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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오산 탑돌이 이야기를 아시나요?

① 이름의 유래와 변천

 

오산시에는 6개의 행정동(중앙동, 대원동, 남촌동, 신장동, 세마동, 초평동)이 있다. 그 중 오산의 서쪽에 위치한 초평동에는 탑동이 위치해 있다.

 

탑동은 탑이 있었던 마을이라 타모루, 돌모루, 석우리 등 돌과 관련된 여러 지명으로 불리었다가 조선 중기부터 탑동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탑동(塔洞)·탑마루 전설에 의하면 옛날 흙으로 만든 탑이 이곳에 있어 ‘탑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크기를 알 수 없고, 다만 큰 탑이 있었다는 곳의 이름이 ‘탑재’라고 전해오고 있다.

 

탑동에는 탑이 있는 마루터기라는 뜻을 지닌 ‘타마루(마을)’도 존재한다. 타마루들은 탑동의 가장 높은 곳의 마을 이름인데, 아직까지 탑동의 넓은 들판을 일컫는 말로 ‘타마루들’이라는 명칭이 전해져 내려온다.

 

 

비록 사람들이 소원을 빌던 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현재 일부 드넓은 벌판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

 

탑돌이 전설은 탑동에는 지금은 사라진 탑과 관련된 ‘탑돌이 이야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초기, 개성에서 남쪽으로 진격을 하던 군사들이 지금의 군포 금정리에서 광교산을 넘을 때였다.

 

음력 그믐이라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웠던 병사들은 광교산 정상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빛이 비치며 전방이 멀리까지 환해졌다.

 

병사들이 불빛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 보니 땅에 박힌 바위에서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이에 곧바로 진격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은 옛 수원 쪽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수원읍에 당도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읍탑에서 남쪽으로 또 한 번의 서광이 비쳤다. 지휘관은 즉시 진격을 명령했고, 계속 남진한 결과, 전쟁이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왕건은 서광이 비친 산의 이름을 광악산(光嶽山)으로 짓고, 그 산에 산신제를 크게 지내라고 명했다고 한다.

 

또 오산(옛수원) 읍탑 이야기를 들은 왕건은 수주 내에 읍내에 서 있는 탑을 위해 천지신명께 해마다 제를 올리고 백성들에게 소원 성취를 하려거든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도록 하라고 방을 써 붙였다.

 

그런데 많은 백성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찌 된 일인지 소원을 빌기만 하면 어김없이 소원이 성취되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자 찾아오는 백성이 많아졌고, 주야로 탑돌이는 하는 수효가 많아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는 ‘탑돌이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1991년 마을주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5층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탑동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 경기신문 = 지명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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