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대한민국 전국에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돌봄통합지원법'이 본격 시행된다. 이는 의료-요양-사회서비스가 분절되었던 기존 돌봄 체계를 벗어나,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적 돌봄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이 중대한 전환기를 맞아, 사회적 가치를 핵심으로 삼는 한국의 사회연대경제 기업들이 초고령사회의 지속가능한 돌봄 생태계를 주도할 가장 유력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돌봄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통합과 혁신의 시대에서 '돌봄통합지원법'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각자 사는 곳에서 의료, 요양, 주거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받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기존의 시설 중심, 파편화된 돌봄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의 질을 존중하는 '사람 중심 돌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민간 영역, 특히 사회연대경제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한다. 사회연대경제 기업은 본래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해 설립된 경제 주체로 이들은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돌봄의 질적 가치와 서비스 이용자의 존엄성을 우선순위에 둔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돌봄 통합지원의 핵심 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사회연대경제 기업들은 이 법의 시행을 단순히 새로운 시장 기회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미션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고 주도적으로 사업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기술과 사회적 가치를 결합한 '스마트 돌봄' 사업화 전략이 필요하다. 돌봄통합지원법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기술'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기반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은 돌봄 현장의 비효율을 해소하고, 데이터 기반의 예방적 돌봄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연대경제 기업들은 고령화 시대와 새로운 정책에 부합하는 사업화 전략을 통해 돌봄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해 가야 한다. ▲초연결(Hyper-connected) 협력 모델 구축. 의료기관, 요양서비스 기관, 지자체, 그리고 정보통신(IT) 솔루션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과의 초연결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스마트 기저귀 시스템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IoT 기기를 통해 수집된 헬스케어 데이터를 방문의료, 방문간호, 재가요양 서비스 등과 연계함으로써 통합적인 돌봄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돌봄 공백을 메우고, 돌봄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 고도화. 단순한 돌봄 제품 판매를 넘어, 수집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여 개인 맞춤형 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질병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등 고부가가치 플랫폼 서비스로 진화해야 한다. 이는 '스마트 사회서비스 사업' 등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며,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된다. '돌봄통합지원법'은 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전환되며 직면한 돌봄 문제에 대해 국가가 제시하는 정책 솔루션이다. 이제는 사회연대경제 기업들이 돌봄 문제의 해답을 찾아 실행에 옮길 차례다. 기술과 사회적 가치를 결합한 '스마트 돌봄'으로 돌봄의 질적 혁신을 이끌고, 지역사회 돌봄 생태계의 새로운 표준이 만들어지고 정착되어 가길 기대하며, 이들의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움직임이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란다.
지난 2006~2007년 청소년수련원 설립을 명분으로 이천시 호법면 임야 33만여㎡를 구입한 세계복음화전도협회(RUTC·다락방)가 20년째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다. 당시 협회는 청소년수련원 설립을 내세우며 이천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고, 신도들로부터 약 700억 원의 헌금을 모으기도 했다. 수련원 건립을 명분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내막을 철저히 밝혀 잘잘못을 가려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복음화전도협회는 2005년 백서와 조감도까지 제작하며 신도들을 상대로 헌금을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700억 원 규모의 성금을 모았고, 일부 신도들은 빚을 지면서까지 헌금에 동참했다. 실제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류광수 총재가 2006년 해당 임야를 개인 명의로 매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코람데오 연대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금융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횡령 혐의로 이천 덕평 소재 RUTC 사무실과 서울 강서구 237센터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람데오 연대는 RUTC 탈퇴자들이 결성한 단체로서 다락방의 이단적 교리와 내부 비리, 성 비위 문제 등을 고발하며 한국교회 내 건전한 신앙 운동을 표방하고 있다. 