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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곰과 물의 기운을 품은 고장 '漣川'(연천)

① 이름의 유래와 변천

 

임진강과 한탄강이 관통해 흐르는 연천은 강의 고장이다. ‘漣川’(연천)에 두 개의 물 수(水)가 사용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 있다. 그러나 연천의 본래 이름이 처음부터 강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연천은 일제의 강제적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쪽의 장단 일부와 임진강 중류의 마전, 군의 북쪽에 위치한 삭녕과 철원군의 신서가 합쳐지면서 오늘과 같은 행정구역으로 재편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쪽의 삭녕 대부분이 북한 지역에 편입되면서 군의 관할 지역이 크게 축소되었다. 1980년대 행정구역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연천의 관인과 포천의 청산이 맞교환되면서 현재의 10개 읍면으로 구성된 연천이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현재 연천이 관할하는 지역이 크게 4개 군현으로 구분되었다. 현재 행정의 중심인 연천읍 일대는 연천현, 현의 북쪽 경계를 따라 삭녕현이 위치하고, 서쪽으로는 마전군이 있었으며, 임진강 하류를 따라 장단현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연천은 이렇게 연천, 삭녕, 마전, 장단이 한 행정구역으로 합쳐져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천과 관련된 지명이 최초로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다. 광개토대왕 때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남진경영은 아들인 장수왕 때 완성되어 한반도의 가장 넓은 면적이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연천 지역도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고구려 남진경영의 가장 중요한 남쪽 교두보가 되었다. 고구려는 연천 일대를 실제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해 영토를 관리하였다. 현재 연천읍과 전곡읍 일대는 공목달현, 마전의 중심지인 미산면 일대는 마전천현(또는 니사파홀), 삭녕과 연천현의 북면(현재의 중면) 지역은 소읍두현, 장단의 중심이었던 장남면 일대는 장천성현으로 불렸다. 이는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연천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현재 연천의 행정 중심인 연천읍 일대의 공목달현은 통일신라시대 공성현, 고려시대 장주로 지명이 변천되었다. 고려 충선왕이 왕위를 계승하자 그 원년(1308년)에 왕의 휘(이름)에 장주의 장(漳)이 들어감으로 지명을 연주(漣州)라 바꾸면서 연천이란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태종 재위 시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연주를 현으로 승격하고 연천현이라 하면서 오늘의 연천 지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연천의 옛 지명인 공목달은 본래 곰을 뜻하는 지명으로 연천의 주산(主山)인 군자산의 옛 지명이 웅섬산(곰산)임을 안다면 그 지명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곰은 본래 고구려 사람들이 가장 신성 시 하던 동물로 군자산의 정기가 내려앉은 연천이 오늘날 연천군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이 됨은 자연스러운 이치에 따름이라 하겠다.  

 

[ 경기신문 = 김항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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