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내에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여 음악·연극 등 예술인들이 공연장소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의 전당 공연장과 시민회관, 청소년 문화회관 등이 있으나 문화의 전당 공연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시설이 낡고 협소해 공연장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쓰임새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수원시의 공연장이 열악한 것은 시설확충은 물론 노후시설 개보수 등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전문 공연장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1982년에 시립 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이어 1983년에는 시립 합창단을 설립했다. 이후라도 전문공연장 건립에 나섰어야 되는데 이루어 지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건립한 도 문예회관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수원 시민회관은 건립 당시부터 공연장소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시 자체 행사 소화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좌석 배치는 물론이고 무대시설과 각종 음향시설이 공연에 적합치 않게 설계 설비됐다. 무대가 협소하여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나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어려운 상태다. 또한 청소년 문화회관도 시민회관과 대동소이하여 공연을 치르기가 어려운 실정이고 야외음악당은 사용에 제약이 따른다. 이런 가운데 수원시에서 전용 공연장같이 사용하던 문화
서민 가계의 주된 수입은 직장에서 받는 고정 임금이거나, 자영업을 하는 상인들의 불규칙한 수익이 전부다. 그런데 기업이 여려워지면서 임금을 제때에 주고 받지 못하는 임금 체불사태가 잦아지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상인들의 장사가 전혀 안돼 수익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면 그들이 겪게될 고통과 좌절은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최근 경인지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경기도와 인천지역 사업장 가운데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불하지 못한 임금 체불액이 567억3천여만원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50억 7천여만원 보다 216억원(62%)이나 불어난 것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만도 898개 업체에서 1만5천776명이나 된다. 이 역시 지난해 682개 업체 1만 47평보다 훨씬 늘어난 숫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개월 이상 임금을 주지 않고 있는 590개 업체 가운데 359곳이 이미 폐업을 했거나 장기 휴업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6천82명이 받아야할 임금 313억7천여 만원은 언제 어떤식으로 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눈여겨 봐야할 것은 소도시에 비해 중대 도시의 비교적 규모가…
지난 8일로 김일성 사망 10주년이 됐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사상 유례가 없는 김일성 유훈(遺訓)으로 통치하고 있다. 김영남 국가주석은 허수아비에 불과 김정일이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4년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정치 일선에 뛰어 들었으니 북한 통치기간이 40년에 이른다. 김정일은 정치에 데뷔한 22살에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조직지도부 중앙지도과 지도원이 되었다. 김정일은 이 직함을 갖고 총리, 부총리, 내각상(장관) 부상(차관) 등 국가 요직을 관장했다. 20대 초반에 북한 혁명의 최고참모부라는 중앙위원회를 총괄했다. 이와같이 실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10년이 지난 1974년 초에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이는 곧 후계자가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이후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사망하기까지 20년 동안 권력핵의 제2인자로서 행세했다. 물론 후계자 교육이라는 명목이지만 실세역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철저한 후계자 교육을 받은 김정일은 통치일선에 나서면서 기대와 달리 실패의 연속이었다. 기아에 견디지 못한 국민의 대거 탈출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간찰은 요새말로 편지다. 예전의 간찰은 아무 종이에 쓰지 않았다. 장지(壯紙)로 접은 종이를 쓰고, 이 편지는 같은 종이로 접은 봉투를 사용하였다. 간찰은 발신자의 처해 있는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면서도 그 수신 대상에 따라 형식이나 내용에 일부 제약이 가해지는 특성이 있다. 특히 수신자와의 이해, 친소 관계에 따라 설득을 하기도 하고 처지를 호소하므로써 문제 해결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간찰은 역사적 사실이 개인의 시각을 통해 표출된다는 점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담보하고 있다. 또 간찰은 그 당대의 시대상이 담겨 있어서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고, 사실적인 내용 때문에 현장감이 강한 장점도 있다. 최근 의암학회에서 ‘의암(毅菴) 류인석(柳麟錫) 자료집’을 펴냈다. 의암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간찰과 성제(省齊) 류중교(柳重敎), 습제(習齊), 이소응(李昭應),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직헌(直軒) 이진응(李晉應) 등의 간찰 130 여편이 실려있다. 의암은 조선 후기 대학자인 이항로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로서 일제의 농락으로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하자 의병을 일으켜 70평생을 항일투쟁을 한 위대한 민족 지도자였다. 한때는 3천명에 이르는 의병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실시되는 지방자치단체의 격주 토요휴무제가 복무 조례 제정의 차질과 조례 내용을 문제 삼는 일부 공무원 노조 지부와 직장협의회의 반발이 겹쳐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격주 토요휴무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각 자치단체가 복무조례를 개정해야 하는데 이번 경우 행정자치부가 복무조례 표준안을 자치단체에 내려보내고, 표준안이 담고 있는 내용과 범위를 지키도록 지시했다. 만약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표준안을 무시하거나 동떨어진 복무조례를 제정했을 때 행자부는 해당 지방의회에 재의를 요청하게 되고, 재의를 하다보니 때를 놓쳐 격주 토요휴무가 무산되거나 편법으로 운영하는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일을 꼬이게 만든 것은 개정 복무조례의 내용이었다. 행자부 표준안은 동절기 근무 시간의 단축 폐지, 연가 일수 단축, 배우자 출산휴가 일수 확대 외에 공무상 비밀 엄수를 신설한 것이 그 골자다. 공무원들 입장에서 보면 출산 휴가 일수 확대 말고는 하나같이 유리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일부 시·군 노조와 협의회는 그 부당성을 들어 집행부와 의회에 압력을 가했을 것이고, 압력을 받은 의결기구는 표준안과 동떨어진 복무조례를 의결했거나, 의결할 수가 없어서 계류 조
