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가 40대의 취업 지원을 위한 ‘40대 직업캠프 취업과정’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시는 40대 직업캠프를 “N잡과 취‧창업을 고민하는 40대 서울시민을 위한 직업전환 유망분야 직업교육훈련을 지원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40대부터 시작되는 부양 부담과 조기 퇴직, 노후 준비 등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맞춤 정책 지원을 시작한다는 야심찬 설명도 덧붙였다. 일단 내용은 차지하더라도, 40대를 지원한다는 것 자체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솔직히 대한민국 40대는 어쩜 이리 운이 없나 싶을 정도로 정부의 혜택을 요리조리 빗겨간 비운의 세대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학창시절 급식이 없었다.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는 어머니들은 빠듯한 살림에 두 세명 자녀의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치열한 아침을 보내야 했다. 그들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첫 발을 내밀 때엔 우리나라에 IMF 사태라는 혹한기가 들이닥쳤다. 거의 매일 두 집 건너 한 집당 아버지들의 실업 소식이 들렸다. 실직한 아버지를 둔 자녀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국가장학금 제도라는 든든한 학비 지원 시스템이 있지만, 당시엔 그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이따금씩 두 명 이상의 대학생이 있는 집에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거나 두 명이 번갈아가며 휴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자금 대출이 있었지만 이자는 비쌌다. 지금은 1%대의 저금리이지만 당시는 대략 7%에 달했던 걸로 기억한다. 혹여 학자금 대출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에도 지장이 있었다. 그런 힘든 시절을 보내고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중심 세대가 된 40대는 지금도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고 있다. 퇴직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평생 직장은 사라졌다. 만 39세 이하까지는 ‘청년’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정부 지원이 있지만, 얄궂게도 40대에겐 그런 혜택이 없다. 따지고 보면 40대나 청년 세대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그 몇 년의 시간 차가 두 세대를 너무나 멀리 갈라놓았다. 40대들 사이에선 ‘세금은 제일 많이 내지만 지원은 전무한 불행한 세대’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동생들과의 차별도 서러운데, ‘중장년 지원’ 정책에서도 40대는 외면받고 있다. 요즘은 그나마 40대가 해당하는 정책들도 간혹 보이지만, 아직까지 중장년층 지원의 중심은 50대다. 동생에게도 형님에게도 모두 밀린 40대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디에 의지를 해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40대가 힘겹다는 사실은 최근 통계청의 한 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일자리 행정통계 임금근로자 부채 조사’ 결과, 2023년 말 기준 임금근로자의 평균 대출은 5150만원이었고, 연령별로는 40대의 대출이 779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청년층인 30대(6979만원), 장년층인 50대(5993만원) 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서울시의 정책은 40대의 설움을 알아봐준 것 같아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이 일을 계기로 정부가 40대의 어려움을 좀더 세심히 살피게 되길 바란다.
헌법재판소는 4월 4일(금) 윤석열 대통령 탄핵선고를 예고하였다. 지난 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 후 111일이 경과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63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91일이었던 데 비해 이례적으로 길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그 이전에 비해 더욱 심대하고 그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헌재의 시간은 사흘 후에 마무리하게 된다. 그 시간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될까? 기회인가 아니면 혼돈인가! 정치의 문제를 법에 호소하는 것은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치가 나라를 바르게(政者正也) 하지 아니하거나 절충과 타협을 이루어내지 못할 때 정치는 법에 의뢰하게 된다. 국가의 원수(헌법 제66조)로서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은 국가를 통치하는 책무가 부여된다. 대통령이 정치를 풀어내지 못하면 그는 무능한 대통령이다. 법치에 따르지 않고 자기 망상에 사로잡혀 권력을 행사하면 그는 포악한 대통령이 된다. 그러면 시민(국민)들이 일어나게 된다. 시민들이 잠잠하면 길가의 돌들이 일어나 소리 지르게 될 것이다(눅19:40). 그러므로 시민의 목소리는 하늘의 소리이다. 지금 광화문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천지를 가른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이듬해 9월에 설립된 헌법재판소는 일반 법원과 다른 기능을 갖는다. 법원에서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법률의 위헌 심판, 탄핵의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간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에 관한 판단(헌법 제111조)이다. 그러므로 헌재의 판단은 법원의 판단을 넘어선다. 법원의 판단은 법과 양심에 따르지만, 헌법재판소는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존립과 안전을 위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것이 헌재의 정치적 기능이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는 법적 기관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기관이다. 