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기획되고 추진되는 축제에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지역사회의 결속력과 유대감을 형성,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킨다.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생산·소득·부가가치 유발,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 그 가운데에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 있다. 2006년 첫 개최된 이래 올해 20회를 맞은 펜타포트는 K록의 상징이자 아시아 대표 록 페스티벌이 됐다. 그동안 전설적인 무대와 음악적 유산을 남겨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의 교과서’라는 이름도 얻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글로벌 축제 지원사업’ 및 ‘2024~2025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국제적 음악 축제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 8월 1일부터 3일까지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는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아티스트 60 팀 가량이 참여해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시작부터 ‘대박’의 조짐이 보였다. 주최 측이 11일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인터파크에서 블라인드 티켓을 판매했는데 순식간에 블라인드 티켓이 전석 매진됐다고 한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파이낸셜뉴스와 한국리서치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으로 올해 6~8월 전국 31개 여름축제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만족도 조사 ‘fn 대한민국 축제평가’ 결과,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당당히 종합평가 순위 1위에 올랐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축제 주제 및 내용 공감(1위), 축제 유익성(1위), 지속 개최 희망(1위), 타인추천 의향(1위), 재방문 의향(2위) 등 주요 조사 항목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전국 180개 축제 중 예산 3억 원 이상, 방문객 수 10만 명 이상인 축제를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평가에서 서울·경기권의 ‘한강 페스티벌’(73.5) 등 유명 축제는 물론, 강원권의 ‘강릉국가유산야행’(72.8점), 충청·전라권 ‘한산모시문화제’(72.8점), 경상권 ‘대구치맥페스티벌’(70.5점) 등 각 지역별 1위 축제보다 높은 총점 75.2점을 받았다. 이처럼 호평을 받은 것은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단순히 공연행사에서 벗어나 ‘펜타 슈퍼 루키’ 같은 신예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천은 ‘지속 가능한 음악 도시’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더위 등 안전의 철저한 대비와 휴게존 관리 등도 가산점을 받았다. 관람객도 2024년 보다 증가했다. 지난해엔 15만 명이었는데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16만 6000여 명이나 입장했다. 최근 인천관광공사에서 업계 전문가와 자문위원·시와 공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펜타포트 락페스티벌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주요 성과를 공유하고, 글로벌 행사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관련기사: 경기신문 3일자 인천판 1면, ‘축제로 도시가 살아났다…인천펜타포트, 경제효과 톡톡’) 이날 보고회에서는 KT통신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약 836억 원으로 추산된다는 내용도 발표됐다. 아울러 브리티시 팝의 전설 ‘펄프(Pulp)’의 첫 내한 공연, 공연장안전지원센터의 사전 안전컨설팅 실시, 초대형 텐트형 쿨존 확대 등 폭염 대응 혁신시스템 도입, 20주년 기념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높은 호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이 백승국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등 자문위원들의 평가였다. 이에 고무된 유정복 인천시장은 “앞으로 다양한 축제를 하나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엄브렐라형 축제’(우산처럼 하나의 도시 브랜드 아래 여러 개 축제를 함께 엮는 종합 축제)로 발전시켜 경제적·문화적 성과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지만 앞으로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처럼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선비였던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평생 권세에 굴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간절히 호소한 인물이었다. 그는 천왕봉(天王峯)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 덕산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임금에게 올린 여러 상소를 통해 부패한 조정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의 상소에는 시대를 넘어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울림을 주는 ‘경고(警告)’와 ‘충언(忠言)‘이 담겨 있다. 1555년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에서 남명은 “나라의 근본이 이미 무너지고, 하늘의 뜻과 민심이 떠났다”고 한탄했다. 