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속에는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챙겨야 할 크고 작은 날들이 많다. 특히 5월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에 이어 성년의날까지 많은 기념일이 있다. 그렇다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기념하는 날도 있지 않을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투표에 참여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기념하는 날, 5월 10일은 이를 기념하는 ‘유권자의날’이다. 유권자의날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와 ‘투표 참여’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지난 2012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원칙 하에 민주적인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기에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한편, 주권자로서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투표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유권자의날을 제정하였고, 올해로 열네 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유권자의날의 주인공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바로 유권자다. 유권자에게 투표는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선거가 국가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제도로서 그 의의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후보자는 법을 준수하며 정책 중심의 공정한 경쟁을 펼쳐야 하고, 유권자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지난 4월 2일 실시된 경기도의회의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26.4%를 기록했다. 직전에 치러진 공직선거인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 66.7%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이러한 낮은 투표율의 배경에는 임기만료 선거와는 달리 일부 지역에서만 선거가 실시되고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닌 점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진정한 지역의 일꾼을 선택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아 좀 더 적극적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유권자가 행사하는 한 표의 가치가 선거에 따라 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한다. 꽃은 이를 가꾸는 주인이 물과 거름을 주면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비로소 아름다운 봉오리를 맺을 수 있다. 열네 번째 유권자의 날을 눈앞에 둔 지금, 오는 6월 3일 실시하는 제21대 대통령선거에 모든 유권자가 선거의 주인공으로 적극 참여하여 온 나라에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권은 중도 표심 확보에 사활을 건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도층뿐만 아니라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일은 선거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5월 1일 발표된 ‘전국 지표조사(NBS)’ 결과(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설문에서 ‘의견 유보’ 응답은 18%였다. 직전 조사(23%)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통계적 오차 범위 내 변화에 불과하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응답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2017년 19대 대선과 2022년 20대 대선을 한달 여 앞둔 시점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의견 유보층은 10%에 머물렀다. 정치권은, 현재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후보 선택을 망설이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약속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표심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유보층과 중도층이 요구하는 핵심 의제는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전국 각지를 돌며 이른바 ‘경청 투어’를 진행 중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대선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동시에 “우리가 여러분의 요구를 반드시 반영하겠다”는 신뢰를 주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여주를 찾은 이 후보가 “발전소를 만들었더니 돈도 안 들고 한 달에 1000만 원씩 나온다. 대체 (윤석열 정부가) 이걸 왜 탄압해 못 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되나”라고 한 뒤 “앞으로는 태양과 바람 같은 자연력으로 주민이 혜택을 보는 상식적인 세상,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자”라고 강조한 것도, 악화된 경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던지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경제 활성화는 중도·무당층이 바라는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 중도·무당층과 아직 선택을 보류한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다. 우리는 지난 8년 사이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었고, 최근에는 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목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 국민은 이제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원한다. 따라서 각 후보는 정권을 잡으면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겠다는 확신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의 행보는 이러한 국민적 바람과 엇갈려 보인다. 민주당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를 탄핵하려 했으나 본인의 사임으로 탄핵 표결이 무산된 바 있고,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안은 이미 발의된 상태다. 