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2월 27일 헌법절 53주년을 맞아 국기게양 및 선서의식을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했다고 보도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과 조선인민의 이익을 옹호하고 국가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인민의 복리와 국가의 장성발전을 도모함에 무한히 성실하며 공화국 헌법을 철저히 수호하고 법적 의무를 엄격히 이행”하겠다고 하였다. 남한에서 대통령이 국회에서 취임 선서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북한 헌법절은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여 국가 주석직을 신설하고 김일성이 주석에 올라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한 날이다. 그런데 1972년 12월 27일은 남한의 60대 이상에게도 낯설지 않은 날이다. 이날 남한에서는 유신헌법이 발효되었다. 남과 북이 하필이면 같은 날에 1인 독재체제 완성과 영구집권을 위한 헌법을 채택하고 발효했는지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어렵다. 당시 남북은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를 타고 1971년부터 시작된 남북적십자회담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1972년 7월 4일에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며 통일에 대한 기대가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러나 활발히 진행되던 남북회담은 1972년 12월 27일 북한에서는 사회주의헌법 채택으로 김일성 1인 독재체제가 완성되고, 남한에서도 유신체제가 성립되면서 시들어져 갔다. 박정희 정부와 김일성 정부는 이후 남북 대화에는 관심을 끊고 각자 1인자의 영구 독재를 위한 내부통제 강화에 매진한다. 한반도 분단 상황은 남북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희생양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남북의 통치자들에게도 권력강화를 위한 아주 유용한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하루 쉬는 공휴일 정도로 여겨졌던 헌법절 행사에 김정은이 직접 참석하며 헌법을 부각하고 있다. 김정은은 주체사상을 통해 통치하던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법과 제도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어 내고 국제사회 정상국가로 인정받으려 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교육·의료·주택 등 인민생활 향상과 지역균형발전 등에 관련된 법들을 정비하고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정상 국가의 기본적 기능들이다. 김정은이 인민의 지지와 국제사회 인정을 위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통치이념으로 하고 법제화를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최근 연구를 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 2024년 2월까지 12년간 481건의 법을 제·개정하였는데, 김일성 집권기 49건, 김정일 집권기 17년간 461건이 제·개정된 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물론 우리 기준에서 한참 미흡하지만, 김정은은 선대에서 강조한 주체사상이나 선군정치보다는 국가를 내세우며 법과 제도화를 통해 대내외에 정상국가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된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려 한다. 오늘날 북한은 과거에 우리가 생각했던 주체사상과 절대자의 자의적인 지시만으로 통치되는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섬나라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사회 진정한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북 교류협력과 한반도 평화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은 먼저 북한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이다.
2026년 CES 화두는 피지컬 AI시대이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IT기업들이 에이젠틱 AI 기술개발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면, 올해는 피지컬 AI가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 등에서 기업의 핵심역량이 될 것이다. 이번 CES 전시회에서 놀라운 점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회사들의 기술 진보이다. 중국기업들은 전기차·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후, 이제 미래산업의 꽃인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에 집중하고 있다. 에지봇, 유니트리 등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회사들은 기술혁신, 물량공세, 가성비뿐만 아니라 기업 숫자 면에서도 다른 나라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올해 인간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AI기술의 급속한 발전 때문이다. 지난해 메타, 애플, 오픈AI 등 세계 최고의 테크기업들이 AI인재 확보 전쟁을 벌였다. 이는 미래 사회가 AI 중심의 초지능 사회로 변화하기에 그 기술을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AI기술 혁신과 휴머노이드 로봇·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인간의 두뇌와 신체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와 하드웨어 회사 간 전략적 제휴는 필수적이다. 중국의 경우, 딥시크 등 AI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최우량 테크기업들이 있다. 향후, 피지컬 AI시대를 지배할 경쟁력은 AI기술과 휴머노이드 로봇·자율주행차 등 제조업을 효율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엔비디아는 컴퓨팅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면서 피지컬 AI시대를 주도하려 한다. 젠슨 황은 올해 자율주행 AI 플랫폼인 알파마요를 벤츠에 탑재할 것이며, 차세대 슈퍼칩 베라루빈도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칩부터 시스템, 인프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합하는 풀스택(Full Stack) 전략을 통해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신년도 비전으로 피지컬 AI를 제시하였으며, CES 전시회에서 젠슨 황과 회동하였다. 