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뿌려진 막대한 자금이 오늘에 와서 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루하루 오르는 물가에 서민들의 시름은 더해가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저축은 커녕 빚만 늘어 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백화점의 명품코너는 문전성시라니…. 지난 주 모 지역아동센터에 학부모 간담회가 있었다. 15명 남짓의 부모들이 모였는데 대부분이 엄마들이었으나 그중 아빠와 할머니가 일부 있었다. 부모들의 얼굴에는 삶의 힘겨움이 잔뜩 묻어 있었으나 그래도 자식들의 일이라 직장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모습이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방과 후에 돌봐주는 곳으로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차상위, 부모의 여건으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가정과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로 손주들을 키우고 사는데 모이기만 하면 지역아동센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아동센터가 있어서 우리 손주들 잘 클 수 있게 해서 너무 고맙지…. 큰 놈은 중학교 때 급식비 지원 받는다는 것을 반 친구들이 알았다고 학교 그만두고 피자배달하면서 검정고시 준비하긴 하지만…. 크게 엇나가지 않고…
정애정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시인소개: 故 박남수 시인, 1918년 5월 3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39년 시 ‘마을’로 데뷔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회 위원장, 한양대학교 강사 한국시인협회 창립회원 역임 공초문학상,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던 강물. 시인소개 ;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 ‘잠 깨는 추상’ 등단.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다수.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수상. 서울대교수 역임.
4.27 재보궐 선거일이 불과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 약속을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거둬들였다. 이 대통령은 1일 “국민에 불편과 부담을 주고 다음 세대까지 부담을 주는 이런 사업을 책임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나라 살림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욕을 먹더라도 다음 세대가 짊어지게 될 부담 등을 감안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렸다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대선 공약을 어긴 데 대해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 후 이틀 만에 이 대통령이 정면 돌파에 나섰지만 세종시 수정안 논란에 이어 대선공약을 다시 파기한 데 대한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내에서는 “선거 망쳤다”는 푸념섞인 말도 들린다. 백지화 후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한 영남권 의원들이나 야당의 주장을 들어보면 신공항은 내년 대선 정국에서 공약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 국책사업이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폐해가 계속될 우려를 남긴 것이다. 이처럼 신공항 문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상징하는…
고요히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던 할아버지에게 강물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강물에게 물었지, 어떻게 이리도 먼 길을 왔느냐,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강물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구나.” “옛날 나도 작은 웅덩이를 가득 채운 적이 있었어요. 만약 제가 작은 것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다면 그 웅덩이로 만족했을 거예요. 제 친구들은 대부분 지금도 작은 웅덩이에 만족하며 살고 있죠. 미처 웅덩이도 못 채운 친구들은 저를 보면서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죠. 그래서 저도 한때는 제가 최고인 줄 알고 우쭐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런데 어떻게 그 작은 웅덩이를 벗어나서 먼 곳까지 여행하게 되었지?’하고 물었더니 강물이 대답하기를….” “저는 바다를 보았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요. 깊고 넓은 바다에 대한 꿈을 꾸자 더 이상 웅덩이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죠.” “그래도 편안한 웅덩이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작다고는 하지만 웅덩이도 둑이 있으니 그걸 넘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 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더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기만 하면 되거든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섭리를…
‘서추(西酋)’라는 말이 있다. 언론인 전택원은 지난해 말 출간한 철학서 ‘마음의 이슬 하나’에서 이 말을 소개하며 ‘서양추장’으로 풀이했다. 동학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1827~98)의 시에 나오는 신조어다. “해월은 ‘서추’란 말을 썼습니다. ‘인(仁)의 방패를 들고 예(禮)의 검을 들어 ’서추‘를 쳐내면 이런 장부가 없다’면서…. ‘서추’, 즉 ‘서양추장’이란 막상 서양엔 없습니다. ‘서추’는 서구화된 우리 자화상입니다.” 전택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동학’(지금의 천도교)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기독교와 유불선(儒佛仙)에 담긴 좋은 점만 가려내 ‘시천주(侍天主)’사상과 ‘인내천(人乃天)’으로 발효시킨 우리나라 종교라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수운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며 동학을 만든 씨앗은 ‘도선비결(道詵秘訣)’에 있다고 못 박는다. ‘동학’은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한반도 앞날을 글자 속에 꼼꼼하게 숨겨놓은 ‘도선비결’에 그 뿌리가 닿고 있으며, 수운이 이 세상에 나오자 천 년을 넘게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그 뿌리가 마침내 싹을 틔워 ‘동학’이란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선비결’은 수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돌아가다 사고로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사건이 지난 2일로 1주기를 맞았다. 이날 오전 인천시 중구 항동 역무선부두 바다쉼터에서는 희생자 유가족 30여명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송영길 인천시장, 모강인 해양경찰청장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8금양호 희생자 위령탑 제막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원상 유가족 대표는 “정부의 부름을 받고 갔다가 희생됐는데도 위령탑 하나 세운 것 밖에 의사자 지정과 국립현충원 안장 등의 요구사항들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4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98금양호 희생자들의 의사자 지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98금양호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해역에서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가 조업현장으로 돌아가던 중 대청도 서쪽 56km 해상에서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 침몰해 탑승선원 9명 중 2명은 숨졌고 7명은 실종됐다. 당시 해경에서 98금양호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잠수용역을 맡겼으나 선체 주변이 어망과 로프로 싸여있고 개흙에 파묻힌 부분이 많아 선체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수색작업 및 선체 인양작업을 포기했었다.…
외국 여성들과 혼인하는 한국 남성들이 늘고 있다. 주로 농촌지역에 살거나 혼기를 놓친 나이 많은 남성들이 한국에서 신부감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 가출 등으로 파경을 맞는 다문화가정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요즘엔 외국인 아내를 구타하거나 심어는 살해하는 끔찍한 일도 발생해 ‘나라망신’을 시키고 있다. 최근 보도된 바에 따르면 46세의 한국 남성과 혼인한 23세의 필리핀 출신 이주 여성이 남편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현금을 가지고 달아났다가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선고 이유는 “피고인이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느껴 탈출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고 굳이 여권을 빼앗으려고 수면제를 탄 커피를 줬다고 보기 어려워 강도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면수심의 남편은 폭행만 한 것이 아니라 필리핀 여자들을 데려와 술집에서 일을 시키고 돈을 벌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단다. 지난 1월에는 베트남에서 시집 온 10대 처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50대의 형부 사
바람이 차다. 몇 차례 꽃샘추위가 지나가나 했는데 여전히 찬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학부형 총회가 있어 중3인 아들의 학교로 갔다. 흰 셔츠를 입은 몇몇 남학생들이 농구를 하며 유쾌한 함성으로 운동장을 울린다. 긴 겨울 동면했던 영혼들이 깨어나듯 담장 목련 작은 꽃망울 흰 빛이 봄 햇살 아래 신비롭다. 교실에서 아이의 이름표가 붙여있는 책상을 찾아 앉았다. 강당에선 이미 부모님 교육강연이 한창인지 강사목소리가 흐린 화면에 방송되고 있었다. 책상 위 분홍색 이름표에는 ‘장래 희망;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써있다. 지난 해까지는 의사라고 적혀있었는데…. 잠시 시간을 거슬러 아들의 유치원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이 다음에 뭐가 되고싶냐고 우리한테 물어보셨거든!” “그래? 준이는 뭐라고 했는데?” “택시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왜냐면 엄마를 태우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서.” “뭐? 택시운전사? 남자가 좀 그렇네, 엄만 의사가 되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도 이 순간이 나에게는 후회로 남는다. “그래? 엄마 정말 신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