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공부한다는 여성에게서 문자가 왔다. 명절이 끝나는 마지막 날 카페에서 만나고 싶다고. 이어서 그는 수필을 공부하고 싶어 꼭 두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간의 느낌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풋풋한 야성(野性) 같은 감성이었다. 가을이 되면 강의실도 뭔가 달라져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가요를 한 곡 불러주기도 하고 악보를 나눠주면서 같이 부르며 가을날의 정서를 강의실에 담아내곤 한다.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 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 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 소리… ” 나는 이 노래 가사에 마음이 끌려 부르게 되었다. 작사가(김지평)의 마음과 내 마음이 포개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지리산을 의무적인 과업으로 알고 오르내리면서도 통나무집 창가에서 밤을 새우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숨어 우는 목소리 같은 바람소리며 젊은 날의 그녀 얼굴이 주름진 내 가슴에 안기는 듯해서 좋았다. 그러한 가슴과 눈빛으로 갈대의 몸동작을 바라보면서 산을 오르고 내리면 또 생각나는 일들이 있었다. 마당가에 첫서리가 내려 국화가 시들 무렵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집 방 문짝에 새로 사 온 창호지를 바르고서 떼어낸 문짝을 담 곁에 세워놓은 뒤 함께 바라보시곤 하셨다. 그때의 두 분 모습은 퍽 편안해 보였다. 그 생각이 나면 지금도 ‘숨어 우는 바람 소리와 문풍지 소리며’ 가버린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며 공연히 쓸쓸해진다. 그러나 허전한 마음은 끝내 맑아지곤 한다. 부모님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다. 그때는 강변에 나가면 건너편으로 노루가 뛰어가고 풀숲에는 큰 뱀이 똬리를 틀고 있기도 했다. 뒷동산으로는 아이들과 토끼몰이를 다니고 강물이 얼어붙어 스키를 즐길 때는 산 짐승들의 달아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산과 냇가 그리고 강변 둑에서 풀을 뜯던 황소들은 한 폭의 야생(野生) 풍경화이었다, 산과 강과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서 본능적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람도 야생동물 같이 산과 들과 숲과 마을에서 야성이 길들여져 살아가는 생명으로서의 개체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대형 포식자들을 멸종시키고 중소형 포식자를 가축화하는 역사였다. 그리고 현재는 전 세계 포유류의 36%가 인간이고, 60%가 가축이며, 오직 4%만이 야생 포유류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같은 대형 포식동물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TV에서 가끔 시청했다는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를 본다. 그 순간 넓은 초원에 서 있는 엘크 사슴이 나타나 턱 하니 버티고 서 있는데 보니, 짐승의 관(冠) 같은 뿔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무섭게 뻗었는데 곁가지 뿔이 10개였다. 그리고 약간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그 야성미! 야생의 본질은 ‘자유요 힘’이라는 게 절로 느껴졌다. 다듬어지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는 본능 그대로, 그대로, 생긴 그대로- 그때 생각나는 고사(古事)다. 한자로는 기호선인(騎虎仙人)이다. 어떤 사람이 깊은 산에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나 엉겁결에 등에 올라타 꽉 잡고 있는데 호랑이가 사람들이 있는 마을로 줄달음치니 보는 사람들은 ‘호랑이를 타고 가는 신선’이라고 하더란다. 본인은 뛰어내릴 수도 없고 죽을 지경인데-. 이러한 이야기가 통하던 그 시절, 그때는 그만큼 야생동물과의 삶이 낯설지 않았으며 야성을 잃지 않고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의 고난을 견디고 꿈을 이룬 조상으로서의 시조 곰의 교훈도 기억해 볼 일이다. 하늘 맑은 계절이다. 하늘을 거울삼아 나를 깊이 들여다볼 일이다. 우리의 삶이 야성을 까맣게 잊고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지고 자본주의 하늘만 쳐다보면서 아파트 평수와 자가용에 갇힌 것은 아닌가 하고. 어린이는 일찌감치 동심을 잃고 의대, 법대, 과학기술반의 유아원에, 청년들은 일류대학과 일류회사를 위한 과외와 학원에 갇혀 길들여지고 다듬어지면서 땅 한 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자연의 저장고인 숲 속에서 심호흡 한번 해보지 못하고 세련된 신사요 숙녀로 매끄럽게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이가 무거울수록 인간으로서의 풋풋한 야성(野性)이 그립고 아쉽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니 공기가 달라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열면 남은 여름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바람 끝에 서늘함이 묻어난다. 