코람데오 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많은 신도들이 RUTC 후원금 등 헌금을 위해 빚을 내거나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었다”며 “이와 반대로 류 총재는 수억 원에 달하는 시계를 차고 최고급 외제차를 타며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등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류광수 세계복음화전도협회 총재는 700억 원에 달하는 신도들의 헌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과 관련 경찰의 강제수사를 받았다. 뿐만이 아니라 류 총재는 이 사건 외에도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고발돼 강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피해자와의 대질신문까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협회가 매입한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산 53-5번지(27만여㎡)는 2006년 1㎡당 7950원에서 올해 1만 6300원으로 약 2배 상승했다. 또 54-2번지(15만여㎡) 역시 같은 기간 1㎡당 5200원에서 1만 9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신도 헌금으로 사들인 땅을 장기간 묵혀둔 채 시세 상승을 기다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경기신문 취재 결과, 세계복음화전도협회가 매입한 땅 인근 주민 상당수는 해당 사건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한 주민은 “종교단체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청소년수련원을 짓는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며 “일대가 물류창고로 개발되는 상황에서 임야를 방치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근 자동차 정비소 관계자 역시 “수련원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고 말했다. 한때 신도였다는 사람은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여전히 일부 신도들은 총재를 추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특정 종교단체가 거창한 공익을 명분으로 수십만㎡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총재 개인 명의로 매입한 뒤 20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묵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문스러운 현상이다. 그 사이에 오른 땅값만으로도 의혹은 더욱 깊어진다. 이미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으니 불법성부터 명명백백 밝혀내야 할 것이다. 특정 종교가 국가사회에 이로우냐, 해악을 끼치느냐 하는 검증만큼은 이단 시비를 넘어서 엄중해야 한다. 아무리 종교단체라고 하더라도 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아가 모든 활동이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고 유익하지 않다면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세계복음화전도협회가 수련원 건립 명분을 앞세워 수백억 원의 성금으로 대규모 임야를 구입해 놓고 장기간 방치하고 있는 수상쩍은 일은 그 내막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이 온당하다. 만약 부조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의법 처리돼야 할 것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사실 책 읽기 좋은 때가 가을만은 아닐 것이다. 여름밤의 땀 냄새 속에서도, 겨울의 긴 어둠 속에서도, 책은 늘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가을에 독서를 연결 짓는 까닭은 계절이 주는 상징과 생활의 리듬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뜨겁고 분주한 여름이 지나고 땅이 결실을 내어놓은 시기.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면을 향해 시선을 자연스레 돌리게 된다. 일 년 동안 정성스레 기른 작물을 수확하듯이 우리는 책 읽기를 가을과 연결해 온 것이다. 가을에 읽어야 할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전이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시간의 검증을 거쳐 여전히 살아남은 목소리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문제의식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 자유와 억압, 욕망과 절망, 정의와 불의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한다. 현대의 고민이 전혀 새롭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고전은 낡은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대화 상대가 된다. 또한 번역된 외국 고전을 읽는 일은 우리를 넓은 세계와 연결한다. 우리는 모국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고하지만, 고전은 타문화의 사유 체계를 불러온다. 번역은 완벽할 수 없고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이 된다. 그렇기에 번역본을 읽는다는 건 원작의 정신뿐 아니라 번역자가 덧씌운 시대적 감각과 언어의 결까지 함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다층적인 독서는 단순히 다른 나라 이야기를 아는 것을 넘어, 세계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감각이다. 고전을 읽는 일은 지적 자율성 회복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오늘날 출판 시장에는 자기계발서나 당대의 담론을 빠르게 요약한 책들이 넘쳐나고 유행한다. 이 책들은 즉각적인 효용을 약속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낡는다. 반면 고전은 독자 스스로 씨름해야 하는 텍스트다. 문장이 낯설고 서사가 길어 독해가 어렵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사유의 근육을 단련한다. 쉽게 삼켜지는 정보가 아니라 꼭꼭 씹어 소화해야만 내 것이 되는 사유가 되는 것이다. 고전은 우리를 낯섦에 노출한다. 