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선고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나 헌법재판관들 등 헌법기관을 향한 비방과 중상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는 헌법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독일 형법의 입법자가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한 동기가 이해가 간다(StGB §188). 나치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적 기관과 공적 인물들에 대한 “공격”(Der Angriff)을 서슴지 않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급성장하는 것을 방치했던 역사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입법은 공적 존재자들에 대한 공격적 표현을 특별히 가중해서 제재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수정헌법 제1조에 대한 해석론은 정반대의 생각을 실현해 왔다. 워렌 코트(Warren Court)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Newyork Times v. Sullivan) 사건 판결을 선고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원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증명되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지는 판결들은 공직자로부터 공적 인물 일반으로 법리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왔다. 이러한 해석은 공적 인물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 공적 인물에 대한 공격을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법질서는 공적 존재자들을 향한 공격을 가중해서 제재해야 할까 아니면 제재를 감경하고 완화해야 할까? 공적 존재자들은 언론과 다중의 공격에 더욱 노출되어야 할까 아니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까? 어떤 접근법에 따라 설계된 제도들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보존과 공고화에 더 잘 기여할 수 있을까? 공격 내지는 비판을 받는 상대방이 공적 존재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일률적으로 제재를 더욱 무겁게 하거나 더욱 가볍게 하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그러한 공격 또는 비판의 목적이 "비방의 목적"인지 아니면 "공익적 목적"인지 판단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 심지어 오해에 기초한 비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한 목적이 헌정질서의 수호였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돕는 비판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우라고 한다면 헌법기관을 겨냥한 비판적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시민의 자기통치(self-government)의 일부로 보고 허용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공격들은 헌정질서의 개선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파국을 바라는 민주주의의 적들에 의해 순전한 비방의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익적 목적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공격까지도 단지 그것이 공적 존재자들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면책의 특권을 부여해 줄 수 없을 것이다. 헌법기관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격이라면 일반 사인에 대한 공격적 표현보다도 더욱 가혹하게 취급해야 할 수 있다. 명예훼손 사건의 판결들에서 '공익성' 또는 '공익의 목적'이라는 요건은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자는 취지에 따라 완화되기도 했지만, 헌법기관을 향한 원색적 공격과 건설적 비판을 분명히 구분해서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시기에는 결국 목적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동료 시민들을 상대로 헌법기관을 불신해야 한다는 엄청난 주장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똑바로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마저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밭에는 봄이 온다. 봄풀이 돋아난다. 이맘때쯤 농부는 한해 작부 계획을 세운다. 이 밭에는 뭘 심고, 이 밭에는 뭐와 뭐를 같이 심고. 밭에서 자라는 풀들은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로를 이겨내려는 싸움을 하기도 한다. 풀의 다양한 성질을 잘 알면 아는 만큼 밭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의 농부는 아니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아는 수준이다. 흔히 ‘잡초’라 불리는 풀도 그 성질을 알면 ‘작물’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잡초’가 ‘작물’이 되기도 한다. 같은 풀도 내가 모르고 안 기르면 ‘잡초’고, 내가 알고 기르면 ‘작물’이 되니, 순전히 인간 중심적 작명이다. 그 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약이 되어줄 풀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라고 눙 쳐버리는 인간이 가엽고 멍청하게 보일 것도 같다.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지 않고 ‘너희들은 잡것이야’라고 건방 떠는 인간이 방자하게 보일 것도 같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나는 이름 모르는 풀을 ‘잡초’라 하지 않고, ‘들풀’이라 부른다. 마치 학생 이름을 외우지 못한 교사가 그 학생을 ‘어이, 잡놈’이라 부르지 않고, ‘거기, 학생’이라 부르는 미안함, 조심스러움을 담은 표현이다.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그 존재를 모르는 나의 부끄러움과 그 존재를 알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헌법이라는 밭 위에서 같이 사는 우리들은 어떤가? 마치 ‘잡초’라 부르듯 ‘빨갱이’라, ‘수구꼴통’이라 부르지는 않는가. 마을의 어르신이 어떤 때는 정 많은 어르신이 됐다가도 어떤 때는 수구꼴통이 된다. 마을의 고마운 일꾼이 어떤 때는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다. 생활공동체에서는 정을 나누는 관계가 스마트폰 속에서는 적대적 관계가 된다. 영어 ‘스마트(smart)’란 단어에 ‘영리한’이라는 뜻 외에 ‘쑤시는 듯한 고통’, ‘감정을 해치다’, ‘뻔뻔스러운’과 같은 뜻도 있음이 기괴한 우연만은 아니리라. 스마트폰은 내게 쑤시는 듯한 고통을 주는, 나의 감정을 해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접하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농부가 밭에 나는 풀을 내 소중한 ‘작물’에 해를 끼치는 ‘잡초’가 아니라, 내 ‘작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들풀’로 여기는 것처럼, 만약 우리가 나를 화나게 하는 스마트폰 속 국민을 제거할 ‘잡초’가 아니라 함께 할 ‘들풀’로 여긴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무지한 농부가 ‘잡초’를 잡겠다고 무작정 제초제를 뿌리면 그 밭은 죽게 된다. 