이는 작년 12.3 불법 계엄을 마주했었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사회의 공정은 흔들리고 있다.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집값 앞에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지만, 상류층의 과소비는 더욱 노골적이고, 불법 부동산 투기와 특혜는 끊이질 않는다. 국민의 고통은 깊어가는데, 지도층은 여전히 말뿐인 개혁과 정쟁에 몰두하고 있었던 셈이다. 남명 선생이 지적했던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없는 정치”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명은 상소에서 “정치는 사람을 올바르게 쓰는 데 달려 있고, 몸을 닦는 것은 도(道)로써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공직 사회는 권력 유지를 위한 인사와 줄서기로 병들어 있다. 검찰과 법원은 스스로를 법 위의 존재로 여겨, 같은 죄에도 사람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 남명은 이미 16세기에 “하급 관리의 부패가 나라의 심장을 해친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권력형 비리와 사법권력의 기득권,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불공정한 법 집행이다 남명은 또 “군주의 덕성과 인격수양이 정치의 출발이며, 가장 큰 공부는 ‘경(敬)’이다”라고 했다. 경이란 스스로를 경계하며 올바름을 잃지 않는 태도다. 오늘날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경’이다. 외교에서는 권력자의 논리에 휘둘리고, 경제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신화에 매달려 서민경제의 디플레이션을 방치한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주거 문제로 절망하고, 노년층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이 와중에서 캄보디아 범죄 사기극이 극성을 떨었던 단초가 여기에 있다.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픈 사연들이 또 드러날까 두렵기만 하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국민의 삶은 갈수록 불안하다. 1567년 정묘년 선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남명은 “국가의 형세가 엎어질 듯 위태롭다”며 “나라를 살릴 길은 오직 ‘구급(救急)’ 두 글자뿐”이라고 절규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이 ‘구급’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구급이란 단순히 위기를 봉합하는 처방이 아니라, 근본을 바로잡는 개혁의 의지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사법이 공정의 마지막 보루로 서며, 경제가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는 “정치의 목적은 왕과 관료의 안위가 아니라 백성의 평안”이라고 했다. 오늘의 민주사회에서 이 말은 “정치는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뜻으로 다시 읽힌다. 500년 전 한 선비의 상소가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그가 염원한 ‘건전한 도덕의 정치’, ‘백성을 위한 정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남명 조식이 외친 “구급”의 경고를 되새길 때다.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정한 ‘경(敬)’의 마음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혼란한 시대를 바로잡고, 우리 사회를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디지털 전환은 노동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일은 더 이상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지 않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 유연성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불안정의 또 다른 형태였다. 배달 라이더, 크라우드 워커, 프리랜서, 스트리머 등은 고용되지 않았지만 매일 일한다. 이들에게는 계약서도, 명확한 휴식도, 안정적인 보호망도 없다. 그들은 분명히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취급된다. 책임은 지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플랫폼 노동은 기존의 임금노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업무는 작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알고리즘이 이를 자동으로 배분한다. 고객 평점, 응답 속도, 작업 완료율 같은 데이터가 일의 기회를 결정짓는다. 평점 하나로 생계가 흔들리기도 한다. 인간의 판단은 사라지고, 수치와 알고리즘이 노동의 질과 가치를 대신 평가한다. 노동자는 더 이상 상사나 동료와 함께 일하지 않는다. 오직 기계와 시장의 명령에 따라, 보이지 않는 코드 속에서 움직인다. 이 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자유롭고 자율적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감시되고 조정되는 시스템 안에 있다. 앱은 노동자의 위치, 행동, 응답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성과를 평가하고 작업을 통제한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관리되는 환경에서, 노동자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가시화할 수 없다. 