거리의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고, 출근길엔 연휴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쉬는 중이다. 연휴가 끝난 뒤 찾아오는 묘한 공허감, 그리고 다시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 잠시 멈추어 쉬었을 뿐인데, 세상은 나만 빼고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쉬는 일조차 조급하게 했나 보다. 푹 쉬었으니 이제는 다시 달려야 한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쉰다는 것은 단순히 멈추는 일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숨 고르기 아닐까. 돌이켜보면, ‘쉼’이라는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쉬는 시간에도 다음 일을 준비하던 습관이 몸에 밴 채로 어른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계획이 없으면 조급해졌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삶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바쁘게 달리던 말도 잠시 쉬어야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듯이, 사람도 그럴 필요가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도 편히 쉴 줄을 모른다. 물론 쉬는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쉬는 동안에도 쉬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 하지만 진짜 쉼은 그런 것과는 다르다. 잘 쉴 때 우리는 잠시 일을 멈추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를 둘러싼 관계와 일의 방향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서 마음은 조용히 정돈된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본다. 연휴 마지막 날 밤, 나는 내일을 준비했다. 연휴 동안의 휴식을 에너지 삼아, 몸과 마음이 준비 상태에 들어간다. 지난 몇 달간의 분주함, 사람들과의 관계, 스스로의 태도를 돌이켜보고, 온전히 느껴본다. 몸이 아닌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시간. 쉼을 통해 나는 다시 일할 준비를 한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다시 속도를 낼 것이다. 새로운 일정이 생기고, 해야 할 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급하게 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쉬는 동안 배운 여유를 조금이라도 간직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내 속도대로 걸어가길 바란다. 일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쉼은 우리가 선택해야만 찾아온다. 그러니 그 선택을 조금 더 자주, 의식적으로 해보자. 연휴가 끝났다는 건,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시작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부담 갖지 말고, 하루의 리듬을 천천히 회복하는 일부터면 충분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조금 낯설지만, 쉼이 알려준 느림의 감각을 기억한다면, 다시 맞이할 분주함 속에서도 잘 해낼 수 있다. 휴식을 끝내고 일상을 향해 다시 걸어갈 때, 새로운 마음가짐과 힘찬 발걸음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쉼을 통해 회복한 마음이 방향을 잃지 않게, 일의 한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잊지 않기를. 그렇게 우리는 일과 쉼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조금씩 더 균형 잡힌 사람이 되어간다. 이번 가을, 다시 달려야 할 시간이 왔다면 그 시작이 두려움과 부담감이 아닌 기분 좋은 미소로 시작되길 바란다.
“수원화성은 1796년 9월 10일 완공하였노라.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어 온갖 물건이 무르익고 있다...(중략)...조선 400여 년 역사에 처음 있는 큰 공사를 2년 만에 이처럼 이루었다. 궁실이 거대하고 화려하니 오늘 낙성 잔치를 어찌 성대하게 열지 아니 하리오? 오늘 낙성 잔치를 베풀어 화성 성역에 참여한 모든 장인과 백성들 모두는 풍류를 즐기고 불취무귀(不醉無歸) 하기를 바라노라” 지난 18일 열린 ‘2025 수원화성 축성 장인명패 봉안문화제’ 낙성연 행사 중 화성성역 총리대신 좌의정 채제공 역을 맡은 화성연구회 회원이 낭독한 낙성연 교지 내용이다. 낙성연은 화성 성역에 참여한 이들을 위로한 잔치다. 올해 수원화성 축성 장인명패 봉안문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 회장)가 주최하고 대한불교 (재)선학원 팔달사(주지 각소 스님)가 공동주관하고 있다. 3000만원이 넘는 행사 경비도 화성연구회와 팔달사가 부담하고 있다. 순수민간 단체인 화성연구회가 이 행사를 여는 이유는 세계유산 화성을 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화공, 톱장이로 일했던 장인(匠人)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축성을 지시한 정조대왕과 화성성역 총리대신인 좌의정 채제공, 수원유수로서 축성 감동당상(監董堂上)을 맡은 조심태, 그리고 화성 기본 설계서인 ‘성설’을 지은 정약용 등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화성 성역에 참여한 장인1821명과 화성성역소의 관리직 376명 등 2197명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기록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화성연구회가 나섰다. 