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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파주 임진강 '자유의 다리' 유래

 

1953년 7월 한국전쟁의 총성이 멈추면서 국민들이 가장 많이 접했던 언어 중에 하나가 ‘판문점’일 것이다. 행정구역으로 판문점이 있는 ‘파주’와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꼭 건너야 하는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도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그랬다. 휴전회담이 열렸고,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대면했고, 그 밖에 70년 동안 남북간 온갖 회담과 만남이 이뤄진 곳이 판문점이다보니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판문점 만이 아니라 육로로 개성과 평양 등 북한으로 가기 위해서는 임진강을 꼭 건너야하고 그 강 위에 놓인 ‘자유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실향민들이 고향인 북녘을 그리워하며 설·추석 때마다 망향제를 올리는 임진각 앞에 있는 ‘자유의 다리’의 이름은 모순이다. 임진각 망배단에서 제사를 올리는 실향민과 관광객들은 정작 자유롭게 건널 수없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다리였고 누군가에게는 ‘이별과 설움’의 다리였으며, ‘남북 교류’의 다리였는가 하면 ‘분단의 상징’이며 ‘실향의 증표’이며 한과 눈물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다리이기도 하다.

 

자유의 다리는 1953년 문산읍 운천리와 장단면 노상리를 잇던 길이 83m, 너비 4.5m, 높이 8m 안팎 규모인 교량으로 나무를 짜맞추어 만들었는데,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은 철재를 혼합해 사용했다. 임시로 설치한 다리라서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지만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유산으로 인정받아 1966년 12월 24일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됐다.

 

‘자유의 다리’로 불리게 된 것은 1953년 휴전 후 한국전쟁 당시 북쪽에 포로로 잡혀갔던 국군과 유엔군 등 1만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의 땅으로 귀환했기 때문에 '자유의 다리'라고 명명됐다.

 

원래 경의선 철교는 상·하행 2개의 다리가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돼 기둥만 남아 있었는데 전쟁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서쪽 다리 기둥 위에 철교를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이 임시다리를 설치해 포로들이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와서는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왔다고 한다.

 

2000년 1월 1일에 예전 자유의 다리 위치였던 임진강철교 하행선 옆이 아닌 근처의 다른 위치에 새로 자유의 다리를 조성했다. 이후 2016년 12월에는 한국전쟁 당시 건설됐던 자유의 다리 위치인 임진강 철교 하행선 옆에 길이 105m, 폭 5m 규모로 다리 하나를 복원해 결과적으로는 자유의 다리가 두 개가 되는 셈이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가로질러 남과 북을 이어주는 ‘자유의 다리’는 오늘도 남과 북의 자유로운 왕래를 기다리며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고 있다.

 

남북 통일이 돼 정말로 ‘자유의 다리’가 되는 그날을 소원하면서….

 

[ 경기신문 = 최연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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