무도한 대통령 윤석열이 ‘반국가세력’을 잡겠다고 무작정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헌법은 죽게 된다. 작년 12월 3일부터 헌법이라는 밭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흔히 그런 밭을 쑥대밭이라 한다. 알다시피 쑥은 대표적 ‘잡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물과 떡 등 음식 재료가 되고, 약도 된다. 일단 이 밭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그 밭 위의 ‘들풀’ 같은, 헌법 위의 다양한 국민이 제빛을 내며 함께 살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은 그 밭을 살리는 일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 오전 0시 1분(한국 시간 12일 오후 1시 1분)부터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포고문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그동안 무관세 쿼터제를 적용받아왔던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큰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이번엔 미국 축산업계가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가 불공정 무역이라며 규제를 철폐를 요구했다는 소식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3일자 5면, ‘美 축산업계 “韓, 30개월 이상 소고기도 수입해야”’)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전국소고기협회가 “한국의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이 민감한 사안인 것은 이해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미국무역대표부에 제출했다. 한마디로 한국에 30개월 이상 소고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30개월령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처음엔 월령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모두 중단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를 협상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미국 측과 체결한 협정의 내용은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 이상, 대부분의 특정위험부위를 포함한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0개월 이상 사육된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고기 일부 부위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벨트-야콥병(vCJD)’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유모차를 몰고나온 엄마들을 비롯,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넘게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사태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축산업계가 2008년 한미 합의를 통한 30개월 미만 수입 제한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 대만 등도 같은 규제를 철폐했다면서 한국도 그렇게 하라는 압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들여오는 나라다. 지난해 미국의 소고기 수출량은 99만7217t이다. 이 가운데 22.3%인 22만2171t이 한국으로 왔다. 미국산 소고기의 최대 수입국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미국 행정부가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검역 규정을 개정하고 한국에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강요하고 나선다면 한미 간의 갈등이 거세질 수 있다. 우리나라 한우농가들의 우려도 크다. 전국한우협회는 12일 “미국 정부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을 요구하더라도 국회와 정부는 농민의 생존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생각해서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강행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광우병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한우농가는 4년째 적자에 허덕이며 한계점에 내몰려 있다”면서 ‘개월령’까지 철폐되면 더 이상 한우농가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미국 축산업계는 “한국이 30개월 제한을 유지하는 것은 과거의 협상 결과일 뿐, 현재 기준으로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우협회는 “미국에서 광우병은 모두 7건 발생했고 지난 2023년 5월에도 한 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허용된다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히려 미국 축산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트럼프정부가 인식하면 좋겠다.
비상계엄 선포(쿠데타) 이후 102일이 지났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대한민국호가 폭풍우에 갇혔다.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탄핵찬반 군중들의 함성 속에 전국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문제는 에너지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돌아봄, 스스로 객관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자칫 우리 공동체는 그릇된 확신 속에 파괴되고 말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무사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이재명 과 민주당을 악마로 규정하는데서 출발했다. 그 악마가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겼으니 부정선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자칫 악마가 정권을 잡는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 뻔하니 군대를 끌여들여서라도 모조리 처단해야 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이 그대로 극우세력에게 이식되고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편향되고 맹목적인 확신은 무섭다. 서부지법이 초토화되었다. 헌재도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아니, 지금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이재명 대표가 아닐까? 벌써 한차례 칼에 테러를 당한 이재명 대표가 아닌가? 