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민주당 이종걸(안양 만안) 의원이 귀농인 지원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이 법안이 ‘귀농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 사업을 실시해 귀농을 촉진하고 귀농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과 농어업 및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무너져 가는 농촌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도시민 실업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노후에 전원생활을 꿈꾸는 세대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귀농인 지원법안이 발의된 것을 환영한다. 이 법안은 농림수산식품부장관과 시·도 지사가 5년마다 귀농인 지원종합계획과 지원계획을 을 수립·시행토록 했으며 귀농인지원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아울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인을 위해 일자리 및 창업, 판로 및 유통, 주택구입, 농지·어장매입 등을 위한 지원을 하고 전문적인 농어업기술과 경영능력을 갖춘 귀농인을 우수귀농인으로 선정해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면 귀농인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귀농인의 안정적인 농어촌 정착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전국 귀농 가구, 귀촌자 수는 4천67가구 9천13
이름 앞에 ‘최초’라는 낱말이 많이 붙는 이름 석자도 흔치 않은 일이다. 수원이 낳은 여류화가 정월 나혜석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초 여류 서양화가다. 최초의 전업작가로 물적 토대를 구축한 선구자였다. 최초의 여성유화가요 판화작가다. 유화 개인전을 최초로 열었다. 근래에는 최초의 여성소설가로도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4월28일은 그의 탄생115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를 기리기 위한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가 그가 태어난 행궁동에서 펼쳐지고 있다. 나혜석거리도 조성돼 해마다 나혜석거리 축제도 열리고 있다. 전국 여성을 대상으로 나혜석미술대전도 열린다. 올해로 열다섯 번째다. 작품공모가 진행 중이다. 매회 좋은 작품이 대거 출품되고 있다. 그가 다녔던 매향중학교는 1회 졸업생인 나혜석의 화가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화성그리기 대회’를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하고 있다. 나혜석 바로알기 심포지엄도 열리는 등 나혜석 예술세계와 삶을 조명하기에 저마다 바쁘다. 이처럼 나혜석이란 이름이 차지하는 역사적 비중은 화려하고도 무겁다. 그런데 정작 나혜석이 남긴 그림작품 하나도 없는 수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원미술협회가 ‘박수근 나혜석을 만나다’ 라는 주제로
봄 꽃이 한창이다. 살랑 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미용실로 향했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한 모녀가 들어선다. 내 옆에 앉은 그들은 오순도순 정담을 주고 받더니만 나중엔 무슨 일인지 딸에게 부탁을 한다. 네가 원하는 예쁜 옷을 두 벌이나 사줬으니 제발 방 좀 깨끗이 치우고 살라고…. 사정을 하는 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집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일이다. 친정엄마 생신이 3월이어서 대구에 다녀왔다. 며칠 간 집을 비워야 했기에 걱정이 돼 딸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보일러는 밤에만 켜고 아침에는 꼭 끌 것, 현관문은 잘 잠그고 일찍 귀가할 것 등…. 말은 친정엄마 생신 차려 드린다고 내려갔지만 생신상은 음식점에 예약했고 생일케이크는 제과점에서 사 들고 와 촛불 꽂고 축하노래를 불렀다. 이런 딸에게 친정엄마는 그저 내려와 준 것이 고마워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지시고 손수 지으신 따뜻한 밥을 먹이신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 날엔 아직도 아삭하고 맛있는 김장김치며 찹쌀, 또 사위가 좋아한다고 집에서 만든 떡을 정성스레 싸주신다. 차 안이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 사랑을 받고 오면서 눈물이 났다. 저녁…
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동래정씨 동래군파 16대 종손인 정운석(98)옹과 그의 9남매가 종택(宗宅·경기도문화재자료 제95호)과 그 관련 대지 및 전답(1만8천176㎡)을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에 기증키로 하고 3일 오후 2시 종택에서 체결식을 가진다고 한다. 공시지가로 따져 35억 2천만 원, 시가로는 80억 원이 넘는다. 군포 수리산 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종택의 역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 정광보(1457~1524)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작은 사랑채, 행랑채 등 5동 60칸이 남아 있다. 안채는 정조 때인 1783년, 사랑채는 고종 때인 1877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살림집의 전형적인 특징인 맞배지붕의 아름다운 외관을 갖췄다. 정운석 옹은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집과 농지의 소유권을 넘겨줬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남을 위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형제들은 6~7년 전부터 종택을 공적(公的) 공간으로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번 기증의 주역이기도 한 셋째 용수(63)씨가 넌지시 종손인 큰형과 둘째형에게 묻자 형들이 선뜻 동의한 것이다. 형제들은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종택을 영원히…
향토예비군이 창설된지 올해로 43년이 됐다. 그동안 예비군은 전쟁수행의 핵심전력으로 동원태세를 유지하면서 평시 향토방위 임무수행을 위한 교육훈련과 유사시 적의 도발을 격퇴하는 내 고장 안보지킴이 역할을 수행해 왔다. 태풍과 홍수 등 재해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도 예비군은 지역 재난극복의 핵심요원으로 성공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예비군의 현주소는 ‘노후화된 장비’, ‘예비군훈련 3대 불편’이라는 수식어들이 대변하듯 열악한 수준이다. 2010년 국방예산 12조7천억원 중 예비전력 예산은 현존 전력에 투자될 예산에 의해 우선순위가 밀렸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예비군 육성지원 예산도 각각의 지자체 전체예산 중 평균 0.0132%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아 모두 232억원을 교부 받았다. 예비전력 예산과 지방자치단체의 육성지원 예산을 모두 합하더라도 300만 예비군의 전투준비와 교육훈련, 운영유지를 위한 적정 소요예산의 68% 수준에 불과하다. 열악한 국방재정 여건과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위협에 대비해야만 하는 우리의 안보현실을 고려한다면 예비군 육성지원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변화가 요구된다. 예비군 육성지원이란 예비군의 임무수행