헌법재판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기여 해야 한다. 세간에서는 헌재의 선고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재판관 개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에 경도되어 ‘5:3의 늪’(deadlock)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헌재는 독립적인 지위와 설립의지를 배반하는 것이다. 헌재는 이러한 세간의 추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헌재의 사명에 복무하는 것이고 헌재를 영속적인 기관으로 만든다. 2017년 3월 10일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재판관 전원(8명)일치로 인용하면서 “헌법 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해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판시하여 사회의 안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헌재의 판단은 정치적인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 1987년 이후 우리사회는 여전히 분단 체제 아래에서 경제적 격차, 사회경제적 불균형과 불평등, 취약계층의 기본적 삶의 저하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고 국가를 개조하기 위하여 헌재의 심판은 획기적이어야 한다. 지금 탄핵의 관철과 저지를 위해 여-야 정당과 시민사회가 세워놓은 창과 방패를 보라! 이제 헌법재판소가 시중의 주장과 폭력을 잠재우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창조의 시간(kairos)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1일 헌법재판소가 드디어 4일 오전 11시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선고한다고 발표했다. 헌재는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가 4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3일 예상 밖의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23일 만이다. 그리고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이후 111일만이며, 헌재 변론이 종결된 지 38일만이다.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의결로 해제하는 과정에서 헌법과 계엄법 등을 위반했는지 판단한다. 헌재 재판관 8명 가운데 6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하면 윤 대통령은 즉시 파면된다. 반면 3명 이상이 기각이나 각하를 결정하면 곧바로 직무에 복귀한다. 변론이 종결된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판결이 길게 늘어진 이유에 대해 각종 설왕설래, 풍문이 떠돌았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변론 종결 후 각각 14일, 11일 만에 선고됐다. 이에 비하면 너무 오래 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약 3주 후 임기가 만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추측과, 남은 임기를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어이없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상일 정치 평론가는 1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너무 높게 올라간 ‘아스팔트(찬반 시위)’의 온도가 너무 높게 올라갔기 때문에 아스팔트의 온도를 낮출 필요도 있었다면서 “올라간 아스팔트의 온도에 맞는 완벽한 판결문을 신중하게 작성할 필요성도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정치적인 판단이나 정무적인 판단”일 수 있다면서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2심, 4월 2일 날 재보궐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고려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튼 이제 내일(4일)까지 오직 남은 것은 헌재의 결정이다. 헌재는 그동안 11차례 변론을 열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국무위원, 곽종근·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 등 군 지휘관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조지호 경찰청장 등 관여한 이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비상계엄은 ‘경고성’으로 정치인 체포'나 '의원 끌어내기' 등을 지시한 적 없다는 윤대통령 측의 입장에 대해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다. 4일 오전이면 “계엄 선포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위헌 행위”인지 “거대 야당의 폭주를 극복하려는 절박한 호소”였는지 판가름 난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이후 예상되는 폭력사태와 불상사다. 이미 극렬 지지자들의 ‘폭동’ ‘유혈사태’ 등 충동질이 시작됐다. 헌법 재판관들에 대한 테러 위협도 나왔다. 정계선 재판관의 자택 주소를 공개하고, 집으로 찾아가 정 재판관을 위협한 일도 있다. 이에 경찰은 탄핵심판 선고에 맞춰 헌법재판관 전원에 대한 전담신변 보호와 자택 안전관리 수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경찰은 선고 당일 전국에 ‘갑호비상’을 발령한다. 치안 사태가 악화하는 등 비상 상황 시 발령하는 경찰비상근무 태세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경찰력 100%를 동원한다. 특히 극렬 시위대의 표적이 될 수 있는 헌재 인근을 사전에 ‘진공상태화’시켜 일반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겠다고 발표했다. 경찰기동대는 방검복과 방검장갑 등을 착용하고, 캡사이신 분사기, 120㎝ 경찰 장봉 등을 지참해 과격 시위에 대비할 방침이다. 지난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때 극렬 지지자들이 경찰 버스를 탈취하고, 헌재 난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4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난동으로 인한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즉각 체포해 엄정한 법집행을 해야 한다. 아울러 폭력사태를 부추기는 일부 유튜버와 단체들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에 처하길 바란다.