지난해부터 팔달사를 중심으로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넋을 기리는 ‘수원화성 축성 장인 명패 봉안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 행사는 팔달산 성신사에서의 고유제에 이어 우화관 옆 마당에서의 낙성연, 팔달사에서의 바라춤과 회심곡, 헌화와 헌작 등 장인들의 안식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 의식이 이어졌다. 지난해엔 고유제와 천도재만 실시됐으나 올해엔 낙성연도 포함됐다. 장인 명패 역시 지난 해 22개에서 100개로 늘었다. 행사 규모가 훨씬 더 커진 것이다. ‘윤복쇠, 김대노미, 김개불, 김쇠고치, 지악발, 이자근노미.../그대들 비록 그때 그 자리 초대받지 못하였으나/저 성벽과 누각, 수원천에 비치는 달빛/만천명월(萬川明月)의 주인은 그대들일세...(중략)...이 자리에 없으나/나의 마음 속 큰 술잔 받으시게/이어인노미, 김육손, 김노랭이, 황시월쇠, 정춘득...//기세 푸르던 장용영 군사들/춤추고 노래하던 여령들과/장안문 밖 새술막거리 주모/그대들도 오늘밤은 불취무귀(不醉無歸)...(중략).../오늘에서야/그대들에게 내미는/아직도 여여(如如)한 이 마음 한잔 받아주시게’ 이 시를 쓴 시인의 마음처럼 수원화성 축성 장인 명패 봉안문화제는 화성축성 장인들을 잊으면 안 된다는 화성연구회 회원들의 마음이 모여 만든 행사다. 장인들의 명패는 서각가이면서 전 화성연구회 이사장인 김충영 작가가 팔달사에서 나온 은행나무를 이용해 새기고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2000개가 넘는 모든 장인들과 관련자들의 명패를 새길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야 부족한 예산의 대부분을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을 비롯한 회원들과 팔달사 등이 냈지만 언제까지 부담시킬 수는 없다. 명패를 봉안할 장소도 문제다. 지난해 22명이었던 명패는 올해 이번엔 100명으로 늘었다. 앞으로 2000여명 장인의 명패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데 지금의 팔달사 용화각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 큰 공간이 필요하다. 수원화성 축성 장인 명패 봉안문화제는 매년 계속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원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뿌리를 내린 기업들과 시민사회도 관심을 갖고 함께 해주면 좋겠다.
내 집 주소의 도로명은 ‘태봉안길’이다. 이때 ‘안길’의 의미를 귀촌인인 나는 잘 몰랐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예전 지게 지고 다니던 좁은 길이 소유자의 동의로 보상 없이 넓어진 길이다.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가지만, 그 비약적 확대는 1970~8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다. 새마을노래 2절 가사에 ‘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나오는 이유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함께 농사를 짓던 시대였으니 마치 논물을 같이 쓰듯이 마을 길을 공공사업으로 만들겠다는 공동체와 정부의 요구를 당시 땅 소유주들이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태봉안길’은 ‘태봉마을’의 ‘안길’ 즉 예전 논밭 지겟길이 차나 트랙터가 다니는 길로 바뀐 길이다. 이렇게 사유지가 공공 도로로 사용되는 길이 이른바 ‘마을안길’, ‘비법정도로’, ‘사실상 도로(현황도로)’, ‘미지급용지(미불용지)’ 등으로 불리는 길이고 새마을운동이 휩쓴 전국 농산어촌에 엄청나게 산재해 있다. 그렇게 40~50년 전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무료로 내놓은 길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의 집을 짓지도,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숱하게 이 길을 이용하면서도 한번 사용료를 낸 적도 없으니, 길을 다닐 때마다 지금은 대부분 돌아가셨을, 누군지도 모르는 그 땅의 소유주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누군가 나타나 이 길의 소유자라면서 길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마을안길이 들어간 땅을 상속받거나 매입한 소유주가 재산권을 행세해 통행을 막거나 사용료를 요구하는 일은 이제 낯설지도 않은 뉴스다. 같이 잘 살자고 만들었던 길이 이제는 마을 분쟁의 화약고가 되었다. 뭣도 모르고 이런 땅을 구입한 귀촌인은 폭탄을 안고 마을에 들어오는 꼴이다. 이런 분쟁이 아니더라도 비법정 도로이다 보니 길이 노후화돼도 관리가 잘 안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더구나 마을안길에 상·하수도관, 가스관 등을 매설하기도 하니 정부가 국민 사유지를 무단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정부는 주민이 국유지를 조금만 사용해도 점용료, 대부료 등을 꼬박꼬박 징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훨씬 더 넓은 면적의 사유지를 무료로 내놓은 소유주의 자식이나 영문을 모르고 해당 용지를 매입한 사람들은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불공정한 상황으로 인해 마을안길 관련 민원과 소송이 빈발하고 있다. 