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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평택에 눌러앉아 국가 보물이 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평택 현덕면 소재 심복사 보물 제565호
신라 하대 불상 양식, 고려에서 도식화

 

평택시 현덕면에는 지역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오랜된 사찰이 한 곳 있다.

 

평택시 현덕면 광덕산에 있는 용주사(龍珠寺)의 말사(末寺)인 ‘심복사’는 평택시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법한 사찰이다.

 

심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1557년(선조8년)에 중건되었다. 그 이후에도 몇차례 중건되었다.

 

사찰에는 보물 제565호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광배는 분실되고 없지만 불신(佛身)과 대좌(臺座)는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보기 위해서는 본당인 ‘대적광전’으로 가야 한다. 안내판에는 불상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고려 말 파주군 몽산포에 살던 노인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건져 올렸으며, 불상 모실 곳을 찾아 옮기던 중 광덕산에 있는 현재 심복사 위치에 다다르자 불상이 갑자기 무거워져 현재 심복사에 모시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불상의 머리에는 큼직하게 나발(螺髮)이 새겨져 있으며, 머리 정상에 표현된 살상투(肉髻)는 낮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불상의 명칭은 수인(手印)을 통해 알 수 있는데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상의 수인인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같은 수인이 뜻하는 바는 중생과 붓다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착의법은 양쪽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이며 대의(大衣) 안에 입은 내의(內衣)의 매듭이 배 앞에 리본처럼 양쪽으로 늘어져 있고, 대의에는 옷주름이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한 띠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대의의 양쪽 깃과 소매단에는 반원형의 꽃무늬가 서로 엇갈리게 새겨져 있다.

 

특히 대의의 양쪽 깃에 꽃무늬를 새긴 표현은 867년 경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에서 주목되는 또다른 표현은 팔이 접히는 팔꿈치 부분에 꽃잎 두 장이 겹쳐진 모습으로 새겨진 독특한 주름 형태의 모양이다.

 

이러한 표현은 867년경의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서산 보원사지 출토 철불좌상, 원주 출토 철불좌상과 같은 일부 10세기 전반 철불에서도 보이고 있어 신라 하대의 불상 양식이 고려시대에 도식화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된 3단의 연화대좌로 상대(上帶)에는 두 겹의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둥근 중대(中帶)의 앞면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상대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하대(下帶)에는 8개의 겹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867년경의 축서사 불상과의 유사성을 토대로 미루어볼 때 심복사 불상의 조성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말해 이 불상은 신라 하대 조각의 고려적 계승이라는 점에서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석불의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경기신문 = 박희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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