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네이버, KT 등을 상대로 한 폭파 협박에 이어 삼성전자에도 폭파 협박 신고가 접수되는 등 일부의 극단정서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개 순간적인 분노나 객기·장난으로 판명 나지만, 대응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극히 일부라고 해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이 같은 폭력성 확산은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범법자들에 대한 엄벌체계 강화는 물론 대중정서 순화를 위한 유효한 프로그램 작동이 시급하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10시 50분쯤 112에 “KT 분당 사옥에 사제 폭탄 40개를 설치했다”는 내용의 협박 문자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협박 글은 자신을 대구 지역의 한 고등학교 자퇴생이라고 밝힌 인물이 지난 17일 오후 8시 20분쯤 KT ‘온라인 간편 가입 신청’ 과정에서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KT는 하루 뒤인 18일 오전에야 이를 인지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명의도용에 따른 협박 범죄로 보고, 실제 위험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장 수색은 진행하지 않고, KT 측에 자체 경비 강화와 함께 순찰을 늘리도록 요청했다. 앞서 지난 15일에도 같은 인물 명의로 카카오 고객센터 게시판에 판교 아지트 건물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게시됐으며, 회사 고위 관계자를 특정해 사제 총기로 살해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확인 결과, 해당 명의로 지난달 9일과 이달 9일에도 유사한 폭파 및 살해 협박 신고가 접수됐으며, 이 역시 대구남부경찰서가 명의도용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월 5일에는 서울 중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현장 출동한 경찰이 주변을 통제하는 등 긴박한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 오전에는 서울성동경찰서 관내 중학교 2곳에 수제 폭탄을 설치했다는 내용의 발신자 미상의 팩스 신고가 접수돼 한바탕 법석을 빚었다. 또 서울종로경찰서도 관내 중학교 1곳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에 현장으로 출동했다. 학교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학생들을 귀가 조처하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폭발물·테러 등 허위 신고로 인한 경찰 출동은 지난 2022년 4235건에서 지난해 5432건으로 약 28.3%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7월 말 기준 293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놀라운 것은 공연장 폭파, 황산 테러, 백화점 폭발물 설치 통보 등 잇따르는 허위 테러 협박을 저질러 ‘공중협박죄’로 검거된 이들 중 절반이 20~30대라는 사실이다. 공중협박죄가 적용된 사건은 법이 시행된 올해 3월 18일부터 지난 7월 말까지 모두 72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이 사건들로 48명을 검거했는데 이들 중 20대가 16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8명이었다. 20~30대가 전체 검거 인원의 50%를 차지했다. 이런 범죄는 인간관계·사회생활에서 자존감이 낮은 일부 20~30대가 익숙한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상 동기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 ‘모방성’이 강하다. 유사 범죄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국의 경우처럼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강력한 상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독일에서는 지난 2003년 뒤셀도르프공항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허위 신고를 한 여성에게 20만 7000유로(약 3억 3600만 원)의 배상금을 물렸다. 미국에서도 지난 2022년 회사 건물 폭파 장난 전화를 건 남성이 45만 6000달러(약 6억 3800만 원) 규모의 배상금 폭탄을 맞았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애먼 개구리가 맞아 죽는 어이없는 불행이 일상이 되는 사회를 우려한다.
청계천을 복개해 도로로 만드는 공사가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시작됐지만 미완으로 끝난 채 광복을 맞이했다. 1958년 6월에 재개됐고, 도성 안의 구간이 1960년 4월에 끝나면서 원행을묘 백리길의 행차가 건넜던 광통교도 묻혔다. 40여 년 후인 2003년 7월에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도로 청계천의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5년 10월에 완료하면서 광통교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많은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서쪽 150m 지점으로 옮겨 복원했다. 복원된 광통교의 길이가 지금의 청계천 폭보다 짧다. 청계천이 옛날보다 넓게 복원됐기 때문이다. 광통교의 밑으로는 청계천의 맑은 물이 사시사철 일정하게 흐르는데, 그 양이 생각보다 많다. 한강의 물을 24시간 일정하게 퍼 올려 흘려보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옛날 청계천의 평상시 물은 지금보다 적었다. 자연 상태의 물을 그대로 유지하려 고집했다면 도심 속 휴식의 공간으로서는 좀 아쉬웠을 것 같다. 지금의 청계천 모습이 좋다. 광통교의 기둥 아래쪽에는 庚辰地平(경진지평), 癸巳更濬(계사갱준), 己巳大濬(기사대준) 세 개의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경진년(1760)에 청계천의 바닥을 평평하게 했다”, “계사년(1773)에 청계천의 바닥을 다시 파냈다”, “기사년(1869)에 청계천의 바닥을 크게 파냈다”란 뜻이다. 