여기에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도 조만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정당성 여부를 떠나, 수십 차례에 이르는 탄핵 시도가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자리 잡은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이어지는 탄핵과 청문회는 불안을 더욱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법원의 재판 연기로, 대선 전까지 재판으로 인한 불이익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제 민주당은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단체 대화방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관한 의견을 소통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상의 모습이 됐다. 이러한 소통의 수단을 통해서 일상의 유용한 정보부터 같은 아파트나 마을 나아가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표명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는 것은 순기능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소통의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없이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나 허위의 사실의 표명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나 이웃 간에 명예훼손으로 서로 고소하는 모습 역시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사소한 다툼의 과정에서 객관적 사실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형법 제307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 한다) 제70조 역시 허위의 사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설사 표현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해당한다고 하여도 타인의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명예훼손죄는 사실의 적시라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으므로 사실이 아닌 의견의 표명에 불과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며, 그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가 또는 의견인가를 구별할 때에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5. 11. 선고 2016도19255 판결)고 판단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아파트의 입주민이 "동대표를 사퇴시켜야 된다, 깡패새끼가 무슨 동대표냐"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여도 이는 다툼의 과정에서 경멸의 감정 등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바 있고, 목사가 예배중 특정인을 “이단 중에 이단이다”라고 설교한 부분 역시 교리에 따라 그 평가가 달리 될 수 있다고 보아 사실을 적시가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반면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장에게 ‘해당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유리하게 일을 봐주는 것이 아니냐’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 입증이 가능한 사실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고, ‘내일이면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라고 한 것은 현재의 사실을 기초로 한 장래의 사실에 대한 것이므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명예훼손적 표현은 ‘공연성’을 갖춘 경우에만 명예훼손에 해당하고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하여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발언 상대방이 발언자나 피해자의 배우자, 친척, 친구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경우, 직무상 비밀유지의무 또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공무원이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으로 인하여 비밀의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경우로서 공연성이 부정된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과 보편화로 SNS, 이메일, 포털사이트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대부분의 의사표현이나 의사전달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도 급격히 증가해 가고 있다. 더욱이 빠른 전파성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명예훼손의 침해 정도와 범위가 광범위하게 돼 표현에 대한 반론과 토론을 통한 자정작용이 사실상 무의미하게 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명예훼손적 표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어, 타인에 대한 어떠한 표현을 함에 있어서는 한번더 숙고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단일화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내홍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의 ‘무임승차설’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개입설까지 논란을 넘어 수습불가의 혼란에 빠지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경선 흥행을 위해 여러 단계의 후보 압축 방식으로 경선을 치렀다. 11명이 후보로 등록했고 ‘서류 심사-1차 컷오프-2차 경선-최종 3차 결선’을 통해 김문수 후보가 확정됐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김문수 후보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치밀해 보였던 경선흥행 카드는 특정인을 위한 ‘쑈’에 불과했다는 당 안팎의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먼저 경선주자들부터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4강에서 탈락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윤석열이 나라를 망치고 이제 당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4강에 든 후보들은 경선비용으로 최소한 2억씩 냈다”며 “변상한 뒤 후보를 교체하든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시 경선 4강에 들었던 나경원 의원도 “우리가 뽑은 대선후보를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축출하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공당다운 모습이 아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나 의원은 발언 도중 눈물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의원은 “차라리 처음부터 가위바위보로 우리 당 후보를 정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며 “이미 한덕수 후보가 ‘점지’된 후보였다면 우리 당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은 무엇이었나? 들러리였던 것인가”라고 친윤 당지도부를 저격했다. 