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북부지역에는 화장장이 한곳 밖에 없다.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설이다. 고양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혜택이 없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북부지역 주민들은 성남, 수원, 화성, 용인 등 남부지역 화장장을 이용하거나 강원도 춘천, 또는 인제까지 가야한다. 타 지역의 화장시설 이용료는 해당지역 주민보다 훨씬 비싸다.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 크다. 따라서 예전부터 북부지역 지방정부들은 독자적으로, 또는 인근 시‧군과 함께 광역장사시설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최근 양주시는 양주·남양주·의정부·구리·포천·동두천시 등 6개시 합의로 공동형 종합장사시설 건립에 나섰다. 백석읍 방성리 산75 일원 89만㎡·2092억 원 규모의 장례식장, 화장시설, 봉안당, 수목장림, 자연장지 등 종합장사시설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동형 장사시설 건립사업은 주민들 간에 찬반의견이 의견이 분분하게 일고 있어 난관에 봉착했다. 공동화장장 건립 추진을 반대하는 경기도청원이 1만 건을 넘어섰다.(관련기사: 경기신문 8일자 1면, ‘양주 화장장 반대 청원 1만 건’) 청원인은 “양주시 중심에 건립예정인 공동형종합장사 시설 설치 계획을 양주시가 전면 철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양주시민은 장사시설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설치 위치는 주거 밀집지역이 아닌 외곽, 비거주 지역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양주시는 대체지를 제안하면 검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당초 계획대로면 오는 2030년 준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부터 설계, 2027년 착공할 예정이었다. 연천군의 경우 2010년 종합장사시설 건립 계획을 밝힌 바 있다. 2012년까지 300억 원을 들여 5만~10만㎡에 화장로 4기, 봉안당 2500기, 자연장지 1만1250기와 주차장, 판매시설, 화장실, 공원 등 편익 시설도 갖춘 종합장사시설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군수를 위원장으로 한 종합장사시설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며 건립 후보지 공모도 시작했다.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에는 식당과 매점 등 편익시설 운영권, 30억 원 이내에서 주민숙원사업 지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건립사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연천군은 종합장사시설 건립사업을 재추진하고 있다. 공동형 종합장사시설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으며 종합장사시설 건립 부지로 신서면 답곡리 일대 32만㎡를 최종 선정했다. 2028년 초 공사를 시작해 2029년 말 완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연천에 제3현충원이 건립되고 있어 25만∼30만㎡ 규모의 종합장사시설을 건립해 연계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구리시, 포천시도 종합 장사시설 건립을 백지화했다. 지역 주민의 반대가 거셌다. 양평군의 경우도 애로를 겪고 있다. 군은 지난 2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종합장사시설 건립 후보지를 공개모집했으나 신청 마을이 없었다. 이에 따라 공개모집 재공고를 했고 지평면 월산4리가 주민 등록 세대주 63%의 동의를 얻어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건립추진위원회를 통해 1차 서류심사 심의를 통과했으며 다음 단계인 건립 후보지 입지 타당성 조사 용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10월 20일 화장시설 건립반대 주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마을 간 대립과 갈등이 심화됐다. 결국 월산4리 유치위원회는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시설이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주민화합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중단을 결정했다. 화장장을 포함한 종합장사시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주민들의 수용문제와 건립 자금문제다. 특히 장사시설들이 수익성 부족에 따른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 공동 추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현장이 생방송으로 중계된 내용을 그날 종합뉴스 시간이나 다음 날 신문에 보도 할 때 기자는 곤혹스럽다. 대통령 기자회견, 그것도 집권 초기 회견은 지지 여부를 떠나 초미의 관심사다. 뉴스 소비자인 국민이 내용을 다 듣고 난 뒤라 뉴스의 생명인 신선도가 떨어진다. 언론사나 기자의 의도를 과하게 담을 땐 왜곡 논란에 휩싸인다. 뉴스 공급자인 언론은 어려움을 겪지만, 뉴스 수요자인 국민은 언론에 대한 학습과 이해를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대통령의 여러 발언이 언론사에 따라 어떻게 뉴스 가치 우선순위를 부여받는지, 어떤 부분이 빠지고 들어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달 만에 기자회견을 했다. 몇가지 새로운 형식이 눈에 띄었다. 추첨으로 질문자를 정한 거나 타운홀 미팅 방식을 가미한 형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이 대통령에게 할 질문을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사실 이제까지 대통령의 생방송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 내용이 대통령실에 제공되고 대통령은 모범답안을 말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어찌보면 취재원과 기자단이 짜고 국민을 세련되게 속이는 방식이었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만큼 파격이었고 신선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을 역임했던 윤여준 전 더불어민주당 총괄 선대위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재명 대통령은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 답변을 준비해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 데, 취임 한 달 만에 일체 사전 준비 없이 즉석에서 질문받고 대답했다”며 “청와대 공보 수석을 해본 사람으로서 저런 사람 밑에서 수석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럽더라”고 했다. 