투명해 보이는 시스템 속에서, 정작 인간은 더 깊은 불투명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감시’가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또한 사회적 보호의 그물망 밖에 놓여 있다. 실업급여, 산재보험, 연금 등 전통적 복지제도는 그들의 현실을 포착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공백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기존의 법과 제도는 더 이상 이 새로운 노동 형태를 규정하거나 보호할 수 없다. 그 결과, 플랫폼 노동은 법적 사각지대에서 성장하며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물론 모든 플랫폼 노동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적절한 규제와 공정한 협약이 마련된다면, 이는 자율성과 유연성을 갖춘 새로운 일자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자본이 일방적으로 시스템을 설계하고, 노동자는 그 안에서 데이터와 시간을 공급하는 수동적 존재로 머문다는 점이다. 기술이 인간을 위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의 설계와 윤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노동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한다. ‘노동자’라는 개념이 해체되고, 고용의 전통적 틀이 무너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고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를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유령처럼 투명해진 노동자를 실재하는 존재로 환대하는 것—그것이 디지털 시대 노동 정의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끌어 가느냐이다. 더 이상 ‘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방치할 수 없다. 진정한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삶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인간의 존엄은 노동 속에서 다시 써져야 한다. 플랫폼의 냉정한 논리 속에서도 우리는 따뜻한 사람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전환의 완성이며, 인간을 다시 중심에 세우는 윤리적 선언이다. 결국 미래의 노동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기여’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기술을 바탕으로 노동이 아닌 기여의 사회로 확장되는 길 위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디지털 시대가 향해야 할 방향이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이 폭증하면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핵심기술 유출은 피해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중대한 부작용을 불러온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급증을 막기 위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사법 체계의 허점을 바로잡고 핵심기술 퇴직자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등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기술자원을 다 잃고 나면 우리나라는 살아나갈 길이 영영 막히고 만다. 경찰청에 따르면 해외 기술 유출 사범 검거 건수는 2022년 12건에서 지난해 2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 1건에 불과했던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도 지난해 11건으로 폭증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표적이다. 최근 삼성 SDI 전기차 배터리 국가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시킨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방위사업 산업기술범죄수사부 조정호 부장검사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국가핵심기술 국외유출 등),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누설 등),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회사 실제 운영자와 삼성SDI 협력사 직원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이들과 공범 관계인 과장, 삼성SDI 출신인 대표이사 등 9명과 코스닥 상장사 회사법인 2곳 관계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2022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인 삼성SDI 및 협력사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 도면 등을 유출해 사용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과 중국의 이차전지 업체에도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을 누설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고인들이 근무 중 빼돌린 관련 기술자료는 삼성SDI가 10여 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각형 배터리 부품인 알루미늄 케이스 ‘캔’과 뚜껑에 해당하는 ‘캡어셈블리’ 관련 특수기술 자료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첩보를 통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휴대전화, 전자기기 및 디지털 증거를 확보했고 피고인들이 유출한 기술자료 파일, 대화 내역, 통화 녹음 파일 등을 신속히 분석, 조기에 범행을 밝혀냈다. 