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와 까치 박 수 화 숲속 나무 우듬지 위 아리잠직 앉아있다 까치집들이, 가지들도 연두초록빛 옷을 갈아입고 햇살바람에 일렁거린다, 헌집보다 새집이 좋다고 쉼 없이 물어 나른 가지들로 까치들은 센바람 날 탄탄한 평형의 집을 짓는다 언젠가 가로수 하늘 침들이 까치집 한 채가 보도블록 내 발등 주위로 쏟아져내렸다 바람살결 율동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안단테 칸타빌레로 맑은 소리를 내며 지상의 중심축 하나가 툭! 무너져 내렸다 빈 둥지에 바람의 은유만 속삭이는 곳 그곳 안부가 궁금하다 올망졸망 까치동네 봄날 놀이터, 이봄 모두 어디로 떠나버렸을까 상수리나무가 보듬은 온유까치집 애옥살이 까치네 가족들 봄소식이 그립다 박수화 1955년 경남 김해 출생. 2004년 평화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새에게 길을 묻다』 『물방울 여행』 『체리나무가 있는 풍경』 『흐린 날 샤갈의 하늘을 날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여성작가위원.
월 식 석 연 경 갱도에서 물고기 떼가 나온다 깊숙한 지하에는 해감내 고대의 주검이 달궈지는 시간 금강석은 죽음을 지나 있다 어둠 속 어딘가 유폐된 빛을 품고 있다 무너진 갱도가 뚫리자 매지구름이 걷힌다 물고기 떼가 바야흐로 달에 닿는다 찬란한 어둠 금시초문 월식이 시작된다 석연경 68년 경남 밀양출생, 2013 『시와 문화』시, 2015 『시와 세계』평론 등단. 시집『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연경인문 문화예술연구소장
아파트 부지의 내 도로의 도보 이용은 차량 진출입과 달리 자유롭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던 아파트 부지 내 도로의 통행을 막아 차량은 물론 도보 통행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는 어떠할까. 서울북부지방법원 2018카합2 통행방해금지 사건에서 아파트 인근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던 아파트 부지 내에 있는 도로에 대하여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쓰레기 투척, 기물파손 등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통행을 막기로 의결하고 철문을 폐쇄, 철문 위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방법 등으로 인근 주민들의 통행을 막아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아파트 인근 주민들은 ‘통행의 자유와 그에 기한 방해금지청구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철조망의 철거 등을 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도로로 제공된 토지의 소유자가 자신의 소유권에 기하여 어느 특정인만이 아니라 그 도로를 이용한 모든 타인의 통행을 막은 경우에는 그와 같은 소유권의 행사가 권리남용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통행의 자유에 기하여 방해의 배제를 구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위 사례와 같이 인근 주민들이 타인의 사유지를 통행할 수 있는 권리에 관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계층을 홈(Home)족 이라 부른다. 코로나19 창궐도 이유지만 스스로 집에서 삶을 즐긴다. 사회생활에 부적응으로 집밖을 두려워하는 ‘방콕족’과는 구별된다. 집을 일상의 생활공간으로 꾸미는 ‘홈스케이프(Home+Escape)’,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홈캉스(Home+Vacance)’, 카페처럼 집을 만드는 ‘홈카페’, 예능인이 방송에서 보여준 ‘나래바’ 그리고 코로나19 침체속 급성장한 출장 청소.세탁.방문수거 서비스도 이들 홈족이 주도한다. 여기에 홈트레이닝도 그 중 하나다. 여러 사람이 밀집해서 체취와 체액이 곳곳에 묻어있고 밀폐된 공간인 헬스장을 피하려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모 스타트업 온라인 PT 프로그램은 수강 신청이 급증한 것은 안전하게 운동하고 싶은 단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공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 ‘홈족’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이들 중 상당수가 은둔형 외톨이로 진행된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때 슬기로운 홈족 생활로, 그리고 홈족 생활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며 가파른 확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나, 거기에 있었다 박 남 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책장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점점 색이 바래고 먼지가 켜켜이 앉아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고 이제 그만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사이 해와 달은 수없이 떴다 지고 바람은 제멋대로 들락날락하고 문득 코끝 간지럽히는 초록향기에 몸은 허공에 둥실~ 나, 그만 마음을 활짝 열어버렸다. 박남주 1955년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단오부채』, 『중심은 사랑이다』가 있다. 시랑 동인.