현대차는 올해 말 미국에서 모셔널의 레벨4 로보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할 것이며, 2028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조지아주 공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모빌리티 회사인 현대차가 피지컬 AI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선 AI 반도체·소프트웨어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야 한다. 엔비디아와 현대차 간 협력관계가 궁금해진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소프트웨어(FSD) 일시불 판매를 중단하고 월구독제로 전환한다. LG전자도 홈로봇 클로이드를 선보였다. 향후 피지컬 AI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AI기업, 반도체기업, 제조업체 간 치열한 경쟁과 협력관계가 전개될 것이다. 현재 이 전쟁에서 엔비디아가 시장 선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도전자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물론 정부도 피지컬 AI시대라는 미래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광경이 현실로 되는 세상이 눈앞에 있다. 기술력 개발은 물론 각종 정책적 보완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겠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5일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 일대를 대상으로 하는 ‘수원 국제회의복합지구 육성 진흥계획’을 승인했다. 이어 경기도가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수원 국제회의복합지구’ 지정 고시를 관보와 경기도 누리집를 통해 공개했다. 국제회의복합지구 지정은 경기도내에서 고양 킨텍스 일대에 이어 두 번째다. 수원 국제회의복합지구 면적은 약 210만㎡ 규모로써 수원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갤러리아백화점, 롯데아울렛, 아브뉴프랑, 수원광교박물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수원월드컵경기장 등이 포함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말처럼 “수원컨벤션센터와 광교 일대는 국제회의와 관광, 문화 인프라가 집적된 지역”이다. 이처럼 국제회의복합지구는 국제회의시설을 중심으로 숙박, 판매, 문화, 체육 등 국제회의 관련 직·간접 시설이 집적된 지역을 말한다. 국제회의복합지구는 국제회의 유치 경쟁력 강화와 마이스(MICE) 산업 연계 성장을 위한 것이다. 국제회의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도 있다. 국제회의 유치와 개최를 지원해 국제회의산업을 육성·진흥함으로써 관광산업 발전과 국민경제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제회의복합지구로 지정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개발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대체산림조성비, 농지보전부담금, 용적률 완화 등에 더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국제회의복합지구 활성화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국비도 확보할 수 있다. 이로써 수원컨벤션센터 일대는 경기도 마이스(MICE) 산업 남부권역의 핵심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경기도와 수원시는 국제회의 유치를 확대하고 관광·문화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마이스(MICE)는 기업회의(Meeting), 포상 여행(Incentive tour),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Exhibition)의 첫 글자를 딴 약어다. 마이스산업은 고부가가치 복합 서비스 산업이다. 일반 관광보다 참가자 1인당 소비가 높고, 숙박·교통·문화 등 연관 산업에 폭넓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미래형 전략산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각국에서 심혈을 기울인다. 마이스 산업의 발판이 되는 컨벤션센터에 일찍부터 큰 관심을 두고 추진했던 사람은 지금은 고인이 된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었다. 심 시장은 민선시장에 당선돼 취임한 1995년부터 수원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을 계획했다. 수원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다채로운 전시·국제회의, 이벤트 등 행사를 진행하면서 고부가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산업’이 컨벤션센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넘어야 될 산이 많았다. 컨벤션센터 건립 예정장소가 광교신도시 개발 부지에 포함되면서 국토해양부가 부지공급 승인을 거부했다. 경기도지사와의 갈등도 겪었다. 사업은 진척이 없었다. 결국 심재덕 전 시장은 사업의 진척을 보지 못한 채 2009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심 전시장 사후에도 수원시의 노력은 중단되지 않아 2014년 경기도·경기도시공사·수원시간 3자 협약에 이어 2016년 9월 27일 기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2019년 3월 구상부터 현실화까지 무려 25년 만에 수원컨벤션센터가 개관했다. 개관 후 심 전 시장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본격 운영된 2019년부터 정부와 공공기관, 학회, 기업 등의 행사가 줄줄이 열렸다. 심지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 속에서도 삼성전자의 주주총회, ‘K-Toilet Suwon 2021’, ‘2021 수원 세계유산도시포럼’, 제4차 아시아·태평양 환경장관포럼이 열렸다. 수원컨벤션센터가 국내외 행사를 잇달아 유치하며 주요 마이스 행사 개최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시점에서 수원컨벤션센터 일대가 ‘수원 국제회의복합지구’로 지정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비즈니스 행사부터 문화 전시까지, 이곳은 기업과 관광객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다양한 글로벌 행사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이때면 사람들은 새해에도 건강과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덕담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에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되어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 정신적 안정감, 가족들과의 사랑, 원만한 대인관계 등의 요소들이 만족할 만큼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정답은 없다. 만족의 크기는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에는 사회적 출세와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요한 행복의 요소로 간주하고 이를 야심 차게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행복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점차 생각이 변하면서 이보다도 더 중요한 행복의 요소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건강, 마음의 평정, 가족 및 친구들과의 적절한 교류 등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1986년에 펴낸 그의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용어를 처음 등장시켰다. 