무한 찬사였다. 반면 매일경제신문의 김세형 전 주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두 시간 동안 뭘 질문하고 답변을 했다는 건가? 라며 시간을 허비했다고 깎아내렸다. 후배 기자들의 질문 방식을 무자비하게 폄하했다. 듣보잡 언론 소속들이라고 했다. 미국은 큰 언론사에게 발언권이 돌아가고 그들은 학벌도 좋고 20년 이상 출입한 기자들이 많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언론사가 나서서 정권에 코드를 맞출 수 있는 기자를 출입기자로 파견했던 한국언론의 관행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지역신문 기자들의 질문을 빗대 미국은 로키산맥의 골짜기 신문에는 질문기회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발언했던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모욕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은 핵심만 답변하는 데 이재명 대통령은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갤럽지지율 65%를 상투일 것이라고 했다. 14명 기자가 질의에 나섰다. 남녀 각 7명이었고 외신기자도 포함됐다. 지역일간지 3사와 지역주간지도 발언권을 얻었다. 모두 지역균형발전과 관련된 지역 현안이었다. 신생 매체들의 질문도 과거 대통령 기자회견 때 질문에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질문자 가운데는 지난해 12월 13일자 사설에서 ‘국민의힘, 윤 대통령 탄핵 반드시 저지해야’라고 했던 아시아투데이 기자도 포함됐다. 일본의 극우신문 산케이신문도 질문 기회를 얻었다. 이런 언론사가 발언기회를 얻었기에 기자회견은 더 돋보였다. 기득권에 매몰된 듯한 김 전 주필의 평가를 보면서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 내 몸이 여산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던 소동파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디지털 기술, 커넥티드 의료! 원격 상담은 시민과 의사의 일상을 개선하고 의료 사막을 퇴치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단, 원격 진료는 기존 의료 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원격 상담실을 설치하도록 당국이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원격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세 미만의 어린이는 이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의사는 필요한 도구를 갖추고 있다. 의사는 심장이나 폐를 진료하기 위한 청진기, 화면에 표시된 비디오를 사용하여 멀리서 환자의 목이나 귀를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동북부의 루즈(Louze)는 주민 3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지자체다. 2년 전, 주민의 염원을 받아들여 원격 진료가 시작되었다. 시청 입구의 벽에 붙여 놓은 다섯 개의 의자가 진료 대기실 역할을 한다. 복도 끝에는 의료 장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방이 있고 그곳에는 진찰대, 급수대, 무엇보다도 원격진료 컴퓨터 키트가 있다. 진료실에서는 여 간호사 한 명이 거의 모든 일을 보고 있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진료의 운영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기기들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비인후과 질환을 검사할 수 있는 검이경은 제가 직접 환자의 귀에 꽂아 주지만, 영상 피드백은 의사가 컴퓨터로 받고 있지요. 제가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직접 보는 것이지요. 청진기도 마찬가지이고요. 의사가 폐나 심장에서 나는 소리를 직접 수신합니다. 의사는 연결된 헤드셋을 착용하고, 듣는 소리에 따라 진료를 진행해요. 예를 들어, 벌에 쏘이거나 상처가 났을 때는 휴대용 카메라를 환자가 호소하는 부위에 대고 영상을 더 빠르게, 더 가까이, 덜 가까이 촬영합니다. 제가 의사에게 치수, 예를 들어 충혈 정도를 알려주지요. 그리고 사진을 찍지요. 직접 손으로 찍는 것도 의사입니다.” 진료는 루즈 시청에서 진행되지만, 의사는 원격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 센터인 트루아 지역의 원격 진료 센터에 있다. 루즈에서 5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집 근처에서 의사를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근 도시인 몽티에-앙-데르에는 5명의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두 명이 은퇴하고 현재는 두 명만이 진료를 보고 있다. 의료 사막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남은 길은 혁신뿐이었다. 리브-드부아즈(루즈를 비롯한 3개의 지자체를 통합한 새 코뮌)의 여성 시장인 크리스티안 벨티가 앞장서 다른 선출직 공무원들, 그리고 의료 전문가들과 함께 협회를 만들었다. 이는 루즈에 원격 진료소를 개설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 여 시장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격 진료는 의사가 없고 치료를 포기하는 주민들이 있는 농촌 지역의 요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저희는 사소한 증상이라도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지요. 예방이 매우 중요하고, 예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농촌 지역의 경우, 이러한 예방의 질적 부족으로 도시 지역 주민보다 기대 수명이 1.4년 더 짧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였다. 이 상황은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의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서라도 원격 의료를 서둘러 도입해야 할 때다. 이제 거리는 더 이상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 인프라가 한국만큼 좋은 나라도 없지 않은가! 