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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안양(安養)’은 절 이름에서 유래됐다?

① 이름의 유래와 변천

 

한강과 멀지 않은 안양 지역은 삼국시대 요충지였다.

 

처음에는 백제의 땅이었지만 이후 고구려의 땅이 되었고, 삼국통일 이후에는 신라의 땅이 되었다.

 

당시에는 과천과 함께 ‘율목(栗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이 합쳐져 서이면이 만들어졌고, 1941년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바뀌게 됐다. 이후 1949년 8월 안양읍으로 승격, 1973년 7월 ‘안양시’가 됐다.

 

그러면 어떻게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됐을까.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900년경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됐다.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궁예의 후예인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 등의 지역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의 구름이 5가지 빛으로 채색을 이룬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다.

 

그리고 구름 밑에서 능정(能正)이란 노스님을 만났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왕건의 뜻과 같아 이곳(만안구 석수 1동 산 2번지 일대)에 안양사를 창건하게 했다.

 

이 안양사로 인해 안양이란 명칭이 탄생했다.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구복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이다.

 

안양(安養)이란 지명은 여지도서(영조35, 1759)에 금주현(衿州縣) 현내면(縣內面) 안양리(安養里)로도 나타난다.

 

조선시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가설한 만안교의 안(安)자와 함께, 후세 사람에게 인륜의 근본인 효의 뜻을 살리기 위해 양(養)자가 쓰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2010년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세워져있는 구 유유부지(유유산업 안양공장 부지, 이후 이 부지는 김중업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를 발굴하던 중 안양사(安養寺) 명문기와가 발견되면서 안양시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지명유래의 근원지임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또한 이 지역이 통일신라시대 사찰 ‘중초사’와 고려시대 ‘안양사’가 있었던 지역임을 확인시켜줬다.

 

현재의 안양사는 6·25전쟁 이후 대인(大仁)이란 비구니 스님이 옛 절터에 대웅전, 명부전, 미륵상, 삼성각, 심검당 등을 건립한 것이다.

 

이곳의 대웅전은 단청이 아름다우며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귀부(경기도유형문화재 제93호)와 부도가 자리 잡고 있다.

 

[ 경기신문/안양 = 장순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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