글씨를 기둥 위도, 가운데도 아니고 아래에 쓴 이유는 그 글씨가 모래에 묻히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경진년(1760)의 준천(濬川) 작업은 매우 유명하다. 당시로서는 워낙 대공사였기 때문에 영조가 몇 년의 토론과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며, 단순히 하천의 바닥에 쌓인 모래와 자갈만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방 쌓기, 나무다리를 돌다리로 바꾸기, 주변 산의 나무 보호하기 등 모든 측면에 걸친 하천 정비작업이었다. 게다가 본류인 청계천뿐만 아니라 사방의 산과 산줄기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지류까지 정비하는 총체적인 사업이었다. 의무적으로 차출된 서울 거주 백성 15만 명과 임금을 주고 고용한 5만 명 등 연인원 총 20만 명이 동원되고 57일이나 걸려서 공사를 끝냈다. 영조는 공사를 끝낸 후 전 과정을 정리해 ‘준천사실(濬川事實)’이라는 책을 편찬하고 준천사(濬川司)라는 상설기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수도 서울의 도성 안 하천 정비작업은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조선 시대 전 기간에 걸쳐 시행됐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른 문명권이나 국가의 수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은 현상이다. 산과 산줄기가 저 멀리 물러간 평지, 언덕이나 산 위에 도시의 핵심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는 왜 그랬을까? 조선에서는 풍수의 명당 논리에 따라 주산-좌청룡-우백호-안산의 산과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를 택해 수도 서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큰비가 내릴 때마다 사방의 산과 산줄기의 급경사에서 많은 흙과 모래와 자갈이 쓸려 내려와 모이고, 비가 잦아들면 분지 가운데 평지의 하천에 많은 모래와 자갈이 퇴적됐다. 그렇게 하상이 낮아지면 큰비가 내릴 때마다 범람해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때때로 준설을 포함한 하천 정비작업을 해주는 것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歲月如流水)’고 하더니, 소설가 김용성 선생을 저 먼 나라로 떠나 보낸 지 벌써 14년이 지났다. 중앙대학교 병원에 누워 급작스럽게 필자를 호출하시기에 그동 안 좋지 않았던 허리 수술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이미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병상의 선생은 필자의 손을 붙잡고 세 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는 젊은 날의 역작 ‘한국현대문 학사탐방’을 재출간하는 일, 다른 하나는 그동안 쓴 에세이를 책으로 묶는 일, 그리고 마지막 으로 다른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쓴 김용성론을 책으로 출간하는 일이었다. 다른 논의가 필요 없었다. 즉시 서두르겠다고 대답했다. 정말 급하게 서둘렀다. 그래도 6개월이 족히 걸렸다. 마지막 교정을 마칠 즈음에 연락을 받았다. 떠나셨다는 비보였다. 혼자 앉아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래 울었다. 누구보다도 필자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해준 선배였다. 내게 남긴 유언이 있었다. 세 권의 책을 진행하여 ‘한국현대문학사탐방’ 복원판과 에세이집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및 작가연구 총서 ‘김용성론’을 간행하고, 그 이듬해 문학의집서울에서 추모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행사를 마치면서 다시 또 서럽게 울었다. 선생과 함께 할 때는 그 세월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았던가.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필자가 갓 군문을 나와 대학에 복학한 1980년 봄이었다. 그때 우리 의 은사 황순원 선생을 모시고 ‘작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소설가 동인 회합에 따라갔다가, 전상국·김원일·유재용 등 당대의 작가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복을 누렸다. 그 모임의 일원이었던 김용성 선생은 막 불혹의 고개를 넘는 청춘이요 동안인 열혈 전업 작가였다. 선생은 이미 ‘리빠똥’ 시리즈로 이름이 높았던 장편 ‘리빠똥 장군’과 ‘리빠똥 사장’을 출간하고, ‘내일 또 내일’과 ‘홰나무 소리’ 등 다수의 소설을 내놓음으로써 문단에 성명(盛名)이 쟁쟁하던 시기였다. 1982년 선생은 늦깎이 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필자는 선생과 같은 교실에 있었다. 선생은 박사를 마치고 곧바로 인하대 교수로 갔다. 하지만 언제나 책상 앞의 일만 바라보는 고리타분한 글쟁이가 아니었다. 당시의 우리 후배들은 선생과 함께 한 자리에서 늘 밥과 술을 얻어먹었다. 그래서 필자는 나중에 세상 위로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기면, 선생을 모신 곳 어디에서나 밥값 술값을 내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은퇴 후에 이 말씀을 전해 들은 선생은 “김 교수, 약속을 지키시오”라고 다짐을 받았고 필자는 끝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모두 꿈에 서도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이다. 선생의 노년이 조금 한가해지고 2009년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문을 열었을 때, 선생을 초대 촌장으로 모셨다. 작가로서의 명성과 순후한 인품은 황순원 선생의 행적을 닮아, 촌장으로는 그보다 더 적격의 문인이 없었다.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소중한 것은 그가 훌륭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그와 더불어 보낸 시간의 소중함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 다. 이 마당에 사뭇 걱정인 바는, 과연 필자가 후배 중 누군가에게 선생과 같이 선한 영향력 을 남길 수 있겠는가 하는 지난(至難)한 문제다.