공격깊이를 감안하면 생존자체가 기적이라 할만치 심각한 테러였다. (헌정사상 처음인 야당대표 테러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대응은 더 기적적이었다. 테러사건을 ‘헬기이송 특혜문제’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행했으니...) 지금도 아스팔트를 점령하고 있는 수만명의 극우맹동주의자들은 오매불망 “악마 이재명 처단”을 외친다. 탄핵심판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 테러에 대한 제보가 민주당에 빗발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야당대표가 경호대상이 아니란다. 만일 또다시 테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씻을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내전을 방불케하는 대립 속에 각본 없는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지귀연판사가 구속기간을 ‘구속일(日)’이 아닌 ‘구속시간’으로 해석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상고없이 윤석열 을 석방했다. 정작 지귀연판사 본인은 자신이 집필한 형사소송법해설서에서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고 적었으니 스스로 자기부정을 한 셈이다. 검찰은 이후 현장실무에서 논란이 되자 ‘구속시간’으로 적용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내려보냈으니 ‘웃자고 한 짓’인지 의문이다. 12.3내란이후 가장 궁금했던 점이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부대인 검찰이 왜 친위쿠데타에서 조용할까”였는데 결정적 시기에 곤경에 처한 주군을 풀어주며 내란에 전격 참전을 선언하며 물꼬를 다잡는 모양새다. 이제 이 선택의 후과는 온전히 검찰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시위현장에 ‘검찰개혁’이란 용어가 사라졌다. 누구도 이제는 검찰을 고쳐서 쓸 수 있는 집단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그 빈자리를 ‘검찰해체’라는 구호가 차지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다섯가지가 있다고 한다. “입밖에 낸 말, 쏘아버린 화살, 흘러간 세월, 돌아가신 부모님, 놓쳐버린 기회”가 그것이다. 검찰은 검찰공화국을 거치면서 자정의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이다. 폭풍우에 갖힌 대한민국호는 전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무게를 덜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내란에 본색을 드러낸 내란옹호 집권당과 똥별들이 가득한 군대, 그리고 사법부와 검찰까지 사회대개혁 차원의 대수술만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한걸음 더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덧붙여 야당대표에 대한 경호도 시급하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않을 기회이다.
우려한 사태가 발생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죄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52일 만에 석방되었다. 판사는 윤의 구속 시간이 초과하였다며 구속취소를 결정했고, 대한민국의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석방하였다. 검찰총장은 7일 이내에 항고해서 다시 한번 상급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있었음에도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을 들어 석방지휘를 강행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범죄자들의 구속 기한을 산정할 때 날짜 기준으로 하다가 갑자기 윤석열에게만 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한 것은 무슨 연고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앞으로 기존에 잡아들였던 모든 범죄자가 날짜가 아닌 시간 기준으로 해서 구속해야 한다면서 재심 신청하면 모두 석방할 것인가. 교도소마다 대혼란을 초래될 전조를 보이자 대검은 서둘러 앞으로는 날짜를 기준으로만 삼으라고 검사들에 지시했다. 결국 한 사람만을 위한 법적용이었다. 판검사들은 도대체 왜 여론과 이렇게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 것일까. 그들 모두 배울 만큼 배웠고 아니 최고의 엘리트들인데 왜 국민의 상식과 이렇게 다른 것일까. 영화의 대사처럼 “어차피 국민은 개돼지야. 금방 잊게 되어 있어”를 실천하는 것인가. 법조계 엘리트들은 법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일컫는다. 그들이 내리는 판단과 판결은 도덕의 잣대가 되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부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명예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슈퍼·울트라 엘리트로 불리는 한국 법조계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특정 대학 출신이 70% 이상을 차지해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다. 둘째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갖는 특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셋째는 행사하는 권력에 책임은 없고 잘못된 판단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물론 선진 국가도 특정 대학 출신이 상당수이지만, 카르텔도, 특권의식도 약하고 행위에 대한 책임은 매우 엄격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법조계 엘리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깊이 있는 철학을 발견할 수 없고, 정서적으로는 나약하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 12.3 내란사태에서 보인 그들의 행태다. 그날 이후 국격의 추락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마감시키고 끊어내야 할 역할은 전적으로 사법 시스템의 엘리트들에게 있다. 그러나 수사와 영장 청구, 석방 조치까지 보여준 모습은 비겁함 그 자체였다. 어떤 법조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것은 잘못된 행위야. 엄단해서 후사의 모범이 되게 해야 해!”라는 단호함을 보인 인물이 기억나질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법 지식을 교묘하게 해석, 합리화하여 내란범들에 협조하고 있다. 이 정도면 법 수호자가 아니라 법 기술자, 법꾸라지들이다. 오늘 법조계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나는 국민과 다른 세계 그리고 오류가 없다’는 선민의식은 학교 교육시스템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성공, 경쟁만이 최고인 한국 교육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없다. 퇴계 선생이 왜 학문은 명성과 칭찬만을 구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신을 깨닫고 닦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백골난망이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았는데 설마…