이들은 수사 중인 와중에도 유출한 기술을 사용해 중국 배터리 회사와 800억 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혐의자들을 신속하게 구속해 부품이 중국회사에 납품되는 것을 막았다.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도 지난달 16일 LG에너지솔루션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한 피의자 모 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피의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이차전지 파우치형 삼원계 배터리 기술을 인도 전기 이륜차 1위 업체 ‘올라(OLA Eletric)’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 중국 난징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2023년 11월 올라로 이직해 기술을 넘겼다. 피의자가 넘긴 기술은 차세대 고에너지밀도 이차전지 기술의 제조 공법, 원재료 비중, 제조공정 전반에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술은 정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로, 특별 보안 관리를 요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핵심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 직원들은 매일 기술 유출의 유혹과 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액 연봉으로 유혹해 경쟁업체로 이직을 꼬드기는 헤드헌터뿐만 아니다. 기업 내부 경쟁에서 밀려 ‘먹고 살기 위해’ 금단의 선택을 내리는 엔지니어들도 있다. 더욱이 범죄가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비밀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해 실형을 피해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2배 이상의 고액 연봉, 약한 처벌이 끊임없는 기술 유출의 주된 이유다. 수사 전문가와 보안업계는 특히 ‘내부 경쟁에서 밀린’ 직원들의 기술 유출 유혹 취약성을 지적한다. 피해기업의 보안 정책 강화와 교육만으로는 유출 시도를 막아내기 어렵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는 물론 기술자들이 딴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법은 멀고 유혹은 가깝다.
아직도 기후변화를 음모론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같은 자본가다. 반면에 우리 대중은 기후 변화를 피부로 절실히 느낀다. 4계절이 뚜렷하던 한국은 이제 여름과 겨울 두 철로만 나뉘는 나라가 되었다. 지구촌 여기저기는 잦은 가뭄, 홍수, 산불,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위협받고 있다. 카리브해 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달 말 이 섬에 시속 300km의 허리케인 멜리사가 몰아닥쳤다. 가장 높은 5등급의 이 허리케인은 자메이카를 휩쓸고 쿠바로 올라갔다. 이 열대성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로 황량하고 쓸쓸했다. 자메이카 지방정부 장관 데스몬드 맥켄지에 따르면, 멜리사가 지나간 후 53만 명이 넘는 자메이카 주민들이 전기 공급을 받지 못했다.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 15만 명의 세인트 엘리자베스 교구는 물에 잠겼다. 자메이카의 곡창고로 불리는 이곳은 피해 규모가 대단했고 한 병원은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중부 세인트 캐서린에서는 리우 코브레 강이 범람하여 강풍이 울타리와 지붕을 무너뜨렸다. 맥켄지 장관은 “멜리사의 피해는 상당하며, 자메이카 전체가 파괴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멜리사는 역대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 중 하나로, 기록이 시작된 이래 자메이카를 강타한 1988년 9월의 ‘길버트’보다 강력했다. 기상학자 케리 에마누엘(Kerry Emanuel)은 이러한 유형의 재난에서 “바람보다 물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지적하며 기후 변화의 영향을 일찍이 경고한 바 있다. 기후 변화는 해수 온도를 상승시켜 멜리사의 경우처럼 더 많은 폭풍의 급속한 강화로 이어진다. 앤드류 홀니스(Andrew Holness) 자메이카 총리는 홍수로 인해 악어가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주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홍수로 강, 계곡, 습지의 수위가 상승하자 자연 서식지에서 쫓겨난 악어는 건조한 땅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메이카 보건 당국은 악어 서식지 주변의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메이카의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 개체군 보호를 담당하는 자메이카 국가 환경 계획 기관(NEPA)에 따르면, 카리브해 섬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악어는 아메리카악어이다. 자메이카의 여러 자연 보호 구역과 사파리 공원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가 서식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 연소로 인한 기후 변화가 멜리사의 발생과 강도를 증폭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화석연료 연소로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폭풍은 미래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구는 산업화 이전 시대에 비해 섭씨 1.3도 상승했다고 한다. 이는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의 파괴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1.5도에 가까운 수치다. 이런 상황인데도 기후 변화를 음모론이라고 치부하고 팔 장 낀 채 불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강력한 대책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책은 땜빵 질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쇄신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사회의 소비 모델을 조금 고쳐 쓴다 한들 아무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구시대의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고 참신한 모델 개발에 힘써야 할 때다.