경기도가 환경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경기도는 포천시 소재 청계산 계곡에 사방댐을 건설한다며 마구 파헤쳐 자연환경보호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지난 5월 1억5천여만원의 예산으로 토사유출과 산사태를 막는다며 계곡의 상류에 사방 댐 공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공사업체는 공사를 하면서 자연환경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공업체인 포천시 산림조합은 시멘트 침출수를 비롯 호안공사에서 파생되는 흙탕물을 그대로 방류하고 있다. 때문에 하류 2km까지 오염수가 흘러 이 일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산림조합은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 호안과 하상을 마구 파헤치고 여기에서 나오는 잔토 및 잔석을 주변에 적치하여 산림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와함께 포천시는 이 일대에 식당·휴게소 및 펜션 등의 허가를 남발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이들 업소들은 건축하면서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수십년된 수목을 베어 내고 토석 등을 분별없이 채취하여 산림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청계산은 도내에서 거의 원시림에 가까운 임상
오늘날의 수원시는 일제 식민지 시절의 수원군(水原郡) 후신으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1년만인 1949년 8월 14일 수원부(水原府)로 바뀌었다가 하루만인 8월 15일 수원시(水原市)로 승격된, 국내 유일의 특이한 변천사를 가지고 있다. 이 때 나머지 읍면은 지금의 화성시와 오산시에 넘겨 주고 오늘에 이르렀으니, 올해로써 시로 승격된지 55년째가 된다. 시로 승격할 당시의 수원시 인구래야 4만명 안짝이고, 도시 형태는 시골 티가 줄줄 흐르는 보잘것 없는 군소 도시에 불과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지금 수원시 인구는 104만명으로 25배 넘게 증가했고, 도시 형태는 말할 것도 없이 질높은 인프라를 보유한 근대도시로 바뀌었으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없지 않다. 수원시가 이만큼 급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데에는 무엇보다도 수원시민의 애향정신과 그 정신에 기초해 시민을 대표하고 있는 수원시의회와 함께 행정 전반을 전담하고 있는 수원시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와 발전은 매우 획기적일 뿐아니라 그 속도와 질이 빠르고 우수해서 안으로는 시민이 만족해 하고, 밖에서는 수원시를 하
정부가 도내에 임대주택 대단지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우선 무주택 서민을 겨냥한 주택 건설 사업이라는데서 평가한다. 정부는 서민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무주택 영세민에게 양질의 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국민임대 주택 100만호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 국민임대 주택건설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기도 해 기대되는 바 크다 하겠다. 경기도 및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수원을 비롯 의정부, 양주, 시흥 등지 330만여 평을 택지로 개발하여 6만9천여 임대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이 계획을 확정하고 주민공람을 실시하고 있다. 수원시에는 호매실 금곡 당수, 오목천 동등 호매실 지구 94만6천평을 택지개발하여 1만9천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한다. 또 정부는 시흥시 장현, 장곡, 하중, 능곡, 군자, 목감, 조남, 산현, 물왕동 등의 141만5천평을 택지로 개발하여 임대아파트 2만6천세대를 건립한다. 또한 의정부시에는 민락·낙양동의 79만2천평에 1만5천500세대를 건축하고 양주시 마전동 일원의 42만6천평에는 8천7백세대의 국민임대주택을 건설한다. 정부의 이같은 국민임대주택 건립계획에 대해 해당 지역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우선 낮은 보상
무궁화는 국화(國花)이면서도 대접을 못 받는다. 그 흔한 축제도 찾기 힘들다. 국적도 불분명한 벚꽃 축제는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무궁화 축제는 귀에 설다. 이제 무궁화 계절이 됐다. 무궁화는 7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중부지방) 10월 늦게까지 4개월 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핀다. 동이 트면 피었다가 저녁 해 질 무렵이면 진다. 날씨가 흐렸거나 비가 와도 상관치 않고 피었다 진다. 무궁화 꽃은 화려하거나 찬란하지 않으나 은은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또 무궁화는 요염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어 은자(隱者)의 꽃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도 세속의 냄새가 없다. 이를 두고 무궁화는 한민족을 닮았다고도 한다. 학문적으로는 무궁화의 원산지가 시리아라고 하지만 기록으로 보면 한국이 원산지다. BC 300년께 중국 동진의 곽복(郭僕)이 쓴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무궁화가 나온다.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아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이라 칭했다. 또 고려 예종도 고 려를 근화향이라 칭했고 강희안의 ‘양화신록’에서는 한국을근역(槿域)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고증으로 보
3B 정책은 188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독일 제국주의가 내세웠던 근동정책이었다. 3B란 베를린, 비잔티움, 바그다드를 말하며 이 세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를 부설하고 이 지역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려는 정책이었다. 독일의 3B정책은 영국의 3C정책을 위협하였으며 러시아의 발칸반도 및 지중해로의 남하정책이나 프랑스의 이권과 대립하는 것이어서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독일은 1910년대 초부터 유럽 각국과 근동 지역에 대해 타협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한편 영국의 3C정책이란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제국주의의 기본 정책으로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이집트의 카이로, 인도의 캘커타를 말하며 이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 영국의 전략적 야망이었다. 영국은 일찍이 식민지 경영에 나서 1858년 인도를 직접 통치하고 인도로 가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1875년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사들이는 등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또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아프리카를 종단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3C정책은 독일의 3B정책과 충돌하게 되고 마침내는 제1차 세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