경기도의 현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이 ‘교육적 개입’보다는 ‘법적 절차 이행’과 ‘응보적 처벌’ 등에 치중되면서 본연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기도와 경기의회가 개최한 ‘도내 학교폭력 실태와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그 수법이 다양화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학교가 고작 학폭 사후 대처에 허둥대기만 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혁신돼야 한다. 지난 19일 파주시 다누림 노인복지관 대강당에서 열린 ‘2025 경기도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최근 5년 간 학교폭력의 형태가 사이버폭력·성폭력 등으로 다양해지고 폭력 피해·가해 응답률도 증가하면서 현행 대응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론회에서 이근영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며 “교사들은 (학교폭력 대응에 있어) 교육적 전문가가 아닌 법적 절차 관리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학생의 성장을 돕는 회복적 정의 관점을 도입하고 갈등 초기 개입을 의무화하는 ‘교육적 기능 회복’, 교육 전문가 참여 확대, 객관적 사안조사 지침 마련을 통해 당사자 진술권·참여권을 보장하는 ‘절차적 공정성 확보’, 표준화된 매뉴얼 보급, 교육지원청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을 추진하는 ‘과정의 투명성 확보’ 등을 제안했다. 이근영 연구위원은 특히 “학교폭력 대응의 목표는 처벌이 아닌 모든 학생의 회복과 성장이어야 한다”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춘 교육적 해결 시스템을 통해 무너진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고 학교의 교육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에 참여한 김희진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도 “현재 학교폭력 대응 제도는 ‘문제 행동에 처벌’을 가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어 결코 아동권리에 기반한 접근이라 할 수 없고 가해학생은 물론 피해학생의 보호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폭력에 대한 대응은 명확하고 단호해야 하지만 그 필요는 관계된 모든 아동의 차별 없는 보호와 지원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김익환 장학사는 “학교 밖 학교폭력 예방과 초등학생 대상 조기 개입, 신체·사이버폭력 대응 강화가 필요한 과제로 남았다”며 “도교육청은 실태조사 및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제도 보완을 추진해 학생들이 더욱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5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기도내 학교폭력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38.9%), 신체폭력(14.8%), 금품갈취(4.9%), 사이버폭력(8.0%) 등으로 나타났다. 또 도내 초중고교 학교폭력 피해·가해·목격 응답률은 초등학생 4.6%, 중학생 2.0%, 고등학생 0.7% 순이다. 학폭 문제는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가 빚어낸 구조적 산물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에 공감한다. 학폭 예방 교육은 형식적인 PPT 수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담임 교사는 과중한 행정 업무로 학생 개개인을 세심하게 돌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사가 학생과 충분히 대화할 시간, 정서적 신호를 감지할 여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학폭의 싹은 조기에 발견될 수 없다는 비관론에 주목해야 한다. 학폭 예방은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온 국가사회가 나서서 자존감이 튼튼한 아이, 타인을 존중하는 아이, 갈등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조정할 수 있는 아이를 길러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들을 경쟁의 도구가 아닌 하나의 주체로 존중하는 사회 환경 구축에 나서야 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으로, 그저 드러난 학폭 사건에 대한 대증적 요법에 발이 묶인 학교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
연말이 되면 거리는 유난히 밝아집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불빛, 음악과 인사들. 모두가 같이 웃고, 같은 분위기로 이 계절을 지나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말이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연말에도 혼자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누군가는 병원과 현장, 근무지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냅니다. 또 누군가는 올 한 해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온 시간을 조용히 지나 보냅니다. 응급실에서는 오늘도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새벽 거리를 깨끗이 정돈하는 분들, 콜센터에서 민원을 받는 분들, 24시간 편의점을 지키는 분들. 