위기 앞에 혁신을 모색할 것인가, 기득권의 눈치만 살필 것인가, 국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사회연대경제의 활성화가 통일 한국의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공통의 비전이 필요하다. 사회연대경제가 추구하는 '경쟁보다 협력, 독점보다 공유'의 가치는 분단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통일 한국에 가장 적합한 발전 모델이 되고 통합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통일 한국은 단순한 영토의 확장을 넘어, 이질적인 경제시스템과 사회 문화를 통합하는 거대한 과제를 안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연대경제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회적자본 구축 및 신뢰 회복. 오랜 단절과 체제 차이로 인해 남북 주민 간에는 깊은 불신과 이질감이 존재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주민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특성상,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업과 성과 공유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사회적자본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는 남북 주민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자립 기반 마련. 북한은 광범위한 지역 불균형과 낙후된 인프라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기반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역 주민의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업 모델을 개발하여 지역 경제의 자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중앙 집중식 개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 주도의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회서비스 격차 해소. 통일 초기 북한 주민의 의료, 교육, 돌봄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접근성은 매우 취약할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정부나 시장이 미처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며, 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통일 한국의 기본 서비스 공급망 구축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연대경제의 활성화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 한국의 사회연대경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법·제도적 기반 마련. 통일 초기부터 사회적경제 활동의 법적, 제도적 기반을 명확히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사회적경제 협력 모델 구축. 통일 전후 남북 사회적경제 조직 간 교류 및 협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사업 노하우를 공유하며, 공동의 사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별 특화된 사회적경제 모델 개발. 통일 한국 각 지역의 특성과 자원을 고려한 맞춤형 사회적경제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사회적금융 활성화. 통일 초기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자금 조달은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정책 자금 지원 확대, 사회적금융 활성화, 민간 투자 유치 등 다각적인 금융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사회적경제 조직의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물론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전 과제가 따를 것이다. 재정적 제약, 기존 시장과의 조화, 그리고 남북한 주민 간의 이질감 극복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사회연대경제는 ‘협력과 공유를 지향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가치를 통해 이러한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통일 한국은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인간다운 삶과 사회적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연대경제는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남북 주민이 함께 번영하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경기도에서 소방 인력이 정원조차 채워지지 않은 채 현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정원의 80% 수준에 불과한 인력으로 화재와 구급 대응을 감당하고 있어 현장에서의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소방 인력 확충은 그간 위정자들이 수없이 약속해온 중대사안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첨병인 경기도 소방 인력 태부족 현상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공업단지가 밀집돼 있고,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는 화재·구급 등 각종 재난 상황이 집중되면서 전국에서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지역이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7931건, 재산 피해는 약 3664억 원에 달했으며 인명피해 역시 88건으로 전국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재난 대응을 책임지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의 인력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도 소방관 정원은 약 1만 4000명으로 설정돼 있으나 실제 근무 인력은 이보다 20%나 부족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소방관 1명당 담당하는 인구수가 1000명을 넘어서며, 현장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등 극심한 인력난이 지속되고 있다. 