현대의 문장은 짧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전은 때로 장황하고, 표현은 과장되어 있으며, 문체는 굴곡이 심하다. 이 낯섦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 사고를 흔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언어의 습관과 가치가 흔들릴 때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 가을의 공기가 차갑게 피부를 스칠 때 느끼는 또렷한 각성처럼 고전은 언어의 불편함을 통해 우리를 깨운다. 그러므로 가을에 고전을 읽는 것은 계절적 풍습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실의 계절에 맞게 인간 정신의 결실을 수확하는 행위다. 외국 고전을 읽는 행위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나드는 다리이며 우리를 보다 넓은 세계와 연결해 준다.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타인의 시대와 언어를 빌려 자기 시대와 삶을 비춰 본다. 그 과정에서 더 깊고 넓은 인간이 된다. 가을 하늘이 점점 깊어지는 지금, 서가 깊숙이 잠든 고전을 꺼내 책장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고전은 여전히 살아 있는 대화 상대이며 우리는 그 대화 속에서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수확을 끝낸 들판이 그러하듯 고전은 삶에 또 다른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
중국 은(殷)나라 주왕의 애첩 달기(妲己)는 고대 중국의 절세요부(絶世妖婦)다. 미색과 방중술을 무기 삼아 권력을 잡았다. 3000여년 전,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이 젊은 후궁과 죽이 제대로 맞았다. 그들은 '인류사에 정치의 악마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타고난 것처럼 잔혹한 폭정의 메뉴들을 창안하고 실행하였다. 중구난방의 세상을 단숨에 침묵시켰다. 바른 말 하는 충신들은 벌겋게 달궈진 구리판 위에 살갗을 벗긴 채 눕혀 태워죽였다. 숨이 끊어 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 고통지수를 100배 높여놓고 그 광경을 보면서 박장대소했다. 소위 포락지형(炮烙之刑)이다.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이 여자를 씹은 게 들통나면 혀를 잘랐다. 배부른 여인의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맞추는 놀이도 즐겼다. 당연히 잉부(孕婦)의 배를 갈랐다. 요즘의 식자들도 종종 쓰는 주지육림(酒池肉林)도 달기의 창작이었다.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그 안에 곡주를 가득 채운 다음, 남녀 구분 없이 밀어 넣었다. 못 옆 숲의 나무에 고기들을 매달아 놓고, 입으로 따먹는 게 규칙이었다. 어기면 손목을 잘랐다. 저항하면 목을 베어 술통에 넣었다. 국운이 다할 때, 그 왕조의 권력은 이처럼 악동들의 장난감이 되어 그 나라에 속한 백성의 인생과 그들이 함께 꾸려가는 세상이 지옥 그 자체임을 가르쳐준다. 달기는 장장 30년을 그렇게 미쳐 날뛰었다. 끝내 온몸이 찢겼다. 한 떼의 까마귀들이 포식했다. 은나라를 붕괴시킨 주(周)왕조가 직전 권력을 악마화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높이려고 달기를 악마화했다는 비평도 있다. 문학과 예술의 전성기였던 당나라 때는 문인들이 달기의 역사를 창작활동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로써 그 포악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자는 주왕의 정치를 비판했고, 사마천의 ‘사기’는 악녀 달기가 은나라 멸망의 원인이라고 기록했다. 21세기 오늘, 우리는 달기의 대한민국 버전을 매일 매시 목도하고 있다. 김건희의 비리와 악행의 목록은 기나길다. 사악하고 잔학하다. 진실은 1도 없다. 만 가지 거짓의 집적체다. 비열하다. 낮은 자존감을 명품으로 가린다. 그저 천박하다. 고개 숙일 때마다 취하는 표정과 목청과 자세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총체적으로 5류 연기자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욕감을 느낀다. 그 때마다 참담하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권위지를 꼽으라면, 교양인들은 발행부수가 겨우 50만부 정도인 프랑스의 ‘르 몽드'라고 답한다. 이 신문은 지난 2022년 3월 10일,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배우자 김건희가 각종 추문들, 특히 뇌물수수, 주가조작, 무속의존과 학생 때 ‘창녀’(call girl)로 일했다는 소문에 계속해서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국내언론이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3000년이 지나도 정치의 악마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건희가 그 증거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주권자를 배신하는 산업이다. 나쁜 정치와 사악한 정상배들은 국회나 감사원, 사법기관 따위들이 고르거나 손보거나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해 12.3 내란 전후, 이 나라 씨알들이 온 세상에 보여준 '빛의 혁명', 바로 그 평화와 정의의 애국세력의 몫이다. 이재명 정부는 바로 그 시민들이 세운 종복(從僕), 즉 머슴들일 뿐이다. 취임 100일이다. 기대 크다. 우려도 크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정치로부터 독립되고 일관된 교육정책 수립·추진을 목표로 2022년 9월 27일 공식출범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뒤집히는 교육정책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국교위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교육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며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로써 위원장 1명, 상임위원 2명 포함, 총 21명으로 구성되는데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그런데 국교위가 국민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이배용 위원장이 김건희 씨에게 10돈짜리 금거북이를 건네며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논란이 일자 위원장직에서 사퇴했지만 정치로부터 독립된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는 국교위 출범 당시의 취지는 헛구호가 되고 말았다. 