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이다. 그가 책에서 묘사한 일상 속의 아주 구체적이고 사소한 순간들이 주는 행복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막 구워낸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가지런히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과 그 깨끗한 면 냄새,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고양이의 온기를 느끼는 것, 운동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이 가져다주는 청량감,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것을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등이다. 참으로 소박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모두 특별히 큰돈을 들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이거나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행위들이다.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를 부러워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이 불행한 것은 부러움이나 욕심 때문이다. 상대방의 지위와 부, 권력을 부러워하면서 늘 자신을 자책하기에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부자는 권력을, 권력자는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화목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다고 하는 다이아몬드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상처투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진 게 많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때로는 더 채우지 못해 또 때로는 말 못할 사연으로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행복이란 스스로 처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것이다. 사실 행복의 요소들은 우리 생활 주변 지천에 널려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잘 인식하지를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 하나하나는 매우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의 욕심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은 행복 대신 커다란 행운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하면 찰나의 행운을 잡기 위해 수많은 행복을 짓밟게 된다. 풀밭이나 들판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지천에 널려있는 세잎 클로버는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지천에 널려있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가 수많은 세잎 클로버를 짓밟으면서 찾아 헤매는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운 하나를 찾겠다고 주변의 수많은 행복들을 마구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어느 노인이 90세가 되던 해 자신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느끼고 배운 45가지의 교훈을 글로 적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인생은 좋은 것이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모양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얼마 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 친구의 무례한 태도로 마음이 몹시 상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일을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참아 넘겼다. 다음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전화를 했지만 정작 전날 무례한 행동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없이 너스레만 떨었다. “미안해” 이 한마디는 그리도 끄집어내기 힘든 단어였을까? 사과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행위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주 지연되고 회피된다. 우리는 변명을 먼저 떠올리고, 상황을 설명하며, 때로는 상대의 오해라고 퉁 친다. 사과를 미루는 동안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간다. 그렇다면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성격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의 구조적 문제일까? 사과가 어려운 첫째 이유는 자아의 방어 때문일 것이다. 사과는 단순히 “잘못했다”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나는 틀릴 수 있는 존재다”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자아 이미지-성실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에 흠집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처럼, 인간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기보다 합리화와 부인을 먼저 선택한다. 둘째 이유는 사과를 패배로 여기는 문화일 것이다. 우리는 은근히 사과를 지는 것으로 배웠다. 먼저 사과하면 관계의 주도권을 잃고, 도덕적 약자가 되며, 더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헤겔의 ‘인정투쟁’ 개념을 빌리자면, 인간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인정받는 위치에 서고자 한다. 사과는 이 투쟁에서 한 발 밀려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 대신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너도 알잖아!” 같은 말을 선호한다. 이는 책임을 나누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과를 유보하는 우유부단하고 비겁한 행위다. 셋째 이유는 우리가 사과의 의미를 ‘잘못에 대한 심판’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의 본질은 과거 행위의 단죄라기보다 미래를 선택하는 긍정의 행위다. “당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만이 인간행위의 불가역성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사과는 바로 그 용서의 문을 여는 첫 단추다. 