현장에선 인력 부족으로 소방차 등 장비를 운행할 사람이 없어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도 많다. 일부 119안전센터에서는 운전 가능한 인원이 1명뿐이어서 차량마다 번갈아 복귀·교체를 반복하는 경우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119 신고 접수 시스템 발전 속도에 걸맞지 않게 실제 출동 인력의 만성적인 부족 현상에 대형 화재 시 구조할 인원이 모자라 소방관들은 늘 조바심을 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구급대 상황도 비슷하다. 경기도의 2021년 기준 구급차 3인 탑승률은 39.6%에 그쳤으며, 최근 인력 보강을 통해 올해 70%까지 늘었지만, 여전히 충족에는 미치지 못한다. 2명이 탑승하면 1명은 운전을 하므로 환자 관리는 사실상 1명이 모두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중증 환자 대응은 물론, 만취자의 폭력 등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하소연이다. 119 소방서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안전망이다. 일부 몰지각한 시민의 장난 전화나 허위 사건·사고 신고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긴 하지만, 119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시민 안전 시스템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해왔다. 대다수 국민은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112 못지않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보호기관으로서 119를 신뢰하고 의존하며 산다. 경기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 수도권 핵심이라는 사회지리학적 여건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지역에서 사건·사고 발생이 많은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경기도의 소방 인력이 어림없이 부족한 현상은 결코 정상적이 아니다. 경기도 인구 1416만 명을 1만 1495명의 소방관이 감당해야 하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소방관 한 명당 무려 1231명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 된다. 휴가도 못 가고 교육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음을 뜻한다. 아무리 사명감으로 지켜내고 있다고 해도 이런 현상이 누적되면 119 역할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인력을 충원해 최소한 4교대 근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방 인력 확충’은 위정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단골로 내놓는 대표적인 공약(公約)이다. 정치인들의 공약(空約)에 이대로 계속 유권자들이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은 변명도 해명도 필요치 않다. 도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태부족한 경기도의 소방 인력은 하루빨리 제대로 충원돼야 한다.
입양은 아이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이다. 그만큼 입양은 철저히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of the Child)’이라는 원칙 아래 추진되어야 하며 그 과정은 국가와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공적 시스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입양제도는 민간기관이 주도해 왔으며 입양이 아동 보호의 ‘빠른 출구’로 기능해 온 것이 현실이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입양되는 사례, 아동의 친생가족에 대한 정보 부재, 입양 전 보호 공백 등은 오랫동안 제기된 구조적 문제점이었다. 특히 입양을 통해 아동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전환되는 만큼 사전 준비와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입양 구조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높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7월 19일부터 입양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자 한다. 핵심 방향은 입양을 ‘민간 중심 절차’에서 ‘국가 책임에 기반한 보호 결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출생 직후 곧바로 입양기관으로 아동이 이동하던 기존의 흐름을 차단하고 일정 기간 국가가 보호하는 체계 안에서 아동의 상황을 충분히 평가·조정한 후, 친생가정 복귀 가능성을 우선 검토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변화는 입양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동을 급하게 새로운 가정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친생가정 유지 가능성을 포함해 다양한 보호 대안을 숙고함으로써 진정으로 아이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주자는 철학적·실천적 전환이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특히 아동 보호 전달체계의 일선에 있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경기도의 경우 현재 일시보호소 3개소, 아동양육시설 23개소, 공동생활가정 152개소, 가정위탁지원센터 2개소 등 다양한 공적 보호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다. 입양체계 개편 이후 이러한 보호 자원이 보다 정교하게 작동하도록 연계·조정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었다. 