이배용 씨는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될 당시에도 ‘편향 인사’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교위가 처음부터 특정 정치적 성향의 영향아래에 있었다는 의심을 받을 만 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3일자 7면, ‘정치 중립 무너진 국교위…실효성 논란 재점화’)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 위원장의 뇌물 상납과 매관매직 의혹은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다”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교육농단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2기 국교위는 정치로부터 독립된 숙의형 기구, 투명하고 책임 있는 국민참여 기반 정책 심의기구로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사·교수·학부모·학생·시민 등 교육 주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교위는 여기에 더해 ‘내부 갈등’, ‘성과 부재’라는 비판까지 받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 일부에서는 ‘국교위 무용론’까지 제기 되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내부의 정치적 대립도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수능 이원화 안건’이었다. 보수 성향 위원들이 이 안건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자 진보 성향 위원들은 회의를 보이콧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현장의 평가가 좋게 나올 리 없다. “그동안 국교위에서 교육 개혁이나 현장 정책 논의가 사실상 없었다” “공론의 장도, 연구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는 도승숙 참교육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의 지적이 수긍된다. 이런 비판은 국교위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정대화 국교위 상임위원은 2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국교위 3년 성과와 향후 과제 개선을 중심으로 교육자치와 분권강화를 위한 정책포럼에서 “3년간 교육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이자 들러리”였다고 자탄(自歎)했다. 교육부의 지시를 따르고 교육부의 업무를 수행하는 들러리이자 하청기구였다는 뜻이다. 그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의 난맥상과 2022 개정 교육과정 의결 과정에서 문제점과 한계점도 지적했다. ▲전문위원의 자격요건 ▲전문위 파행성 ▲극단적 정파적 구성의 한계 ▲사회적 합의 실종 ▲의견 수렴의 부재 등 국교위의 장애물을 조목조목 거론하기도 했다. 강민정 전 의원은 애초 국교위 근거법을 만들면서 기구설립 취지인 ‘자주성, 전문성, 정치중립성 보장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라는 문제에 대해 입법적 고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교육정책추진체계는 분업과 협업 원리에 입각해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 공감을 얻었다. 국교위를 염려하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제도를 개선해 국교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능했던 운영 방식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국교위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정부가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바람이 공기의 이동이듯 인연은 삶 속의 동행 같은 것 아닐까. 잘 살아가는 방법은, 선한 삶을 꿈꾸며 때로는 살아온 과거를 즐기는 데 있다. 영국의 새무얼 존슨은 ‘글쓰기의 유일한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또 삶을 더 잘 견디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의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것 또한 인연이겠지 싶어 하는 말이다. 나이 숫자가 높아 가면 병원에 가는 날도 기다려진다. 생사가 걸린 중병이 아니고 나이 따라 가볍게 겪는 질환으로서 진찰받고 약 지어오는 날의 병원 길은 자기 관리에 충실한 양 병원으로 향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서신 내과 J 의사와 만나게 됨은, 내 어머니와 의사 아버지와의 인연에 따름이다. 일찍이 의사 아버지 J 선생님은 교육대학을 졸업하시고 회문산 근처 초등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았다. 어렵게 부임지에 도착해 보니 식당도 하숙집도 전무했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머물 곳을 물어보니 나의 아버지 존함을 알려주며 옆 동네 그 집으로 가서 사정해 보면 식구처럼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 말씀이 인연의 씨앗이 되었다. J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의 선한 결심으로 따지지 않고 식사하며 함께 지내시게 되었다.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세월이 물레방아 돌 듯 돌아서 선생님이 사시는 도시로 나와 서해방송에 근무하게 되었다, 따라서 선생님은 나를 귀하게 대해주시며 반세기 동안 사랑을 베풀어주시었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 큰 따님인 서신내과 원장에게 건강 문제를 맡기고, 내과가 아닌 병은 증세에 따라 원장이 소개해준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 몸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다. J 선생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깊고도 먼 앞날의 사랑 앞에 가슴을 조아리게 된다. 