학교에서 축제를 이틀 동안 연다고 말하면 주변 반응이 비슷하다. 중, 고등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에서 축제 진행이 돼? 하루는 음식 부스와 각종 체험 존, 안 쓰는 물건이나 만든 물건을 파는 장터, 이튿날은 학생들의 공연과 초청 공연이 어우러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축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행사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피, 땀, 눈물이 말라붙는 시점 즈음에 멋들어진 결과물이 나온다. 작년까지는 학교에서 하루에 장터와 공연을 몰아서 진행했다. 올해는 욕심을 조금 더 냈다. 하루는 장터, 하루는 공연으로 나누어 이틀 동안 ‘백양놀장’을 열기로 한 것이다. ‘백양’이라는 학교 이름에 ‘놀이터의 장(場)’을 더해 만든 이름답게, 학교 전체가 들썩였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어우러진 진짜 축제의 장이었다. 이틀 동안 교육이 살아 숨 쉬는 배움의 시간이자, 학교라는 공동체가 서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첫째 날은 바자회였다. 체육관 필로티와 현관 앞이 순식간에 시장으로 변했다. 학부모 부스에서는 김치전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솜사탕 기계에서는 하얀 구름이 피어올랐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과 작품,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부스에 줄지어 놓였고, 가게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학생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책임감이 함께 묻어 있었다. 물건을 팔고, 거스름돈을 계산하며, 친구들과 역할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협력과 책임을 배웠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바자회 수익금의 기부처를 아이들이 직접 정했다는 점이었다. 축제 전에 전교생이 함께 토론하고 투표를 통해 유니세프와 그린피스를 최종 기부처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세계의 여러 문제를 조사하며 지구를 돕는 일, 사람을 돕는 일에 대해 고민했고, 280만 원 수익금 전액을 두 단체에 나누어 기부했다.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 속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한 배움이었다. 둘째 날은 공연의 날이었다. 무대는 완전히 아이들의 차지였다. 노래, 춤, 밴드, 태권도, 피아노 연주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가 이어졌고,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그 어떤 때보다 반짝였다. 누가 잘했느냐보다 누가 용기를 냈느냐가 중요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표현하는 법, 그리고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법을 배웠다. 이어진 2부 무대에서는 ‘아인스바움’ 장애·비장애인 합동 공연단이 찾아왔다. 관악기의 선율과 드럼의 리듬이 체육관을 울리자 아이들은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음악을 통해 다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포용과 존중의 의미를 배운 시간이었다. 이틀간의 백양놀장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장터에서는 협력과 경제를, 기부를 통해서는 나눔과 민주주의를, 공연에서는 자신감과 공감을 배웠다. 학부모는 든든한 파트너로 참여했고, 교사는 배움을 설계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학교 전체가 하나의 통합된 교육과정이 되었다.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고, 발로 뛰고, 마음으로 나눌 때 비로소 진짜 배움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함께하면 세상이 더 따뜻해진다는 믿음을 얻었고, 학교는 공동체의 힘을 다시금 확인했다. 초등학교에서 이틀 동안 축제를 열면 벌어지는 일. 아이들이 자라고, 어른들이 배우고, 학교는 행복해진다.
수원시가 시민들의 시정참여 플랫폼으로 운영하는 ‘새빛톡톡’의 성과가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민선 8기 이재준 수원시장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새빛톡톡’은 민·관 소통을 통한 협치와 적극행정의 선례로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민 누구나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참여행정의 성공사례가 돼가고 있는 이 정책의 활용 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여론이다.