과거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더 크게 자책한다. 그 결과 사과 대신 침묵이나 거리 두기를 선택한다. 이는 무책임하다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도덕적 부담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은 책임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해석의 부담만 가중시킨다. 사과는 불완전한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존감은 사과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 사과는 자아의 붕괴가 아닌 자아의 확장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과를 너무 큰 일로 받아들여 왔는지도 모른다. 사과는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당신과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약속. 따라서 사과는 패배가 아니라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이다.
경기도 감사위원회가 도 산하 32개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만만치 않다. 공직의 청렴도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미래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다. 조금만 방심해도 무참히 무너지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더 많은 노력과 더 철저한 감시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깨끗한 공직사회만이 국가사회의 진정한 번영을 담보한다. 경기도 감사위원회가 도 산하 32개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8.94점(10점 만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8.59점보다 0.35점 소폭 상승한 수치다. 종합청렴도는 행정서비스를 경험한 도민이 평가하는 ‘외부체감도’, 기관 내부직원이 평가하는 ‘내부체감도’, 각 기관의 부패방지 노력을 평가하는 ‘청렴노력도’ 3가지 분야로 평가한 뒤 최고 1등급에서 최하 5등급까지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외부체감도와 내부체감도 평가 설문조사에는 도민 5027명, 기관 소속 직원 2312명이 참여했으며, 신뢰수준은 95%, 허용오차 ±1.31%p(외부), ±1.18%p(내부)다. 평가 결과, 외부체감도는 9.45점으로 전년 대비 0.17점 하락한 반면, 내부체감도는 7.87점으로 전년 대비 0.31점 상승했다. 청렴노력도는 9.18점으로 전년 대비 1.30점 하락했다. 기관별 결과를 살펴보면 1등급은 없고, 2등급은 경기교통공사,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경기도사회서비스원,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경기연구원, 경기테크노파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차지했다. 한편, 경기도장애인체육회, 경기아트센터는 5등급을 받았다. 공직유관단체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거나, 임원 선임에 관여하는 등 공공성이 있는 기관이나 단체로 공무원과 함께 공직자윤리법상에서 정한 규제를 받는다. 위원회는 2015년부터 기관별 청렴 수준을 진단하고 부패 취약 분야를 발굴·개선하기 위해 매년 종합청렴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23년 경기도 공직유관단체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종합청렴도 점수가 전년보다 0.22점 하락한 8.55점(10점 만점)을 기록해 충격을 던졌었다. 당시 평가 결과, 외부체감도는 8.97점으로 전년 대비 0.47점 하락한 반면, 내부체감도는 7.81점으로 전년 대비 0.31점 상승했다. 청렴노력도는 8.59점으로 전년 대비 0.59점 하락했다. 공직유관단체 내부직원들의 지속적인 반부패 노력으로 내부체감도는 상승한 데 반해 외부체감도와 청렴노력도는 하락한 수치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초 발표된 경기도 산하 31개 공직유관단체의 2024년도 종합청렴도 평가결과, 종합청렴도 점수가 2023년 8.57점보다 0.02점 상승한 8.59점(10점 만점)을 기록해 한시름 덜기는 했다. 평가 결과, 외부체감도는 9.62점으로 전년 대비 0.65점 상승한 반면, 내부체감도는 7.56점으로 전년 대비 0.25점 하락했고, 청렴노력도는 10.48점으로 전년 대비 1.85점 올라갔다. 2024년도 9.62점으로 전년 대비 0.65점 상승했던 외부체감도가 2025년도는 9.45점으로 전년 대비 0.17점 하락한 부분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내·외부를 불문하고 청렴도 체감도가 등락을 반복하는 현상을 굳이 해석하자면 크게 개선되지도 악화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 선진 민주국가들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국가 공무원은 물론 모든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자들의 청렴도 문제에 관한 신뢰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라는 이슈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공직의 청렴도야말로 그 나라와 지역사회의 번영된 선진 민주주의의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공직사회의 청렴도에 관한 한 경기도민들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경기도를 그린다.
새해가 되면 각종 미디어는 ‘올해 달라지는 정책들’에 주목한다. 2026년부터 새로 시행되거나 지원 대상과 액수가 확대되는 정책을 소개하는 홍보물과 언론 보도가 넘쳐난다. 나의 삶에 도움이 될 새로운 제도들을 꼼꼼히 살피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홍보물 뒤편에는 꼭 변했어야 함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정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 멈춰버린 정책들 때문에 삶의 변화와 회복을 꿈꾸기조차 어려워진 사람들이 있다. 새해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누군가 변하지 않은 정책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나”라는 질문만큼이나 “무엇이 아직 바뀌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더 무겁게 던져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제도이다. 2023년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도입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이 이뤄졌으나,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가혹하다. 2025년을 지나 2026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정작 피해자들이 절실하게 요구했던 변화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비한 제도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마모되고 있음에도, 정책은 여전히 작년에 멈춰 있다.