명제는 16세기 조선 수군의 전장에만 적용되는 교훈이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과 경쟁이 일상이 된 21세기 오늘날에 있어서 더욱 절실한 국가 전략의 원리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한국은 또 다른 형태의 전장에 서 있다. 총성과 포연 대신 반도체, 방산, 조선, 배터리, 문화산업이 국가 경쟁의 최전선이 되었다. 세계는 기술과 공급망, 표준과 플랫폼을 둘러싼 각축의 시대에 들어섰다. 자원도, 시장도, 인구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우리는 여전히 불리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반도체, K-방산, K-조선, K-배터리, K-문화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모습은 명량대첩과 매우 닮아있다. 한국은 규모로 승부하지 않는다. 대신 환경을 읽고, 기술을 현장에 맞게 정교화하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결단을 미루지 않는다. 판옥선이 화려함보다 실전에 강한 전함이었듯, 한국의 산업 경쟁력 역시 실제 시장과 현장에서 검증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마다 “물러설 수 없다”는 선택이 국가의 진로를 바꾸어 왔다. 세계의 강대국들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명량대첩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명량대첩의 저력은 오늘의 대한민국 국력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타고난 DNA가 아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 우리 민족이 반복적으로 단련해 온 선택의 능력이며, 환경을 직시하고 결단해 온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이다. 명량대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사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첨단 과학 문명 시대에도 중심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일을 도모해야만 성패도 있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서(漢書)’에 "자식에게 광주리에 가득 찬 황금을 물려주는 것이 한 권의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고 경책한 바가 잘 말해 준다. 춘추전국시대 명재상 관자는 “1년의 삶은 곡식을 심고, 10년간 계획은 나무를 심으며, 100년을 기약하려면 사람을 키우라.(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百年之計 莫如樹人)”라고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시대. 사람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케 한다. 세계적 기업도 뿌리를 지탱하는 힘은 큰 공장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인재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데이터지능화 인재 확보가 중요한 것이다. 과제가 적잖다. 중앙정부의 교육정책과 재정 지원, 교권 보호와 학습권 보장 등을 통한 공교육 확립이다.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수월성 교육 및 인문학에 바탕한 인성 교육도 중요시해야 한다. 자연 학부모의 허리를 휘게 하는 과도한 과외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시도 교육청에 주어진 책무가 크고 무겁다. 시도 교육청은 교육부의 권한 위임을 받아 지역 맞춤형 교육을 실현한다. 각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서 교육감의 감독 아래 지역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는 지방교육행정기관이다.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정책 수립, 유·초·중·고교 운영 지원, 교육환경 개선, 교육지원청 지도·감독을 통해 교육의 질을 관리한다. 한데 6.3 지방 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선거는 깜깜이’라는 말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정당 공천이 아니기에 유권자들은 교육감 선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 많은 유권자가 시장이나 시도지사가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큰 권한이 있는지 알면서도 교육감이 무슨 일을 하며 어떤 권한이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일반행정 업무와 교육행정 업무로 나누어진다. 시도지사가 일반행정 업무를, 교육감이 교육행정 업무를 각각 책임지는 형태다. 17개 시도 교육감은 무려 80조 원이 넘는 지방 교육재정을 집행하고 학생 600만 명, 교사 50만 명, 2만여 개의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공교육 살리고 교육자치 구현 지혜 모을 때다. 이런 큰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헌법 제31조 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과 교육계·학부모 및 시민사회 단체가 숙의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제시되는 방안 중 하나는 교육감 간선제다. 세계적으로 교육감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나라는 많지 않기에 교육위원회 등에서 선임하자는 안이다. 다른 방안은 교육감 후보의 당적 보유와 정당 공천, 예비선거를 제안하기도 한다. 정당 추천 선거가 되면 정당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기 때문에 유권자의 관심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동일 티켓으로 묶는 러닝메이트제도 있다. 이는 교육자치를 행정자치에 종속시키는 우려가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하튼 지금의 교육감 선거는 무당적 선거로 설계돼 있지만 실제로는 정당선거보다 더 혼탁한 진영선거로 치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교육감 선거가 학교 교육을 살리고 교육 자치를 구현토록 ‘솔로몬의 지혜’를 모을 때다.