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수원시의 꿈을 성원해 마지않는다. ‘새빛톡톡’은 2023년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해 2년간 시민제안, 설문투표, 신청 접수 등 수원시 대표 시정참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새빛톡톡’은 지난 2023년 2월 모바일 시민참여 플랫폼 구축 용역으로 같은 해 6월 시범 운영을 거쳐 7월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출시 당시부터 ‘새빛톡톡’은 시민 누구나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치와 적극행정의 모범으로서 호평받고 있다. ‘새빛톡톡’은 지난 7월 기준 가입자 수가 13만 명을 돌파했고 시민 제안 접수는 3300건을 넘었다. 시민 제안 플랫폼에서 나아가 초등학교 및 대학 수업 도구로 활용되고 시정 주요 홍보 플랫폼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시정참여 플랫폼 ‘새빛톡톡’과 초등 공교육을 연계한 실습수업 ‘우리도 참여할래요’가 대표적이다. 아이들의 시각에서 지역사회를 바라보고 솔직한 의견과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학급별로 제안 글에 대해 2주간 토론하며 ‘새빛톡톡’에 제안한 글의 공감 수와 댓글 수를 합산해 우수 학급을 선발한다. 아주대학교의 경우 시와 아주대가 청년주도 정책개발을 위해 개설한 관·학 협력 과목 ‘정책사례연구(캡스톤디자인)’ 수업을 개설했다. ‘새빛톡톡’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이 수업에서 수강생들은 ‘수원시 정책 청년참여단’으로서 자유롭게 정책을 발굴하고 제안하며 공론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캡스톤디자인 수업에서 ‘새빛톡톡’의 역할은 시민 의견수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새빛톡톡’을 활용해 과제를 제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즉 ‘새빛톡톡’이 수업 평가도구로 활용되고, 이를 주관하는 수원시의 의견도 중요하게 반영된다는 의미다. 13만 명의 시민이 활용하는 만큼 ‘새빛톡톡’은 시정 주요 홍보 창구로서 역할도 수행한다. 최근 확대 운영을 시작한 ‘수원새빛돌봄 초등 저학년 등하교 동행돌봄 서비스’부터 수원시의 11월 주요 행사 홍보까지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아울러 시정의 수준 향상을 위한 의견수렴 및 설문조사가 이뤄져 시민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모든 동(44개)을 방문해 시민들을 만나 시정 계획을 설명하고,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답 형식의 ‘2025 새빛만남-수원, 마음을 듣다’도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8일 매교동에서 시작한 2025 새빛만남은 확 달라진 방식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권역별로 3~6개 동을 묶어 진행하던 행사를 올해는 44개 동을 모두 찾아가 동별로 주민들을 폭넓게 만나는 형식으로 개선했다. 민주주의가 도래하고 대의민주주의가 진화했으나,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정치·행정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 직접민주주의 욕구가 아무리 커도 이를 소화하는 일은 난제다. 매듭을 풀 수 있는 수단은 소통을 통한 협치, 참여 정치의 확대뿐이다. 정보와 속도를 공유할 수 있는 폭이 무한 넓어진 환경변화가 그 가능성을 담보한다. 이 시대에 수원시의 ‘새빛톡톡’은 대단히 의미 있는 정책 진화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결과들이 쏟아지는 만큼 적용 폭을 대폭 넓히고, 허점을 보완해가면서 진화시킬 가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수원시의 선진민주주의, 선진행정을 성원한다.
매년 12월 31일 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곳은 종로1가사거리의 보신각 앞이다. 자정이 되어 서울시장과 그해의 주요 인물이 함께 보신각종을 ‘둥~~’하고 울리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환호성이 방송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온 국민에게 전하는 기쁨의 아름다운 종소리로 33번을 타종한다. 그런데 타임머신을 타고 정조가 능행하던 1795년으로 돌아가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보신각종은 밤 10시경에 28번, 새벽 4시경에 33번 쳤는데, 각각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라고 했다. 인정의 종소리는 ‘이제부터는 성문을 닫으니 들어오려 하는 자가 있으면 큰 벌을 내리겠노라! 도성 안에서도 돌아다니는 자가 있으면 똑같은 벌로 다스리겠다!’ 이런 의미다. 1980년대 초까지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실시된 야간통행금지와 같다. 무서운 소리다. 파루의 종소리는 ‘이제부터 성문을 여니 도성 안팎을 돌아다녀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야간통행금지를 전제로 한 허락이 아름답게 들리긴 어렵다. 그러면 보신각종은 왜 거기에 만든 것일까? 당연하다 여기며 질문을 던지는 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수도의 밤을 통제하는 중요한 기능의 건축물을 아무 곳에나 만들 리 없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수도 북경에서는 궁궐 자금성의 뒤쪽인 북쪽에 종을 치고 북을 두드려 시간을 알리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설치했다. 시장 입구다. 도시 사람들의 삶에 시장은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지만 하층민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니 궁궐의 앞쪽이 아닌 뒤쪽에 배치했다. 그리고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통제가 어려운 공간이니 그 입구에 종루와 고루를 설치했다. 풍수의 원리로 만든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궁궐인 경복궁의 뒤쪽은 지기(地氣)가 주산 북악산에서 경복궁까지 흘러 연결된다고 인식한 신성한 공간이다. 