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생계마저 뒤로한 채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을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특히 2025년 새 정부 출범 이후 제도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당사자들이 요구해 온 과제들은 더욱 절실하다. 실질적 회복을 위한 ‘최소보장 방안’ 도입부터 피해자 인정 요건의 현실화, 외국인을 포함한 지원 사각지대 해소, 피해주택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배드뱅크 도입, 지자체의 피해주택 관리 권한 확대 등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2026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특히 ‘최소보장 방안’은 피해자 간의 회복률 편차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보증금 회수 비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피해자에게 보증금의 최소 비율을 보전해 주도록 현금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가령 보증금이 1억 원인 피해자가 경매에서 4000만 원만 배당받았다면, 최소 보전 비율(예: 50%)과의 차액인 1000만 원을 추가 지원해 최소한의 주거 자금을 확보해 주는 식이다. 실질적인 피해자가 제도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피해자 인정’ 요건의 개선 또한 시급하다. 현행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요건 중, 임대인의 기망(사기 의도)을 입증해야 하는 조항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계약 당시 임대인에게 전세사기의 의도가 있었음을 임차인이 증명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명백한 피해 상황임에도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원 제도를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부당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026년의 변화된 정책들이 우리 사회에 기대와 활력을 주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신규 제도의 확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정체된 정책을 실효성 있게 개선하는 일이다. 새해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이 아직 그대로인가?”를 반복해서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6년에는 '새로움'에 가려진 ‘미결된 과제’들이 정책적 우선순위로 다뤄짐으로써, 누구의 삶도 고통에 멈춰 서지 않는 실질적인 정책적 진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이 도성을 나간 숭례문은 오랫동안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 1호였다. 여기서 1호가 국보의 관리 번호일 뿐임에도 가치가 제일 높다는 의미로 읽히면서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았다. 이에 시달리던 국가유산청은 국보에 붙인 번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국보다. 1394년 8월 24일 개성에서 서울로의 천도를 결정했고, 9월 1일에 새수도궁궐조성특별위원회(新都宮闕造成都監)를 설치했으며, 9월 9일에 정도전이 궁궐과 종묘를 포함하여 새수도의 도시계획도를 그려 바쳤다. 이때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도 정했을 것인데, 1396년 9월 24일에 여러 성문을 완성한 후 남쪽의 대문을 ‘숭례문’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남쪽의 기준은 정궁인 경복궁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남대문인 숭례문과 정궁인 경복궁을 잇는 직선의 대로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는 그렇게 그려져 있지 않았다. 성 밖에서 숭례문을 통과한 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길은 서울역-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광화문을 잇는 왕복 8차선의 세종대로다. 비록 직선은 아니지만 숭례문에서 경복궁의 광화문을 잇는 최단코스의 길이다. 그런데 세종대로 중 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 구간은 조선에서는 없었고,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새로 만든 길이다.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 그린 남북대로는 숭례문에서 활처럼 휘면서 종각까지 이어진 지금의 남대문로다. 숭례문과 광화문을 직선으로 이으면 거의 정북에 가까운데, 숭례문의 출입문 방향은 동북-서남이다. 왜 이런 방향을 취했을까? 정답은 이거다. ‘숭례문을 들어서도 경복궁을 쳐다보지 마라!’ 숭례문을 지나 활처럼 휘는 남대문로를 따라 종각까지 갔다가 서쪽으로 꺾어서 세종대로사거리에 이르러 북쪽을 바라봐야 임금이 사는 경복궁과 광화문을 처음으로 볼 수 있다. 전통시대 어느 수도에도 이런 간선도로망은 없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간선도로망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풍경에 있다. 조선 후기 가장 오랫동안 정궁의 역할을 했던 창덕궁의 진입로인 돈화문로에서 바라본 풍경은 하늘-보현봉-창덕궁(돈화문)의 거대하고 웅장한 3단계 풍경이다. 조선 전기 정궁의 역할을 했던 궁궐은 정도전이 풍수의 원리에 따라 명당의 위치를 잡아 1395년에 만든 경복궁이고, 그 뒤에는 풍수의 주산과 조산인 북악산(342m)과 보현봉(714m)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바라보면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광화문)의 3단계 풍경이 거대하고 웅장하다. 그런데 돈화문로에서 경험했듯이 광화문에서 멀어질수록 북악산·보현봉의 모습은 커지고 경복궁(광화문)은 작아지는데,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와서 보면 경복궁(광화문)의 크기가 너무 작다. 그래서 정도전은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광화문)의 3단계 풍경을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처음 볼 수 있도록 남북대로를 숭례문에서 종각 뱡향으로 활처럼 휘도록 계획했다. 숭례문의 방향도 문을 들어선 사람이 시선을 경복궁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동북-서남으로 정했다. ‘경복궁을 쳐다보지 마라’ 이것이 숭례문의 방향에 구현된 풍수도시 서울의 비밀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을 막아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 노동자의 산재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는 문제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고령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쩔 도리가 없는 추세다. 