연말의 화려한 불빛 뒤에는 언제나 그렇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말을 이야기할 때 종종 '함께함'과 '행복'을 당연한 전제로 놓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늘 같은 장면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고, 누군가는 쉬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합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연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계절에 '행복'이라는 말보다 '존중'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헌신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고맙다는 한마디로 끝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헌신은 누군가의 선택이고 책임이며, 그래서 그에 걸맞은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사회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고마움을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일입니다. 그 헌신이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기억하고 대하는 태도를 갖는 일입니다. 연말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웃어야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각자의 사정과 삶이 존중받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밝은 불빛 아래 있지 않아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말은 행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리 모두에게 씌워집니다. 하지만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게 연말은 성취의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견뎌낸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각각의 무게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행복은 각자의 삶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한 해를 살아냈습니다. 한 해 멋지게 정리하지 못했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더라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충분히 애썼습니다.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동환 고양특례시장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결연한 목적을 내세워 입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고의 또는 과실로 불법정보, 허위정보,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허위란 무엇인가? 1960년, 뉴욕타임스는 앨라배마에서 일어난 민권 운동 현장의 참혹함을 담은 광고, “그들의 높아지는 목소리를 들어라”를 실었다. 민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던 남부 흑인 목사들의 연서로 큰 울림을 준 이 광고에는 거짓이 섞여 있었다. 진실과 허위가 뒤섞인 문제의 광고를 두고 앨라배마 몽고메리의 경찰을 감독하는 공공업무위원 설리번은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그 유명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광고 문구가 부정확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광고의 전반적인 내용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앨라배마주 법원은 뉴욕타임스가 설리번에게 50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했다. 앨라배마주 역사상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이후 유사한 소송이 줄지어 이어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를 “인종 분리주의자들의 무기고에 입고된 새로운 무기”라고 불렀다. 뉴욕타임스는 기자들의 남부 취재를 금지했다. 취재 중 소장을 송달받을까 우려한 까닭이었다. 기자들은 민권 운동의 최전선인 앨라배마에 갈 수 없었고, 통신사에 의존해 기사를 썼다.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는 법의 탈을 쓰고 찾아왔다. 뉴욕타임스를 구한 것은 연방대법원이었다. 1964년, 연방대법원은 ‘현실적 악의’ 법리를 통해 언론의 위축을 막았다. 현실적 악의는 공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문제의 언론 보도가 ‘허위임을 알면서’ 또는 ‘허위임을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보도되었음을 공인이 입증하도록 하였다. 이후 현실적 악의는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보호하는 장치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언론법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인 법리로 자리 잡는다. 현실적 악의 법리를 통해 연방대법원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뉴욕타임스만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민권 운동의 “높아지는 목소리”로 격동하고 있었고, 남부와 북부는 아물지 않은 상처로 분열해 있었으며, 민권 운동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일상적인 린치와 테러에 휩싸여 있었다. 표현의 대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치를지 모른다는 공포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연방대법원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보호할 일대 사건임을 알고 있었다. 시민의 표현은 법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다. 다른 많은 법이 그러하듯,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도 그럴싸해 보인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불법정보, 허위조작정보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타당한 해법이라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는가. 표현을 위축시키는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가. 허위조작정보인가, 징벌적 손해배상인가.