최근 학교 현장의 논쟁 중 하나는 교실 내 CCTV 설치다. 일부 학부모 단체와 정치권은 교사의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학부모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일부 정치권도 이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사로서 나는 이런 변화가 과연 교육을 위한 방향인지, 여전히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교실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감정과 관계가 오가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교사를 포함한 매일 수십 명의 아이들이 실수하고 질문하며, 울고 웃는 곳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눈빛을 마주하며 수업의 흐름을 조율한다. 아이가 울먹일 때 조용히 옆에 앉아 어깨를 다독이기도 하고, 실수한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말없이 받아주는 순간도 있다. 교실에 카메라가 설치되는 순간, 교사는 더 이상 아이만 바라볼 수 없다. “지금 이 말투가 오해를 부르지는 않을까?”, “이 장면이 문제가 되진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수업은 점점 ‘기록을 위한 문제 없는 장면’으로 바뀌고,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 아닌 방어의 공간이 된다. 교사는 완벽하지 않다. 부모가 집에서 늘 최선일 수 없는 것처럼, 교사도 교실에서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는 반성의 기회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CCTV가 켜진 교실에서는 그 과정조차 ‘오해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미 아동학대 노이로제에 걸린 교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카메라까지 들어오면 교사는 더욱 방어적, 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도 CCTV 설치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학생들이 교실 내 CCTV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표정 하나, 말 한마디까지 기록된다고 생각하면 위축된다”는 응답도 있었다. 감시받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질문을 줄이고, 실수를 피하고, 감정을 숨기게 된다. 사고력과 표현력, 사회성이 자라야 할 교실이 오히려 침묵과 눈치가 자라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교육은 실수하고 표현하면서 자라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출발점에서부터 학생들을 위축시키는 공간이라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교육의 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악의적인 행동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녹화된 영상이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감시 없는 교실이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모든 교실에 감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몇몇 사건이 시스템을 흔들고, 그로 인해 교사와 학생 모두가 위축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미래의 교육으로 돌아오게 된다. 교실은 감시받는 곳이 아니라, 함께 실수하고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감시가 있는 교실은 교육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아이들이 질문하고, 교사가 응답하며,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교육이 일어난다. 교실에 카메라를 켜는 일이 정말 교육을 위한 결정인지, 아니면 교육을 멈추게 만드는 선택인지 그 답을 선뜻 말하기 어렵다.
200년 전 조선왕조 천주교 신유박해(1801년) 사건 때 정약용 선생은 일가족이 천주교에 연루되어 집안은 풍지박산이 되고, 정약용 선생은 전남 강진에 유배를 간다. 그 곳에서 선생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열정을 학문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지방 수령과 목민관이 지켜야 할 올바른 마음과 몸 가짐의 자세, 업무지침에 관련된 내용의 '목민심서'를 1818년에 지었다. 이 책에서는 12 편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필자는 목민관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규율인 ‘율기(律己)’에 관심이 있다. 먼저 바른 몸가짐(칙궁(飭躬), 청렴한 마음(淸心), 집안을 다스림(齊家), 청탁을 물리침(屛客),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절약한 자금으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樂施)으로의 내용이다. 또 '목민심서'의 서문에 보면 선생의 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위가 낮은 아랫 사람들은 여위고 병들어 줄지어 굶어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위 서문과 같이 당시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며 지배하려고 하였던 지방의 수령과 목민관은 백성들을 수탈하여 호화주택에서 살지만, 백성들은 굶주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선생은 1803년 가을에 강진에서 애절양(哀絶陽)의 한시(漢詩)를 짓고 나서 15년 만에 '목민심서'를 발간하였다. 이 시의 주인공인 농부는 죽은 부친과 아이를 낳은 지 사흘만에 이들이 군포에 배정되었고, 못바친 이들 군포(軍布) 때문에 키우던 소를 관리에게 강탈당하였다. 