종교 이상의 어떤 힘을 느끼면서 가끔은 어머니의 희생 앞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 장래를 내다보시고, 산중에 오시어 고생하는 선생님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하다 보면 ‘내 아들이 커서 저 선생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성심을 다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나는 이제와 헤아리면서 눈물 속에 ‘인연의 끈’을 생각하고 있다. 이어서 어머님께서 독백처럼 들려주시던 그 말씀, ‘어느 구름에서 비 올지 모른다. 사람 박대하지 말고 척(隻) 짖지 말거라.’라는 이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어머니는 어떤 학교의 졸업장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평생 희생하셨다. 때문에 내가 죽는다 해도 오로지 자랑스러운 내 어머니일 뿐이다. 얼마 전 일이다.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가까이 지냈던 내 친구 제자라는 H 군이 수필집을 보내왔다. 그의 고등학교 선생님이 소개해서 책을 드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프로필을 보니 서울 일류대학을 나와 이름 높은 기업에서 정년을 하고 지금은 경기도에서 작가 생활을 하면서 『향기로운 삶』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사연을 염두에 두고 몇 편의 수필을 읽어보았다. 수필집은 『계절을 건너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마음의 계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참새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있었다. ‘중국의 마오쩌둥(모택동)은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한 이후,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참새가 없어졌으니, 곡식 수확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새가 사라지자 그들의 먹이였던 메뚜기를 비롯한 해충이 창궐하면서 농사를 초토화시켰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 후 한 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날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볼일이 있어 온다면서 꼭 만나고 싶으니 마음에 드시는 점심 장소를 생각해 두라는 것이었다. 그날 한 군 부부와 내 제자 한 명으로서 네 명이 만났다. 시원한 장소에서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이 나는 유머도 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한 군의 스승인 내 친구의 제자인 만큼 친구의 덕담도 나누고 ‘인연 ⍆ 인연’의 관계 속에 나는 그에게 나의 수필집을 선물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이테에 새로운 인생을 더해간다는 것, 문학의 길을 가는 선배로서 ‘적당히 겸손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선한 인연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바람일까, 사랑(희생)일까, 지혜의 눈일까?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괴력을 발휘할 것만 같았던 폭염의 여름을 한발 물러나게 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을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는 꽃보다 눈부신 황금물결의 억새밭이다. 억새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그 삶의 모습이 역경을 헤치고 살아낸 우리나라 민중과 많이 닮아있다. 억새는 위태로운 대롱 끝에 매달려 바람따라 나부끼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보이지만 이는 힘과 크기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강함의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억새의 강인함은 오히려 바람부는 대로 휘날리며 꺾이는 척하다가 휘어지고, 휘어지는 척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유연함에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생존기술이다. 억새는 어쩌다 바람에 못이겨 허리가 꺾인다해도 금방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다른 억새들에 기대어 마지막까지 공존한다. 이렇듯 억새는, 개별의 힘은 약하지만 서로 협력하여 삶을 이어가는 상호의존성이 바로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억새는 결국 강함이란 고립된 개체의 속성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존재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역설해준다. 억새의 생애주기 전체를 보면 진정한 강인함이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종단적인 특성임을 보여준다. 한때 억새도 찬란한 황금빛나는 시절이 있다. 바로 억새의 전성기이다. 그러나 억새가 쇠락하는 모습을 보면 비장미가 넘쳐흐른다. 반짝이던 털끝 하나 남김없이 뽑히면 억새의 외양적 아름다움과 생명의 징후는 사라진 완전한 상실의 상태가 된다. 더구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이상 끌어올릴 물 한방울 남지 않는 척박한 겨울이 되면 생존에 극도로 적대적이고 어떠한 자양분도 없는 환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빈 대롱으로 꼿꼿이 서있는 억새, 다음 봄을 기다리고, 빛나는 가을을 준비하는 억새야 말로 정말 억세다. 이 강인함은 억새가 무엇을 가졌는지(물, 씨앗, 색깔 등)가 아니라 무언인가(자세, 형태, 굽히지 않는 존재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억셈은 전성기가 아니라 쇠락 이후의 끈질김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노화, 상실, 소멸에 직면한 존재로서의 억새는 존엄하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내어 전성기의 황금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절대적 고독 속에서도 ‘꼿꼿이’ 서있는 빈 대롱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저항적인 선언이다. 이는 존재의 힘이 기능적 유용성을 넘어선다는 실존적 철학으로 이어진다. 