그 신통함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히 대하는 것 중에, ‘오감(五感)의 작용’이 있다. 인간은 ‘듣다’, ‘보다’, ‘냄새 맡다’, ‘맛보다’, ‘만지다’ 등 오감을 통해서 바깥 세계의 외물과 교감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앎을 쌓아간다. 개인의 앎도 그러하고 인류의 지혜도 이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이렇듯 ‘느껴서 알고 깨닫는’, 인간의 지각(知覺) 작용은 오묘하다. 오감의 지각 작용은 인간이 자신을 존재론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령 신화 이야기에 등장함 직한 가정을 적용하여 이런 물음을 던져보자. 금방 오감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이 온다. 오감 중에 어느 하나에 특별히 초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감각이 강화되기를 청하겠는가? 반대로 당신이 어떤 징벌로 이 중 어느 하나를 소멸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감각을 포기하겠는가? 이런 물음에 내 답을 구해 보는 일은, 나의 존재됨에 대해서, 그리고 내 존재됨의 조건에 대해서, 상당히 실존적이고 현상학적인 깨달음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순정한 상상력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청각’의 시·공간을 중시한다. 독일의 예술성 드라마가 라디오 드라마에서 발원하여 현대적 진화를 보여 주는 데서 듣기의 시공에서 생성되는 상상력 파워를 엿볼 수 있다. 동일한 내러티브를 창작 소재로 해서 생겨난 음악과 미술과 연극 중에서 감상자가 상상력 면에서 그 진폭을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비교적 큰 부문이 음악이라는 데 동의하는 분들이 많다. 청각은 수용자의 내면에서 그것을 시각적으로 번역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겪는다. 이 또한 청각 인지가 갖는 잠재력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이를 머릿속에서 다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정동(情動, affection)의 감수성도 청지각(聽知覺)의 깊고 그윽함을 응시하게 한다. 대상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인지하려는 사람은 ‘시지각(視知覺)’을 중시한다. 시지각은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자연의 실상을 포착하는 첨병이었다. 시지각은 인류의 자연 탐구를 도우며, 인간의 앎을 개발하였다. 시지각의 위대함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면서 ‘독서의 영역’을 창출한 데서 눈부셨다. 문명사 차원에서 보면 ‘시지각을 통한 인지 혁명’, 즉 교육과 학습의 혁명을 불러온 것이다. 문자는 저 스스로 태어날 수 없다. 인간의 시지각 생태를 전제로 생겨난다. 이 점을 우리는 놓친다. 오감은 서로 합하여 공동의 선을 만들어 가는 통합의 기제이다. 우선은 청각과 시각이 서로 도움으로써 인간의 학습과 사고와 인지를 높게 끌어 올린다. ‘듣보다’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말로,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며 알아보거나 살핀다는 뜻이다. “혼처를 듣보다”라고 할 때 쓴다. 듣기와 보기가 서로 도와서, 알아보고 살필 때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 ‘듣보다’라는 말을 아는 이가 드물다. 그 대신 속되게 쓰이는 말 ‘듣보잡’을 아는 이는 많다.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 말을 누군가 쓴다면, 말하는 이나 그 말을 듣는 이나 교양 없음의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청각과 시각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은 간 곳이 없다. 물론 인간 오감에 대한 경외도 없다. 인간 가치를 짓밟는 언어가 횡행한다.
아라뱃길의 시작은 방수로(放水路) 건설사업이었다. 1987년 굴포천이 대홍수를 겪은 이후 물난리를 방지하기 위한 공사였다. 이때 방수로를 한강과 연결하면 서울~인천이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 1995년부터 민자로 경인운하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경제성 등의 논란이 일면서 사업은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를 외친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공공사업으로 본격 추진됐다. 2008년 국가정책조정회의는 한국수자원공사(현 K-Water)에 사업을 맡겼고 2009년 착공해서 2012년 개통됐다. ‘아라뱃길’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어졌다. 애초에는 수로 화물 운송이 초점이 맞춰졌지만 물류 실적은 저조했다. 2012~2019년 아라김포터미널과 아라인천터미널의 화물 실적은 당초 계획의 10%도 못 미칠 정도였다. ‘실패한 아라뱃길’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2023년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경인 아라뱃길의 10년간 물동량은 예측치의 0.9%인 24만8000 톤에 불과했다. 