억울한 마음에 참상(慘狀)을 벌인 농부의 소식을 듣고 정약용 선생은 이 시를 지었다. 그 내용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한다. “부자집들 한 평생 내내 풍악을 울리고, 이네들 한톨 쌀 한치 베 내다 바치는 일이 없다. 다 같은 백성인데 왜 이다지 불공평하나?”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한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사회의 실정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인다. '목민심서'의 내용을 보면 많은 교훈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반헌법적 비상계엄과 그 불법 계엄을 조사 • 처리하는 사법기관의 재판과정과 국회 청문회에서 벌어지는 행정부 장·차관 들의 기회주의적 태도와 무책임, 사법기관 간부와 헌법재판관들의 파렴치한 행패를 보노라면 필자의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 인간의 본 마음을 알려면 평상시 보다는 긴박한 비상시국에서 그 사람의 마음 마음속을 잘 알 수 있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어했던 기대는 산산이 깨어졌다. 하늘이 부여하였던 인간 본래의 소박한 마음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커다란 실망과 충격이 이 사회 모두를 강타하였다. 그래서 정약용 선생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목민심서'를 구상했으리라. 오늘날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며 이 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들의 핵심이 바로 엘리트 공무원들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보다 발전된 민주복지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목민심서'를 읽고 예스런 고전의 향기에 듬뿍 취해 보면 어떨까.
경기도교육청이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춘 평가시스템 구축을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시범 운영 연구회’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서·논술형 평가는 공정성 논란과 함께 교사들의 과중한 업무부담 문제로 교육계의 골치 아픈 숙제로 여겨져 왔다. 아울러 시대에 맞는 교육 시스템 확보를 위해서 인공지능(AI) 기술의 접목은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우수한 AI 평가모델 구축으로 선진 첨단교육 시스템을 개척해내길 기대한다. 경기도교육청이 운영을 시작한 시범 운영 연구회는 인공지능 기반 서·논술형 평가를 주제로 학교 현장 적용을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정책실행연구회다. 학교급별 인공지능 서·논술형 평가시스템을 시범 적용하고 검증하며 개선점을 마련하고 교과별 서·논술형 평가도구(루브릭)를 개발해 학교 현장을 돕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진행한 연구회 공모에는 모두 29개 학교가 지원했으며 특히 고등학교는 7.5대 1의 경쟁률을 보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도교육청은 공정한 심사를 거쳐 학교 단위로 모두 7개(초 2, 중 3, 고 3) 연구회를 선정했다. 교육청은 이들 연구회의 연구 결과를 자료로 제작해 도내 모든 학교에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도교육청은 이와 관련, 지난달 23일 교원의 평가 역량 강화를 위한 ‘인공지능(AI) 활용 논술형 평가 현장 적용 방안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은 경기교육이 추진하는 인공지능 디지털 교육 정책의 현장 확산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디지털 기반 논술형 평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이뤄졌다. 포럼에는 교원, 교육 전문직원, 디지털 교육 관계자 등 230여 명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포럼은 ‘인공지능 활용 논술형 평가, 채점 가능한가’ 주제의 기조 발제로 시작됐다. 이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논술형 평가의 방향과 진단, 영어 논술형 수행평가 채점 및 환류(피드백) 사례, 논술형 평가 채점 프로그램 적용, ‘하이러닝’ 인공지능 논술 진단 도구 활용과 방향성, 논술형 평가 적용 방안에 관한 토론과 현장 제안으로 진행했다. 특히 이 포럼에서는 인공지능 플랫폼을 활용한 논술형 평가 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이에 따라 공정하고 효율적인 평가도구로서 인공지능이 갖춘 가능성에 인식의 폭을 넓혔다. 참석자들은 서·논술형 평가를 지원하는 인공지능 평가시스템은 교사의 채점 부담 경감과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아울러 교사와 인공지능이 협업해 학생 맞춤형 성장중심 평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논술형 평가의 목적과 방법이 인공지능 도구에 매몰되지 않도록 교사 평가 설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됐다. 이와 함께 ‘하이러닝’의 고도화와 생성형 인공지능의 향상된 기술력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점도 제안됐다. 경기도교육청의 인공지능 기반 서·논술형 평가가 객관성과 신뢰성, 공정성을 갖춘 시스템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일선 교사들의 폭넓은 관심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선진 과학기술들이 융·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시대에 교육계가 이를 선도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교육계는 첨단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재들을 배출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인공지능 활용 논술형 평가’ 시스템이 학생들의 학습역량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오리라는 사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인공지능(AI)의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아 학생들의 작문 능력부터 괄목할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서·논술 분야의 교육에 혁명적인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인공지능 기반 서·논술형 평가 도입이 교육혁신의 선두에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국내 체류 외국인 유학생이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어섰다. 2024년 4월 기준 대학의 학위과정이나 어학연수 과정에서 수학 중인 유학생은 20만8962명으로, 이는 국내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재학 중인 전체 학생 233만 명의 9%에 해당하는 규모다.