우리나라는 그동안 크고 작은 숱한 위기와 시련을 격었다. 하지만 한 번도 위기에 무너져내린 적이 없었다. 위기때마다 주저함 없이 국민이 나섰기 때문이다. IMF외환위기 때도 그러했고,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러했다. 외부의 경제적 충격과 나쁜 정치가 불러온 사회적 충격이 사회 갈등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기도 했으나, 주권자 국민의 마음이 모아지면서 갈등은 진화되었고, 끝 모를 것만 같았던 위기를 어느 순간 기회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강한 회복력이고,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과거와는 다른 양태로 확대되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벌써 100일이 훌쩍 넘어버린 12.3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점점 극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처럼 불안이 엄습해온다. 우선 과거 대통령 탄핵 판결보다 늦어지는 헌재의 선고기일도 사회적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변론 종결 14일 만에 선고했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11일 만에 선고기일이 잡혔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확대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헌재가 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지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법률적 숙고가 아닌 정치적 숙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나서서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은 법치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 수호하고 따라야 할 정부가 헌법과 헌재의 판결을 거스르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헌재는 2월 2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가 선출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부여한 헌법재판소 구성권을 형해화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 판결 직후 최상목 권한대행은 “헌재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로부터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위헌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권의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길거리로 나가 연일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헌재를 압박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각하 또는 기각해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헌재 앞에서 24시간 ‘5인조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는 것인데, 당 안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취소 후 민주당이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검토하는 것 또한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회는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라고 했고, 김병주 최고위원도 “자진 사퇴를 거부한다면 탄핵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력하게 단행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검찰총장 탄핵을 예고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커지고 있다.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탄핵은 위헌적 법률 위반이어야 되는데, 이 사람은 법률을 위반한 게 아니라 잔수를 둔 것”이라며 탄핵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동안의 사례에서 보듯이 별 효용성도 없이 민주당의 힘자랑처럼 비춰지는 잦은 탄핵은 정국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은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만 의지해서 조속히 판결을 선고해야 하고, 국회와 정부, 정치권은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이 순간부터 국민의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해서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이다.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 대표적인 독재자가 히틀러였다. 그는 국민을 무지한 존재로 여겼다. 조종 가능하다고 했다. 또 쉽게 망각하는 존재였다. 반복적이고 간결한 메시지로 선전(프로파간다)하면 조작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인간의 존엄성은 안중에 없었다. 사회분열은 관심 밖이었다. 우리 역사에 갑자사화가 있다. 1504년, 연산군 10년이었다.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폐출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을 때 찬성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복수가 이 사화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건은 22년이 지난 일로 사화의 직접 원인이 아니었다. 근저에는 자신의 절대왕정 구축에 걸림돌이었던 사간헌과 사헌부 등 감찰기관을 무력화하고 깐깐한 비판 세력이었던 선비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조선일보 주필은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윤 대통령의 실상을 압축해 고발했다. “스스로 자폭했다”.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다”. “사려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다” 등 대통령의 자격 상실을 요건을 적나라하게 열거했다. 민주당의 몇 개월 전 계엄령 선포 주장을 괴담으로 비판한 것도 사과했다. 이러던 조선일보가 돌변했다. 지난 3월 5일부터 3일간 보도한 105주년 특집 기사는 기획 의도를 의심케 했다. “2030 세대 ‘우린 86 부모 세대와 달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갈등을 과할 정도로 부각시켰다. 4050 세대보다 보수 성향 지수가 높고, 계엄·탄핵 시각도 온도차가 뚜렷하다고 보도했다. 반중(反中)의식은 70대 이상보다 강하다고 했다. ‘청년 70%가 비상계엄 선포에 부정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도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2030 세대 4명만의 인터뷰를 집중보도했다. 이들의 사진을 같은 날 한 신문에 두 번 싣는 파격 편집까지 했다. 최소한의 균형조차 없었다. 