양주시의 경우 최근 5년간 국가와 양주시를 상대로 제기된 마을안길 관련 민사소송이 총 58건에 달했다고 한다. 2024년 6월 기준 등록된 도로 중 36.7%가 사유지로 집계됐다고 한다. 양주시 자체 예산과 행정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양주시의회 의원들은 지난 5월 '비법정도로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건의안에는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 및 단계적 토지 매수 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을안길 문제는 전국적인 사회구조적 문제다. 그런데 경기도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동연 도지사는 최근 경기도를 ‘기회수도’로 만들겠다며 행정의 무사안일주의를 없애는 적극 행정 의지를 밝혔다. ‘기회수도’ 경기도에 과거 독재 행정으로 만들어진 마을안길 문제 해결에도 기회가 오길 기대한다.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가 끝났다. 사실 1945년 10월에는 당의 전신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창립됐고, 김일성은 그 직후 평양 군중대회에서 첫 대중연설을 한 뒤 연말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이듬해 초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북한의 지도자로 커갔다. 조선노동당은 그 뒤 1949년 6월 조선공산당의 후신인 남로당과 합병 창립됐다. 노동당은 북한의 헌법과 당규약을 통해 국가의 모든 활동과 군의 모든 정치군사활동을 영도한다. 잘 알려진 대로 1990년대 경제위기 때 선군정치 체제에서는 군이 앞장서기도 했지만, 2011년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 이후 김정은 체제에서는 당대회 등 당기구가 정상 운영되면서 그 위상이 회복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달 9일 북한의 노동신문·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은 당의 영도를 강조하면서 군이 “무한히 충직한 최정예강군”이 될 것을 요구했다. 이번 당 창건 기념행사에서 내외의 이목을 집중한 것은 역시 10일 심야에 펼쳐진 열병식이었다. 김정은은 행사 축하차 방북한 중국의 리창 총리,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또 럼 베트남공산당 서기장 등과 나란히 섰고, 이는 북한의 요즘 국제 위상과 지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퍼레이드에 나온 군 장비로는 신형 고체연료 ICBM ‘화성포 20형’과 몇 차례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 러우 전쟁에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드론 발사차량 등과 함께 신형 전차 ‘천마 20형’ 및 자주포, 방사포 등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북한 군사력은 핵개발 가속화로 50발 이상의 핵탄두와 다종의 전략미사일 보유가 확대되는 가운데 각종 지상장비와 잠수함, 구축함, 드론 등 재래식 무기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고도화하고 다변화되는 북한의 군사태세에 대해 우리의 국방대비도 전방위적으로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핵위협에 대해서는 한미의 확장억제 능력을 단계별 시뮬레이션에 맞춰 합목적적이고 신뢰성있게 제고해 나가고, 다층적 미사일방어체계, AI기반 감시·타격, ‘괴물미사일’ 활용 등 실효적인 억제전력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재래식 군비는 아직 현대화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우리와의 군사기술 격차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육·해.공 전 분야에서 고루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K-방산 성과를 활용하여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하겠다. 다만, 지상 및 해상장비 등에서 우리 방산기술을 도용하거나 북러 군사협력 등을 통해 성능을 강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비가 필요하다. 또한 드론이나 잠수함, 특수부대 등을 활용한 국부적 타격이나 침투전은 언제든 가능하므로 입체적 감시정찰과 한국형 아이언돔 등 저고도·근접방어 능력을 활용한 철저한 경계태세의 유지가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자주국방은 평화 구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 가능하다.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실사구시적 접근은 한미동맹과 주변국 관계 병행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재래식 한반도 방위를 우리가 주도해 나가면 대북 및 대주변 평화보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며, 장차 위협관리를 위한 남북 및 지역 차원의 군사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주의 꿈은 전방위 평화와도 맞닿아 있다.