가을이 오는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여정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필요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지금 황금지절에 있을까, 아니면 빈대롱으로 버티는 시간 속에 있을까? 황금지절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상실의 시대라고 포기하지 말라는 억새의 억센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번 가을에는 아아~ 으악새 슬피우는~ 노래라도 부르면서 억새밭에 가서 그들의 삶에서 한수 배워봄이 어떤가?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공무직(무기계약직)들이 같은 직원이면서도 공무원들과 달리 특별휴가 혜택에서 큰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공무원은 각종 특별휴가를 보장하고 있는 데 반해 공무직에게는 ‘장기재직 휴가’ 한 가지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동일근무자들에게는 동일한 처우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 ‘노동 정의’에 속한다. 일반 산업현장의 모범이 돼야 할 공직사회에서 상존하는 이 같은 ‘차별’은 하루빨리 시정·보완되는 게 옳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기준 도청과 도 소속기관, 도의회 직원은 총 1만 7625명(공무원·공무직)이며, 이중 약 8%인 1373명이 공무직이다. 도 공무직은 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서 통상 행정 지원, 현장 업무 등을 맡고 있다. 경기도 공무원들은 신설된 여러 명목의 특별휴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공무직은 새로운 휴가 제도 혜택에서 일체 제외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 공무원에게는 ‘장기재직 휴가’, ‘새내기 도약 휴가’, ‘생일 특별휴가’ 등다양한 휴가를 보장하고 있는데 반해 공무직에게는 오직 ‘장기재직 휴가’만 주어진다. 지난해 시행된 ‘새내기 도약 휴가’는 연차가 1년에서 5년까지인 공무원에게 3일의 특별휴가를 주는 제도다. 올해는 또 ‘생일 특별휴가’가 마련돼 생일자에게 생일이 있는 달에 1일의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기재직 휴가’마저도 공무원의 휴가 일수가 공무직보다 많다는 야릇한 사실이 확인된다. 연차별로 보장되는 공무원의 ‘장기재직 휴가’ 일수는 연차가 5년 이상 10년 미만인 공무원은 5일, 연차가 10년 이상 20년 미만이면 15일, 20년 이상 30년 미만은 25일, 30년 이상은 25일이다. 반면 공무직은 연차가 10년 이상부터 20년 미만까지는 10일, 20년 이상은 15일의 장기재직 특별휴가가 각각 주어진다. 세 가지 특별휴가 제도를 단순히 비교해도 공무원의 특별휴가 일수가 공무직보다 최대 14일이나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이 때문에 공무직에 대한 특별휴가 지침 등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현 경기도청실무관노동조합 위원장은 “공무직은 별도의 규정 개정, 노사협의회, 단체교섭에 의해서만 휴가 제도가 마련되기 때문에 현재 특별휴가가 상당히 부족하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례 또는 관련 지침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미영 경기도청공무직노동조합 위원장은 “공무직도 공무원과 같은 일수의 특별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요청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그간의 정황을 전했다. 지난해 4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발표한 ‘정부기관 공무직 노동자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차별 현상은 심각했다. 응답자의 91.3%는 ‘나는 공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기관이 나를 동등한 조직구성원으로 대우한다’는 답변은 24.2%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의 73.2%는 ‘임금·복리후생 차별로 노동의욕이 저하된다’고 호소했고, 승진이나 승급, 포상기회가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3.3%에 불과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를 요구하며 지난달 17일간 대통령실 앞 농성을 벌인 공공연대노동조합이 기자회견문을 통해 밝힌 첫 번째 요구사항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해소 및 처우와 제도개선 책임’이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최저임금 채용 관행 개선 약속을 준수하라’는 요구가 그다음을 이었다. 경기도 담당자가 올해 공무직 단체교섭을 앞두고 “향후 공무직 노동조합과도 (특별휴가) 관련 논의를 이어가면서 여러 직원에게 혜택이 부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처우를 보장함으로써 노동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사명에 경기도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칼럼에서 통상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고 2년 정도가 지난 경우 채권양도 절차를 통해서 처음 하자소송을 시작하게 된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대하여 오랜 기간 동안 하자 처리에 대한 요구만을 하거나 협상을 하다가 결렬이 되어 뒤늦게 소송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자소송의 궁극적인 목적은 손해배상금을 수령하여서 이를 통해 공용부분이나 전유분에 존재하는 하자를 치유하는 공사를 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법원의 감정을 통해서 적정한 보수비를 산정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원의 감정을 통해서 보수비가 산정이 되더라도 실제 판결을 통해서 해당 금원이 모두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건에서 법원은 준공시로부터 감정을 위한 현장조사까지 또는 소제기까지의 기간 경과에 따라 대략 1년 5%의 비율로 책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이러한 책임의 제한의 근거로 드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파트의 자연적인 노후화가 진행되어 그것이 하자의 발생에 기여하고 이를 시공상 잘못과 구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자가 