‘주민소환제’는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다. 2006년에 제정된 ‘주민소환법’은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후 전국 곳곳의 선출직 지방공직자를 대상으로 주민소환이 추진되기도 했다. 서울시장과 제주도지사에 이르기까지 광역지방정부 수장들과, 기초지방정부 수장, 시·도·군·구의원 등 전국 곳곳에서 주민 소환 청구가 시도됐다. 소환 사유도 뇌물수수, 관광성 해외연수, 주민 의견 수렴 부족, 화장장 갈등 등 다양했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로는 용산구청장(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충북도지사(오송 지하차도 참사 관련), 고양시장(시청 이전과 복지 예산 삭감, 소각장 일방 추진 등) 등에 대한 주민소환 청구 움직임이 있다. 이밖에도 무능, 도덕성 문제, 자질 부족 등으로 주민소환이 추진된 선출직 공직자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서명청구인수 미달로 접수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2월 26일에도 강원도 양양군수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됐는데 투표자 수가 개표 요건(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에 모자라 개표를 하지 못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소환 현황’에 따르면 현재(2024년 12월 31일 기준)까지 주민소환제는 총 147건이 접수돼 단 2건만 찬반투표에서 가결됐다고 한다. 투표가 실시된 안건도 총 11건(전체 주민소환 접수 안건 중 7.48%)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 가운데 9건은 최소 투표율(33.3%)도 넘기지 못했다. 나머지는 현재 진행 중이거나, 서명부 미제출, 서명 미달, 각하, 철회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026년 1월 30일자 1면 ‘17년간 파면 불과 2명… 유명무실 ‘주민소환’’) 경기도내에서는 지난 2011년 11월 16일과 2021년 6월 30일 과천시장들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됐지만 투표율이 충족되지 않아 모두 무산됐다. 하남시에서도 주민소환 투표가 이루어졌다. 2007년 12월 12일 시장과 시의원 3명에 대한 투표가 실시돼 시의원 2명이 직을 잃었다. 이밖에도 도내 25개 시군에서 주민소환 접수가 진행됐는데 현재 진행 중이거나 미투표로 종결된 상태다. 이에 일각에서는 청구 기간, 청구 서명자 비율, 투표율 등 주민소환제 청구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주민소환으로 직을 잃은 시장·도지사·군수·구청장이 단 한 명도 없다. “유명무실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한 개정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2022년 12월 1일 국회에서 관련 법안 개정안이 올라와 소관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개정안에는 ‘주민소환투표권자 기준 연령 19세에서 18세 하향 조정’, ‘전자서명으로도 서명 가능’, ‘주민소환투표결과 확정 요건을 주민소환투표권자 총수의 4분의 1 이상(현재는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총수의 과반수 득표’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률은 개정되지 않았다. 2월 27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지방행정 책임성 확보를 위한 주민소환제도 재설계’ 보고서에는 주민소환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소환투표 개표요건 완화 ▲투표권 연령기준 하향(19세→18세) ▲온라인 전자서명 청구제도 ▲서명부 위조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현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영등포구갑)도 1월 23일 주민이 선출직 공직자를 직접 견제할 수 있도록 한 주민소환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적 문턱을 낮추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민소환제는 선출직 공직자의 무능, 직무유기, 전횡을 막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반면에 제도를 악용하는 “‘어리석은 주민소환제’는 시민의 투표로 결성된 지방의회와 지방정부를 무력화시키고 동시에 무분별한 정치혐오만 증폭시킬 뿐”(황대호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란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철도교통은 수익사업이 아니다. 철도는 국가가 국민의 이동권과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축·운영해야 할 대표적인 공공 인프라다. 그럼에도 최근 GTX-B노선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의 판단은, 철도의 공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은 수도권의 만성적 교통 혼잡을 해소하고 수도권을 1시간 생활권으로 통합하겠다는 목표 아래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추진해 왔다. GTX는 단순한 신설 철도 노선이 아니라, 서울 중심의 왜곡된 공간 구조를 완화하고 철도를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가 전략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일수록 수익성이나 사업 효율보다 공공성, 형평성, 그리고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GTX-B노선은 갈매동 중심부를 관통하면서도 갈매역에는 정차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획·추진되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 주민에게 교통 편의는 제공하지 않은 채, 소음·진동·환경 피해만을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결정이다.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이 말하는 ‘국가 대중교통 정책’이 과연 이런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갈매–망우 구간은 GTX가 지하 대심도에서 지상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 구간으로, 고속 통과 시 소음과 진동 피해가 집중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선로 인근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밀집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한 민원 차원이 아니라 주민의 주거권과 아동의 안전권을 동시에 침해할 수 있는 중대한 정책 판단 오류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와 사업시행자는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검토하고 조정하기보다는, ‘역간 거리’, ‘표정속도’, ‘사업비 증가’와 같은 기술·경제 논리만을 앞세워 갈매역 정차를 배제하고 있다. 이는 공공교통을 책임지는 중앙정부로서 매우 무책임한 태도다. 