먹고살기 위해서 현장에 나서는 노년층의 산업안전을 위한 정밀한 대책들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살기 위해 산업전선에 나선 노년에게 일터가 위태로운 죽음길이 돼서는 안 된다. 25일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재작년 산재 사망자 10명 중 6명 이상이 55세 이상 근로자였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보상을 승인한 사망자는 총 2098명으로, 이 가운데 65.8%가 55세 이상 노동자였다. 사망자 중 업무상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827명, 업무상 질병 사망자는 1271명으로 집계됐다. 고령화 속 노동환경의 안전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모면하기 어려운 통계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산재 사망자는 18세 미만 0명, 18∼24세 16명, 25∼29세 32명, 30∼34세 39명, 35∼39세 69명, 40∼44세 153명, 45∼49세 160명, 50∼54세 248명, 55∼59세 274명, 60세 이상 1107명으로 집계됐다. 60세 이상에서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훌쩍 넘는 등 연령이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법적으로 고령 근로자를 5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산업재해 구조가 사실상 고령 근로자 중심의 위험 구조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재 전체를 봐도 고령 근로자의 비율은 절반이 넘었다. 2024년 산재는 14만2771건 발생했는데, 55세 이상 근로자의 산재가 7만4812건(52.4%)인 것으로 집계됐다. 산재 위험이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피해의 무게가 고령층으로 확실하게 쏠리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고령 노동자의 산재나 산재 사망률이 높은 원인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로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는 추세에 기인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령 근로자의 신체적 취약성이 원인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지원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고령 근로자의 업무 관련 치명적 부상의 특징’보고서 역시 ‘노동 인구의 고령화는 감각 기능, 균형 감각, 운동 능력의 저하로 인해 산재 발생률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령 근로자의 사망 재해는 건설업, 단순노무직, 일용직 등 고위험·불안정 고용 분야에 집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구조의 한계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현장에 고령 근로자들을 아예 투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니 불가피한 노릇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와 같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고령 친화적 작업환경 개선’과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선제적 관리 필요성’을 제안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고령자 취업자를 대상으로 정기 실태조사와 별도 재해 통계를 산출하고 고령 취업자의 노동능력 평가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같은 노령층이라도 신체적인 능력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본인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일해온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이 있어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능력 평가를 거쳐 안전성을 사전에 확인하도록 하는 게 맞다. 더욱이 산재 사고는 사고유발자 자신 한 사람만이 아닌 다수의 희생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을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 모든 안전사고는 방심이나 자만심에서 시작된다. 노동부는 올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확보, 이중 위험 경보기 설치 등 고령 근로자 친화적 작업환경 개선 비용을 지원하고, 고령 근로자 다수 고용 업종에 작업관리 가이드라인 등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고령 노동자에 대한 관리체계는 더욱더 정밀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현상이고, 산업 현장 노동자의 고령화는 필연적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나서는 고령 노동자들의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단순한 정치 거물의 퇴장을 넘어, 우리 정치사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지녔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언제나 화려한 수사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앞세운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는 때로 고독했고, 자주 오해받았다. 대중의 박수를 받는 쉬운 길보다 국가 운영의 복잡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의 갈등을 구호로 덮지 않았고, 결정하기 어려운 과제를 다음 세대나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단호함은 종종 불편함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국가의 골격을 이루는 제도와 실질적인 변화가 남았다. 정치는 말로 남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교육개혁의 기초를 닦고, 지방분권의 초석을 놓으며, 민주주의를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생애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타협하되 원칙을 팔지 않았고, 유연하되 가벼워지지 않았으며, 강단 있게 행동하되 선동에 기대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빈자리를 향해 질문해야 한다. 정치는 다시 책임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는가. 국가의 내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는 여전히 가능한가.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 정책이나 법안이 아니다. 정치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무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다. 그 기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 자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