있더라도 입주자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 부주의로 인하여 파손되는 경우가 있고 이로 인하여 하자가 확대되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의 태도는 일응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하자 소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시공 이나 오시공 하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소위 이러한‘사용검사 전 하자’의 경우에는, 설계도면과 달리 '미시공' 또는 '변경시공' 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이므로, 기간의 경과로 인해 노화현상이 발생하거나, 입주민들의 관리상 잘못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용검사 전 하자’의 하자보수비까지 책임제한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부 판결들에서는 ‘사용검사 전 하자’들은 그 구체적 하자 내역에 비추어 볼 때 자연적인 노화 또는 입주자의 관리상 잘못으로 인하여 발생하거나 확대될 하자가 아니고, 자연적 노화 역시 개입될 여지가 없는 하자라고 할 것이어서 책임제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2. 15. 선고 2015가합2704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 12. 22. 선고 2012나85726 판결) 더욱이 5년 정도 경과한 시점에서 소제기가 이루어지고 감정인이 책정한 보수비에서 25% 정도의 책임제한이 이루어진후, 여기에 각종 소송비용들을 모두 공제하면 실질적으로 손해배상금만으로 필요한 공사나 수선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여 입주민들이 추가적으로 수선비용을 부담하여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사용검사 전 하자’들에 대하여는 기존의 법원이 하고 있는 일률적 책임제한이 합당한지에 대한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하자소송을 고려하고 있다면 적시에 소를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차를 이용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반서방 세력의 집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서방 진영은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맞서 '다자주의'를 강력히 주장해왔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그러한 기조가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국가원수는 물론 주요 인사들을 전승절 행사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아직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미국과 일본은 이번 행사에 주중 대사조차 참석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서방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의전 서열 2위 우원식 국회의장을 참석시켰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권력 서열 2위인 리창(李强) 총리와의 단독 회담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서 '안미 경중(安美經中)은 불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우리 언론은 우 의장과 김정은의 조우 여부에 주목하고 있지만, 양측 만남의 가능성 역시 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북한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면,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대부분 자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를 워싱턴을 향한 일종의 '경유지'로 활용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파병 대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별다른 동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종료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전쟁 중 러시아는, 북한의 병력이 절실했기 때문에 상당한 대가를 제공했지만, 전쟁 종료 후에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현저히 축소돼 북한에 대한 전폭 지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대비해 북한은 다시 중국 및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김정은의 방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을 자극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대화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전 이후 중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김정은이 직접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을 수도 있다. 중국은 반서방 전선을 지나치게 강조해 미국을 자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북·중·러 3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 북·러, 북·중, 중·러 양자 정상회담은 각각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재명 정부의 노력은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오늘날의 국제 질서가 '친중이냐, 반중이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양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부 시절 박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던 당시와는 국제 정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이번 참석이 이런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갖는 외교적 함의에 대해 보다 신중히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