예컨대 출생 직후 아동이 일시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보호되는 사이에 친생가정의 회복 가능성, 아동의 심리·건강 상태, 가정위탁이나 시설보호의 적절성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호 결정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의료기관, 심리상담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는 유기적 협업 구조를 통해 더욱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출생 등록 의무화, 입양 전 친생부모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정보 제공, 입양 후 사후관리 강화 등 입양 전후 모든 과정에서 국가와 지자체의 행정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입양은 최후의 보호 수단이며 가장 신중해야 할 결정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랄 권리는 모든 아동에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가족이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이다. 입양을 둘러싼 논의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위한 사회의 책임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이번 개편은 그 첫걸음이다. 입양체계 개편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라 아동 권리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지를 반영하는 구조적 개편이다. 지방자치단체, 민간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아동 중심 보호체계를 구현해 나갈 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나라’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표절(剽竊)은 지식인사회,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세계에서 타인이 인생을 걸고 몰두하여 이룩한 결실을 가져다가 자신의 것으로 하는 짓이다. 절도(竊盜)다. 이 악행은 시공을 초월한다. 저열한 욕망에 추동되는 그 특이종자들의 비루한 행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약 2500년 전, 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노동없이 영예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 표절을 낳는다." 그 시대에도 이미 표절이 만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보다 더 오래 전, 수메르 시대(대략 기원전 4500년~1900년)의 대홍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흡사하다. 히브리족이 수메르 신화를 사실상 베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사상과 저술의 차용과 모방이 극심하여 표절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적소유권 개념이 없던 당시의 먹물들은 그 지식절도범들을 '흉악한 쌍놈'들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 피해자들의 상심과 분노가 '표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 동의어들 글자 속에도 같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서양이 똑같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나 동양 사람들이나 침해당한 사람의 마음이 다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표절(剽竊)의 剽(표)는 칼(刂)을 들고 부자를 겁박하는 형상을 나타낸다. '훔치다'의 뜻을 가진 竊(절)은 원래 곡식창고에서 쌀벌레들이 쌀을 갉아먹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였다. 칼을 든 강도나 쌀벌레나 본질은 같다. 그렇게 남의 사상이나 주장, 연구결과를 가져다가 자신의 것처럼 설파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표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抄襲(초습)은 표절과 같은 말이다. 남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얻은 열매들을 적군을 습격(襲)하듯 덮쳐서 빼앗아가는(抄) 강도행위를 일컬었다. 발음이 같은 剿襲(초습)도 동의어다. 칼(刂) 든 강도가 남의 재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기습하는 행위다. 둘 다 원뜻은 살인무기로 적을 습격하여 처단하고 쓸모 있는 것-먹거리, 농기구, 부녀자-들은 강탈하는 만행이었다. 그 잔혹행위인 표절과 초습이 다른 사람의 지적 성과를 도둑질하는 무혈의 범행을 이르는 어휘로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는 표절이 참으로 엄중한, 실은 무시무시한 윤리적, 법적 사안이라는 뜻을 웅변한다. 영어로는 표절을 plagiarism이라고 한다. 라틴어의 plagiarius(유괴범)에서 왔다.이는 plagium(납치)에서 왔다. 이는 또 plaga(올가미)에서 왔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자신의 시를 도용한 시인을 plagiarius(유괴범)이라고 부르면서, 남의 창작물을 훔치는 것을 어린 아이나 연인을 납치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 어원적 의의는 오늘 이 시간에도 유효적절하다. 대학에서 권력자인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는 작태는 도둑질이면서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만행이고 패륜이다. 그런 자가 교육부 장관 되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다. 이진숙 교수는 그런 제자들 논문 표절한 건수가 10편이나 된다고 한다. 지난 겨울, 우리는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북만주 독립군들의 마음으로 혹한을 넘었다. 나라를 벼랑에서 구했다. 겨우 이 따위 저품위 교수를 출세시켜주려고 거기서 그 차가운 시간에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진사퇴하라.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들이 ‘기획파산’으로 막다른 골목의 임차인들을 거듭 울리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면책이 된 사기꾼들이 멀쩡하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경우조차 있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실정이다. ‘기획파산’으로 전세보증금 반환의 길을 아주 막아버리는 악성 임대인의 변칙을 막기 위한 정밀한 대책이 요구된다. 