정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의 충격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책이 초래한 부작용과 규제 형평성 논란이 정책효과에 대한 기대를 압도하는 양상이다. ‘공급계획’ 없이 ‘수요억제’만 갖고 되겠느냐는 지적이 주류다. ‘현금 부자들만 집을 사라는 얘기냐’는 불만도 나온다. “묶을 곳은 빼고, 풀릴 곳은 묶였다”며 규제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높다. 하루속히 비현실적 조치에 대한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는 여론이다. 정부는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재지정했다. 최근 몇 달 새 아파트값이 급등한 화성 동탄신도시와 구리시는 규제에서 빠진 반면, 거래량이 급감하고 가격이 정체된 수원·의왕 등이 포함되면서 “묶어야 할 곳을 오히려 풀어줬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투자 수요가 엉뚱한 지역으로 쏠리는 ‘풍선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함께 과천·광명성남(분당·수정·중원)·수원(영통·장안·팔달)·용인 수지·안양 동안·의왕·하남 등 12개 경기도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였다. 2023년 1월 해제된 지 2년 9개월 만에 경기권에서 규제가 다시 도입된 것이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과열 조짐이 나타남에 따라 가격 급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정작 과열 지역은 빠졌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화성 동탄역 인근 ‘동탄역시범우남퍼스트빌’ 전용 84㎡는 이달 12억 원에 거래되며 한 달 새 1억 원 가까이 상승했다. 같은 단지 전용 84㎡ 매물의 호가는 벌써 13억 원을 넘어섰다. 구리 ‘e편한세상인창어반포레’ 역시 11억 7800만 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서울이나 분당에서 규제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대로 수원 장안·팔달·영통구 등은 거래가 끊기고 가격이 하락한 지역임에도 규제지역에 포함됐다. 해당 지역에서는 분당·과천 등 일부 과열 지역을 겨냥하면서 인근 지역까지 일괄적으로 묶은 것 같다는 분석과 함께 거래가 거의 없는 애먼 지역까지 같이 규제돼 피해를 본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자료가 이 같은 반응을 뒷받침한다. 2022년 10월 대비 지난달 기준 아파트 매매가격은 의왕시가 약 14.9% 하락해 경기권 내 낙폭이 가장 컸고, 수원 장안(-9.2%)·영통(-8.6%)·성남 중원(-8.7%) 등도 비슷한 수준의 하락세를 보였다. 즉, 정부가 이번에 다시 묶은 지역들은 오히려 지난 3년간 가격이 크게 떨어진 곳들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되레 수도권 집값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된다. 규제에서 빠진 동탄·구리·남양주 등지로 투자 수요가 몰리며 단기간 내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조치가 실질적 시장 안정보다는 ‘정치적 균형’에 치우친 행정 편의식 규제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시장 상황보다 행정 구역 단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과 함께 “실제 수요와 공급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으면 특정 지역의 규제만 강화돼 시장 왜곡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수요억제에만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 집중된다. 적절하고 신속한 공급대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난무한다. ‘만인의 만족을 도모할 수 있는 정부정책’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정책을 보완하는 일에 우물쭈물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태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수반되는 국민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장 현장의 동향을 정확하게 반영한 효율적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의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코스피 지수는 4개월 보름 동안 1050p가 상승, 40%p 가깝게 올랐다(종가기준 6월2일 2698p→10월17일 3748p). 올해 4000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장밋빛 보도까지 나온다. 윤석열 정부 내내 답보하던 주가가 뛰는 배경에는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으로 상징되는 주식시장의 반칙이 사라져 투명성이 확보될 것이란 기대도 반영돼 있다. KBS는 지난 7월 4일 저녁 종합뉴스인 ‘뉴스9’에서 ‘기업 취재해 주식거래···수억 원 차익 실현’이란 제목의 단독 기사를 냈다. 2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알게 된 기업 내부 정보로 먼저 주식을 사고, 기사를 쓴 다음, 팔아서 수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3일 후인 7일 ‘뉴스9’에서도 ”기자 선행매매 수사, ‘특징주’ 100여개 뒤진다“는 제목으로 후속 보도를 했다. ‘한 상장사가 삼성에 핵심부품을 납품하기 했다’는 내용을 ‘단독’ 취재라고 강조하면서 주식시장 마감 직전 온라인으로 기사를 출고 했다.