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학생들이 전체 유학생의 90.8%를 차지하며, 그 뒤를 유럽(5.1%), 북미(25), 아프리카(1.4%), 남미(0.5%) 등이 잇고 있다. 국적 분포를 살펴보면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34.5%로 가장 많고, 베트남(26.8%), 몽골(5.9%), 우즈베키스탄(5.8%)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의 본격적인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정책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Study Korea Project)’가 처음 시행되었던 것은 2004년이다. 그보다 앞서 1967년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사업(GKS, Global Korea Scholarship)이 시작되었지만 당시 정책 기조는 지금과 많이 달랐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학생’이라 하면 해외로 나간 한국인 유학생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언어가 담아내는 의미와 내용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교육부는 2023년 8월 16일 제7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고 글로벌 교육 선도국가로 발전해 가기 위해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선언이다. 학령인구 및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지역 소멸, 대학 신입생 감소 등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대학 재정 확충, 뿌리산업 및 조선업 등 산업인력 확충, 첨단 과학기술 분야 우수인재 확보 등을 목적으로 실천 전략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학생 유치정책의 지속적 발전과 추진을 위해서는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양적 확대와 질적 관리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다. 유학생의 양적 확장을 위해 선택하기 쉬운 입학 조건 완화 정책은 유학생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자칫 학교 교육과정 운영상의 폐해와 교육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추진 과정과 결과에서 예상되는 지표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산업 및 중소기업 인력으로 흡수하여 유학생의 취업과 정주를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이를 도모하기 위한 세부 과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기관 간의 소통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대학-지자체 및 기업 간의 연계 정책과 시행 방안 수립 및 로드맵의 설계와 실천 과정에서 자칫 소통 부재로 인한 사각지대와 불합리한 손실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내국인 학생들과 외국인 유학생들의 협력적·발전적 공생 관계를 위해 필요한 정책적 지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정책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 공유 및 상호문화이해교육 등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정부 부처 간에는 물론이고 대학과 기관 내에서도, 정책 입안자와 시행 담당자 및 현장 교육자 등 구성원 간의 충분한 정보 공유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정책 이해에 기반한 리더의 비전과 섬세한 추진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특히 유학생 유치정책의 경우 한국어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전공자뿐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역량 제고에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탐색이 필요하다. 자본의 논리에 기반한 사회적·경제적 자원으로만 이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 선택에 대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고 구성원의 개별적 정체성과 개인서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학생 유치부터 학업-취업-정주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한 정책 설계와 추진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수시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학도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실력보다 커넥션이 중요한 사회의 공고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모대학의 모교수에게 강의를 주실 수 있는지 타진하는 손편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 답신이 와서 나는 그 교수를 만나러 학교 연구실로 찾아갔다. 모교수는 내가 전공한 여론과 여론조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면서 여러 질문을 하셨다.