철도 정책은 단순한 노선 설계나 공정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일상과 안전, 지역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공공정책이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은 주민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본질적 책무를 외면한 채, 사업 일정과 행정 편의에 매몰된 결정을 반복하고 있다. 갈매역 정차는 결코 특혜가 아니다. 노선이 통과하는 지역 주민에게 최소한의 접근성과 이용 기회를 보장하라는 당연한 요구다. GTX가 국가 사업이라면, 그 혜택 역시 특정 구간이나 특정 집단에만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철도는 ‘지나가기만 하는 시설’이 아니라, 국민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공공자산이기 때문이다. 국가 대중교통 정책은 숫자와 효율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은 지금이라도 GTX-B노선 갈매역 무정차 결정이 과연 공공성과 형평성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철도 정책의 원칙에 맞는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구리시의회는 19만 구리시민과 함께, 국토교통 행정의 이 잘못된 판단이 바로잡히고 철도의 공익성이 회복될 때까지 끝까지 책임 있게 대응할 것이다. [ 경기신문 = 이화우 기자 ]
지난 1월 중순, 대한민국 사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세 건의 재판 장면이 TV로 생중계됐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 심리로 진행된 내란 사건 결심 공판에서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6일 형사합의35부(부장 백대현)는 대통령경호처를 동원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1일에는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가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량인 15년보다 무거운 징역 23년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이 과정은 검사의 구형이 결론이 아니며, 최종 판단은 오직 법원에 있음을 상기시킨 귀중한 학습의 장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은 주장을 펼치는 한 집단일 뿐, 종국에는 판사의 판결이 사건을 결정짓는다. 이 장면들은 한국 법조 보도의 고질적인 민낯을 드러내는 장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법조 기자는 사실상 ‘검찰 출입 기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흘리는 정보는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을 통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검찰의 구형은 마치 확정판결처럼 소비된다. 반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거나 구형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언론은 판결의 논리를 분석하기보다 “법원이 잘못됐다”거나 “기소가 잘 된 것인데 판결이 무리하다”며 검찰의 입장을 강변한다. 언론이 권력기관인 검찰을 감시하기는커녕 스스로를 검찰과 동일시하는 기이한 행태다. 수사를 실시간 중계하듯 보도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며, 이는 결국 검찰의 여론재판을 돕는 결과를 초래한다. 법조 보도의 정쟁화와 선정성도 임계점을 넘었다. 한 전 총리 판결에서 “100세가 되어야 출소할 수 있다”는 식의 자극적인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판결의 법리적 타당성이나 내란죄의 구성 요건을 설명하기보다 독자의 감성을 자극해 사안을 대립 구도로 틀 짓는 행위다. 충남대 이승선 교수는 이를 두고 “핵심을 비켜간 사안에 초점을 맞춰 여론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좋은 저널리즘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사법 전문기자 이범준 역시 언론이 판결 기사를 검찰 기사의 보조물로 취급하고 검찰 ‘수사 중계방송’으로 전락하면서 여론재판에 가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제 한국 법조 보도에도 ‘그린하우스 효과(Greenhouse Effect)’가 필요하다. 전 뉴욕타임스의 법조 전문기자 린다 그린하우스는 수십 년간 연방대법원 판결문을 정확히 분석하여 사법 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판결문과 변호사 의견서를 찾아 읽고, 법정 변론에 들어가 양측의 주장을 직접 들었다. 법조 기자의 진정한 능력은 판결문을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언론도 이제 검찰 담당과 법원 담당을 엄격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 수사는 비판적으로 감시하되 재판은 독립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법조 보도는 특정 권력기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을 대신해 법치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다. 검찰의 구형이 아닌 법원의 판결이, 감정적인 선동이 아닌 냉철한 법리 분석이 보도의 중심에 설 때 한국 법조 보도는 비로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검찰의 구형을 결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중계 보도를 멈추고, 이제는 판결의 무게를 온전히 전달하는 사법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4년 전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이 공약으로 경기북부지역 주민들은 경기도가 나누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경기도지사 취임 후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만들기 위해 조직과 조례를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와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공약은 시련을 맞게 된다. 당시 야당 후보인 이재명 대통령 후보 연설에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시기상조론이었다. 여당에서는 구리시와 김포시의 서울편입론으로 맞불을 놓게 된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위기를 맞았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는 “5극 3특”이라는 광역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정책 기조를 내놓았다. 5극은 수도권, 충청권, 대구경북권, 부울경권, 호남권, 3특은 강원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말한다. “5극3특 국가균형성장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국가 차원의 구조적 과제로 인식하고, 지역 간 성장 동력의 재편을 통해 지속 가능한 국가경영체계를 확립하고자 한다. 