사실상 물류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우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선도사업으로 밀어붙여 수자원공사가 2조 6595억원을 쏟아 부은 경인 아라뱃길은 10년 만에 실패한 국책사업으로 판명났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기대했던 물류 기능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관광·여객 기능 역시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이에 인천시는 경인아라뱃길의 재도약을 목표로 서울시와 경인아라뱃길을 연결하는 ‘인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극복 대안 전략으로 계획했다. (관련기사:경기신문 19일자 14면, ‘인천 아라뱃길 르네상스 프로젝트 구상만 남고 사실상 표류’) 아라뱃길, 원도심, 섬 지역 등 세 분야를 중심으로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아라뱃길 활용과 아울러 연안 부두와 도서 지역에서의 수상교통 수용 체계까지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제출 후 정책 판단 대기’ 상태로 머물러있다. 서울시가 협의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구체적인 노선, 선박 규모, 운항 주체, 재원 조달 방식 등 공식 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인아라뱃길은 수도권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륙 수도다. 관련 시설을 갖추고 콘텐츠를 제대로 구성해 활용하면 물류와 관광, 문화공간으로서의 명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아라뱃길의 자전거 길은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자전거 길과 공원 그리고 각종 조형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1일까지 3일간 전국 주요 대학 및 실업팀이 참가한 전국카누경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아라뱃길의 수상 스포츠 활용도를 높인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친수문화 공간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수질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현재 수질은 결코 좋은 편이 아니다. 수질은 4~5등급(보통~약간 나쁨)이며, 대장균은 기준치의 30배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에 발생하는 녹조도 문제다. 가까이 가기가 두려울 정도의 수준이다. ‘죽음의 뱃길’이란 말도 나온다. 2021년부터 2024년 9월까지 총 25구의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토막 시신도 나왔다. 따라서 CCTV와 안전시설을 보완해 자살과 범죄에 대비해야 한다. 그동안 아라뱃길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한건축학회, 인천연구원, 한국관광학회 등에서 활성화 방안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접근성을 강화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들어 있었다. 아라뱃길을 여가·레저 기능이 있는 도시공간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수상레저 기능을 확대하고 체험시설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유정복 시장의 말처럼 경인아라뱃길은 문화·관광 명소로 발전시킬 잠재력이 있다. 선결해야 할 것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올해가 보름도 남지 않았다. 지난 1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곱씹어보는 시간이었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는 올해 4월 위헌·위법으로 판결됐다. 6월에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그야말로 격동의 2025년이 끝나가지만,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와 관련한 이슈는 따라잡기 버겁다. 언론이 이러한 혼돈을 가중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 분야에서도 2025년은 기억될 해다. 신문·인터넷신문·방송·뉴스통신, 이른바 4대 언론매체의 운영이 쉽지 않고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서사다. 뉴스 이용 창구로서 유튜브의 급부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언론이 처한 존재론적 위기가 폭발했다. 새로운 뉴스 유통과 이용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그동안 공고했던 언론의 정의와 범위, 저널리즘과 뉴스의 개념 등이 크게 도전받고 있다. 혼돈의 2025년, 유튜브는 이슈를 파악하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의존하는 매체 혹은 플랫폼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언론·유사언론·비언론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현실에서, 법적으로 등록하거나 허가된 언론매체가 운영하지 않는 유튜브 채널조차 스스로 언론이라 내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민은 의식적으로 기존 언론매체 대신 유튜브를 선택함으로써, 언론 지형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옮겨버렸다. 이제 기존 언론매체 역시 유튜브 전략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며, 유사언론·비언론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 문법을 따른다. 현실에서 유튜브의 언론매체 지위에 대한 논란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기존 보도를 인용하거나 재가공하는 것을 취재라고 말하는 일부 유튜브 채널의 주장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유튜브 채널의 편향성과 비공정성, 허위조작보도 등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매체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비상계엄 정국에서 각종 음모론에 근거한 허위조작정보를 보도함으로써 주목받았던 한 언론매체는 저널리즘 윤리를 저버려 소속 협회로부터 제명되기도 했다.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매체지만, 올해도 잘못된 보도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사회 갈등을 봉합하기보다는 이를 활용하고 깊이를 더해 수익을 챙기는 언론매체는 줄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인공지능의 언론 침범이 본격화된 2025년이다. 