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론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그 개념에 입각해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한국이 여론조사로 공천을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여론조사를 공천에 사용한 민주당의 2002년 대선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도 설명 드렸다. 여론조사란 오차범위가 존재하고 그 오차범위 안에 있는 후보들은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인데 0.01%라도 앞선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룰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한국 사람들 너무 겁이 없다”라는 말까지 드렸다. 그러자 그 교수는 웃으면서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방법이 없어서라고?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 다기 보다 일을 쉽게 신속하게 처리하려다 보니 아무 방법이나 사용하는 것 아니던가? 난 요즘 AI 교과서 채택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도 너무 용감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이 급해 그토록 서두른단 말인가? 다른 나라들은 AI 교과서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며 여러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는 그런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용감하게 밀어붙이는 인상을 준다. 그 결과 세종시는 채택률이 9.5%, 대구시는 100%라는 보도가 전해진다. AI 교과서 채택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분명 새 기술은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킨다. 하지만 해결해야할 많은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AI를 훈련하고 가르치기 위한 초기 단계의 방법을 잘 모색해야 한다. 윤리적 원칙에 입각해 기술을 사용하고 모든 학습자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AI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성을 따져봐야 한다. 교육 지도자는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학생 성과를 분석하고 콘텐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AI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과 전통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하기 위해 사례 연구는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실제 부가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이러한 도구를 자신의 교육 방식에 잘 통합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혁신을 장려하고 교사들의 디지털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워크숍과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교육 변혁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필수이다.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교육적 접근 방식과 디지털 도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인식 캠페인을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교육 분야에서 AI를 사용하는 데 따른 윤리적 틀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안심할 필요가 있다. AI 교과서의 성공적인 전환을 보장하려면 이처럼 거쳐야 할 과정들이 많다. 분명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주는 이점이 많지만 폐단도 적지 않다. 양자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AI 교과서 채택을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경기도가 360° 언제나돌봄 정책의 일환인 ‘언제나 어린이집’을 1일부터 5개에서 11개로 확대 운영한다고 밝혔다. 맞벌이 부부에게 유사시 아이를 맡기고 일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절박한 민생이다. 육아에 얽매어 별도의 시간이 필요한 일체의 사회적 활동을 차단한 채 살아야 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언제나 어린이집’은 획기적인 새로운 개념의 보육 복지 사각지대 해소책이다. 망국적 저출산 풍조 해소책과도 직결된 이 정책은 대폭 확대 발전돼야 한다. 경기도가 도입 시행하고 있는 ‘언제나 어린이집’은 평일과 토·일·공휴일 및 주·야간(새벽) 등 연중(24시간) 운영하는 보육시설로, 일시적·긴급상황 발생 시 영유아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긴급돌봄시설이다. 도에 거주하는 영유아(6개월 이상 7세 이하 취학 전)를 둔 부모(보호자)라면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거나 어린이집·유치원을 다니거나 ‘언제나 어린이집’과 거주지역이 달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도는 지난해 6월 1일 부천시(아람 어린이집), 남양주시(시립힐즈파크 어린이집), 김포시(시립금빛하늘 어린이집), 하남시(시립행복모아 어린이집), 이천시(이천시 24시간 아이돌봄센터 ‘아이다봄’) 등 5개 시군 별로 1곳씩 ‘언제나 어린이집’ 운영을 시작했다. 올해는 고양시(고양시립장미 어린이집), 안산시(시립아기별 어린이집), 안양시(신촌 어린이집, 협심 어린이집), 의정부시(민락사랑 어린이집), 포천시(포천 어린이집) 등 6개를 추가해 총 10개 시군·11곳으로 확대 운영한다. 돌봄이 필요한 가정은 이용 당일 오후 3시 전까지 아동 언제나돌봄센터 또는 언제나 어린이집(11개소)으로 전화해 문의·신청하면 된다. 단 야간·새벽 보육은 이용 전일 오후 6시까지 사전 예약해 준비 시간을 배려해야 한다. 혜택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도민들로 한정하는 만큼 보호자(신청인)의 신분증, 영유아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 또는 가족관계증명서(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 시간당 3000원의 이용료가 부과된다. 