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건대 잘 산다는 게 뭔가? 또 잘 먹고산다는 것은? 부모라는 생명의 뿌리를 잘 만나 부유한 집 후손으로 태어나 ‘일류’ 학교 진학하여 ㅇㅇ고시 합격할 때까지 응시해 그 인생 등급 부류 속에서 잘 나간다는 것일까. 또한 어느 단체나 국가의 수장이 되어 거드름 피우며 자기 생각만 앞세우고 사는 것인가. 아니면 권력 위에 경제적 전신(錢神)이 있다고 입에 담기 싫은 이야기지만 경제계의 지도자가 되어 여러 회사를 경영하면서 회사원의 인격적인 면을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세대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운동선수가 되어 금메달 목에 걸고 V자 손가락 펴며 국제공항을 넘나드는 경쟁의 달인인가. 그럼 잘 먹고산다는 것은? 들녘의 풀 뜯어먹고 사는 소나 음식물 잔반 먹고 살찐 돼지가 아니라, 좁은 공간에 갇혀 주는 사료 삼키며 스트레스..
고대 아테네의 현인들은 민주주의를 무지한 다수가 선택하는 나쁜 정치체제로 인식했다. 특히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로 규정해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는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정치체제로 보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현자를 못 알아보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잘못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택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도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독재국가들마저 모두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BC 5세기의 민주주의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가진 정치체제였다. 첫째, 법 앞의 평등 둘째, 국민의 정치참여 셋째, 공직자에 대한 통제가 그것이다. 2,500여 년 전의 이론임에도 오늘날까지 그 근본 원칙은 큰 변화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이 시민들의 정치참여이다. 아테네 시민들에 있어서 정치참여는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다. 오늘의 정치참여는 어떠한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직접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가 되었다. 국민의 뜻을 대신해 준다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되었지만, 주인은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결국 정치참여의 유일한 방법으로 남은 것이 바로 투표행위이다. 오직 투표만이 가장 확실하게 나의 의지를 표명하고 주권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치참여이다. 이번 주말부터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이미 마음속으로 지지할 후보를 선정했더라도 공약 등을 꼼꼼히 살피어 나와 우리 공동체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선정해 투표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혐오론과 정치 무시론이다.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며 그놈이 그놈이라 다 싫다는 주장처럼 허무한 말은 없다. 정치 불신은 모든 잘못은 오로지 정치의 탓이기에 그놈만 죽도록 두들겨 패서 결과적으로는 정치 무관심층을 양산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언론의 전략에 휘말린 탓이 크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면 결국 그 혐오의 대상이 되는 정치를 갖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생각하면 정치 불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대파 한 단 가격이 875원이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를 사서 먹어도, 의사들이 파업해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도 나의 삶과 무관하다면 여당에 투표하고, 반대로 이대로 가면 경제폭망, 민생파탄, 평화위기와 민주주의 파괴로 희망 없는 대한민국이 될 것을 우려한다면 야당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이다. 어떤 이슈가 중요한지는 국민 개개인의 판단 몫이지만 분명한 점은 나의 미래를 남의 선택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체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테네의 현인들도 상상치 못했던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민이 생겼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나의 손에 달려있음을 직시하고 정치참여의 현장으로 달려가자.
경기도가 여름철 호우에 대비해 도내 각 지역 하천변 진입차단시설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은 좋은 소식이다. 도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현장에서 필요한 사업들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행정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특히 지방하천에서 발생한 사고 피해 규모가 전국 최고인 경기도에서 선제적으로 집행되는 범람사고 예방 조치는 의미가 남다르다. 치명적인 피해 뒤에 뒤늦게 인재(人災)를 한탄하는 일이 사라지도록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는 15개 시·군 72개 하천변에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1천174개 진입차단시설을 설치할 계획을 밝혔다. 하천 범람을 포함한 위험 징후가 발생한 경우 수위계 등 각종 센서를 통해 도, 시·군 재난안전상황실이나 시설 담당자에게 위험 정보가 자동 통보된다. 그 이후 담당자가 재난 폐쇄회로(CC)TV..