가해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사회는 온전한 공동체가 아니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개인파산은 ‘개인사업 또는 소비활동 결과 본인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개인채무자를 대상으로 법원이 모든 채권자가 평등하게 채권을 변제받도록 하고 채무자에게는 면책 절차를 통하여 남아있는 채무에 대한 변제 책임을 면제하는 절차’다. 파산 제도는 과도한 빚을 지고 살길이 막힌 서민을 위한 마지막 생명줄 장치다. 문제는 전세사기를 일으킨 일부 임대인들이 이 파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을 편취해 다른 사업에 투자한 후 탕진해 갚지 못하게 되면 파산을 신청해 책임을 회피하는 수법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기획파산’을 도모해 피해 임차인들의 고통이 수년 후에도 끝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신문 취재 결과 화성시 향납읍 30대 초반의 한 다세대주택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소송을 걸자 즉시 파산을 신청했다. 이후 단 한 달 만에 파산이 결정된 후 모든 재판 일정이 중단되면서, 이 임대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임차인들은 1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잃었지만, 임대인은 부모의 재산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또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다세대주택을 건설하던 건설업자인 또 다른 임대인도 50~100억 원에 달하는 전세사기를 일으킨 후 파산 신청했다. 그는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지만 정작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녀, 임차인들을 농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임대인이 파산하게 되면 전세보증금을 직접 갚지 않아도 돼 직접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으며 환급되지 못한 전세보증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떠안게 된다. 실제 지난해 11월 부천에서 ‘바지사장’을 내세워 393억 원 상당의 전세사기를 벌인 일당은 바지사장 명의로 임대 계약을 한 후 이들을 파산시키고 전세보증금 반환 의무를 공사에 떠넘기려고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담당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재정이 일부 ‘악성 임대인’에게 악용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HUG가 악성 임대인에 혈세를 털어 넣는다’라거나 ‘깡통전세 대신 갚느라 깡통 공기업이 된 HUG’라는 비아냥마저 등장하는 판이다. 전세보증 사고의 리스크를 집주인 대신 HUG가 모두 떠안는 보증 체계를 손질하는 한편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제재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 악성 임대인의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다시는 전세시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이 파산을 신청할 경우 법원은 이러한 정황을 반영해 파산을 기각해야 임차인들의 피해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호소한다. 파산이 악성 임대인들의 ‘면피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전세 사기꾼들이 처음부터 이 ‘기획파산’을 포함하여 못된 짓을 꾸밀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악성 임대인의 ‘기획파산’은 근절돼야 한다. 전세사기로 인한 막대한 피해 규모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보다 정밀한 근절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편법·불법으로 점철된 전세사기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 이 문장은 한국 증시에 대한 집단적 냉소와 미국 증시에 대한 매혹을 함께 드러낸다. 주식을 매수하는 일에는 그 기업이 대표하는 가치와 미래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무언의 서약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수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위치시킨다. 이야기가 대중의 몰입과 충성을 이끌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변화와 완결의 약속, 선명한 드라마와 영웅, 참여와 소속의 감각, 그리고 서사의 유통성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문학과 영화, 브랜드, 정치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미국 증시는 이 네 가지를 거의 완벽히 충족하는 서사다. AI, 기후 기술, 우주산업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미래 비전이 투자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언젠가 더 큰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집단적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테슬라, 엔비디아, AMD 같은 종목은 혁신과 변화를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리사 수는 몰락 직전의 AMD를 재건해 산업의 아이콘이 되었고 젠슨 황은 GPU를 AI의 핵심으로 탈바꿈시켰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를 공언하며 테슬라를 극단적 변동성과 과감함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주가는 급등과 폭락을 거듭하지만, 그 변동성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로 소비된다. “화성 갈 거니까”와 같은 밈을 온라인에서 공유하면서 투자자는 글로벌 혁신의 무대에 조연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차트, 인터뷰, 영웅의 일화는 소셜미디어에서 재가공되어 확산한다. 투자자는 이야기에 동참하며 서사의 일부가 된다. 