경기도는 가장 많은 젊은이가 모여 살고 일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이 나라의 가장 크고 중요한 삶터다. 이 같은 환경은 경기도가 펼치는 정책이 유효하면 곧 중앙정부 정책으로서의 효용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육아에 손발이 묶여 모든 개별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이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한다. 핵가족 시대에 부모 형제나 친척들에게 의지할 방법도 점차 사라지는 상황이다. 꼭 필요할 때의 보육 애로만이라도 원만히 해결된다면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하다면 비용을 써서 해결하겠지만,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대다수 젊은 부부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중앙정부·지방정부 할 것 없이 정부의 으뜸 존재 이유는 국가의 영속성, 국민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제도와 정책을 완비하는 일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경기도가 추구하고 있는 저출산 정책을 비롯한 선도적인 복지 정책들은 대단히 유용하고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어린이집’은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마땅한 대책이 없는 육아 부부에게 천금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엄마 아빠들에게 이 같은 든든한 비상벨이 있다면, 그리고 그 안전성과 수준을 공공기관이 보장하는 시스템이라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장치다. 경기도의 ‘언제나 어린이집’ 정책은 확대돼야 한다. 전국 최대의 자치단체에서 총 10개 시군·11곳 정도라면 아직 시범적인 실시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밀한 성과분석과 보완책 마련을 통해 하루빨리 보편화해야 한다. 경기도가 성공하면 대한민국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사회가 책임지고 다 길러주고 가르쳐주는 나라로 가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웃고 있는 조카의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진을 보며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을 떠올렸다. 학교 건물 벽에는 반과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벽보가 붙어있었다. 우리는 반이 표시된 운동장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나란히 줄을 맞추느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몇 걸음씩 우르르 옮기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운동장에서, 코를 훌쩍이며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입학식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쓸 줄 아는 글자는 겨우 내 이름뿐이었다. 자음과 모음의 순서도 모르고 쓰는 글씨는, 그림에 가까운 상형문자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따라 읽고, 공책의 네모 칸을 한 글자씩 채우며,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받아쓰기경시대회’라는 것을 했고, 나는 백점을 맞았다. 선생님은 상 받을 몇 명의 아이를 호명하며 교탁 앞에 세웠다. 그리고 우리를 한 명씩 돌아가며 업어 주셨다. 이름밖에 쓰지 못했던 나를 보고는 더 기뻐하셨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는 매일, 등 뒤에서 외치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런 당부들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랐다. 선생님은 학교라는 공간을 포함하는 장소였고,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온전하고, 학교는 안전한 곳이었다. 스쿨 존을 지날 때면, 속도를 더 잘 지키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시속 30킬로의 느린 속도는, 아이를 눈에서 떼어놓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생명이 눈에 들어오는 속도니까.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몇 년 전 인상 깊게 봤던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빨간 정장을 차려입고, 주인공의 졸업식에 찾아간 삼신할미의 등장이었다. 삼신할미는 담임선생님에게 “아가, 더 좋은 선생일 수는 없었니?”라며, 주인공을 구박하던 선생님을 향해 부드러운 훈계를 했다. 우리 모두가 아이를 지켜보는 선생님이자 삼신할미였으면 좋겠다.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조카의 사진 속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우리는 아이의 웃음으로 웃을 수 있는 어른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지혜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뼈를, 단단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커지는 새 학기다. 오후가 되면 창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재잘재잘, 와글와글 아이가 자라는 소리가 회색의 아파트에 빛을 들인다. 이름 세 글자로 시작된 나의 여덟 살은, 선생님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쓰며 부화를 시작했다. 어린 제자를 위해 쭈그려 앉아 등을 내밀던 나의 선생님! 그분의 불편하고 아름다웠던 자세를 잊지 못한다. 선생님의 따스했던 넓은 등이, 내게는 커다란 상장이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좋아요’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받침이 틀려도 천천히 쓰고 지우며, 자기 세계를 눈부시게 확장해 나갈 것이다. 올해도 1학년 교실에는 ‘참! 잘했어요’가 푸른 별처럼 반짝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