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고, 이 상장사는 보름 동안 100%가 올랐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해당 주식을 다량 매수한 뒤 호재성 기사를 쓰고, 매도하는 수법이었다. 11개월 동안 10개 종목에서 5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게 골자였다. 이 두 건의 기사를 보도한 KBS 송수진 기자는 언론 전문 월간지 ‘신문과방송’ 10월호 취재기에서 ‘언론의 신뢰 자본을 기사를 통해 돈과 맞바꿨다’고 꼬집었다. KBS의 기사는 언론계 내부의 치부를 과감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했다. 특히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2회에 걸쳐 다룬 점도 눈에 띄었다. 다만 언론사 기자들 20여명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처리해 부도덕한 언론사가 어디인지를 밝히지 않아 아쉬웠다. 권역별 뉴스로 전환되는 9시 30분 이후에 기사를 배치해 지역시청자들은 이 뉴스를 접할 수 없었다. 부당 거래 언론사는 KBS 보도가 나간지 10여 일이 지난 뒤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에서 매일경제신문 등이라고 실명 보도 했다. 매경 기자는 고발된 후 회사 측에서 징계 절차 논의가 착수되자 자진 퇴사했다. KBS의 단독 보도를 받은 중앙 언론사는 서울신문이 유일했다. 연예인 자살 사건처럼 클릭수가 나올만한 기사에는 기사를 수없이 쏟아내던 때와 크게 대비됐다. 한편, 7월 15일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SBS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SBS 직원 일부가 지난해 12월 '넷플릭스 협업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 팔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때문이었다. ‘허위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국민 다수의 목소리에 언론계는 거세게 반대했다. 언론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명분이었다. 언론자유를 개인이나 언론사의 사적 자유로 오용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언론이 언론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벌어지면 철저히 함구한다. 국민 대다수가 아는 사실임에도 선택적 보도로 대응한다. 언론이 이러니 국민이 다른 플랫폼으로 떠나게 된다. 지난 10·15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날 수용자는 언론사를 찾지 않고 국토부 홈페이지를 찾았다. 언론(인)의 직업윤리를 냉철하게 뒤돌아볼 때다.
노동이 삶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만들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노동 없는 노동자’라는 새로운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 일할 능력도, 의지도 있지만 노동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 실업은 단지 소득의 부재가 아니라, 사회적 소속의 상실을 의미한다. 20세기 후반, 특히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량 실업은 경기 침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실업은 더 구조적인 차원을 갖는다. 자동화, 디지털화, 아웃소싱은 일자리를 줄이고, 정규직 중심의 고용은 점차 사라진다.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지만, 더 적은 수의 일만이 존재하는 기이한 역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노동은 경제적 행위 이전에 사회적 관계다. 일터는 단지 임금을 벌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고 존재를 인정받는 공간이다. 실업이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경제적 곤궁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쓸모없다’는 낙인을 내면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자존감의 파괴이며, 삶의 동력을 잃는 계기가 된다. 더욱이 오늘날의 실업은 단지 ‘노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직을 강요받는 ‘준노동자’ 상태로 이어진다. 이들은 일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시장의 문턱에 머무르며, 자격을 갖추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소비한다. 실업은 휴식이 아니라, 끝없는 자기 증명의 시간으로 변질되었다. 이는 비단 경제적 실패가 아니라, 문화적・심리적 소외의 상태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부는 ‘플랫폼 노동’이나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대체 노동을 수행하지만, 이는 고용의 대안이 아니라 고립의 심화일 수 있다. 일은 있지만, 소속은 없다. 플랫폼은 사람을 연결하지 않고, 오히려 고립된 개인을 경쟁시키는 체제로 기능한다. 연결되어 있으나 단절된, ‘네트워크 속의 고독한 노동자’가 바로 오늘날의 자화상이다. 