최종 결선까지 올랐던 한동훈 전 대표는 5일 밤 자신의 유튜브 채널 생방송에서 “지금 대선 후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온다”며 “저는 오히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얘기하는 게 더 놀랍다”고 당 상황을 꼬집었다. 유력 주자였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런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 의미없다고 판단해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총리는 7일 오후 6시 서울 모처에서 회동했다. 그러나 서로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만 확인하면서 논란만 키운 채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한시가 급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참사 수준이다. 당 지도부의 성급한 개입으로 회동 직전부터 참사는 예고됐다는게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회동에 앞서 ‘대선후보 교체’ 가능성을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비서실장인 김재원 전 최고위원이 ‘당 지도부가 두 후보의 단일화 회동이 결렬될 것을 전제로 단일화 절차에 착수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회동 직후 김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의미 있는 그런 진척이 없었다”며 “(한 후보) 본인은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전혀 후보 등록할 생각도 없는 분을 누가 끌어냈느냐”며 당 지도부를 직격했다. 여러 논란과 혼란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당 지도부는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7일 심야 브리핑을 통해 “8일 오후 6시에 TV토론이 열리며, 토론회 직후 여론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론조사는 대선 경선 때처럼 당원 선거인단 투표와 역선택 방지조항을 적용한 국민 여론조사를 절반씩 합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 지도부의 무리한 강제 단일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강성 친윤으로 알려진 윤상현 의원 조차 “절차적 정당성, 민주주의에 위배된다고 판단한다"며 "만약 이런 식으로 강제하게 되면 이 당은 더욱더 법적 공방으로,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김기현, 주호영, 나경원 의원 등도 당 지도부의 밀어붙이기식 단일화 로드맵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해졌다. 김 후보 캠프 소속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당 지도부가 소집한 전국위원회(8~9일), 전당대회(10~11일) 개최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에 자당의 후보 결정을 결국 법원에 맡기면서 국민의힘은 예측불가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선 이후까지 염두에 둔 당권싸움이라지만 국민은 왜, 언제까지 이런 막장정치를 보고 있어야만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현재까지 지지율 1위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만이 유일하게 청년‧직장인‧자영업자 등 각계각층을 겨냥한 제도 개선과 정책 마련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장년을 위한 정책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재명 후보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년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자산형성 지원과 함께 일할 권리를 강화하는 구직 지원 정책도 포함했다. 특히 자발적 이직을 하는 청년에게도 구직급여를 지급하고, ‘채용연계형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확산하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나 이는 청년뿐만 아니라 재취업을 원하거나 경력이 단절된 중장년층에게도 필요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이재명 후보는 노동절이던 지난 1일 △정년연장(60세→65세) 사회적 합의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 등 다양한 고용 형태의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 △비전형 노동자 일터 문화 개선 △노동 존중 문화 확산 △노동권 적극 보장 △청년 노동권 보호 △아프면 쉴 권리 보장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다양한 정책을 약속했다. 이 후보는 정년연장을 약속하면서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하려면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준비되지 않은 퇴직으로 은퇴자가 빈곤에 내몰리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언급해 퇴직에 내몰리는 중장년을 염두에 둔 듯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도 모든 기업이 60세로 정해진 정년을 보장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을 통해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터를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장을 떠난 이들은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하는데 이 역시 녹록지 않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이’가 일터에서 적지않게 걸림돌로 작용하는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원하는 중장년층이 갈 수 있는 일터는 많지 않으며, 입사하더라도 ‘나이’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경쟁에서 밀려 채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취업을 원하거나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려는 중장년들이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요?” 라는 질문을 공공연하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하여 각 당 대통령 후보들은 보다 촘촘하고 배려심 있는 중장년층 지원 정책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이는 청년과 중장년을 ‘갈라치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나이’가 많아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는 중장년에게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 정부가 알아주길 바라서다. 수많은 중장년 노동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기존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터나 직무에 도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선까지 4주가 채 남지 않았다. 