지금 의사들의 파업 이슈가 뜨겁다. 의대증원을 하겠다는 정부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의사들이 사직서를 내고 현장을 떠나고, 현장에는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의사는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돌아와야 하는가. 사람들은 의사가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환자의 불편은 늘어나고 그만큼 의사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질타가 잇따른다.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의사가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선택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북쪽에도 의사들의 소심한 파업이 있었다. 의사도 생존해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데, 의료계는 비생산부문이라 식량공급에서 제외했다. 의사들이 서로 약속 하고 동시에 치료를 중단했다. 속히 식량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생존하기 어려운 시기였고, 위협..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공정이 논란되고 있다. 업무의 독립과 공정을 지향하는 방통위가 2008년 방송·통신의 융합 설치 등 법률(방통위법) 제정 이후 심각한 파행을 겪고 있다. 위원장의 교체 과정, 5인 위원 중 3인 위원의 추천·임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5인 합의체가 2인만으로 운영되는 비정상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국정운영과 정책의 다름 등이 권력 유지와 지속을 위한 방송의 ‘지배’, 공영방송의 ‘장악’이란 시비를 야기하고 있다. 1963년 제정된 방송법이 1980년 언론기본법으로 대체되면서 설치된 방송위원회는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추천 등 각 3인으로 구성됐다. 이후 방송법의 제정·폐지제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회 추천 비율의 3분의 2로 높임 등 구성 방법의 변경이 있었고, 2008년 방통위의 구성은 대통령 지명 위원장 및 위원 1인, 국회 추천 위원 3인(여당 1인, 야당 2인)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야당의 방송법(KBS)·방송문화진흥회법(MBC)·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 개정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으나 대통령의 재의요구에 부결됐다. 대통령은 추천 단체의 편향성 등을 재의 이유로 제시했다. 동 개정안은 국회에서 이전에 논의됐던 내용 등을 포함한 것으로 해당 방송사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를 방통위 추천이 아니라 국회와 방송미디어학회·시청자위원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피디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교육단체·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 EBS) 등 방송 전문 단체 등이 추천한 인사로 구성하도록 했다. 해당 방송사의 사장은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한 10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공론화로 추천한 후보자 3인을 이사회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 등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정부 기관의 독립·공정을 위한 전문 이해 관계인 등의 대표가 해당 기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은 상시적 합의제 행정기관과 한시적 특별 조사기구 등의 구성에 준용돼 왔다. 헌법기관의 선례로서 제2공화국 헌법 제78조는 법원의 독립·공정을 위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이를 선거” 등을 규정하고, 헌법 규정에 따라 1961년 제정된 '대법원장및대법관선거법'에 후보자 추천인단 구성 및 비율 등 추천 방식, 선거인단 선출·구성 및 선거 방식 등을 규정했다. 여·야가 바뀜에 따라 종전의 입장이 달라져 왔다. 기관 운영의 주도적 책임이 있는 상대적 다수의 선의와 '문제가 없다'라는 현행 제도 유지의 입장을 의심하게 된다. 4·10 선거에서 후보자와 정당은 언론의 자유 보장과 공영방송의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더 나은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선거권자에게 약속하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경기도가 진로진학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자기 주도 미래 설계를 지원하기 위해 추진하는 ‘고등학생 진로진학 길 찾기’ 사업은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지역의 고등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전문적인 도움을 주려는 이 사업은 건강한 묘목을 길러내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과 같은 귀하디귀한 시도다. 일과적으로 펼치는 단순 진로상담이 아니라, 커리큘럼 속 체계적인 ‘진로교육’에 대한 관심을 드높여가길 희망한다. 경기도는 올해 도비 3억 8000만 원, 시·군비 8억 9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신청학교 주관으로 컨설팅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진로, 입시 등 수요를 반영해 오는 12월까지 진로진학 컨설팅 사업을 진행한다. 상담교사가 방과 후 또는 휴일을 이용, 해당 학교로 방문해 1대1 맞춤 컨설팅과 다양한 진로진학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 3월 28일, 온라인 장터의 대파 한 단 가격은 1kg에 2320원. 동네 대형 슈퍼마켓은 한 단에 2980원이었다. 계산대 직원에게 물었다. “대파 한 단에 1000원짜리는 없나요?” 직원은 “저희는 세일해서 2980원인데, 그런 곳도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의 ‘875원 대파 값’ 발언이 일파만파인 가운데, 고단한 점원의 답변엔 시사(時事)에 대한 무관심이 듬뿍 묻어났다. 