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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태조 이성계 발자취 서린 환궁 길목 '의정부'

 

의정부(議政府)는 어떻게 해서 조선시대 기구인 ‘의정부’와 이름이 같을까. 태조 이성계 발자취 서려있는 환궁 길목 ‘의정부’의 유래에 대해 알아본다.

 

■ 의정부 지명 유래

 

‘의정부(議政府)’라는 단어는 의정부라는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행정기구와도 관련이 있다.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의 궁금증은 결국 조선시대 행정기구로 사용됐던 의정부라는 명칭이 어떠한 이유로 지역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명확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지만 행정기구 ‘의정부’와 지명 ‘의정부’가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의정부라는 지명이 왜 하필 다른 행정기구도 아닌 ‘議政府’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을까 하는 것이다.

 

 

의정부시 등 관련 기관에서 발간한 자료에 나타난 지명 유래 중 유력한 내용인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와 관련된 태조환궁설화(太祖還宮說話)에 기반을 둔 내용을 참고해 본다.

 

조선 3대 태종(太宗)이 동생 방번, 방석을 살해하는 등 소란을 일으키자 태조는 “불충불의한 자와 함께 살 수 없다”며 함흥(咸興)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태종은 여러차례 사자를 보내 용서를 빌었으나 태조는 사자를 감금 살해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때부터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다.

 

태조는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함흥에서 한양으로 환궁하게 됐다. 환궁 길에 현재의 의정부 호원동 전좌(殿坐)마을에서 잠시 머물게 됐는데, 그때 조정 대신들이 이곳까지 와서 정사를 논의하고 태상왕께 윤허를 받았다고 해서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인 의정부라는 관청 명칭을 지명으로 삼게 됐다고 전해진다.

 

 

■ 의정부의 변천

 

의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군사적 요충지로, 특히 미군 부대가 대거 주둔함에 따라 군사도시 기능이 강화되는 등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1960년 인구가 5만 명을 넘어 당시 시(市) 승격 기본조건을 충족했고 1962년 인구 6만2000명으로 읍에서 시로 승격했다. 경기도에서 인천시와 수원시에 이어 세 번째 시급 도시가 된 것이다.

 

의정부는 서울 북쪽의 관문 도시이자 경기북부의 교통,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 수부 도시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인구 46만 명으로 인구 면에서는 경기북부권을 대표할 수 없으나 경기도 북부청사,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경기북부경찰청 등 도단위 기관과 법원 검찰을 비롯해 각 정부 기관들이 있어 지역주민들이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받고 있다.

 

전철 1호선, 경전철 운행, 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형성돼 있다. 또 남쪽으로 서울 노원구·도봉구와 시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양주시와 포천시, 동쪽으로는 남양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도심 외곽은 도봉산, 수락산, 천보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중랑천이 도심 중앙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남류(南流)하며 물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얼이 서려 있는 의정부는 의정부시의 캐치프라이즈 ‘희망도시 의정부’처럼 힘차게 변모하고 있다.

 

[ 경기신문 = 박광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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