각 당 대통령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정책과 공약을 만들어서 더 나은 대한민국, 더 나은 우리 사회를 건설해주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상고심 사건을 ‘유죄’로 인정해 파기환송했다. 이 사건은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후보의 발언을 검찰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고등법원에서 무죄로 판시한 것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절차와 내용면에서 공정성을 상실해 위기를 자초했다. 절차면에서, 대법원은 내규를 위반해 재판을 진행했다. 그동안 1심 선고(2024.11.15.) 까지는 2년 2개월이, 2심 선고(2025.3.26.)에는 4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상고심 선고는 항소심 선고 후 36일만에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 제7조를 보면, 재판연구관이 전원합의 사건에 관해 조사·연구한 결과를 미리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소부 배당 당일 바로 전원합의체 심리를 함으로써 재판연구관이 조사·연구한 결과를 미리 볼 수 없었다. 전원합의체는 배당 9일 만에 2차례 심의했을 뿐이다. 이것은 국민기본권의 침해이다. 내규도 따르지 않은 채, 자료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판결한 대법원에 시민들은 ‘자료열람기록의 공개’를 청원(100만 명) 하기에 이르렀다. 내용면에서 이번 판결은 소의 이익이 없는 것이다. 판결문은 보충의견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로 서두른 재판을 변호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의 ‘6·3·3’이라는 신속재판 원칙은, 인용한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결처럼, 당선무효형을 받게 될 선출직 공직자가 재판 지연으로 임기를 장기간 채우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낙선했다. 낙선자의 재판을 신속하게 한다는 것은 입법 취지와 상반되는 것이다. 또 미국의 판결은 원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이재명 사건은 원심 ‘무죄’를 ‘유죄’로 뒤바꾸는 경우이므로 서두를 만한 재판의 실익이 없는 것이었다. 절차와 내용면에서 피고에게 불리한 재판을 서두른 대법원판결은 전형적인 정치개입이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기관으로서 입법부, 행정부와 함께 국가기관의 한 축을 이룬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만 법관(헌법재판소 포함)은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선출되지 않은 법원의 존립이유는 재판의 공정성이다. 대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Dike)이 이를 상징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기 위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불법 ‘12.3 비상계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년 1월 18일 폭도들의 서부지방법원 난입을 초래했다. 고등법원은 5월 15일에 첫 심리기일을 잡고 피고(이재명)에게 출석을 통지했다. 5월 10일-11일에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등록 이후 12일부터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15일 선거운동기간중 고등법원이 재판을 강행하는 것은 국민의 선거권과 이재명 후보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다행히 법원이 재판일정을 선거이후로 연기(6.18)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일탈은 스스로 사법부의 존립위기를 초래했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풀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개혁의 길로 나아갈 것을 적극 권고한다.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수원·용인·고양·창원·화성시 등 5개 특례시로 구성된 ‘대한민국특례시시장협의회’와 지방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전국 89개 기초자치단체 협의체인 ‘인구감소지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만났다. 두 협의체는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 균형·상생발전을 위해 힘을 모은다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엔 대한민국특례시시장협의회 대표회장인 이재준 수원특례시장과 인구감소지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인 송인헌 괴산군수와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신정훈 의원과 염태영 의원(수원시무), 인구감소지역 의원 등도 참석해 힘을 실어 줬다. 인구감소지역과 특례시(대도시) 간 공동협력 활성화 사업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인구감소지역 및 특례시 공동협력 활성화 건의문’도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에게 전달됐다. 건의문에는 우수한 정책 사례가 더 발전된 형태와 방향으로 널리 전파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도시 참여를 유도하기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홍보’ 등의 요청사항도 포함돼 있다. 두 협의회는 경제, 문화, 관광, 자원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며 지역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협약서엔 농특산물 홍보·판매를 촉진시키고, 미술관·박물관 소장품 교류, 스포츠 교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의료봉사 등 구체적인 협력 내용이 들어있다. 협약 내용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생활 인구’ 유치를 위해 유휴 재산을 활용한 연수원 공간을 마련하고, 체류형 쉼터를 개발해 도농 간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협약이 특례시 등 대도시와 인구감소지역의 인적·물적 교류가 확산되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구감소지역이 되살아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경기도는 인구 1400만 명이 훨씬 넘는 전국 최대 지방정부다. 주민등록인구와 등록외국인을 합치면 1400만3000여명이 거주한다. 하지만 시·군별 인구격차는 매우 크며 많은 지역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사라지는 지방, 지역 활력에서 답을 찾다’ 보고서는 2067년에 도내 31개 시·군 중 화성시를 제외한 30곳이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소멸위험 지역은 65살 고령인구가 20~30대 여성인구의 두 배가 넘는 곳이다. 경기연구원이 밝힌 현재 도내 소멸위험 지역은 가평, 연천, 양평, 여주, 포천, 동두천 등 6곳이다. 이들 지역은 낙후된 정주 여건, 부족한 생활 인프라, 일자리 문제로 인한 청년인구의 유출이 많은 곳이다. 인구 감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 지방정부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출산 장려 정책과 교육·주거 인프라 개선, 일자리 창출, 고령 친화 정책 등 다양하다. 