결과적으로 2030세대 70% 여론은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항목설정도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민주주의가 항상 낫다’. ‘상황에 따라선 독재가 낫다’. ‘민주주의나 독재나 상관 없다’는 항목에 답하도록 했다. ‘독재가 낫다’거나 ‘상관 없다’는 두 항목에 답한 응답자가 20대와 30대가 각각 33%와 36%였다. 전체 평균 27%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과 해결책 제시는 미흡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비율이 이 정도면 심각한 문제다. 이런 현상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기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2030 세대의 반중(反中)의식을 부각시킨 점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강의실과 사회서···내가 볼 혜택, 중국인이 뺏는 느낌’이라고 크게 보도 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혐한, 반한 여론이 일어났을 때를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주류 언론은 과도하게 수용자를 계몽하려 들거나 특정 집단만을 부각해 아부성 기사라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된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도 해야 한다. 이번 조선일보의 창간 특집 기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환호할 기사로 넘쳤다. 조선일보 보도 태도가 계엄선포 직후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라고 우크라이나를 압박한다. 우크라이나는 아쉬워도 끝낼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열세에 있는 사이 러시아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 필사적이다. 막판 최전방에 북한군을 세웠다. 수천명이 죽었다는 믿기지 않는 통계가 나왔다. 전우의 시체를 넘으며 싸우는 기술은 날로 늘어 전투력이 높아졌다는 소식이다. 국가는 병사를 전장에 내몰면서 참전 사실마저 부인한다. 그러나 한국어를 사용하는 포로를 감출 수 없다. 처음 붕대를 감은 북한 군인을 뉴스로 보았을 때 가짜라 생각했다. 북한군인 참전은 사실로 나타났다. 휴전 협상에서 포로는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이슈가 되는 북한군 포로를 놓고 벌써부터 신경전이다. 국가가 참전을 부인하니, 병사에게 국가는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 군인도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병사는 한국을 희망한다. 이들을 국내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사는 한국으로 올 수 있을까. 참전을 부인하는 국가는 포로를 송환할 생각은 있는가. 존재조차 인정되지 않는 병사에게 어떤 선택이 있을까. 그들은 귀향할 수 있을까. 병사의 생명에 조금도 관심 없는 권력자가 병사를 전쟁 소모품으로 내몰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름도 국적도 없이 전쟁에 참여한 병사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 불법 참전한 병사를 우크라이나에서 어떻게 할지 또한 관심사이다. 우크라이나는 북한 병사를 어떤 방식으로 교환할 것인가. 북한 병사를 최전방에 내몰고 설마 참전 사실마저 부인하면 포로가 된 그들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병사의 나라가 당신을 버리지 않고 참전을 인정한다면 군인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군인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진다. 한국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쟁이 끝나는 시점에 포로의 귀향 문제는 이슈가 된다. 전쟁은 참혹하다. 보다 참혹한 일은 포로 교환이다. 정치의 연장이 전쟁이라는 말처럼 포로 교환에 정치가 작동한다. 더욱이 이념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에서 포로들을 어떻게 했었는지 아직 과거는 살아 있다. “당시 아버지는 전쟁 포로가 되어 거재도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나서라 했다.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선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모두 쏘아 죽였다. 아버지는 뒷줄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 먼저 나선 사람들의 죽음이 있은 뒤 아버지는 포로 교환으로 함북도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살아왔다는 이유로 의심에 눈초리를 받았다. 포로 교환된 사람들은 사상 증명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이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서명한지 70년이 지났다.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 포로가 된 병사의 생사에 권력자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전장에서 죽은 병사와 살아남은 병사의 귀환을 책임져야 한다. 사상검증 했던 시대는 지났다. 병사는 소모품이 아니다. 병사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마시라. 살아있음을 부정하지 마시라. 포로의 귀환은 병사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전쟁으로 얻는 이익보다 포로 귀환이 먼저 이슈가 되어야 한다. 살아있음에 당당해지도록.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수원과 용인, 안양에 큰 선물을 줬다. 김 지사가 11일 수원 월드컵경기장 야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회타운 3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수원월드컵경기장, 용인 플랫폼시티, 안양 인덕원 역세권에 2030년까지 새로운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관련기사:경기신문 12일자 1면, ‘김동연, 더 고른 기회로 삶의 선진국’ 만들 것‘) 김 지사는 우만테크노밸리는 경기 남부의 AI지식산업벨트와 경기 북부까지 이어지는 바이오 벨트를 잇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용인플랫폼시티는 반도체 메카 동탄테크노밸리로 이어지면서 AI와 반도체 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만들고, 안양 인덕원 기회타운은 경기 남부의 테크노밸리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서울대농대, 농촌진흥청, 기상청 등 국가 공공기관과 경기교통공사,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경기도사회서비스원 등 도 공공기관이 잇따라 이전했고, 앞으로 경기연구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주택도시공사, 경기도일자리재단, 경기관광공사,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경기문화재단 등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불만이 큰 수원시민들에게 위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공공기관 대거 이전이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희생을 하고 있는 북·동부 지역 주민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지만 수원시민들과 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반발이 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동연 지사는 매번 빼앗기기만 한다고 생각해오던 수원시민들을 위로하듯 “직장과 집 사이 거리와 출퇴근 시간·비용은 줄고, 여가와 휴식을 즐길 기회”를 늘여 ‘내 삶이 더 나아지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만 테크노밸리에 대한 이재준 수원시장의 기대감 또한 크다. 