그러니 그곳에 하층민이 드나드는 시장을 만들 수는 없고, 대신 궁궐의 앞쪽이 아니면서 남북대로와 동서대로가 교차하여 사람들이 드나들기 좋은 종로에 시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밤의 시간을 통제하는 누각을 만들고 종을 단 것이다. 조선의 수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 중의 하나다. 그런데 보신각의 종을 아무 때나 치면 통제의 권위를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종을 칠 수 있도록 정교한 시간 측정 방법을 개발했고, 낮에는 태양의 그림자 방향을 통해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면 만족했다. 그런데 정확한 시간을 아는 것이 진짜 필요한 시기는 밝은 낮이 아니라 어두워 통제가 어려운 밤이다. 이를 위해 개발한 시계 중의 하나가 별시계인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쓸모가 없다. 보신각의 종소리는 그런 날에도 여지없이 똑같은 시간에 울려야 했고, 그래서 개발한 것이 날씨에 상관없이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다. 도시 중 가장 강력한 시간 통제를 해야 하는 곳은 임금이 사는 수도이고, 그중에서도 궁궐이다. 물시계는 문명과 국가가 있는 곳이라면 수도와 궁궐, 궁극적으로는 임금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했고, 그래서 더 정확하고 멋진 물시계의 개발을 위한 노력이 지속됐다. 세종 때 장영실이 개발한 옥루(屋漏)란 기막힌 물시계는 그런 결과물의 최고봉 중 하나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타계한 지 꼭 7년이 되었다. 필자가 선생을 곁에서 직접적으로 모시게 된 것은 2007년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가 발족하면서부터였다. 이 사업회의 출발을 위한 발기인대회에서 선생과 함께, 이병주 작가의 고향인 경남 하동 출신의 전 검찰총장 정구영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이어령 선생이 고문, 임헌영·전상국·김춘미·여상규 등의 인사가 부대표, 이문열·김인환·안경환·김언호 등의 인사가 운영위원, 그리고 필자가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그로부터 김윤식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2018년까지, 필자는 선생과 지근거리에 있었고 늘 아버지를 대하는 심정으로 모시려고 애썼다. 선생이 문학 단체의 수장을 맡은 것은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유일했다. 함께 이 조직을 구성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했지만, 이병주라는 작가가 선생과 유다른 관계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예화를 들면, 이는 선생 자신이 직접 토로한 대목이다. 이병주, 김윤식 두 분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여 이병주 장편소설 '비창'에 대해 토론하는데, 김 선생이 그 소설 속 주인공인 술집 마담의 행적에 당위성이 없다고 신랄히 비판하자, 그에 대한 이 작가의 응수였다. “김 선생, 나는 나이 육십이 넘었어도 아직 말과 행동이 오락가락하는데, 30대 술집 주인이 안 그러고 어떻겠소?” 김 선생 자신은 아무 말도 더 못했다고 했다. 선생은 필자가 10년간 회장을 맡았던 한국문학평론가협회의 세 분 고문 중 한 분이었다. 이어령·유종호 선생과 함께 고문으로 모셨는데, 그냥 이름만 걸어놓고 있지 않았다. ‘평협’에서 선생을 모시고 한 차례 중국과 바이칼 학술여행을, 그리고 ‘이병주’에서 또 선생을 모시고 한 차례 이병주 작가가 학병으로 머물렀던 중국 소주(蘇州) 지역의 답사 여행을 다녀온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귀국 편 상해 공항에서, 선생과 홍기삼 평론가 등이 대합실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발을 뻗고 있던 장면이 눈앞에 떠오른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선생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분으로 홍기삼 선생이 유일하다. 함께 노래방을 가자고 권유한 이도 그분이 유일하다. 당연히 선생은 노래방을 가지 않았다. 어느 해 여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미주한국문인협회 강연 차 출국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조교 편에 편지 하나를 보내왔다. 봉함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중국 당대(唐代) 불후의 시인 왕유의 이별 시 한 편이 얇은 편지지에 자필로 적혀 있고, 말미에 “가다가 주막을 만나거든 목이나 축이고 가소”란 전언이 잇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노잣돈’ 100달러 지폐가 들어 있었다. 선생이 어디 이런 데 세세히 신경을 쓰는 분이던가. 필자는 감격으로 목이 메었고, 돌아오는 길에 선생이 드시지도 않는 양주 한 병을 사 들고 왔다. 참 모자라고 바보 같은 응대가 아닐 수 없었다. 선생은 서신에 “가족 있는 그 양간도(洋間島)가 그대에겐 바로 남산이 아니겠소”라고 적었다. 선생의 소중한 추억이 결부되어 있는, 내게는 실로 명편의 시다. 下馬飮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陲 但去莫復問 白雲無盡時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어디로 가려는가 그대에게 묻자/ 세상 일 모두 뜻 같지 않아/ 남산에 돌아가 누우려 한다 하네/ 그렇다면 여러 말 말고 그저 떠나게나/ 거기는 언제나 흰 구름 입으려니 선생은 오전에는 서재에서 글을 쓰고, 오후에는 학교에 나와 강의하고, 저녁에는 동서고금을 왕래하며 책을 읽는 시간의 황금분할을 지켰다. 이는 마치 한 수도자가 도의 궁극을 찾기 위하여 열의를 다해 수도하는 자세와도 같았다. 그래서 미망인 가 여사는 선생의 영결식에서 윤시내의 노래 〈열애〉를 함께 듣자고 했던 것이다. 미망인의 말에 의하면 선생의 타계(他界) 후 한참 동안 서재의 책상에는 갓 도착한 신간 문예지와 원고지와 펜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이는 그야말로 선생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는 말이다. 선생이 떠난 빈자리를 온전히 메울 문필은 백년래(百年來)에 목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세출의 문학 위인, 김윤식 선생을 이 땅에서 면대할 수가 없으니 긴 탄식으로 이 글을 마감할 뿐이다.