경기도는 올해 76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 ‘2025년도 경기도 인구감소지역 대응 시행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생활인구 확대, 지역 일자리 증대, 거주환경 개선 등이 주 내용이다. 이 가운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생활인구 확대 정책이다. 2023년부터 도입된 생활인구 제도는 체류형 관광객 등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생활인구가 증가하면 인구유입에 도움이 되고 지역 경제도 활력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가평군의 경우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가평군의 총인구는 6만 명이 조금 넘는다. 군은 인구감소에 대응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생활인구 확대에 총력을 기울였다. 군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뮤직빌리지 등 문화예술축제와 청평호, 명지산 등 자연경관을 앞세워 문화 관광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이 결과 최근 생활인구 100만 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둬 타 지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구감소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대도시가 인구감소지역과 협력하고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선다면 인구소멸 먹구름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정치검찰과 법조카르텔의 횡포에 위기상항을 맞이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공직선거법 2심 판결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이는 대법원의 정치개입으로 볼 수 있으며 대법원의 사법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 되었다. 더구나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정치검찰의 권력카르텔이 기승을 부리며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다. 그 예로 정부 각료들과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의 내란 동조 행위, 사법부 권위를 망쳐버린 지귀연 판사의 내란 수괴 윤석열의 불법 석방,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 항고 포기와 직권 남용, 검찰의 김성훈 경호차장의 구속 기각 결정 등의 불투명한 사건들이다. 게다가 어리석은 자멸(自滅)의 길로 들어섰던 내란 수괴 동조 세력중에는 검찰과 법원의 정치엘리트가 포함돼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들은 충암고, 육사, 서울법대와 사법고시의 학연, 법조카르텔로 뭉친 정치엘리트들의 권력동맹(Power Bloc)을 만들었다. 이런 카르텔은 사회정의를 실천하지 않았으며 그들만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악용해 왔었다. 그 결과 정치검찰은 당연히 해체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조카르텔을 악용해 법을 위반한 판사와 검사를 처벌함이 옳은 것이다.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자와 지도력 위치에 있는 사람’을 엘리트(Elites)로 정의한다면, 이는 조선시대에 있어서 ‘선비’의 개념과 가의 유사하다고 하겠다. 당시 ‘선비’들은 사회의 지도적 계층이었으며, 그들의 생활태도도 매우 엄격한 규범에 의해 제약을 받기도 하였다. 아울러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했으며, 올곧은 신념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몸소 실천하며 대중들을 교화해야 하는 책무를 맡았다. 오늘날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는데 기여하는 판사와 검사 같은 경우도 이들 정치엘리트에 속한다고 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의 정치엘리트에게도 동일한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 엘리트 이론(Elite Theory)가인 파레토(V. Pareto)의 견해에 따르면, 정치엘리트 중에 기득권을 지닌 보수적 ‘사자형’엘리트는 혁신적인 ‘여우형’엘리트에 의해 교체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에 지남에 따라 ‘사자형’엘리트는 부패하며 적폐가 쌓여 스스로 파멸(破滅)의 길로 가면서 권력이 교체돼 순환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새로 들어서는 신정부는 이와 같은 정치엘리트의 권력카르텔을 과감하게 해체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視角)에서 한국의 12.3 불법 비상계엄 양태를 관찰할 수 있다. 즉 윤석열은 국민의 뜻을 배신해 무능의 국정운영을 보여주다가 자아도취적 몽상(夢想)에 사로잡혀 자폭(自爆)의 비상계엄을 선포해 탄핵을 당하였다. 다행인 것은 내란 수괴 윤석열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사회 속에서 잠재해 왔으며 적폐청산할 대상인 ‘커다란 암덩어리’가 대부분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를 수술해서 과감하게 제거해야 하는데 누가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가 되느냐가 관건이다. 내란 동조자들도 암덩어리 조직세포에 둘러싸고 있는 암조직의 일부이기에 수술을 담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는 새로 들어서는 ‘신정부의 집행부’와 늘 ‘깨어 있는 시민’과 ‘촛불의 힘“이 아닐까?
요즘 교실에서 아이들이 제일 반기는 말은 “태블릿 꺼내세요”다. 문제를 풀거나, 자료를 조사할 때, 아니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할 때, 태블릿은 이제 교실의 일상 도구가 됐다. 아이들은 손쉽게 화면을 넘기고, 입력하고, 답을 제출한다. 마치 교과서보다 더 익숙한 도구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끔 묻게 된다. 지금 아이들이 집중하는 건 수업일까, 화면일까? 디지털 기기가 교육에 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원격수업이 일상화됐고, 이후 많은 학교에서 기기 활용 수업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학습 콘텐츠의 접근성은 높아졌고, 교사 입장에서도 각종 기기를 활용하며 자료 준비와 수업 운영이 훨씬 유연해졌다. 과거에 비해 수업의 형식은 풍부해졌고, 아이들의 반응도 다양해졌다. 문제는 디지털 기기가 집중을 돕기보다 방해할 때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태블릿을 켜는 순간, 교사는 하나의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20개 이상의 ‘작은 세상’을 감시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화면 같지만, 알고 보면 유튜브를 켜거나, 검색창을 띄워놓고 엉뚱한 걸 들여다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 태스킹’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집중이 분산된 상태일 뿐이다. 아이들은 눈앞의 활동에 몰입하기보다, 자극적인 정보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다. 