반면 한국 증시는 이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테마주는 짧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신뢰를 마모시키고, 정책 리스크는 예측 가능성을 마비시킨다. “이 시장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체념이 깊게 스며 있다. 중심이 될 만한 인물과 비전은 부재하거나, 오히려 냉소와 피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투자자는 자신이 관객에 머물러 있으며 내부자에 의해 희생당한다는 감각을 떨치기 어렵다. 서사가 사라지는 순간 소속감도 함께 사라진다. 차트와 상징은 밈으로 재생산되지 못하고 투자자들 사이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허탈감만 남는다. 수익률의 높음과 낮음 이전에, 이 이야기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더 큰 결핍을 만든다. 투자자의 이야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고려하면,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더 나은 서사를 찾아 떠나려는 본능을 드러낸다. 미국 증시는 변화와 완결의 약속, 드라마와 영웅, 참여와 유통의 조건을 충족시키며 투자자를 이야기의 공동 저자로 만든다. 한국 증시는 이들 요소를 거의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동 서사의 경험이 불가능하다. 흥행의 조건이 사라진 무대에서 관객은 자연스레 자리를 뜬다. 단순히 수익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공유할 서사가 없다는 사실이 이탈을 부른다. 이야기의 부재는 시장의 피로와 냉소를 낳는다. 투자라는 서사는 결국 어떤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젊은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좇는 동시에 더 큰 이야기를 찾아 미국 증시로 발길을 옮긴다. 미국 시장에는 변화의 서사와 영웅, 참여의 동력이 흐른다. 수익률의 차이도 분명하지만, 더 깊은 격차는 결국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투자는 언제나 이성적이기보다는 서사적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증시가 끝내 잃은 것이다.
이제 7월 초인데 벌써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지구는 이렇게 계속 뜨거워져 가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점점 편안함을 잊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디 시원한 거 없을까 하고 찾게 되는 음식이 콩국수이다. 여기에 얼음 몇 개 동동 띄우면 먹는 순간만은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콩국수의 유래는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콩이 서민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식품이었고, 국수는 주로 밀가루로 만드는데 곡물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밀가루에 콩가루를 첨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콩국수 형태가 일반화된 것은 조선 후기인데 콩은 맛도 있고 영양가도 높아서 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콩국수는 단백질, 미네랄,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글루텐이 없고 열량이 낮아서 지금은 건강한 다이어트 식단으로도 잘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콩이 콩국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주로 “콩알만 한 게….”라고 하면 작다는 것을 무시할 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콩알은 비록 작지만 단단하여서 웬만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만 옳다는 옹고집은 없어서 물에 불리면 연하고 순하게 물러져서 부드러운 음식의 재료가 되고 반으로 나눠지는 콩알은 “콩 하나도 반으로 나눠 먹는다”라는 비유처럼 작은 것에도 서로 돕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콩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룻밤 푹 불린 콩을 잘 갈아서 밀가루와 적당히 섞은 반죽을 얇게 펴서 국수 모양으로 잘게 썬다. 그리고 갈아놓은 콩가루를 물에 풀어서 콩국수 국물을 만들어 시원하게 냉장해 놓는다. 콩국수를 잘 삶으려면 펄펄 끓는 물에 국수를 넣고 거품이 올라와서 넘쳐흐르려는 찰나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거품을 잠재우면 된다. 비록 콩알은 온데간데없이 형태가 사라졌지만, 그 고소함은 그대로 남아 걸쭉한 콩국수로 태어나 더위에 지친 서민들의 입과 속을 시원하게 달래주며 자신의 훌륭한 소명을 마무리한다. 냉콩국수를 먹으면서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면 더운 여름도 좀 더 시원하게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정치인들이야말로 콩국수의 소명에서 배울 것이 많지 않을까? 국민은 거대하고 위대한 정치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콩알처럼 작아도 단단하여 의지를 쉽게 꺾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 고집만 피우는 불통이 아니라 콩반쪽이라도 나눌 줄 아는 마음, 그리고 물속에서 충분히 물러져서 가장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존재를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이 거품처럼 끓어오를 때 국민의 소리를 한 줌의 소금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제할 줄 아는 인격을 원하는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열망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높이려는 그 열망의 허울을 버리고 본질에 주목한다면 비록 콩알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영양은 그대로 남은 훌륭한 콩국수처럼 모든 서민이 즐거워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무더워 짜증 나기 쉬운 올여름, 텔레비전을 켜면 화면에 나타나서 국민 마음속에 열이 뻗치게 하는 이들 대신 냉콩국수처럼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지도자를 바라는 게 국민의 과욕은 아닐 것이다. 어떤가? 오늘 냉콩국수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