일부의 사회지도층이 민생과 괴리돼 있다면, 일부의 서민층도 정치 현장과는 격리돼 있다는 것. 유레카! 민생은 생각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했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개인의 삶이 영위되려면 제도와 정책이 국민의 형통을 위해 진보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년의 연장, 휴무제 확대 등이 빠른 시일 내에 검토돼야 한다. 또한 농민, 대중소기업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선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도록 정부의 보조금·지원금 지급 등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생 해결을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물가 관리는 국민 행복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 과제다. 필자는 작년 8월, “물가상승, 민생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간 집권여당과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과일과 야채 값 상승이 기상이변 때문이라는 행정부의 변명, 고리타분하다. 물론, 기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도 물가상승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어야 한다. 주된 원인은 지난해 공공요금의 과도한 줄인상 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기가 찬 것은 기획재정부의 ‘2023 회계연도 총세입·세출마감 결과’ 발표를 보면서다. 물가상승의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 정부가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 작년도엔 세수가 56조4000억 규모가 부족했다, 그런데 불용액이 12조9000억이란다. 지방교부세도 감액했다. 지방재정 악화에 더해져 지역 경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집권 2년이 다 된 윤석열 정부, 낙수효과도 없는 ‘대기업 법인세 인하’ 외엔 이렇다 할 경제정책 성과가 보이질 않는다. 정책은 보여주기 식이어선 안 된다. 더 낮은 자세로, 더 낮은 곳을 보듬어야 한다. 민생정책은 국민의 아픈 부분을 예방하고 낫게 해 줄 때 빛이 난다. 정치의 성공은 원만한 여야 관계에서 나온다. 정책이 법률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함성득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실패한 대통령들의 특징으로 “국정비전 결여, 타협능력 결여, 소통능력 결여, 인격 결여, 정치적 기술 미숙, 부정직성”(정부학연구, 2007)을 꼽았다. 한국의 상황. 윤 대통령은 “한 시간 회의하면 59분 동안 혼자 얘기 한다”는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 어떤 참모가 직언을 할 수 있겠는가.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된다”는 발언은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 논란과 맞닿아 있다. 난데없이 “윤 대통령 대파 값 875원 MBC보도…방심위에 민원…심의 가능성”(경향, 2024.3.27.자) 기사를 봤다. 겸손과 경청의 정치를 기피하면, 대파 한 단 논란은 국정실패 책임론으로 번질 것이다.
지난 3월 8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열린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2024에서 ‘특이점이 온다’(2005)의 저자인 세계적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수준의 지능에 도달할 것이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즈 행사에서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의 발언도 유사한 맥락이었다. AI업계의 큰 손들은 이제 5년내 인공일반지능(AGI) 시대의 출현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른바 ‘특이점 시대’의 도래이다. 지난해 주목받던 생성형 AI에 관한 관심이 올해는 콘텐츠형 AI로 옮겨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전에 AI가 세상에 미칠 파급력을 예측하고 대응플랜을 짰다면 오후에는 플랜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특이점을 상상키도 전에 AI업계는 우리 일상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채비를 마친 듯하다. 3월 22일, 영국 기술매체 ‘The Register’는 1983년 ‘기술적 특이점’을 대중화한 SF작가 버너 빈지의 사망소식을 발빠르게 보도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는 세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많은 이들이 AI 관련주의 등락에 촉각을 세울 무렵, ‘새 시대’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궁금해졌다. 북한의 ‘체제전환’기에 대한 숱한 선행 연구들이 무색하게 ‘기술전환’기를 먼저 맞이한 셈인데 그들에게 도래할 특이점 시대는 어떤 의미일까? AI기술은 북한주민 간의 틈을 벌려 개인화를 촉진시킬까? 혹은 정부의 대민 통제수단의 강화로 이어질까? 김정은 체제는 2013년 인공지능연구소의 설립 이후 과학기술을 통한 사회적 진보를 꾀하고 있다. 2020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북한 내 85개 정부기관이 AI개발에 관여하고 있으며, 이 중 37곳은 새로 설립된 대학이라 보고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AI기술이 탑재된 제품도 상용화되는 추세다. 마스크 효과 평가, 감염증상지표 우선순위 설정, 원자로 안전유지 및 모의전쟁연습 등 다방면의 연구와 개발이 진행 중이다. 특히, 장마당 거래의 필수품이면서 주민 감시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손전화기 ‘진달래 6~7’에는 지문, 음성, 얼굴 및 문자 인식기술이 탑재되었으며, 보안 감시 시스템과 지능형 IP카메라에도 AI기술이 적용된 바 있다. 최근 평양교원대학에는 AI로봇을 통한 교수법이 등장하였고, 모란봉구역의 의약품관리소 종합약국에도 AI로봇이 배치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와 군사분야에서의 활용도 눈에 띈다. 