특히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초등학생들에게는 이런 유혹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더 큰 문제는 기기 사용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낮아진다는 점이다. 수업 중 ‘다른 화면을 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지면서,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냥 보고 있었어요”, “잘못 눌렀어요” 같은 말이 습관처럼 나온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아이들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기기 안에서도 자유롭게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기기를 통한 수업은 ‘몰입’보다는 ‘소비’의 방식으로 흘러간다. 결국 수업 시간은 점점 산만해지고, 아이들의 사고 흐름은 끊어지기 일쑤다. 기기를 통한 학습이 늘어난 만큼, 손을 움직이고, 몸을 활용하고, 친구와 대화하는 활동은 줄어든다. 글씨를 쓰는 대신 터치하고, 친구에게 묻기보다 검색을 한다. 하지만 교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실수하고 질문하며 성장한다. 그 과정을 짧게 줄이는 대신, 손쉽게 ‘답’을 얻도록 만드는 게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 방향일까? 교사 입장에서 태블릿 수업은 매력적인 도구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수업의 주도권이 아이에게 있다 하더라도, 그 안의 흐름은 교사가 조율해야 한다. 단순히 기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는 수업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 기기를 닫고, 아이들끼리 이야기하게 하고, 직접 손을 움직이게 하는 수업이 집중을 되살리는 방법일 수 있다. 때로는 느리고 번거로운 방식이 더 깊은 배움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기기 활용의 ‘양’보다 ‘질’을 고민할 때다. 얼마나 자주 쓰는가보다, 언제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 아이들의 눈이 화면이 아닌 사람에게 향할 때, 그 수업은 진짜 살아난다.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기기 사용법이 아니라, 기기 너머에 있는 집중, 사고, 관계의 힘이다. 우리는 그 출발점을 다시 교실에서 만들어야 한다.
세계 각국이 국민을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시점에 한국의 학생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딴 세상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연구 결과 우리나라 중학생들은 학업성취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었다. 하지만 교우관계·자주성을 비롯한 협력성은 하위권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부만 잘하고 다른 것은 모두 부족한 사회열등생만을 양산하는 구시대적 교육은 하루빨리 혁신돼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데이터를 기반으로 OECD 37개국 15세 청소년의 인문교양 교육 수준을 분석한 ‘중등학교 인문교양 수준의 국제 비교 결과’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 결과 한국 학생은 학업성취도 영역에선 수학 2위, 과학 2위, 국어(읽기) 3위로 매우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인문교양 수준도 5위, 창의적 사고 9위, 사고표현은 11위로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관계 형성 영역에서 부모와의 관계는 12위로 떨어졌고, 교우와의 관계는 무려 36위로 거의 꼴찌였다. 다만 교사와의 관계는 1위를 기록하며 대비를 이뤘다. 협업 영역에서 신뢰는 2위, 공감 12위, 협력 26위로 세부 영역별 차이가 컸다. 감정조절 영역에서 감정표현은 12위, 회복탄력성은 19위로 다소 낮은 편이었다. 자아정체성 중 독립성은 2위였으나 주체성은 20위, 자주성은 33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삶의 향유 영역에서 일상생활은 27위, 여가생활은 36위, 진로 탐색은 29위로 대부분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책상에서 입시 공부를 하는 데 대부분이 시간을 쏟아붓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깊이 반영된 결과다.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치열한 성적 위주의 경쟁 구조에서 인성에 흠집을 내며 각박하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대변한다. 첨단기술 산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책상에 앉아 필수과목에 매달린 사람만을 인재로 여기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취업시장에서도 창의성과 협업 마인드가 신입사원을 뽑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구글 등 글로벌 테크기업들은 협업과 창의성을 핵심 인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제아무리 공부를 잘해봐야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내고 팀원으로서 협력 마인드를 발휘하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학부모들은 조기교육으로 학습 진도를 앞서나가면 성공한 사람이 될 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마다 학교와 학원명이 빽빽한 일정표를 소화하기 위해 동동거려야 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신경전이 말이 아니다. 당연히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온전할 리가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11월까지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을 찾은 18세 미만 환자가 27만 625명을 기록했다. 2020년(13만 3235명)과 비교했을 때 불과 4년 만에 2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아이들 불안증세의 원인에는 거세게 불고 있는 조기 학습 열풍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청소년기는 사회·정서·인지적 발달의 중요한 기반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자아정체성과 더불어 창의성과 인성 배양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는 때이기 때문에 어떤 교육환경 속에서 생활하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직 성적만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들이 나중에 어떤 인격체로 성장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시대에는 국내에서만 알아주는 ‘공부 잘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교육의 목표여서는 안 된다. 학업성취도에만 매몰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중학생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워낼 과감한 혁신방안이 절실하다. 지금처럼 아이들의 영혼이 망가지든 말든, 그들의 미래가 암울하든 말든 내버려 둬선 안 된다. 학생들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