우만 테크노밸리를 “환상형 첨단과학 혁신클러스터의 마지막 조각” “주변 역세권 개발 등과 결합해 ‘수원 대전환’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개발 혁신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만 테크노밸리 사업은 7만㎡ 규모의 수원월드컵경기장 내 유휴부지를 활용해 첨단산업 융복합 혁신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김동연 지사의 말처럼 우만 테크노밸리가 들어서는 수원월드컵 경기장 부지 인근은 생활 기반과 교통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인덕원~동탄 복선전철과,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선에 들어설 ‘수원월드컵경기장역’과 가까우며 영동고속도로 동수원IC는 차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울러 인근엔 광교 테크노밸리, 200개 이상의 바이오 기업, 경기대·아주대, 3개 종합병원 등이 있다. 산·학·연 연계가 잘 이뤄질 것이라는 수원시의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만 테크노밸리가 개발되면 1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경기도의 예상도 과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더해 기존 월드컵경기장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체육시설을 추가 조성하겠다고 한다. 체육인과 지역주민 모두를 위한 스포츠 타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만 테크노밸리 사업은 경기도와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내년 하반기에 착공, 2030년 12월에 준공할 계획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개발 계획 수립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고려한 건축계획 수립 등을 적용, ‘기후타운’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태양광, 소형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갖춰 사용한 에너지의 30%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겠다고 한다. 또 단열과 채광을 활용해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여 에너지 소비의 40%를 줄이고 ‘제로 에너지 빌딩’을 목표로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탑동이노베이션밸리, R&D사이언스파크, 북수원테크노밸리 등 거점을 연결하는 첨단과학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수원시와 경기도의 목표가 계획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는 가족 간병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가장 선호하는 간병 형태로 ‘재가서비스’를 선택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노인 실태 조사’에서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노인이 87%를 상회하였다. 내년 3월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됨에 따라 지역사회에 적합한 돌봄·의료 서비스 모델 및 보건의료와 연계한 통합 돌봄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반적인 의료·돌봄·복지 수요를 바탕으로 재택의료센터를 확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체계적이며 통합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초고령사회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정부는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도 내 집에서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장기요양 공급 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과 제도적 개선을 병행해 가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95곳에 불과한 재택의료센터를 2027년까지 250곳으로 확대함으로써 노인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재택의료’를 강화하고, 국민 간병 부담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 환자의 집을 찾아가 건강을 관리하고 지역 복지 자원을 연계해 필요한 돌봄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큰 비용 부담 없이 고령자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방문진료비 본인부담률을 기존 30%에서 15%로 대폭 낮출 예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장기요양 수급자가 다양한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급자의 80% 가량이 하나의 서비스만 이용하고 있는 현실 속에 통합서비스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가입된 1~5등급의 수급자에게 필요한 재가 서비스를 한 기관에서 제공하는 '통합 재가서비스'가 이번 달부터 제공된다. 주·야간 보호나 방문간호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이 방문요양과 목욕, 간호 등 수급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통합하여 제공한다. 우선, 주·야간 보호형 103개소와 가정 방문형 87개소 등 총 190개 기관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고 하반기에 추가 공모를 통해 확대해 갈 계획이다. 경기도는 '간병 걱정 없는 나라'라는 비전을 세우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호자 없이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맞춤형 방문 의료 및 돌봄 서비스를 도입하여 환자에게 안정적인 회복을, 가족에게는 간병 걱정 없는 일상을, 간병인에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간다는 방침이다. 1인당 연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해 ‘돌봄의 부담을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어지고자 한다’는 실행 전략에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사회에서 대다수의 노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중앙정부,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개개인 삶의 변화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가 구현되기를 기대한다.