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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부평 + 인천 = 부천?

① 이름의 유래와 변천

 

‘부천’이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약 100년 전인 1914년 부천군(富川郡)이 만들어지면서 처음 등장했다.

 

행정체제 개편에 따라 당시 부평군 일원과 인천부 구시가지를 제외한 전부, 강화군(江華郡) 남양군(南陽郡) 각 일부를 통합하여 부천이 설치됐다. 부천(富川)은 부평에서 부(富)자와 인천에서 천(川)자를 따와 만든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두 행정구역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을 설치할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작명방식에 따른 것이다.

 

부천은 한강의 서편 김포반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가진 지역이었다. 수량이 풍부하고 넓은 평지에 습지도 많아서 전체적으로 경제적 생산력이 아주 높았다. 이러한 좋은 조건을 토대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까지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고강동 선사유적지들은 부천 지역의 유일한 대규모 선사유적지로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 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54개국 중 우휴모탁국에 속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인 주부토군, 통일신라 시대에는 장제군, 고려시대에는 수주, 안남도호부, 계양도호부, 길주목, 부평부를 거쳐 고려 말에는 경기우도에 포함됐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내 부평도호부에 속했고 1895년 전국 8도제 폐지에 따라 인천부에 속했다가 1896년 부제를 폐지하면서 부평군으로 편성됐다.

 

 

부천의 근대적 도시 발전은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경인선의 역사였던 소사역(당시 부평군 계남면 소사리 위치)의 개설로 성주산 서쪽부터 가촌형태의 취락이 서서히 발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계남면은 ‘계남’보다 ‘소사’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계남면(1914년 행정체제 개편으로 계남면은 부천군에 속해짐)은 1931년 부천의 중심이 되는 소사면으로 바뀌었고, 1941년 소사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없어진 후 지금의 ‘부천시’가 되었다.

 

‘소사’란 토박이말로 ‘소새’ 또는 ‘소쇠’로 불렸다. 흰 모래라는 뜻의 한자말이다. 1943년 이태준이 지은 ‘돌다리’ 중 無綠 ‘소새’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소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금이 있는 석별토질’에서 유래됐다. 풍수지리설에서 소사동은 ‘물이 잘 빠지는 조리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소사지역에서는 250년 전 조선시대부터 소새마을 주민의 안녕과 무병장수 그리고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제사인 ‘윗소사대동산신제’를 지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91년 마을원로 권영택·권순택씨에 의해 복원되어 격년제로 홀수 해 음력 10월 초 3일 개최되고 있다. 2013년 소사본동주민센터로 이관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경기신문/부천 = 김용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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