봄 빛 김 정 원 바위산 하나가 가슴 열고 강둑 지나 드센 바람 비켜 마을에 다가선다 ‘立春大吉’ 기둥에 붙어 조을고 있던 빛살이 누워 앓는 사람의 손등에 한웅큼 기운 실어 무릎을 세운다 덤불 속 죽은 듯 풀싹들이 다투어 봄빛 끄집어 당겨 얼굴 내미네 한결 개운해진 걸음걸음 내 얼음 발바닥에도 새싹 돋나봐! 김정원 1932년 경북 포항출생. 1985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 ‘허(虛)의 자리’, ‘삶의 지느러미’, ‘분신’. 율목문학상, 민족문학상, 소월문학상, 세계시문학대상 수상. 여성문학인회 이사, 미래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스마트폰에 집중하여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주변을 살피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길을 걷는 사람들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어 스마트폰 좀비 또는 ‘스몸비’라고 한다. 길 위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걷는 것에 대한 위험성은 많은 실험과 통계를 통해 입증되었다. 한 실험에서 스마트폰 미사용 시 차량과 11.9m가량 떨어진 곳에서 차량 소리를 인지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스마트폰 사용 시에는 그 거리가 7.7m ~ 4.7m로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관련 교통사고는 2009년 437건에서 2015년에는 1360건으로 3.1배 증가하였다. 해외 곳곳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인한 교통사고, 추락사고 등 여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경찰청과 각 지자체에서는 이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안전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바닥신호등’을 설치, 보도블럭에 LED등을 설치하여 보행자 신호등 작동 패턴과 동일하게 신호 현출 상태를 표시하여 보행자의 무의식적인 무단횡단을 예방한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청소년 스마트폰 중
영국의 평론가겸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목적이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고 한낱 떠돌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목적은 일종의 나침반이고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목적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목적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목적이 흐려지거나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목적 없는 산만함’이라 한다. 고민은 많이 하지만 답은 보이지 않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역설과 잇닿아 있다. 목적지까지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당장은 늦더라도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이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링컨은 나무를 베기 위해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날을 가는데 45분을 사용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라는 말로 이해된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빨리 나무를 베지 뭐하는 거냐며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통제된 포기를 통해 원하는 목표점에 먼저 도달할 수 있다.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
그대의 미소는 잠깐뿐 박 영 하 그대 눈에 비친 나의 삶이 안타까워 보여서 잠시 달래 주려는 마음으로 나를 기억하지는 마십시오 애절한 눈으로 잠 못 이루는 연민이 나를 감싸지는 못하니까요 오늘 그대의 미소는 잠깐뿐 언젠가는 거두어 가니까요 그림자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고 돌아서 가노라면 자꾸만 엷어지는 내 마음 나를 기억하지 마십시오. 박영하 1955년 서울 출생, 한국시인협회 이사, 여성문학인회 이사. 월간 ‘순수문학’ 편집주간
불 문 영 하 뼈 없는 몸이 납작 엎드린 채 온돌의 입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홀린 듯 홀린 듯 내장 깊숙이 흘러 들어가는, 어둠을 먹고 냉기를 밀어내는 낼름낼름 혓바닥 같은 불이여, 불이여 샤먼의 주문인가 시뻘건 불이 해탈한다 어두운 골목길 고래*를 벗어나 벌떡 일어서는 불이 굴뚝으로 올라가더니 초혼의 흰 옷자락인 듯 나부끼며 뜨거운 몸을 해체한다 불이 자신을 사르며 지나간 길 위에 누천년에 이르는 생의 내력이 피었다 지곤 한다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낸 고랑. 문영하 1951년 경남 남해 출생. 서울시 초등교사로 32년간 근무, 명예퇴임.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계간 ‘미네르바’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청동거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