특히 “균형성장”이라는 정책 기조는 국가균형발전이 더 이상 선택적 과제가 아니라, 저성장·인구감소·지역소멸 시대에서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 통합론 발표에 이어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행정통합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특별광역연합이 아니고, 행정통합으로 하나가 되어, 2026년 6월 3일 통합단체장을 선출하겠다는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 과연, 가능할까? 이러한 새로운 중앙정부의 광역행정 정책 기조에서 경기도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중앙정부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춘다면,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강원특별자치도가 DMZ 등 접경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광역행정연합이 가능하다. 다만, 접경지역 광역연합 설치가 법적 안정성을 가지고 추진되기 위해서는 광역연합의 설치 및 운영과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하고, 그 방법은 다음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부·울·경 특별연합 법률안이나 충청광역연합 법률안과 유사하게 설치근거,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사무, 관련 특례 등이 포함된 것일 수 있다. 둘째, DMZ가 가지는 생태·평화·관광·국제교류 등 다층적 잠재력을 가진 특수성을 고려하여 “(가칭)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 법률에 접경지역 광역연합의 설치근거 및 관련 담당 사무를 규정하는 형태이다. 실제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많다. 중앙정부 정책 기조와는 별개로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통한 새로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의 재추진이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선거제도다. 지역 주민의 뜻을 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방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하고 있다. 경기북부지역 주민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경기신문 = 김한별 기자 ]
대한민국 경제의 명운이 걸린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일부 정치인들의 뜬금없는 '정치 공학'에 흔들리고 있다. 최근 정부 일부 인사와 정치권에서 제기된 '반도체 공장 호남 이전론'은 국가 전략 사업의 본질을 흐리고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위험한 발언이다. 2019년에 시작해서 수 많은 행정적 절차와 사법적 판단까지 마치고 이미 착공에 들어간 국가 전략 자산을 지방선거를 염두해 둔 정치적 수사(修辭)로 흔드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 저열한 논란의 시작은 주무 부처 장관인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의 발언이다. 김 장관은 2025년 12월 26일 방송에서 “용인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그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15GW 수준이라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 의문이 된다며 “지금이라도 지역으로,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국가 전략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담당 장관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충격적 발언이었다. 이 발언이 있기 3주 전에 김 장관은 용인 산단에 2조 2천억 원을 투입해 대규모 용수 공급 시설을 짓겠다는 '국가수도기본계획 부분 변경'을 결정한 바 있어 그의 발언은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했다. 산업계와 시장, 정치권은 혼란에 빠졌다. 그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호남 이전설'이나 '새만금 이전론'으로 불이 붙었다. 82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고 수백 만 명의 고용 창출이 기대되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주무 부처 장관이 앞장서서 흔드는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다. 반도체 산업은 적기 생산(Time-to-Market)이 생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을 택한 것은 단순히 땅값이 싸서가 아니다. 수도권의 우수한 인재 확보, 기존 소부장 기업들과의 유기적인 생태계 구축, 전후방 산업의 집적 효과를 고려한 경제적 계산의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은 돈이 되면 부모가 말려도 한다"며 경제 논리와 기업 자율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물론 15GW에 달하는 막대한 전력 수급 문제는 실체적인 위협이다. 하지만 전력이 부족하면 전력을 보낼 '길'을 닦는 것이 정부의 본분이다. 정부가 마치 책임없는 제3자처럼 아무말이나 툭툭 던져서는 안된다. 일부 지역의 국회의원들도 무책임한 발언을 삼가야 한다. 전력이 부족하니 공장을 옮기라는 주장은 도로가 막히니 목적지를 바꾸라는 식의 본말전도(本末顚倒)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한국전력과 손잡고 도로 하부에 전력망을 지하 매설하는 '지능형 인프라 모델'을 제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 모델이 공기단축·조기가동에 따른 경제효과, 토지 및 민원비용의 획기적 절감으로 얻게 될 경제적 효과 또한 매우 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닌 행정적 해법으로 난관을 돌파하려는 이런 실용적 접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다. 정치권은 더 이상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반도체를 바라봐선 안 된다. 용인을 허브로 삼고 후공정과 패키징 등 연관 산업을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K-반도체 벨트'를 구상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이전 논란을 끝내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원팀'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정부도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7년 전부터 추진해 온 장기 프로젝트다. 수년 전에 국가전력기본계획과 국가수도기본계획에 반영되어 올 해 착공에 들어간 국가 전략 사업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 여부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정치 논리가 산업의 발목을 잡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소모적인 이전 논란을 종식하고, 'K-반도체'가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온 국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