조현오 경찰청장이 ‘화살표 3색 신호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 중이다. 조 청장은 “우리나라는 보통 3~4개씩 도로에 차로가 많다. 운전자들은 우회전할 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며 “제대로 정착되면 이런 혼란을 걷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호체계 변경으로 인한 혼란과 예산낭비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해 더 이상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다음 아고라 토론게시판을 비롯한 트위터 등 실시간 소통미디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굳이 돈을 들여 바꾸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이가 없네”, “누구에게 편리한 것인가”, “더 혼란스럽다” 등의 내용이다. 27일 경기지방경찰청의 ‘화살표 3색 신호등’ 시연회를 본 취재기자로서도 의문이 든다.. 차로별로 신호등을 제각각 설치하고, 좌회전 차로에서는 화살표 신호등을 설치한단다. 하지만 좌회전 2개 방향이 있는 교차로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구상도 못한 상태며, 차로별로 제각각 설치하다보면 설치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차로가 많은 구간의 설치방안도 두리뭉실하다. 특히…
고려시대는 여자의 지위가 남자 부럽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혼과 재혼도 자유로웠다. 재혼을 한 부모를 둔 자녀들도 사회진출에 차별을 받지 않았고, 여자가 전(前)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는 일도 꽤 있었다. 심지어 성종과 충숙왕, 충선왕 등은 이혼을 한 여자들을 왕비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 고려를 방문한 뒤 돌아가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진다’라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는 이혼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규범이나 제도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삼불거(三不去)’에 해당하면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또 이혼을 하려면 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더구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재혼이 가능했으나 성종 16년(1485) 재혼이 법적으로 금지되며 중기 이후로는 이혼한 여자는 자식도 남편에게 빼앗기고 남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다. 조선시대에 이혼이 어려웠던 것은 조선사회의 가치관이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옥
‘혜이부지위정(惠而不知爲政)’.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치가 어렵다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덕(德)은 필수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고대 정나라의 정치가로 자산(子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그가 진수와 유수를 지나다가 백성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자기의 수레에 함께 타고 건너게 해주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산의 이야기를 듣고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자산은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할줄 모른다. 11월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놓고, 12월에 수레가 지나 다닐 수 있는 큰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데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면서 백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는 삼류정치라고 비판했다. 맹자는 백성들을 수레에 실어 냇물을 건너게 하는 것은 온정을 베푸는 것이지 정치가 아니라며, 백성들의 농한기를 이용해 인도교를 세우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차교를 시설하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될 수 있는데 몇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으로 소임
이번 4.27재보궐선거 결과는 민심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현 체제와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전달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텃밭’인 분당을을 잃은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데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패인을 분석했다. 성장 소외계층의 반발, 20~40대의 외면이었다. 분당을에서 출마를 준비했던 정치초년생인 장석일 예비후보는 “분당2세대인 20~30대의 표심을 잃지 못하면 ‘천당 아래 분당’이라며 전통적인 한나라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분당도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지만 이를 귀담아 듣는 당직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젊은 대표론’이 급부상하면서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한나라당 참패로 막을 내린 4.27재보궐선거 결과는 적지 않은 정치권의 빅뱅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젊은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김태호 당선자의 정치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당선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차기 대권후보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내에서도 당당한 영역을 구축하게 됐다. 분당을에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