포털사이트가 주목경제 시대를 열었다면, 인공지능으로 인해 제로클릭 시대가 시작됐다. 인공지능을 통한 검색에서 주목 경쟁은 불가능하다. 기존 검색 최적화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고, 오직 인공지능기업에 데이터 제공자로서 참여하는 일부 언론매체만이 짧은 생존을 보장받는다. 이로써 언론산업은 더욱 양극화돼 민주주의의 다양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여러 한계로 저널리즘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지만, 아직은 언론산업 전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2025년 가장 큰 성과는 우리 언론의 자기 증명과 사회적 인정이 어느 때보다 강했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의 사회적 혼란과 혼돈은 오히려 언론의 필요 이유와 사회적 역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시민은 일부 보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진실에 접근하는 보도에 대해서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새해도 끊임없는 자기 증명과 지속된 사회적 인정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6년도 인천시 예산안이 확정됐다. 일반회계 약 11조 4000억 원, 특별회계 약 3조 8000억 원으로 총 15조 2000억 원 규모다. 이번 예산안은 당초 안보다 총 131억 원이 증액된 대규모 수정안으로 의결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큰 이견 없이 정리된 예산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깔끔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통상 예산안은 집행부가 편성한 뒤 각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최종 계수조정을 통해 확정된다. 상임위원회는 소관 분야의 정책 방향과 현장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사업의 타당성과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를 종합해 한정된 재원 안에서 전체 예산의 균형과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을 다루는 올해 마지막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는 이 구조가 매끄럽게 작동하지 못했다. 예결위 조정 과정 중 상임위원회 안에 담겼던 일부 사업들이 대거 조정됐다. 그 결과,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반영된 사업들이 최종 단계에서 삭감되는 등 의회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예산을 둘러싼 감정적 충돌과 논란은 그 자체로 시민들에게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단순히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가’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 각 지역이 필요로 하는 사업이 늘어날수록 조정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한정된 재원 속에서 과연 어떠한 사업을 우선순위로 두는 가에 있다. 예산이 부족할수록 선택은 불가피하고, 그 선택에는 분명한 기준과 설명이 따라야 한다. 이번 예산안은 총 131억 원이 증액되는 과정에서 다수의 쪽지성 사업이 포함되는 한편, 기존부터 추진돼 온 일부 사업 예산은 감액되거나 조정됐다. 단기적으로 보면 지역 요구를 반영한 증액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 구조를 놓고 보면 예산의 방향성과 정책적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 검토와 준비 과정을 거쳐 추진돼 오던 사업이 재원 부족을 이유로 줄어드는 동안 사전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신규 사업이 막판에 반영되는 구조는 예산 편성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특히 쪽지예산 형태로 편성된 사업은 집행부가 예산 투입 대비 성과를 온전히 발휘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도 이번 예산 논의가 더욱 부각된 배경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 현안과 개별 사업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집행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든, 의회의 요구를 반영한 사업이든 모두 지역에서 집행되고, 시민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어느 한쪽의 중요성을 단순히 가르기는 어렵다. 예산이 부족할수록 우선돼야 할 것은 단순한 안배가 아니라 선택의 기준이다. 필수 사업을 우선하는 원칙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사업이 실제로 집행 가능하고, 투입 대비 성과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방식의 예산 편성과 논의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산이 부족할수록 더 치열해야 할 것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반드시 필요하고 행정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려내는 일이다. 그 기준은 정치적 상황이나 시기적 고려가 아니라 사전 준비의 정도와 집행 가능성, 그리고 행정의 책임성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예산은 매년 확정된다. 그러나 예산을 둘러싼 신뢰는 한 번 흔들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예산 심의 과정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인천광역시의회 행정안전위원회 신동섭 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