해외에서 한국 식품(K-푸드)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금할 수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K-푸드 수출액은 84억 8100만 달러(약 12조 1575억 원)에 달했다. 이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77억 8700만 달러였으니 무려 9%가량 증가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0월 29일자 4면, 전 세계에 위상 떨친 ‘K-푸드’ 저력… 수출액 ‘역대 최대’ 경신)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2년 연속 100억 달러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품목은 라면 등 가공식품이 가장 많았다. K-푸드 전체 수출액의 60%가 넘었다. 가공식품은 6.7% 늘어났다. 특히 라면은 11억3000만 달러를 수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5% 증가했다. 아이스크림(24.2%)과 믹스커피를 비롯한 커피조제품(15.8%)도 눈에 띄게 늘었다. 수산물 중에서는 ‘검은 반도체’라고 불리는 김이 14.0%나 증가했다. 이처럼 K-푸드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K-콘텐츠 흥행과 연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도 지난 2020년 한식진흥법을 제정하는 등 한식 세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 기업들 역시 현지화 전략을 펼치며 세계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K-팝, K-드라마였다. 제72회 칸 영화제(2019)에서 황금종려상(봉준호)을 받은 데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2020)에서 작품상(곽신애·봉준호), 감독상(봉준호), 각본상(봉준호·한진원), 국제장편영화상(봉준호)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가 인기를 끌며 라면 수출을 견인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021년)에서는 달고나가 또 하나의 한류가 됐다. 로제의 K-팝 ‘아파트’(2024년)와 올해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크게 흥행하면서 K-푸드가 또 다시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라면과 김의 경우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 속 K팝 그룹 헌트릭스의 멤버 루미, 미라, 조이가 컵라면과 김밥을 먹는 장면이 관심을 끌면서 K-푸드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팬이 있는 이 작품 속 인물을 따라 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헌트릭스가 컵라면을 한입에 먹는 장면도 있는데 이를 따라 하는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될 정도다. 이에 뉴욕타임스(NYT)는 ‘컵라면 화상’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는 한 어린이 병원 측의 성명서를 보도하기도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듯이 정부도 이 좋은 기회를 K-푸드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고자 적극 노력하고 있다. 올해 20년 만에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K-푸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CJ제일제당, 농심, 교촌F&B 등 29개 기관·기업을 K-푸드 공식 협찬사로 지정했다. APEC에서 K-푸드를 적극 홍보한 이유는 상위 10개 수출국 가운데 9개국(미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대만·필리핀·러시아·홍콩)이 APEC 회원국이기 때문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20개 APEC 회원국(우리나라는 제외)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전체의 81.5%나 된다고 부연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해 경주빵을 먹으면서 안동 사과와 제주 귤, 김밥, 약과 등의 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 음식도 많이 드시고 한국 문화도 많이 체험하며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4년 한식을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모범식으로 선정한 바 있다. 김치는 2006년 미국 전문잡지 ‘Health’가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꼽았다.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한식 세계화도 눈앞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K-푸드만 알려졌을 뿐이다. 지난 2009년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지금까지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음에도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류가 급부상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할 때다. 체계적인 법과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