美 제임스마틴 비확산연구센터(CNS)는 2019년 이후 북한의 AI와 머신러닝 개발 노력을 디지털 경제 강화와 데이터 경쟁력 구축을 위한 전략적 투자 차원이라 분석한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사이버전과 무인기 활용 분야에서도 나날이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AI기술의 이중 사용적 특성 즉, 혁신과 효율성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악의적인 목적으로 활용될 때 중대한 보안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야기한 대면접촉의 어려움과 정보부족의 틈을 어느덧 AI기술이 비집고 들어왔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학술지를 AI기술로 분석해 키워드를 추출하거나 인공위성기술로 윗동네 경제형편을 유추하기도 한다. 곧 도래할 특이점 시대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한반도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기술의 발전이 일상생활에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군림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은 비단 북한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약 40년간 4700여 명의 소년들이 강제노역, 구타, 가혹행위 등 인권을 유린당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안산시 단원구 선감로 101-19 일원에 설치됐었던 소년 강제수용시설 선감학원 이야기이다. 기록과 증언록을 보면 이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들인가, 공무원들이 이런 가혹한 일을 저지는 게 맞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빠져나갈 길 없는 이곳에서 강제 노동과 폭력으로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 피해자는 “강제노동과 기합 받고 매 맞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배고픔과 인권유린을 견디지 못하고 헤엄쳐 탈출하던 아이들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다. 시신은 근처에 암매장 됐는데 매장도 선감학원 원생들에게 시키기도 했단다. 여기서 생명..
그는 독일에서 온 사람이었고, 우리는 분명 한국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어째서인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 환경으로 옮겨갔고, 이내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해, 정부가 내외국인의 출입국 생체정보 약 1억 7000만 건을 당사자 동의 없이 민간 기업에 제공했던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며 마무리되었다. 놀란 표정으로 관련 뉴스를 찾아보던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독일이었으면 내각이 모두 사퇴했을 거예요…” 우리는 늘상 선택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사안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질문도 드물다. 물 흐르듯, 어물쩍 결정되어버리는 사안이야말로 중요한 의제다. 내게는 왜 결정권이 없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지난 13일 통과된 EU 인공지능 법은 위험 정도에 따라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한 규제 정도를 달리한다. 교육 분야 인공지능 서비스는 고위험으로 분류된다.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된 인공지능 서비스는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정확도가 요구되며, 외부 감사를 위해 상세한 문서와 로그 기록 체계, 위험 최소화를 위한 안전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교육과 그 이해관계자를 대하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진다. 반면 한국 정부는 과감하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이하 AI 교과서)를 도입할 계획이다. 민간 기업이 AI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에 8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통합학습기록저장소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구축한다.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를 시작으로 전 과목으로 순차 확대한다. 학생들이 AI 교과서를 이용해 학습하는 과정, 교사의 지도 내용은 데이터로서 수집된다. 교육부는 AI 교과서 도입을 통해 학생에게는 맞춤형 학습 콘텐츠를, 교사에게는 데이터에 기반한 수업 설계를, 학부모에게는 자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AI 교과서 도입은 다만 시간문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동의하지 않지만, 역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유가 학생, 학부모, 교사가 AI 교과서의 쓸모와 준비 과정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UNESCO의 '인공지능과 교육-정책입안자를 위한 지침'은 교육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때 다음 질문들을 따져볼 것을 친절히 제안한다. ▲ 학습 데이터를 윤리적으로 수집 및 활용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 학교, 학생, 교사가 데이터 수집을 거부하거나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인공지능의 처리 결과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기업과 공공기관은 어떤 윤리적 의무를 지는가? ▲ 학생들의 일시적인 흥미, 감정과 학습 과정의 복잡성을 고려했을 때 인공지능은 어떠해야 하는가? 교육부가 학생, 학부모, 교사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만큼 역설적으로 AI 교과서는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참 묻기 좋은 타이밍이다.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