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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다양한 지명 유래와 다채로운 풍경을 품은 시흥 '소래산'

① 이름의 유래와 변천

 

소래산은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 일원에 위치한 해발 299.4m의 산이다. 바위 많은 돌산이지만, 봄에는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어 계절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때문에 시흥시민뿐 아니라, 가볍게 산을 오르기 원하는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소래’라는 이름을 둘러싸고는 다양한 설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산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을 뜻하는 우리말 ‘솔’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냇가에 소나무가 많아 솔내(松川)로 불리다가 소래로 되었다는 설, 지형이 좁은 곳을 뜻하는 ‘솔다→ 좁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설명보다 ‘높은 곳’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모양이 바뀐 것으로 보는 견해가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수리봉’, ‘수릿재’ 등 우리나라 산이나 고개 이름에 자주 쓰이는 ‘수리’는 사라, 사리, 서리, 소리, 솔, 수락, 술, 시루, 시라 등 다양한 형태의 변형을 갖고 있는데, ‘소래’도 이러한 계통의 어휘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소래산도 인근의 지형과 비교할 때 가장 높이 우뚝 솟아 있어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소래라는 이름의 유래를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과 관련된 전설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나당연합군에 참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동성의 내주를 출발한 후 이곳에 주둔했다는 것인데, 그 뒤부터 소정방의 소(蘇)자와 ‘왔다’는 뜻의 내(來)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실제로 소정방이 이곳에 상륙하였다는 내용은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며, 덕적도를 거쳐 금강 하구인 기벌포(伎伐浦)에 상륙했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은 재미있는 전설일 뿐, 이를 근거로 삼을만한 타당성은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소래산을 기록한 조선시대의 지지(地誌) 자료들을 살펴보면 소래의 한자 표기가 ‘蘇來’, ‘蘇萊’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앞서 언급한 ‘수리’ 계열의) 순우리말 ‘소래’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추정된다.

 

산 정상까지 완만한 돌계단 길을 오르다보면, 길 한편에 거대한 바윗돌이 나타난다.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1324호)이 새겨진 병풍바위다. 세월을 지나며 흐릿해졌지만, 14m의 거대한 불 마애보살입상이 시흥시 일대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평안을 가져다준다.

 

         

마애보살입상이 새겨진 바위의 양쪽으로 그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형상이 보이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일설에 한국전쟁 때 군인들이 쏜 대포에도 바위 양편만 손상되었을 뿐, 포탄이 불상을 피해 나가 아무런 피해도 미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마애보살입상의 영험함 때문인지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도 한다.

 

소래산은 그 이름에 품은 다양한 이야기만큼, 다채로운 풍경을 지녔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이 주는 힐링을, 누군가에게는 가족과의 시간을, 또 누군가에게는 사색을 선물하며 지금도 시흥시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 경기신문 = 김원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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