노동 없는 노동자라는 말은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노동의 본질을 다시 물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단지 고용 여부를 넘어, 인간이 의미를 갖는 삶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성찰해야 한다. 실업의 문제는 고용의 숫자가 아니라, 소외의 구조에 있다. 일할 수 없음은 곧 존재의 소멸로 이어진다. 우리는 노동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구조를 상상해야 한다. 노동 없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외 없는 인간을 위하여. 노동의 의미는 곧 ‘기여’로 충족된다.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억지나 생존의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며 속한 커뮤니티의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명백히 기여이다. 고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이 부정되는 사회는, 기여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는 사회다. 기여 중심의 시각에서 보면, 돌봄, 창작, 자원봉사, 지역 활동 등 수많은 비임금 노동들이 모두 중요한 생산이며 존재의 확인이다. 노동은 계약 이전에 기여이고, 기여는 인간됨의 증명이다. 우리는 이제 노동의 유무가 아닌 기여의 질로 존재를 평가해야 한다. 한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기여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감수성을 갖추었는가에 달려 있다. 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에조차 기여는 가능하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의미를 창출하며, 공동체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새로운 노동 윤리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토지는 2024년 18만 8466필지였다. 면적 기준으로는 2억 6790만㎡로, 서울 여의도(290만㎡)의 92배 규모다. 2020년 15만 7489필지였는데 34년 만에 무려 19.6%나 증가한 것이다. 면적 기준으로는 2억 6790만㎡로, 서울 여의도(290만㎡)의 92배 규모에 달했다.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외국인 부동산 거래 허가 건수는 총 3756건이었다. 이 가운데 중국인이 3055건(81.3%), 미국인 408건(10.9%), 캐나다인 90건(2.4%)으로 중국인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거래 목적은 실거주가 3523건(93.8%), 임대용 105건(2.8%), 농업용 69건(1.8%)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외국인 부동산 취득 이상 거래를 선별 조사하고 있다. 외국인의 투기성 거래는 집값을 끌어올려 서민 주거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중국인들의 ‘한국 땅 쇼핑’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외국인 부동산 거래 가운데 중국인이 81.3%나 되는데다 중국인의 위법 의심 거래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2022년과 2023년 기획조사에서 적발된 위법 의심 행위자는 중국인이 가장 많았다. 2022년 위법 의심 사례 567건 중 314건(55%)이 중국인이었고, 2023년에는 528건 중 211건(40%)이나 됐다. 2024년에도 433건 중 192건(44%)이 중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의 투기성 부동산 거래가 잇따라 적발되고 반중국 정서가 확산되자 정부는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며 규제에 나섰다. 지난 1998년 외국인에게 부동산시장을 개방한 이래 처음으로 국토부는 8월 21일 서울 전 지역을 비롯해 경기·인천 30개 시·군·구를 1년간 한시적 외국인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국내에 실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의 수도권 주택매입을 강력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인의 주택 투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실거주 중심의 주택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자금조달내역이 불분명한 고가주택 거래 등 투기성 거래로 의심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최근 6·27 대출규제와 맞물려 해외차입 등을 통한 외국인의 투기성 거래가 증가할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허가구역 지정으로 주택을 취득한 후 2년간 실거주할 수 없는 외국인은 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투기 목적의 거래는 사실상 차단된다고 밝혔다. 위반한 외국인에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거나 위반사항이 심각한 경우 허가취소까지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해외자금 유입을 통한 외국인의 주택 투기거래를 차단시키고 외국인 거래 동향도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은 “국토부 장관이 직접 허가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만큼 외국인 투기성 거래 차단과 주거 안정 강화를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도 “국토가 외국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토지거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인 토지취득 허가구역 외에도 원칙적으로 상시 허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때 경기도는 2020년 10월 31일부터 2022년 4월 30일까지 23개 시·군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 효과를 보기도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1년짜리 한시 조치는 근본 대책이 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5일자 1면, ‘화난 민심 “왕서방 주택 쇼핑 그만”’) 상시 허가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공약에도 공감한다. “외국인 보유 토지는 안보 리스크로까지 인식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가을 풍경을 만끽하러 해외로 떠난 사람들이야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국내에 머문 사람들은 황금 휴가를 지리 하게 보내야 했다. 몇 년 전 의왕으로 이사 온 이래 학의천의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긴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올해는 넘실거리는 물로 돌다리를 한 번도 건너지 못했다. 콸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청계천 길을 걷노라면 베네치아가 자연스레 연상되며 들뜬 기분도 든다. 그러다 문득 ‘이 비로 올 가을 농사는 무사할까? 배추밭이 누렇게 주저앉을 텐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어린시절 장마로 배추밭이 누렇게 주저앉으면 이웃집 농부들이 탄식하던 걸 자주 봤다. ‘하느님 그만 비를 멈추시고 쨍쨍한 햇살을 비추소서. 가을 곡식을 잘 야물게 하소서.’ 근엄해지던 찰나 지구촌 저편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알바(Alba) 지역에서 진귀한 하이트 트러플을 수확했다는 뉴스다. 은은한 향이 특징인 이 희귀한 버섯은 마늘 향과 단맛이 깃들어 있다. 식품 중 가장 비싼 이 버섯의 가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지난 경매에서 낙찰된 가격은 850g에 7만 5천유로(1억 2500만 원)였다. 피에몬테(알바 랑게, 로에로, 몬페라토, 몬레갈레세) 전역에서 야생으로 자라기 때문에 피에몬테 송로버섯이라고도 불리는 이 버섯은 지난 11일부터 열린 박람회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박람회는 가을바람이 랑게의 포도밭을 부드럽게 스치며 햇살이 나뭇잎을 황금빛의 만화경으로 물들일 때, 마법의 시간을 수놓는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이 도시를 세계 미식의 수도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깊은 존중(Profondo Rispetto)’이라는 슬로건 아래 9주간 펼쳐지는 이 행사는 전설적인 화이트 트러플을 기리는 동시에 미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피에몬테 언덕에서 자생하는 화이트 트러플은 뿌리를 존중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강력한 상징이다. 이 박람회는 지역 경제의 핵심 동력인 수억 유로의 매출을 창출한다. 이는 지역의 전략적 기둥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행사의 진정한 정수는 자선이다. 전 세계의 자선가, 미슐랭 스타 셰프, 미식가들이 기부하는 천문학적 금액은 100% 모두 자선 단체에 기부된다. 위성 생중계를 통해 경매장은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뉴욕 등의 대도시로 뻗어나가 이들 도시에서도 경매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 경쟁은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하고 행사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다. 세계 3대 진미인 하이트 트러플은 이처럼 연대의 대사가 되어 궁극의 사치 행위를 멋진 관대함의 제스처로 탈바꿈시킨다. 피에몬테 지방정부는 트러플을 단순한 진미가 아닌 피에몬테의 정체성, 노동, 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노력은 ‘메이드 인 피에몬테’의 우수성을 가장 잘 상징하는 이 제품의 품질, 지속 가능성, 독창성을 홍보하는 데서 간파할 수 있다. 박람회를 통해 그들의 보물이 한 지역을 어떻게 세계무대에 위치시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시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자체들도 가을이면 온갖 축제의 장을 연다. 그러나 그 지역만의 정체성이나 독창성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메이드 인 피에몬테’처럼 지역의 국내외 위상을 드높이고 활성화시키려면 그 지역만의 전통과 문화적 깊이가 어우러진 오리지널 사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영혼 없이 이웃 지자체를 그대로 카피만 해서는 절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